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134
135화. 중상모략(中傷謀略)
유난히도 녹색으로 물든 가슴이 언뜻 보였다.
그런데 가슴이 흉측하게도 칼날에 베진 상태였다.
뭉툭하고 쩍 벌어졌다.
곳곳에 핏물이 스며 나왔다가 멈췄다.
가랑이로 이상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분명히 겁탈을 당한 것이 확연하다.
“헉헉! 나쁜 놈!”
이빨을 뿌드득 갈아붙이고 힐끔 뒤를 바라봤다.
여인의 그림자 뒤에 한 인물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사람이기보다는 마치 귀신같은 형상이었다.
사람의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사람이라 여길 뿐이었다.
실제로는 몸 전체가 신비한 기체에 휩싸인 상태였다.
안면이 흐릿해 보였다.
혈기가 충천하는 것이 어쩌면 마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악마의 형상을 한 괴인이 천천히 산책하듯이 걸었다.
마치 산천을 구경하는 듯싶었다.
여인의 모습을 살펴보며 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흐흐흐!”
흉상이 웃음처럼 이상하게 핏빛으로 물들어 희미했다.
그리고…….
얼굴의 오관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 어찌 사람이 얼굴이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괴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얼굴이 없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영상만 보일 뿐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모양이다.
괴인이 돌연 짜증을 내듯이 눈을 치떴다.
번―쩍!
기체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여인의 등을 짓눌러 버렸다.
“헉!”
여인의 앞으로 ‘툭’하고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쫘―아아!
빛과 그림자 뭉치였다.
놀랍게도 낙하물은 여인의 가슴이었다.
녹청색이 변해서 누렇게 보였다.
여인이 서둘러 집어 들었다.
한동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얼른 가슴에 가져다 붙였다.
엉망이고 흉측했다.
가슴에서 보기 사납게도 거꾸로 붙어 너덜거렸다.
여인이 그것을 뒤늦게 눈치챈 모양이었다.
“후―아!”
신음을 지르면서 신비한 사내를 올려다봤다.
공포가 깃든 눈에는 왜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왜냐고? 그거야 너의 피가 천수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도 살려낼 수가 있고, 금강불괴를 만들 수 있다는 속담이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인고의 아픔을 겪었다고 들었다.”
여인이 돌연 이빨을 뿌드득 갈아붙인다.
“미련한 놈! 천수가 너 같은 놈에게 전해지길 바라느냐? 이미 그것은 버려지고 없다. 그러니 나를 죽여라!”
“흐흐! 그렇다면 아들인 녹용도 일수에게 준 것이더냐?”
녹용도 일수의 말이 나오자 여인의 안색이 변했다.
“흥? 네놈이 천수를 찾고 있는 것을 봐서는 틀림없다. 아무래도 주화입마에 걸려든 모양이구나! 천수는 예전에 사라지고 없으니 미련을 버려라!”
“주화입마라? 내가 그런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느냐? 난 너의 정혈에 천수가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대체 어디에 숨긴 것이냐?”
아―우!
해골 같은 여인이 돌연 침을 퉤 뱉는다.
“퉤! 이놈아! 정혈을 빨아 마셨으면 지옥이나 떨어져라.”
여인이 뱉은 침이다.
괴인의 입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쩝―쩝!
입맛을 한 참 다시다가 돌연 뱉어냈다.
“제기랄! 이십 년 전의 떫은맛과 변함이 없다면 죽어라!”
괴인이 여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놈에게 몽땅 줬다면 그놈도 죽여야겠지?”
여인의 안색이 싹 변하며 뺨이 바르르 떨었다.
“흥? 미친놈.”
“흐흐! 과연 그놈이 맞는구나!”
“천수란 예전에 잉태한 아이에게 모두 밭쳐서 없다.”
여인이 악다구니를 쳤다.
“공연히 죄도 없는 일수는 건드리지 말란 말이다.”
괴인이 머리를 흔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아이에게 천수를 줄 수가 있단 말인가?”
“호호호! 멍청한 놈! 천수란 말 그대로 천수일 뿐이다.”
“당시에 아이는 잉태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림도 없다.”
“내 가슴이 베어진 이상에는 아무도 얻지 못할 것이다.”
괴인의 시선이 복잡하게 변했다.
“정말이냐?”
“그렇다.”
“일수에게 준 것이더냐?”
“흥? 이젠 지옥에나 떨어질 날만 남았겠구나!
“글쎄! 그렇게 쉽게 갈 수 있을까?”
“네놈이 천수를 찾는 것은 죽음이 닥쳐왔다는 증거다.”
여인이 가치도 없다는 듯이 단정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별수 없구나!”
괴인이 죽일 결심이 섰던 모양이었다.
“히히히!”
어떻게 손을 썼는지 몰랐다.
여인의 사지가 순식간에 찢어져 나갔다.
“미안하다. 가거라.”
괴인의 웃음과 함께 그저 땅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여인의 가슴에 안개가 엷어지며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 * *
정말 이상한 밤이었고 이상한 거리였다.
천마교로 가기 위해서는 들려야 하는 거리가 있었다.
사통 팔달로에서 왼쪽에 해당하는 어둠의 거리였다.
석양빛이 물든 오후였다.
거리는 어느새 홍등이 수도 없이 걸려 불도 밝혀졌다.
분위기를 봐서는 유흥의 거리가 분명했다.
주점과 숙박 시설을 갖춘 여관에 여인들이 늘어섰다.
호객행위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한순간에 홍등이 한꺼번에 사라고 말았다.
바람이 대로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 일어난 현상이다.
