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138
139화. 상이군인(傷痍軍人)
멸절마후는 천마가 검토해 넘긴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녀는 평화유지군의 군사격인 백팔도사를 쳐다봤다.
서류를 읽던 백팔도사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다.
천마교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다.
주력부대를 총동원한 상태였다.
아무리 전쟁이 끝났어도 그랬다.
기세에서 밀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백팔도사였다.
그런데 대원들을 1/5로 줄이라는 명령서였다.
서류에 버젓이 첨부되어 그의 안색이 굳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녀석의… 검토해서 만든 계획안입니까요?”
“그렇다.”
“멸절마후의 생각도 녀석과 똑같고요?”
“그렇다. 군사의 숫자를 줄이는 계획안이다. 그 대신에 상단(商團)을 참여시킬 것이다. 무역을 활성화하려고 계획을 수정했다.”
“지금 수정한 계획도 녀석의 제안한 것입니까요?”
“그렇다. 평화사절단을 파견하는 일이다. 누가 무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모두가 자네처럼 생색내고 위세를 떨치고 싶겠지. 하지만 평화사절단의 사령관인 소주는 생각을 뒤엎었다. 정말 기막히고 멋진 생각이 아니더냐?”
“끄…응!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교주의 체면도 세워주고 복수도 끝내려면요. 군사가 막강해야 무시를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려면 군사를 추가로 모집할 생각…….”
“물론 복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역으로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우선이다. 무림연맹의 맹주가 현명하다면 거절할 명분이 없다. 서로가 이익이 되는 일인데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수하는데 명분이 확실해질 진다. 그러니 도사는 거절치 말아라.”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멸절마후의 명령을 받게 된 백팔도사…….
그의 안색이 똥색으로 변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일이었다.
한 몫을 챙기려고 병사들로부터 암암리에 뇌물을 받았다.
그리고 무역 상단을 꾸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밀무역을 통해서 수만 냥을 꿀꺽할 속셈이었다.
그런데 하룻밤에 계획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백팔도사는 그야말로 똥줄이 타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어휴!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네. 퇴직금으로 한몫 챙기려 했는데,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네…….’
“백팔도사는 뭐하고 섰는가? 당장에 출발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라. 그리고 사령관께서 특별히 인원 점검이 있을 예정이다. 복잡한 일은 서둘러 해결하는 것이 좋다.”
멸절마후의 말에 백팔도사는 모가지를 움츠리고 말았다.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 평화사절단에는 상단과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천마교의 용사로서 무위를 뽐내는 사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단을 안전하게 호송해야 한다. 그 일을 도맡을 대원들을 새롭게 뽑게 될 것이다.”
백팔도사가 웅성거리는 대원들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뽑힌 놈들 모두가 뇌물을 밭친 놈들이다.
그런 놈들만 뽑다 보니까 용사다운 용사는 적었다.
상처를 입어 거동이 불편한 용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백팔도사는 한숨이 절로 터지고 말았다.
‘어휴!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네. 아무리 멍청한 사령관이라도 그렇지. 저런 정도의 용사라면 거절할 터인데 이거 큰일 났구나. 그렇다고 뇌물을 받은 사실을 실토할 수도 없고…….’
백팔도사가 진땀을 흘리는 순간이다.
때마침 천마가 무희를 대동하고 인원 점검을 나왔다.
무희는 내상을 입은 탓인지 안색이 창백했다.
천마는 상이용사들을 쳐다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머리를 끄떡였다.
“푸―하하하! 군사는 역시 대단하십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용사들을 선발하는데 아주 탁월한 재주를 지녔소이다.”
천마는 대단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백팔도사는 어리둥절해서 눈만 껌벅였다.
무희는 용사들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멸절마후는 탈락시킨 용사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천마가 활짝 웃자 찔끔 놀아서 입을 다물었다.
각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가운데에 천마가 말했다.
“천마교는 아무리 부상자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멸절마후가 어이가 없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에게 생계를 열어주신 도사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백발무희도 마찬가지였다.
입가에 떫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의미로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백팔도사는 할 말을 잃었다.
“소주라 합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멸절마후와 무희를 포함해 백팔마녀들도 놀란 듯싶었다.
포권(抱拳)을 취한 천마의 모습을 발견한 백팔도사였다.
그는 진정으로 어이가 없어서 멍청해지고 말았다.
“지…지금 뭐라고 말씀하신 겁니까요?”
“저들을 탈락시키지 않는다고요?”
“그렇습니다.”
“발탁해서 상단을 호송한다는 것입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들은 상처를 입었으나, 천마교를 오늘날에도 위세를 떨치게 만든 공로자입니다. 우린 그런 저들까지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선출합니다.”
천마가 전격적으로 용사들을 발탁하자고 밝혔다.
모두가 함성을 지르면서 좋아하며 난리 떨고 있었다.
“푸―하하! 사령관이 의리가 있다더니 과연 소문 대로다.”
“우―헤헤! 역시 교주님께선 사람을 볼 줄 아시는구나.”
