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8)
우선은 최형준을 집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생존자들이 그냥 문을 열어줄 리가 없으니 구호물자를 준비해서 보낼 생각이었다.
물자가 준비 될 동안 집에 돌아가서 밥 먹고 씻고 오라고 한 것이다.
‘물이랑 귤이면 충분하겠지.’
적절한 대비를 해 놓지 않았다면 물은 필수일 것이고, 식량은 조리 없이 해 먹을 수 있는 귤이 적당했다.
‘상점 오픈. 귤 한 세트 구입.’
지이잉―
의지만으로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창고 오픈. 귤 상자 넣어.’
의지만으로 창고에 물건을 넣는 행위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지이잉―
직접 입으로 내뱉는 것이 아닌 마음속으로 스킬을 사용할 경우 한 가지 커다란 장점이 있었다.
‘확인 단계가 스킵 된다.’
애초에 스킬을 사용할 때부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사용해야 되기 때문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그만큼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창고에 보관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다.
‘상점 오픈. 이번에는 삼다수 한 세트 구입.’
정신력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연습해두면 분명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창고 오픈. 물 보관.’
그때였다.
[창고에 보관 가능한 무게를 초과하였습니다.]지금까지 창고를 사용하면서 처음 보는 메시지였다.
‘용량은 대략 100kg 정도 되나.’
1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커다란 용량이었다.
‘창고는 레벨 2가 되면 어떤 기능이 추가되는 걸까?’
품위 유지 스킬이나 상점 스킬이 레벨이 올라가며 특별한 기능이 추가된 것을 생각해볼 때, 창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량이 늘어나는 것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와중, 익숙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민 최형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또 올랐네.’
최형준뿐만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옆집에 있는 가족들의 신뢰도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막상 내가 한 일은 별 것 없었다.
그저 수도, 전기, 가스를 공급해준 것뿐이다.
‘시민 관리.’
□최형준 (신뢰도 : 40) (Lv. 9)
□박혜원 (신뢰도 : 32) (Lv. 5)
□최나연 (신뢰도 : 51) (충성도 : 17) (Lv. 3)
□최서연 (신뢰도 : 63) (충성도 : 39) (Lv. 2)
현재 인구수 ( 4 / 600 명)
최나연과 최서연은 이미 신뢰도 50을 돌파하며 충성도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이다보니 경계심을 푸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생각보다 신뢰도라는 게 올리기 쉬워서 다행이네.’
아직 표본이 적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충성도가 개방되는 신뢰도 50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최형준을 기다리는 동안 평소처럼 거실 창밖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간 매일 이러고 있었던 탓인지 시간이 남으면 이렇게 밖을 관찰하게 된다.
‘불타는 건 멈췄네.’
켈리칸을 잡을 때 생겨났던 화재는 의외로 커다란 불로 번지지는 않았다.
‘곧 해가 지겠군.’
오늘 하루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집구석 선포의 레벨이 오르며 영역이 확장된 것이었다.
‘천천히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사람들을 흡수하다 보면, 언젠가 가족들을 구하러 병력을 파견할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을 거야.’
그때였다.
‘사람이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고블린이 아닌 사람이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게 된 것은.
‘뭐 하는 거지?’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섯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 중 남자로 보이는 인물 두 명이 향한 곳은 켈리칸의 남은 사체가 있는 곳이었다.
‘설마 저걸 먹으려고?’
벌써 죽은 지 일주일도 더 된 사체였다.
피도 빼지 않은 고기가 일주일동안 버텨낼 리가 없었다.
아마도 썩은 내가 진동을 할 것이다.
‘못 먹을 텐데.’
그들도 냄새를 맡은 듯 했다.
켈리칸 사체 가까이 접근하던 남자 둘은 이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미친 사람들이네.’
몬스터를 먹을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동시에.
‘마음에 들어.’
다른 것을 떠나서 다함께 밖으로 나왔다는 게 크게 다가왔다.
적어도 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올 용기를 가지고 있단 뜻이었으니까.
