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96)
>[Episode 21] 정비 (3) >
이호범은 울산 출신의 생존자였다.
타다다닥
그는 가스 불을 키고 식용유를 두른 팬에 계란 두 개를 까며 생각했다.
‘다시 이런 생활이 가능해질 줄이야.’
지극히 평범한 생활.
합숙 노숙 생활이나 다를 바 없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날마다 새롭고, 감사하고, 경이로웠다.
이호범은 처음 이곳에 왔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처음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인가 고민했다.
물론 울산에 있을 때도 아파트는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이나 옷 따위를 파밍하기 좋은 장소였지만, 안내원들이 숙소로 안내해준다고 말했기에 의아해 했었다.
당연히 체육관이나 대피소 같은 곳을 안내받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아파트 전체에 가스, 전기, 수도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정말이지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후린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었다.
청소는 좀 해야 했지만, 기본적인 가전제품이 전부 갖추어져 있어서 굉장히 편했다.
전기밥솥,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그리고 쓸모없는 티비까지.
기본적인 식기들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물이나 식량은 상점이라는 곳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지만, 처음에는 그것마저도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에 걱정할 거리가 없었다.
‘아직도 이게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사실은 진짜 자신은 그때 흡혈귀에게 당해서 죽었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죽기 전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이 기적 같은 일이 단 한 사람의 힘에서 나온다니.’
처음 그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구조대원들 덕분이었다.
구조대원들이 부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김재현’이라는 남자의 존재를 입에 담았다.
처음에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인가 했었는데, 기운이 없던 사람들이나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상태가 즉시 호전되는 것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실제로 하동건에게 목숨을 구함 받았던 이호범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 있었다.
폭주하는 괴물과, 그 괴물을 단번에 끝장내 버리는 신비한 힘을 가진 남자를 눈앞에서 확인했었으니까.
그리고 김재현의 존재를 믿는 순간.
‘온몸에 힘이 넘쳐났었지.’
최도연을 업고 달려오느라 모든 체력을 소진했던 그의 몸에 활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치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은듯한 느낌.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여 기력이 없던 몸에 순식간에 활기가 도는 순간을 이호범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구원이 가장 절실했던 순간에 겪었던 기적이었기에 이호범은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작은 기적들에 대해 감사하며 마저 상을 차렸다.
밥솥에서 갓 지은 밥을 푸고 김을 꺼내는 것으로 식사 준비를 마친 이호범이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
“야! 최도연!”
불러도 반응이 없기에 방문을 열어보니 분명 아까 깨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불을 둘둘 만 굼벵이가 되어 잠을 자고 있었다.
“야! 언제까지 쳐 잘 거야?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자 최도연이 잠에 빠져 있는 몽롱한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10분만….”
이호범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이불을 거두어 버렸다.
최도연은 살짝 몸을 떨더니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는 말했다.
“5분만…”
“아, 몰라. 그럼 나 혼자 밥 먹는다.”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이호범은 주방으로 나와 식사를 시작했다.
계란 하나를 가져와 밥 위에서 노른자를 터뜨렸다.
반숙으로 잘 익은 계란과 밥을 잘 비벼 김에 싸 한 입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두세 번 정도 더 먹을 때 쯤 최도연이 방에서 나오더니 맞은편 식탁에 앉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녀의 미소와 말 한 마디에 짜증이 사르르 녹는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며 이호범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호구가 따로 없구나.’
이곳에서 최도연과 동거를 시작한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두 사람 모두 부모를 잃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두 사람은 친구였다.
이호범은 그게 불만이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 이 평온한 일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시까지 나가야 하더라?”
“이거 먹고 바로 나가야 해.”
“응? 나 씻어야 하는데 그럼.”
“모자 있잖아.”
“안 돼. 오늘이 첫 공략인데!”
최도연은 허겁지겁 밥을 입안으로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샤워기 소리를 들으며 이호범은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치웠다.
그리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고블린 던전이라고 그랬지.’
지난 일주일간 총기 사용 교육과 고블린 던전 공략 교육을 이수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첫 실습을 나서는 날이었다.
8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데, 이호범과 최도연의 팀원들은 부부 세 쌍이었다.
여덟 명 전부 첫 공략이어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감독관 한 명이 따라붙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호범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말해야 할까.’
그 순간.
찌릿-
그의 손에서 푸른 전기가 잠시 번쩍였다.
이 힘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겨우 나흘 전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몸속에서 미세한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는데,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때다.’
남대문이라고 불리던 그 불꽃의 문 안으로 이동하기 직전.
태화강 건너편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호범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것을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죽음의 공포를 체험했고, 주변에 있던 이들이 패닉에 빠져 한순간 난리가 나기도 했었다.
‘정확히 그때 이후로 몸속에서 이상한 힘이 느껴졌었어.’
그것은 분명 흡혈귀의 힘이었다.