“파―하하! 사령관이 자비로운 분이시니 환영합니다.”
용사들이 감흥을 받아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멸절마후와 무희는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들이 아무리 패잔병이라도 그랬다.
용사들이 상이용사나 그래도 한땐 알아주던 용사들이다.
비록 병신으로 예전에 지녔던 용기는 사라졌다.
하지만 패기만큼은 현역 시절에 못지않게 살아 있었다.
“푸―하하하! 감사합니다. 소생은 사체보관소 소장인 소주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 중에 오랫동안 세작(細作)으로 활동한 분이 계시면 천막으로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천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다.
십여 명의 대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 모두는 그저 평범하게 생긴 무인들이었다.
일반 백성처럼 무공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눈치 하나는 빨랐다.
천마가 자신들을 찾자 뭔가가 있다고 확신한 듯싶었다.
그들 모두는 천마를 따라서 천막에 들어섰다가 멈칫했다.
멸절마후가 백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훑고 있었기에 놀라고 말았다.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천마가 서슴없이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일일이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저와는 형제와 다름없습니다.”
용사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물들었다.
“자리에 편안하게 앉으시기 바랍니다.”
멸절마후의 표정이 변했다.
“여러분은 모두 적진에 침투해서 활동한 용사들입니다.”
백발무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앉았다.
“상처를 입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팔도사가 뭐라고 말하려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제가 여러분들의 불편한 곳을 정상으로 고치겠습니다.”
천마가 말을 끝내고는 백팔도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군사께선 오천의 용사에게 지급할 월급을 갖고 있지요.”
백팔도사가 머리를 끄떡였다.
“생명 보험과 수당까지 책정해서 전표(錢票)도 있고요.”
“그렇습니다만 그것을 어찌하시려고 물으시는지요.”
“돈을 저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려고 합니다.”
“네? 그건 용사들의 월급이라 곧장 반납해야 하는데요.”
“이번에 천 명의 용사와 상단이 같이 움직일 겁니다. 물론 이문은 충분히 남게 될 겁니다. 잠시 앞당겨 쓸 것이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반납은 이자를 합쳐서 나중에 계산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건 규칙에 어긋나기에 어렵습니다…만?”
백팔도사는 멸절마후의 싸늘한 눈초리를 의식했다.
말문을 슬며시 닫으면서 중얼거리듯이 천마에게 말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일단 부마님께 빌려드리는 것으로…. 차용증은 나중에 정리해 보내드리겠습니다.”
멸절마후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다.
전표를 똑같이 분배해서 나눠줬다.
용사들은 어쩔 줄을 몰라 감격하고 말았다.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다.
평생에 손에 쥘 수도 없는 거금이다.
그런 돈을 한꺼번에 받아든 용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를 반영하듯 천마가 자분자분 말했다.
“여러분은 비밀조직을 새롭게 정비하시면 됩니다.”
“그럼 세작들을 지원하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용사들은 천마의 대범한 행동에 당황해 있었다.
아무리 조직을 새롭게 단장해도 그랬다.
이렇게 많은 돈은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오천 용사의 봉급을 한꺼번에 지급했다.
이렇게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저기요. 소인들에게는 이렇게 많이 필요 없는데요.”
“나머진 수당으로 알고 가족들도 챙기세요. 그리고 지금부터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저하고 같이 가시고요. 군사는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상단이 떠날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백팔도사는 한숨과 함께 진땀을 흘려야 했다.
용사들을 등쳐먹겠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버렸다.
멸절마후가 지켜보는 앞이었다.
사령관인 저놈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큰일 날뻔했다.
언제 자신의 모가지가 달아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정말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사실도 기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천마는 막사에서 대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고도 오랫동안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병신으로 변해버린 팔다리였다.
그곳을 찢고 살점을 발라내면서 수술하기 시작했다.
금방 탁자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썩은 살점들이 찢겨 나갔다.
모든 치료가 그렇게 끝났다.
천마가 그들에게 쪽지를 나눠주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서신을 문파마다 돌리고 소문을 내세요. 무림의 고민을 일시에 해결한다고 세작들에게 알리세요.”
무희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열심히 도왔다.
멸절마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모든 치료가 끝났을 땐 해가 석양에 걸렸다.
힘들었던 시간만큼 노을이 산마루턱에 번지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멸절마후가 말했다.
“자네가 끼니도 거르고 치료하다니 고생이 너무 많았다.”
“네? 아! 소생이 직업이 워낙에 험해서요. 모후께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계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허기가 지셨을 터인데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없이 저의 재주를 지켜보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타지에 홀로 와서 생판 처음으로 대하는 용사들이다. 그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의욕이 생겼다.”
“소생의 하찮은 일에 관심을 가지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천마는 멸절마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고작 말 한마디에 불과했다.
힘이 들었던 과정이 사르르 사라졌다.
분명 동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와 속내가 깊었다.
가슴 밑바닥부터 치밀어 오르는 따스한 정이 느껴졌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