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81)
>[Episode 17] 전초전 (4) >
또 다시 새로운 상급 흡혈귀가 출현했다.
혹시나 싶어 시민권을 제의해 봤지만, 이번에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아쉬워’
시민권을 획득하기만 하면 주도권은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었다.
퀘스트 부여를 활용하여 흡혈귀들의 규모나 ‘그분’에 대한 정보를 빼낼 수도 있었고, 아예 죽여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게 가능했다. 잘만하면 저쪽에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날개가 달린 흡혈귀라니.’
아쉽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흡혈귀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따라붙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똑같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김 건 정도인데, 혼자서 저 흡혈귀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흡혈귀가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정보라고 해 봐야 한계가 있었다.
세계수의 모습과 그것을 보호하는 투명한 장막, 그리고 시민권을 제의받았다는 정도가 전부일 테니까.
‘생각보다 반응이 빨랐어.’
첫 번째 흡혈귀를 죽이고 난 뒤에 다음 상급 흡혈귀가 나타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 정도 시간을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흡혈귀가 죽은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아서 새로운 상급 흡혈귀가 출현한 것이다.
‘부하의 죽음을 느끼기라도 하는 건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만 해도 시민들이 죽을 때마다 시스템 알림이 뜨고 있으니까.
‘어쨌든 덕분에…..’
놈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게 됐다.
현재 김건이 날개 달린 상급 흡혈귀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다.
김건의 속도가 좀 더 빨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까마귀의 까만 깃털이 어둠에 녹아들었기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고 잘 따라가는 중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흡혈귀의 뒤를 쫓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아들’
아일랜드 식탁 위에서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던 아빠가 나를 불렀다.
“네?”
“잠깐 이야기 할 수 있나?”
전투가 벌어지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그러자 아빠는 술병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너도 술 한 잔 할래?”
“아니요, 전 괜찮아요.”
“그래? 아쉽네.”
혼자서 술을 따르려는 아빠를 향해 말했다.
“제가 따라드릴게요.”
아빠가 히죽 웃으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꽉 채워, 꽉.”
술잔에 가득 찬 술이 표면장력을 이루어 봉긋하게 올라온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빠는 그대로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킨 다음 입을 열었다.
“아들아.”
“네.”
“가끔 집에도 오고 그래.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셔.”
할머니는 여전히 잠들어 계셨다.
페어리의 힘이 커지면서 깨어 계시는 시간이 십 분 정도로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잠들어 계시는 중이었다.
엄마가 할머니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계셨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은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조만간 한 번 갈게요.”
“그래.”
아빠가 끓인 라면에는 햄과 만두가 들어가 안주용으로 딱이었다.
“한 입 먹을래?”
!!
“…네.”
밥그릇과 함께 젓가락, 숟가락을 건네받은 나는 국자로 라면을 한 그릇 떴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퍼 먹으니 기름진 라면 국물 맛이 혀를 적셔왔다. 정확히 기대한 대로의 맛이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아빠가 이것저것 넣어서 끓인 라면은 의외로 맛이 좋았다.
“먹을만해?”
“네, 맛있어요.”
그제야 아빠는 본론을 꺼냈다.
“흡혈귀 말이다.”
소주잔의 술을 마저 비워낸 아빠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빈 잔을 채워드리며 대답했다.
“일단은 규모부터 파악해야죠.”
“그 다음은?”
“적의 규모에 따라서 어떻게 토벌할지 고민해봐야겠죠.”
그러자 아빠가 질문했다.
“꼭 토벌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거냐?”
!!
“네 말대로 흡혈귀 놈들이 울산을 전부 먹은 거면 위험하지 않겠어? 어쩌면 네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굳이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있을까? 놈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싸운다고 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기에서 싸울 경우 네 능력인 안전지 대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다 같이 네 영역 안으로 숨으면 그만이야.”
아빠의 말이 맞았다.
만약에 그놈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투명 방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물었다.
“이유가 뭐야?”
아빠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았다.
‘나는 왜 무리를 해서라도 흡혈귀들을 토벌하려 하는 걸까.’
그 순간 죽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시민권을 얻었음에도 나의 부주의함 때문에 희생되었던 가련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를 잃고 통곡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여러 가지 방비를 해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안했다.
비극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보이는 모든 싹을 잘라놓고 싶었다.
“한 달 쯤 전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흡혈귀를 한 마리 시민으로 받았어요.”
아빠에게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날의 참극을 들은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무셨다.
“아빠, 놈들은 사람을 먹어요. 저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고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울산이 흡혈귀 놈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고 해도 생존자들은 반드시 있을 거예요. 저는 울산에 있는 흡혈귀들을 박멸하고, 그 사람들을 구해낼 겁니다.”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하동건씨 파티가 전면에 나서주겠지만, 저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도…
그때 갑자기 아빠가 소주를 원샷하더니 감탄사를 뱉어냈다.
“크으으. 미안하다.”
“…뭐가요?”
아빠는 술기운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묵묵히 술잔을 채우고는 겸연쩍은 듯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나는 우리 아들이 경험치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어.”
“…예?”
“크흠, 아니, 그 흡혈귀 놈을 잡으니까 경험치가 어마어마하잖아? 그래서…”
내가 짜게 식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빠는 다시 술을 들이켰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에요?”
