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86)
>[Episode 19] 게릴라 전투 (1) >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불빛을 잃어버린 도시의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검은 까마귀가 어느 건물의 옥상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갔다.
성인 남자만큼이나 커다란 덩치를 가진 까마귀가 잠시 쉬어간 건물 옥상에는
찍-
생쥐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내 자그마한 틈새를 발견한 생쥐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잠시 후.
푸쉬이이이-
환풍구 통로를 타고 보라색 독가스가 건물 전체로 퍼져나갔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일파만파 퍼져나간 독가스는 이내 건물 내부로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흡혈귀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준비는 됐나?”
“…최하급 서른 마리.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좋아. 두 시간 뒤에 출격시켜.”
태화강 남쪽 구역에 바짝 붙어 위치한 이 건물 안에는 수십 마리의 흡혈귀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된 업무는 일정한 간격마다 흡혈귀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저어. 그런데 팀장님.”
“엉?”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 겁니까? 어째서 이런 쓸데없는 소모전을 계속 고집하시는지..”
팀장이라고 불린 중급 흡혈귀가 물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담뱃불만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급 흡혈귀가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솔직히 다 같이 힘을 합치면 강 건너에 있는 인간들을 쓸어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겁니다! 아무리 인간들 손에 총이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몸을 사릴 이유가 어디?!”
열정 넘치는 하급 흡혈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면상에 뿌려진 담배 연기 때문이었다.
“콜록, 콜록!”
무심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던 중급 흡혈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마음은 이해해.”
중급 흡혈귀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혈액 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겨우 이딴 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지? 강 건너에 싱싱한 인간들이 저렇게 많은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구만.”
중급 흡혈귀는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도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그와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도시의 진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부하를 달래주어야겠다고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강 건너편에 있는 것들은 중요한 의식을 위한 제물들이다.”
“…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부하를 향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기다려라. 곧 다가올 만월의 밤에 피의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그 말씀은!”
“때를 기다리란 소리다.”
“알겠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만월의 밤에 총공격을 감행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날 펼쳐지게 될 장면은 전쟁이 아닌 학살의 현장이었으니까.
‘그때가 되면…?’
행복한 상상을 펼치고 있던 그 순간.
“음?”
푸쉬이이이-
천장의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 독가스가 실내를 가득 채워나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뒤늦게나마 독가스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담뱃불이 주변을 미약하게나마 밝혀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중급 흡혈귀가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털썩!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그의 앞에서 보고를 올리던 하급 흡혈귀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중급 흡혈귀는 부리나케 창가를 향해 달려간 다음 그대로 몸을 던졌다.
쨍그랑!
유리창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간 중급 흡혈귀의 전신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베여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중급 흡혈귀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멍하니 자신이 빠져나온 건물을 올려다봤다.
박살 난 창틈으로 보랏빛 연기가 꾸물꾸물 새어 나오고 있었다.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있는 건물만 그런 상태인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물 대여섯 개에서 보랏빛 독가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러나 그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끄아아악!”
골목에서 흡혈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철컥철컥-!
은빛 갑옷이 그를 추격해 왔다.
“사, 살려줘!”
흡혈귀는 목숨을 구걸했으나.
푸욱!
거침없이 찔러 온 할버드에 심장을 내주어야만 했다.
“커헉!”
즉시 죽음을 맞이한 흡혈귀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질 나쁜 악몽이로군.’
누군가에 의해 사냥당하는 흡혈귀들의 모습이라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장면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피의 축제를 너무 기대한 건가?”
그래서 학살의 현장이 이렇게 꿈으로 형상화된 것일까.
학살당하는 대상이 인간이 아닌 흡혈귀인 것은 무의식이 농간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푸슉!
빛의 화살 하나가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한 박자 늦게.
“쿨럭!”
등에서부터 시작된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가슴 부근까지 옮겨왔다.
“…꿈이 아니라고?”
그가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심장이 박살나고 난 뒤였다.
털썩.
싸늘한 콘크리트 바닥이 뺨에 와닿는 것이 중급 흡혈귀가 생의 끝자락에서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수십 명의 인간을 잡아먹은 괴물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최후였다.
문병호를 이용한 요인 암살.
서예진의 생쥐들과 유혜린의 독가스를 이용한 테러. 하동건 파티와 이준혁 파티 등을 활용한 게릴라 전술.
어차피 들킬 거, 처음부터 화려하게 스타트를 끊어버렸다.
[하급 흡혈귀(Lv. 22)를 사냥하셨습니다.] [하급 흡혈귀(Lv. 26)를 사냥하셨습니다.] [중급 흡혈귀(Lv. 31)를 사냥하셨습니다.]흡혈귀들이 경험치와 정산금으로 바뀌어나가는 알림이 계속해서 울려댔다.
‘곧 그놈에게까지 보고가 들어가겠지.’
상황을 인지하면 놈과 상급 흡혈귀들이 움직일 테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놈들에 대한 대비는 확실했으니까.
우선 이틀간의 탐색으로 울산 전역에 퍼져 있는 상급 흡혈귀들의 숫자와 소재를 완벽하게 파악하였다.
‘상급 흡혈귀들의 숫자는 총 열하나.’
현재 흡혈귀들의 우두머리와 상급 흡혈귀 총 열두 마리를 실시간으로 감시 중이었다.