이 힘을 얻은 게 정말 그 때문이라면 이것은 아주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아직 이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최도연 딱 한 사람뿐이었다.
‘혹시라도 정말 흡혈귀의 힘이 전이된 거라면… 흡혈귀가 되기 전의 전조 현상일 수도 있다.’
흡혈귀들 중에는 신비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상상하기는 싫었지만, 만약 이 힘이 생긴 것이 흡혈귀와 연관이 있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단단히 숨기고 있는 것이다.
‘들켜서 좋을 게 없어. 최대한 들키지 말아야 해.’
다시 한 번 힘을 발현시켜 보았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하게.
파지직-
그의 손 안에서 푸른 전기가 살벌하게 튀어 올랐다.
모르긴 몰라도 꽤 강력해 보이는 힘이었으나 이 힘을 사용할 상황은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총을 들고 공략을 나서는데 굳이 고블리에게 근접하게 될 리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힘이 있는 것만 해도 든든하네.’
만일의 사태가 생긴다고 해도 대응할 수 있다는 건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최도연이 밖으로 나오며 급하게 식탁으로 오더니 한 숟가락을 더 자신의 입에 욱여넣었다.
그런 최도연의 주변에 힘찬 바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바람에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는 게 머리카락을 말리려고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호범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너, 그거!”
“응?”
“내가 힘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라고 그랬지?! 흡혈귀랑 연관된 힘일 수도 있다고 조심하라 그랬잖아!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에헤헤. 미안.”
바람이 가라앉는 것을 확인하며 이호범이 추가로 말했다.
“밖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마. 알겠어?”
“네에~.”
“에휴.”
나는 이호범과 최도연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흡혈귀의 힘 같은 게 아닌데 말이지.’
이호범과 최도연의 존재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진조와의 전투에서 검은 기운에 대해 자각하게 된 이후로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떤 능력을 사용하든 내게 감지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호범과 최도연이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절재자의 눈 중 하나를 그들에게 향한 것이다.
‘각성의 조건이라.’
이호범이 자신들의 능력을 흡혈귀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전에 두 사람이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입으로 직접 그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호범이 말하는 타이밍은 분명 진조가 각성한 시점이다.’
진조의 힘의 파동에 반응한 것은 분명했으나, 그 힘이 그들에게 옮겨 붙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힘을 각성시키는 건가?’
그러고 보면 네츄럴의 힘을 얻은 가신들도 모두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블린 사냥에 미쳐 있었던 오언주나 문병호의 할머니를 구하러 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하동건은 물론이고, 내 바로 밑에 층에서 죽어가던 김다정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정말 죽음의 공포가 각성의 키워드라면 시민들 중에 각성자가 적은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일찌감치 시민권을 부여 받은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할 일은 거의 없었을 테니까.’
시민들이 처음 고블린 사냥을 하던 때 유행하던 사냥 방식은 투명 장벽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고블린들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목숨 걸고 고블린 사냥을 나선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도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고, 무기를 구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 조치를 취한 다음에서야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치렀다.
그러니 진조가 내뿜었던 살기와 같은 극한의 공포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죽음의 공포에 노출된다고 누구나 각성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호범이나 최도연뿐만 아니라 당시에 울산에 살아 있었던 모든 생존자들이 각성해야 맞을 테니까.
‘그리고 조건이 그거 하나뿐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내 경우에는 죽음의 공포는커녕, 몬스터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각성을 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충분히 고려해볼만 해.’
물론 각성을 위해 시민들을 죽음에 밀어 넣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연출할 수 있다면?
‘그렇게 각성자를 양산할 수만 있다면 대박이다.’
전체적은 전력 상승은 물론 가신 등록 대상으로 삼을만한 인재풀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 중에 딱 한 명만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최근에 30레벨이 되면서 얻은 스킬 포인트 3개 중 2개는 이미 소모한 상태였다.
하나는 창고에 투자해서 창고의 용량을 늘렸고, 특수한 기능 하나를 더 얻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집구석 절대자의 건강’에 투자했다.
레벨업을 할 때마다 찾아오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다른 스킬들이 그러했듯이 절대자의 건강 스킬도 레벨업을 하자 생각지도 못한 기능 하나가 추가되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뜻을 고려해보면 정신과 관련되어 있는 기능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어떤 기능인지는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이것이 레벨업의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 있을지는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우.”
남은 포인트 하나는 상점을 위해 남겨두었지만, 만약 다음 레벨업에서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면 다시 한 번 건강에 투자해 볼 생각이었다.
‘일단 가 볼까.’
오늘은 오랜만에 본가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한 번 깨어날 때 겨우 10분밖에 깨어있지 못하는 할머니를 뵙기 위해서였다.
철컥.
절대자의 문을 통해 본가로 이동했다.
>[Episode21] 정비 (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