‘상점 오픈. 진라면 순한맛 구매, 올리브김 구매.’
지이잉―
나는 곧장 그것들과 귤 몇 개를 밖으로 힘껏 던졌다.
라면이 박살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그들의 시선을 한쪽으로 모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올린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더 먹고 싶으면, 여기로 찾아와라.’
그들은 내가 던진 물품들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키에엑!”
물품들이 떨어지며 난 소리를 듣고 고블린 무리가 나타났다.
‘···이런.’
실수였다.
고블린이 나타날 줄이야.
‘도와주기도 힘들다.’
아령을 던져서 맞히기에는 고블린이 나타난 곳이 너무 멀었다.
‘네 마리···.’
아무리 용기가 있는 이들이라고 해도 무언가를 죽이는 건 쉽게 못 할 것이었다.
‘잘 도망쳐야 할 텐데.’
그러나 그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켈리칸 사체로 다가가던 남자 중 한 명이 고블린을 향해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 직후 남자의 손에서 쏘아지듯이 나간 무언가가 고블린의 머리에 직격했다.
퍼억!
고블린 한 마리가 픽 하고 쓰러졌다.
‘뭐?’
그것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쐐애애액!
네 명 쪽에서 한 여자가 고블린을 향해 활을 쏘아냈고,
푸욱!
“꽤애액!”
푹!
순식간에 두 마리의 미간을 꿰뚫었다.
“으어어어!”
그러는 동안 덩치 큰 남자가 남은 고블린 한 마리를 향해 달려가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꽥!”
전투는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허.’
순식간에 고블린 무리를 정리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들어 올려 내 쪽을 바라봤다.
나도 그들을 마주 보며 되뇌었다.
‘제발 여기로 올라와라.’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그들은 물자만 챙긴 뒤 다른 동 아파트 입구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때였다.
♬♪♬♩~
아무래도 최형준이 찾아온 듯 했다.
나는 가만히 현관 쪽을 바라보며 집중했다.
‘열려라.’
철컥.
‘됐다.’
아직은 속으로나마 강하게 되뇌어야했지만, 연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엇?”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최형준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현관으로 나가보니 그는 양손 가득 물건을 챙긴 상태로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세요?”
“어, 그게···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자격이요?”
“네.”
아무래도 시민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내 집에 들어올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한 거겠지.
‘가신 등록이 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건가?’
최형준은 상자 안에 가득 채워 온 물건들을 건네며 말했다.
“말씀하신 물건들입니다. 무기로 쓸 만한 것들은 모조리 챙겨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자 안에는 식칼과 함께 커다란 공구 상자가 하나 들어가 있었다.
‘창고 오픈. 물과 귤 두 세트 꺼내줘.’
자신의 옆에 실시간으로 생겨나는 물과 귤을 본 최형준은 토끼눈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일단 이건 29층에 보낼 물자입니다. 사람이 없는 것 같아도 그냥 앞에 놔두고 와주세요.”
“네, 맡겨만 주십시오!”
힘차게 대답하는 그를 향해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지금 당장 움직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원래는 내일 낮이 밝으면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었다.
아무래도 밤에는 사방이 어두워서 위험했으니까.
상식적이지 않은 내 말에 최형준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어,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에요. 오히려 대낮일 때가 더 위험합니다.”
솔직히 내 고집이었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긴 했다.
고블린들을 사냥하기 위해 지난 일주일간 목이 빠져라 바깥을 관찰하던 나였다.
덕분에 고블린들이 주로 낮에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방금 산책로에 있던 여섯 명의 남녀도 그것을 알고 지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 테지.
게다가.
‘저들을 반드시 불러와야 해.’
고작 고블린 네 마리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저렇게 압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한다.’
놓치기 싫었다.
“아, 알겠습니다. 29층에 가는 거야 그렇게 어렵진 않으니까요.”
“그게 아닙니다. 층마다 물자를 배치하는 건 내일부터 하셔도 돼요. 제가 원하는 건 귤이랑 물 한 세트를 들고 1층으로 가 주시는 겁니다.”
