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82)
〈[Episode 18] 알박기 (1) >
박새롬이 초코바를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울산 전체에 흡혈귀 놈들이 득실거리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대충… 절반 정도?”
아주 절망적인 수치는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흡혈귀화 되었다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태화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흡혈귀들의 땅이라서 위험하지만, 강만 건너가도 괜찮아져요. 거긴 인간이 더 위험해!”
절대자의 눈을 통해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자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곳은 명백히 태화강의 남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흡혈귀들의 구역이라는 뜻이다.
곧장 소통의 반지를 활성화시켜 김 건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어째서 흡혈귀들의 구역에서 쫓기고 있었던 건지 물어봐주시겠어요?]그러자 김건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앵무새처럼 내 말을 되풀이하였다.
“그쪽 말대로라면 여기는 흡혈귀들의 구역인데, 왜 여기서 흡혈귀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겁니까?”
“아, 그거? 일이 좀 꼬였어.”
초코바를 다 먹어치운 박새롬이 귀신같이 반말을 시전 했다.
“근데 방금처럼 그런 거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어?”
김건이 짜게 식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박새롬이 눈치를 보며 말꼬리를 올렸다.
“요?”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상점에서 콜라 1.25L짜리와 ABC 초콜릿을 한 봉지 사들였다.
지이잉-
허공에서 시원한 콜라와 초콜릿이 생성되자 박새롬의 눈빛이 곧장 날카롭게 빛났다.
김 건이 그것들을 잡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서는 콜라와 초콜릿을 낚아챘다.
그제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왜 제가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겠어요? 당연히 먹을 거 구하러 왔죠. 내가 먹여 살려야 되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이번에는 손에든 물건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다시 반말체로 돌아와 버렸다.
실소를 머금는 김건을 향해 박새롬이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나랑 같이 좀 가줄 수 있나?”
김건이 내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을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박새롬이 한결 다급해진 목소리로 재촉했다.
“아니, 그렇잖아? 보아하니까 너도 궁금한 게 여러 가지 있는 것 같은데요. 안전한 곳으로 가서 함께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새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흡혈귀들의 본거지인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안전한 곳에서 대화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사실 이제 들을 건 다 들었는데.’
태화강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생존자 집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더 들을 정보라고 해 봐야 생존자 집단의 구성 정도인가.’
박새롬의 말을 들어보면 모든 생존자 집단이 하나로 힘을 합치고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쪽 상황이 궁금하기는 했다.
김건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일단 변신부터 해 봐.”
김건이 반말을 하자 자연스럽게 말투가 편해진 박새롬이었다.
다시 까망이와 하나가 된 김 건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박새롬이 손가락으로 강 너머를 가리켰다.
“저기 저쪽으로 가면 돼.”
“알겠다.”
대략적인 방향을 확인한 김건이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 나 아직 안 탔는-!”
박새롬의 말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김건이 발톱으로 그녀의 양쪽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야! 잠깐만! 아파, 아프다고!”
“조금만 참아라.”
“아이 싯팔! 등에 태워 달라고!”
“싫다.”
“왜!”
김건은 덤덤하게 부리를 놀렸다.
“냄새 난다.”
그 강렬한 한 마디에 충격 받은 듯한 얼굴을 한 박새롬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어?”
“냄새, 심하다.”
팩트긴 했다.
절대자의 눈은 단지 시야만을 보이는 게 아니라 스킬이 발동되는 공간의 냄새를 맡거나 공기의 흐름을 느끼는 것도 가능했는데, 박새롬에게서 냄새가 심하게 나기는 했다.
당연했다.
당장 마실 물도 구하기 어려운 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새삼스럽게 내 영역 안에서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야이, 새끼야! 너 이리 와 봐! 안 와?!”
난리 부르스를 추는 박새롬을 향해 김 건이 덤덤하게 말했다.
“얌전히 있어라. 떨어진다.”
“아씨.”
박새롬은 자신의 발밑을 확인한 뒤 곧바로 얌전해졌다.
기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 김건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날개를 펄럭였다.
********
“…이상입니다.”
보고를 마친 서누리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서누리는 그 상태 그대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막상 보고를 이어나가다 보니 자신이 들고 온 정보가 얼마나 별 것 없는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용이라고 해 봐야 거대한 나무의 존재와 그것을 보호하는 커다란 벽, 그리고 ‘시민권’이라는 것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것들이 정확히 어떻게 정영훈과 고인석의 목숨을 앗아간 것인지 알아오지 못한 것이다.
질책을 받을 마음을 준비를 하고 있던 그때,
“흥미롭군.”
!!
그로부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고작 아파트 크기만 한 나무라.”
서누리는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항시 무감정한 얼굴로 기계처럼 명령만 내리던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흐음.”
남자는 소파에 몸을 더 깊게 파묻으며 와인 잔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와인 잔에 담긴 붉은 선혈을 잠시 음미하던 그가 짧게 명령했다.
“안내해라.”
남자의 말에 서누리가 짧게 반문했다.
“…예?”
그러는 동안 남자는 테이블에 와인 잔을 올려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말했다.
“그 나무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라. 내가 직접 간다.”
한 박자 늦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서누리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모, 모시겠습니다.”
********
박새롬이 안내한 곳은 홈플러스로 그곳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생존자 집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구가 거의 천여 명에 달할 만큼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를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은.
“여어, 박새롬이. 아직 안 뒤졌구만? 뒤에는 뭐야. 신참인가?”
“내가 침 발라 뒀으니까 신경 끄셔.”
“뭐야?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궁금해지는 걸?”
“엿이나 까 잡숴.”