“큽. 괜찮아, 괜찮아. 라면 더 줄까?”
“괜찮아요.”
어쩔 줄 몰라 하며 대화 화제를 돌리려는 아빠를 향해 말했다.
“뭐, 확실히 경험치도 짭짤하긴 하겠네요.”
“오해해서 미안하다.”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끝냈을 때 쯤 상급 흡혈귀가 울산에 진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울산에 진입하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까지도 김 건의 존재는 들키지 않은 듯 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 그래.”
아빠가 안방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절대자의 눈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한참을 더 날아가던 상급 흡혈귀는 울산의 중심부인 삼산동에 도착해서야 급격히 고도를 낮추었다.
‘여기가 놈들의 본거지인가.’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는 멀쩡해 보이는 도시였다.
고층 건물이 무너져 있다거나, 커다란 발자국이 새겨져 있지도 않았다.
“내려가 보겠습니다.”
[조심하세요.]멀리서 본 도시의 품경은 평온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도시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허억, 헉!”
박새롬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뒤쪽에서는 잔뜩 흥분한 채 흡혈귀들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이다!”
“잡아!”
박새롬은 운이 나빴다.
그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굶주린 흡혈귀들이 잔뜩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녀의 앞에서도, 옆에서도 흡혈귀들이 이를 드러낸 채 다가오고 있었다.
“흐윽.”
박새롬은 어떻게든 울음을 집어삼키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아파트 울타리를 넘어가기 위해 기어오르는 순간.
“진짜다!”
“저기 인간이 있어!”
“비켜!”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 몰려오는 흡혈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새롬은 울타리를 넘어가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이 씻팔. 좆 됐네.”
후회했다.
괜히 여기까지 와서는 개죽음을 당할 줄이야.
스스로의 능력을 너무 믿은 탓이다.
그 순간.
“으윽?!”
갑자기 양쪽 어깨와 겨드랑이에서 톰증이 느껴졌다.
이윽고 자신의 몸이 하늘로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박새롬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까마귀 형상을 한 괴물이 있었다.
“하하….”
허무했다.
흡혈귀를 피해 도망쳤더니 까마귀 괴물에게 사로잡히다니.
‘아니지, 차라리 이렇게라도 저길 벗어난 게 어디야. 정신만 바짝 차리면 이 괴물 놈에게서도 도망칠 기회가 있을 거야.’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애써 긍정회로를 돌리던 박새롬은 문득 자신의 발아래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흡혈귀들이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썩 유쾌해진 박새롬은 자신의 신세도 잊고 흡혈귀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이 개 병신들아!! 다 죽어버려어!!”
그때였다.
“조용히 해 주세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사람의 언어에 박새롬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네?”
“흡혈귀들 어그로 끌리지 않게 조용히 좀 해 달라고요.”
부리가 움직이며 사람의 언어를 뱉어내는 것을 확인한 박새롬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까마귀 괴물은 박새롬을 적당한 건물 옥상에 내려준 다음 자신도 그곳에 내려앉았다.
괴물이 박새롬을 향해 부리를 뻐끔거렸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박새롬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뒷걸음질 치며 대답했다.
“뭐, 뭔데요?”
“흡혈귀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흡혈귀에 대해서요?”
“네.”
“으음… 심장을 부수면 죽는다는 것?”
잠시 침묵하던 까마귀 괴물이 물었다.
“그게 끝입니까?”
“잠깐! 잠깐만,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말씀하세요.”
박새롬이 눈을 새초롬하게 뜨며 질문했다.
“당신… 인간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질문이었다.
괴물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새로 변하는 남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까마귀 괴물이 사람 말을 배웠다는 것 보다는 그쪽이 더 현실성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까마귀 괴물이 대답했다.
“사람입니다.”
“증거를 보여줘.”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변신을 풀어보였다.
그의 몸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떨어져 나오더니 이내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됐습니까?”
!!
“…진짜네.”
남자가 박새롬을 향해 말했다.
“흡혈귀 놈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해주세요. 도대체 놈들이 이 도시에 얼마나 퍼져 있는 겁니까?”
“흐흠, 흡혈귀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궁금한 거지? 그런 거에 관해서는 내가 또 전문가긴 하지.”
“말씀해주세요.”
“흐음, 그냥 말해주기는 좀 그런데, 워낙 고급 정보라….”
슬쩍 보니 남자가 짜게 식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뻔뻔하시네요.”
“내가 좀 그런 편이지.”
박새롬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나 그렇게 썅년 아니야. 그냥 가벼운 부탁 하나만…..”
이대로 혼자서 흡혈귀들의 구역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부탁하려던 그때였다.
지이잉-
허공에서 콜라와 초코바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거면 되겠습니까?”
박새롬은 멍하니 콜라캔부터 땄다.
치직-
청량한 탄산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삼켰다.
“!”
진품이었다.
따가운 탄산이 목을 지져댔지만, 고통은커녕 행복하게 느껴졌다.
단숨에 콜라를 원샷한 박새롬이 입을 열었다.
“꺼억-!”
곧바로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초코바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남자가 한 발 뒤로 빼며 말했다.
“질문에 대답 먼저 해 주십시오.”
박새롬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무엇을 말씀드리면 될까요,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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