“이, 일층이요?”
“일층 문밖에 물자를 놔두고 올라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박살난 라면과 김 가지고는 부족할 것이다.
‘그냥 떠난 걸 보면 나를 미친놈쯤으로 여기나본데, 인식부터 바꿔줘야 해.’
하긴 이해는 한다.
30층에서 식량을 집어던지는 미친놈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우선 내가 가진 식량이 많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줘야 해.’
1층에 귤과 물을 가져다놓으면 분명 그들은 자연스레 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방금 식량을 던져줄 때 귤도 함께 던졌으니까.
‘그럼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을 거다.’
궁금증을 유발해서라도 찾아오게끔 만들어야만 했다.
“갑작스럽겠지만,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1층에 놔두고 오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네.”
최형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원래라면 1층에 고블린들이 자리 잡아서 위험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놈들이라면 내가 아령을 던져서 쫓아버렸다.
1층에 물건을 놔두고 오는 정도라면 분명 괜찮으리라.
일주일간 바깥을 관찰하며 어느 정도 확신은 얻었지만, 그럼에도 조금 걱정되기는 했다.
“혹시라도 몬스터를 만나게 된다면 전부 내팽개치고 최대한 빠르게 30층으로 달려오세요. 복도까지만 들어온다면 안전할 겁니다.”
“···예!”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응해준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퀘스트 부여. 1층에 귤 상자와 물 내려놓고 오기. 기간 하루. 보상 없음, 페널티 없음.’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1층에 귤 상자와 물 내려놓고 오기 (0/1)
제한 시간 : 24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없음.
“엇? 이건?”
“수행하시면 약간의 경험치를 획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경험치라니··· 게임 같은 겁니까? 그러면 레벨 같은 것도 있습니까?”
비교적 젊은 나이라 그런지 게임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있었다.
덕분에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맞습니다. 현재 최형준 씨의 레벨은 9입니다. 레벨이 오르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꼭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최형준의 첫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
최형준은 비상계단 출입구 앞에서 침을 삼켰다.
‘가자.’
불이 켜지는 것은 복도까지만이다.
이 밑으로는 옆집 남자의 신비로운 힘이 닿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는 비상등의 존재였다.
“후우.”
그렇지 않아도 비상등의 옅은 불빛에만 의지해서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꽤나 무거운 짐까지 들고 있으니 더욱 긴장됐다.
‘괴물들이 여기까지 올라오지는 않았겠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부지런히 발을 놀린 덕분에 금세 20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후우. 힘드네.’
아무래도 15키로가 넘어가는 짐에다가 만일을 위한 골프채까지 손에 쥔 채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응?”
계단 아래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최형준은 어둠에 잠긴 아래쪽 계단을 유심히 노려봤다.
웅성웅성
“!!!”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려왔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오고 있었다.
불현 듯 최형준의 머릿속에 그날의 참상이 떠올랐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사냥하듯 공격하던 고블린들의 모습.
‘도, 돌아가야!’
최형준은 다급하게 계단 위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심장이 쿵쾅댔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을 생각조차 못하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처절한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빠르게 다가왔다.
결국.
“으, 으억!”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쿠웅! 콰앙!
물이 떨어지며 비상계단 전체에 쿵쾅대는 소리를 냈고, 귤상자에서 튀어나온 귤이 사방에 나뒹굴었다.
“으으으!”
얼른 달아나려 했지만 최형준의 다리는 이미 공포에 집어삼켜진 뒤였다.
‘우, 움직여! 제발!’
웅성
웅성웅성
말소리가 점점 더 빨리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어둠 너머로 비상등의 불빛에 비친 그들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공포가 극에 달했다.
패닉에 빠진 최형준은 온몸을 웅크려 숨죽였다.
그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저기요.”
“히이이익!”
“아저씨.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그의 눈에는 어둠을 뚫고 올라온 여섯 명의 남녀의 모습이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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