마을 전체가 어둠에 뒤덮여 버렸다.
아―우우!
암흑천지에 여우의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마와 초롱이 허름한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지간히 술에 취한 듯싶었다.
게슴츠레한 눈길로 거리를 힐끔 쳐다보는 순간이었다.
주변이 변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놀라고 말았다.
“어라! 이게 뭐야?”
천마가 술잔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서 움찔거렸다.
초롱은 천마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며 실실 웃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모습을 봐서는 벌써 취한 듯싶었다.
“딸꾹! 놀랄 것 없습니다. 여긴 밤이면 이렇게 변합니다.”
천마도 술을 게걸스럽게 마신 다음에 주위를 둘러봤다.
“아니. 언제부터? 왜 이렇게 변했지요?”
초롱이 천마의 수염에 묻은 술을 닦아주며 대답했다.
“딸꾹! 이게 다 원통이란 분이 만든 법도랍니다. 딸꾹!”
천마가 놀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변했다.
“원통이라면 사형당한 영웅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초롱이가 아련한 눈빛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소주 형이 보셨는데 그분의 동태가 어떻습니까?”
천마가 두 눈을 껌벅였다.
잠시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기억력이 나빠도 그랬다,
어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별수 없었다.
그는 그냥 어물거리며 넘겼다.
“뭐랄까요. 그냥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고나 할까요?”
천마의 눈동자가 회상에 접어들었다.
“그냥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 같았습니다.”
천마가 그저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숨겼다.
“꺼―억! 숨기실 필요까지 없습니다. 동짓달 그믐이면 팔달로에서 천인이 태어난답니다. 영웅은 피와 희생을 머금고 탄생한다고 전해지죠. 전설이지만 죽은 사람의 혼과 일치해야 탄생합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그믐이면 내일인데요.”
“꺼―억! 마두와 효웅이 죽게 되면 악마가 태어나고요. 영웅이 죽으면 천인이 탄생하지요. 원통은 부끄러움이 없는 영웅이니 천인이 태어나겠죠.”
“아! 네. 그렇군요.”
초롱이 천마를 한동안 바라보다 원통에 관해 설명했다.
“천하의 영웅이셨지요. 낭인들의 희망이셨고요. 맹주이시면서도 언제나 자상하신 분이셨지요. 그런데 누구도 그분을 돕지 않아서 실망했습니다.”
초롱이 한숨을 내쉬면서 술을 들이켰다.
“딸―꾹! 소주 형은 영웅입니다. 그나마 증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탄했습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아마 그분께서도 저승길은 쓸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천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랬군요. 한데 어찌 그런 영웅을 사형시킨답니까?”
초롱이 술을 마시며 사례가 걸렸던지 기침을 해댔다.
“콜록콜록! 미…미안합니다. 소주 형!”
술이 그의 얼굴과 옷에 튀었어도 천마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망할 놈의 세상 아닙니까! 소제가 장성하면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고 했었는데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가셨지요.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고 아픕니다. 딸꾹!”
초롱이 은근한 시선으로 천마를 건너다봤다.
시선에 복잡한 회한이 떠오르고 있었다.
“딸꾹! 그런데 소주 형도 영웅이 강간한다고 보십니까?”
천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영웅이 어찌 강간이나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중상모략이 분명한 것이겠지요.”
천마의 말에 초롱이 반색했다.
한 잔의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딸꾹! 그렇지요? 필시 중상모략이겠지요?”
초롱은 헤프게도 씁쓸하게 웃었다.
술이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헤헤! 그분은 영웅답게 한 여인만을 사랑하셨지요. 그것도 우리같이 낭인 무사들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규정과 규약을 어기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여인 같지도 않은 여인을 사랑했는데요. 그게…영웅답게 언제나 당당하셨지요.”
“혹시 그분이 추사란 여걸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얼마 후에 아들을 얻으셨는데요. 만월의 들판에 두 팔로 들고서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이 아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희망이시다. 결과물이기에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라고 하셨지요.”
“아하! 그분은 행방불명되셨고 하던데요.”
“딸―꾹! 그날 바로 역모에 걸려서 수배를 당했지요. 살천문의 원주인 김천이란 놈에게 패했습니다. 그리고 금성과 치열한 접전 끝에 굴복하게 되었지요.”
초롱은 취했다.
술기운 탓이었다.
무림의 비사(祕史)를 숨김없이 들려줬다.
아무도 모르는 금기시 된 비화(秘話)였다.
신고만 해도 형벌이 가해지는 금언(禁言)이었다.
초롱은 그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
은근한 시선으로 천마를 한동안 주시하며 한숨을 쉬었다.
“딸―꾹! 휴―우! 그런데 소주 형!”
천마를 불러 놓고는 한참이었다.
그의 술잔을 빼앗아서 벌컥 마셔버렸다.
탁!
술잔을 탁자에 놓았다.
취한만큼 소리가 컸다.
턱에 묻은 술을 소매로 쓱 하고 닦아냈다.
“소주 형도 여인을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천마의 눈동자가 아련한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맹주처럼 운명적인 사랑 말입니다.”
은근한 목소리였다.
초롱의 눈에는 기대하는 눈빛이 강했다.
천마는 엉뚱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말할 수도 그런 입장도 아니었다.
천마에게 사랑이라면 그녀를 빼놓고 말할 수 없었다.
초롱!
아름다운 여자였다.
자신의 가슴에 비극(秘戟)을 꽂아 사랑을 표현했다.
천마는 문득 그녀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 환생해서 살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무희였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면 자신과 몸을 섞었던 초롱이라 생각한 천마였다.
그리고…….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