“유한길씨. 특이사항 있나요?”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감은 채 집중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없습니다. 아직 상황을 전달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최근에 합류한 네츄럴 각성자 유한길.
그가 각성한 능력은 천리안이었으며, 종의 계약을 맺고 가신 등록을 하면서 그 능력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덕분에 울산 전역에 퍼져 있는 상급 흡혈귀들의 소재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한 상태였다.
“특이사항 발생하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상급 흡혈귀들의 동향을 살피는 것은 유한길에게 맡기고, 옆에 있던 유혜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충분히 쉬셨나요?”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유혜린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독가스를 만들어냈다.
그것들은 곧바로 절대자의 창고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내 서예진의 생쥐가 기어 다니고 있는 건물 내부로 이동되었다.
“꺼흑.”
한계치까지 혹사당한 유혜린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모든 정신력을 소모하며 선 채로 기절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해 유혜린을 소파 위에 옮겨놓은 다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녀가 넉다운되며 더 이상의 독가스 공격은 불가능해졌으니 이제 흡혈귀들과 직접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는 가신들을 보조할 준비를 할 차례였다.
“예진아 준비됐어?”
“응.”
생쥐를 이용한 정찰 말고도 서예진이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창고에 탄두를 채우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총질을 하면 유한길의 집중력을 깨뜨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손을 잡고 옥상으로 텔레포트 했다.
‘상점 오픈. 총기 구입.’
지이이잉-
M16과 실탄이 허공에 나타났고, 서예진은 익숙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총알을 장전했다.
철컥
장전을 마친 서예진은 총구를 하늘 위로 향한 상태로 어깨에 견착했다.
그 모습은 잘 훈련된 군인과 다를 것 없었다.
“쏜다?”
“쏴.”
그 직후.
투두두두두-
하늘을 향해서 총구가 불을 뿜었고, 30발의 탄두가 창고에 저장되었다.
총열이 뜨겁게 달아오른 총기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상점에서 새로운 총기를 구입했고, 서예진은 가득 채운 탄창을 새로 나타난 총기에 장착시
켰다.
“간다.”
“응.”
투두두두두-
그런 식으로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창고 안에 막 쏘아진 탄두 수백 발을 저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총알들은.
푸슉!
[하급 흡혈귀(Lv. 2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82,937,01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실시간으로 가신들의 보조에 사용되고 있었다.
서예진이 쏘아낸 탄두를 사용한 사냥이었기에 모든 추가 혜택이 적용된 상태였다.
절대자의 눈으로 가신들의 사각을 살피며 빈틈을 노리는 흡혈귀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때였다.
“재현님. 상급 흡혈귀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유한길을 비추고 있던 절대자의 눈에서 위험신호가 들려왔다.
투두두-
열심히 총을 갈겨대는 서예진을 향해 말했다.
“예진아 그만.”
“끝났어?”
“상급 흡혈귀가 움직인 모양이야.”
옥상에 늘어놓은 총기와 총알을 창고에 넣은 다음 텔레포트를 사용해 유한길이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재현님? 특이사항이 발생했습니다. 재현님?”
나를 찾는 유한길을 향해 물었다.
“누가 움직인 거죠?”
“11번 흡혈귀입니다.”
우리는 원활한 깽판을 위해 상급 흡혈귀들에게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를 매겨 놓았다.
1번이 흡혈귀의 우두머리였고, 1번에서 멀어질수록 레벨이 낮은 상급 흡혈귀에 해당했다.
그중 11번은 우리가 노리고 있던 놈이었다.
“오빠 말대로 11번이 제일 먼저 움직였네요?”
“바로 옆에서 총소리가 들려오는데 제일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지.”
11번을 끌어내기 위해서 놈이 있는 근처를 작전 구역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상급 흡혈귀 중에서도 적당히 약한 놈.
‘그리고’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놈을 끝장내기 위해서 에이스 카드를 준비해 놓았다.
‘절대자의 눈.’
가신들을 보조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절대자의 눈 시야를 하나로 만들었다.
시야 너머로 특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씨발 도대체 무슨 일이야?”
“대규모 습격입니다. 인간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화가 잔뜩 난 듯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상급 흡혈귀 놈들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게 몇 가지 있지.”
바로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것.
두 번째로 만났던 고인석이라는 놈은 전신이 붉게 달아오르고 난 뒤 전투력이 급상승했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전투태세가 있는 것이다.
‘능력을 발휘할 시간을 주면 안 돼.’
그리고 또 한 가지.
‘녀석들에게 위협이 되는 기술은 현재까지 두 가지다.’
하나는 김가영의 빛의 화살이었다.
피어싱 스킬이 담긴 그녀의 빛의 화살은 매번 흡혈귀들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혔다.
그리고.
‘하동건의 검은 기운.’
그 순간 11번 흡혈귀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직후.
건물 외벽의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하동건이 위에서부터 떨어져내렸다.
쿠웅!
놈의 등 뒤에 착지한 직후.
푸욱!
검은 기운에 휩싸인 하동건의 창이 11번 흡혈귀의 심장을 꿰뚫었다.
[상급 흡혈귀(Lv. 41)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831,489,22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Episode 19] 게릴라 전투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