박새롬과 거칠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중년 남성.
그는,
『정웅(Lv. 21)』
각성 능력 : 돌주먹
‘또다.’
각성자였다.
‘벌써 세 번째인가.’
겨우 천 여 명밖에 되지 않는 조직에서 벌써 각성자를 세 명 째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박새롬을 포함한 숫자였다.
‘그렇다고 해도 벌써 다섯 명이나 마주치다니.’
천명을 일일이 다 둘러본 것도 아니었다.
홈플러스 옥상으로 진입하여 박새롬을 따라가면서 마주친 수십 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무려 두 명의 각성자를 추가로 발견한 것이다.
‘왜 이렇게 많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는 말이 안 되는 비율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동안 5만 명이 넘는 시민들을 받아들이면서 확인한 ‘네츄럴’은 총 6명뿐이었다.
네츄럴이란 하동건이나 오언주처럼 가신 등록 이전부터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를 말한다.
어쨌든 대충 8천 명 중에 한 명 꼴로 각성자가 나타난 셈이다.
그런데 여기는 전체 인구가 천 여 명 정도인 주제에 벌써부터 각성자만 세 사람이 있었다.
‘여기, 의외로 노다지일지도?’
통상적으로 네츄럴들은 가신이 되던, 종속의 계약을 맺던 그 효율이 더 좋게 나타나곤 했다.
내 입장에서 잠재력 높은 시민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호재였다.
‘지금 당장 시민권을 발급해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홈플러스 구석에 ‘스태프 온리’라고 적혀 있는 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간 박새롬을 환한 손전등의 불빛이 환영 해주었다.
“윽. 안 치우냐?”
“뭐야, 박새롬?”
“어? 누나? 벌써 왔어요?”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실패했겠지.’
그런 그들을 향해 박새롬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며 대꾸했다.
“이 썅것들아. 그게 뒈질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리더한테 할 소리냐?”
“리더는 개뿔, 배낭은 어디 팔아먹었냐?”
“살려고 버렸다, 씨발.”
흡혈귀들에게 쫓기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짜증 섞인 말투로 고개를 흔들거리더니 소파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콜라와 초콜릿을 던졌다.
“어? 이게 뭐야? 콜라?”
“오오, 뭐야, 아예 허탕만 친 건 아닌가 보네.”
곧바로 초콜릿을 뜯어 나눠먹는 이들 사이에서 박새롬은 테이블 위에 놓인 손전등을 들어 김건을 향해 비췄다.
“그래서, 어떤 게 궁금하실까요, 고객님?”
“누구야?”
“닥치고 가만히 있어.”
그녀의 말투에서는 정보료를 톡톡히 뜯어 먹겠다는 다짐이 보였는데, 아마도 아까 전 김 건의 그 발언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괜히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겠지.’
여기까지 오면서 홈플러스 내부를 대충이나마 둘러봤다.
전체적으로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과 몰골만 보아도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쯤은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형 마트는 분명 이러한 상황에서 입지가 좋은 곳이기는 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도움이 될 물건들은 물론 식자재까지 풍부한 편이었다.
재고가 쌓여 있는 창고는 생존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물자로도 평생을 버틸 수는 없었다.
이들도 이젠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박새롬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밖으로 나돌아야 할 만큼 말이다.
‘상점 오픈’
저들이 지금 가장 갈증하고 원하는 것.
그것을 채워주기로 했다.
저들이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일종의 충격 요법이지.’
물과 참치캔, 스팸을 비롯한 각종 비축 식량, 그리고 라면, 과일, 과자, 음료수를 비롯한 수많은 먹을거리들.
그것들이 박스채로 소환되어 김건의 주위로 나열시켰다.
“어, 어어?”
무서운 기세로 증식하는 상자 부대에 당황스러워 하던 박새롬이 조심스럽게 상자에 접근했다.
그리고 상자를 개봉했다.
찌직-
마침 그녀가 개봉한 상자에는 그녀가 좋아하던 콜라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헐’
!!
박새롬은 잠시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대더니.
“..대박.”
조용히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리고.
“흐어어어엉!”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라 잠시 멍해졌다.
그것은 김 건도 마찬가지였는지 박새롬 앞에서 굳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때 안쪽에 있던 박새롬의 동료들이 반응했다.
“누나? 왜 그래?”
“괜찮아?”
“뭔데.”
박새롬이 울음을 터뜨리자 초콜릿에 정신이 팔려 있던 동료들이 하나 둘 다가와 상황을 파악했다.
“아니, 이게 도대체….”
“갑자기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입구에 가득 쌓인 상자들을 보면서 얼떨떨해하는 이들과,
“흐아아앙!”
“누, 누나, 그만 울어 봐요.”
아예 자리에 주저 앉어 우는 박새롬과 그런 그녀를 달래는 이들.
“야! 씨발! 이거 봐봐! 라면이야, 라면!”
“뭐라고? 진짜?”
그리고 상자를 뒤져대는 이들로 상황은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아니, 씨발! 근데 왜 다 진순인건데?”
“야. 진순 맛있거든?”
“아, 모르겠고, 하나만 줘봐. 부셔먹게.”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박새롬이 김건에게 기어와 말했다.
“뭐, 뭐든 말씀하세여. 흐윽, 주인님. 흐윽.”
아무래도 충격 요법이 너무 지나치게 잘 들어간 듯 했다.
‘조금 짠하네’
어찌됐든 자기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흡혈귀들의 땅을 밟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흐윽, 싯팔, 로또다, 흐극, 로또!”
그 이후 박새롬은 순종적인 태도로 모든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Episode 18] 알박기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