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155
156화. 소귀와 소린
북천성(北天城)에 빗물이 무진장 쏟아지고 있었다.
소낙비 때문인지도 몰랐다.
토굴 속은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도록 어둠이 짙었다.
그 어둠 속에서 제일 먼저 눈에 비친 사람은 소귀였다.
그는 팔뚝만큼 굵은 쇠창살에 매달려 용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토굴 곁이다.
빗물에 흠뻑 젖은 여인도 눈길에 잡혀 들었다.
바로 귀곡산장의 하녀인 소린이다.
오돌오돌 떨고 있는 그녀는 방금 능욕을 당한 모양새다.
겁먹은 표정으로 소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린, 당장에 섭혼색공(攝混色功)을 펼치란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귀곡산장의 귀공자님…….”
소린은 입술을 꼭 깨물며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흘렸다.
“내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당장 몸을 덥히도록 해.”
소린은 파랗게 변한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었다
쏟아지는 빗물을 피해서 절벽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몸은 어쩌지 못했다.
그녀가 억지로 말했다.
“색골마공으로 진기를 보충하고 쇠창살을 뜯어내세요.”
소귀는 빗물에 흠뻑 젖은 모습도 상관치 않는듯했다.
토굴에 설치된 굵직한 쇠창살을 뜯어내기 위해서다.
온몸의 힘을 쏟다가 억센 손길로 머릿결을 쓸어 올렸다.
인피면구가 벗겨지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소귀의 얼굴은 형편없이 망가졌다.
해맑은 눈동자는 문둥이처럼 얽어진 얼굴과 대조적이다.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에 담긴 우수가 짙었다.
쳐다보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였다.
턱에서 시작된 흉터가 목을 휘돌아 귀밑까지 찢어졌다.
천마와의 결투에서 다쳤던 상처가 분명했다.
소귀가 싫다는 듯이 서둘러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다.
눈을 감고 있을 때라서 몰랐을 터였다.
막상 눈을 부릅뜨자 모습이 순식간에 변했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어린 살기는 살벌했다.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차갑게 감돌고 있었다.
소귀는 빗물에 젖은 사실과 시간도 잊은 듯싶었다.
오직 팔뚝만큼 굵은 쇠창살을 뜯어내기 위해서다.
힘을 쓰던 소귀가 힘에 겨운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메말라 갈라 터진 그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뿜어졌다.
하-악하고 가슴을 부여잡은 소귀였다.
그의 입에서 ‘아―우’하는 신음이 터졌다.
얼굴도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소린이 빗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소귀의 몸을 힘껏 안았다.
“그것 보세요. 섭혼색공을 펼쳐서 상처를 치료하세요.”
소귀는 소린의 몸을 얼싸안으면서 떨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뜯어내도 늦지 않단 말이에요.”
소귀는 주기적으로 찾아온 통증을 감내하기가 힘들었다.
진기를 일으킬 때마다 사지가 뒤틀리고 있었다.
몸뚱이가 비틀리자 살기가 뭉실뭉실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원망이다.
천마를 죽이려다가 얻은 상처치고는 치명적이었다.
소귀는 고통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아는 듯싶었다.
숨결을 멈추기 전이다.
발바닥의 용천혈과 머리의 백회혈을 열어놓아야 했다.
그렇게 천기를 받아들인 다음이다.
소린의 품에 안겨 섭혼색공으로 몸을 섞으면 될 터였다.
그리고 자듯이 감각을 죽이면 몸이 소생한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지금은 송장처럼 누워있을 때는 적어도 아니었다.
어렵게 북천성에 잠입한 때였다.
요원하던 일을 끝내야만 했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소귀는 일을 끝내기 위해서다.
소린과 섭혼색공을 펼치고 있었다.
살기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얼굴과 눈썹 사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목에서 불거진 힘줄을 보면 알만했다.
그가 얼마나 애를 쓰면서 고통을 참고 있는지를…….
모든 고통을 감수했음에도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소린, 서둘러줘…….”
소귀가 다가서자 소린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린은 말없이 소귀를 품에 안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뚱이는 추위 때문이 아니다.
주화입마의 증세였다.
무왕법전을 연성하다가 색기에 빠져든 현상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했던 천마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소린은 소귀를 품에 안았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가 도르르 굴렀다.
“흑흑흑!”
소귀는 어느새 색마로 변해 있었다.
소린의 몸을 마구 학대하듯이 대했다.
지금부터 그를 살리려면 섭혼색공을 펼쳐야 했다.
소린의 몸뚱이를 강제로 점령하던 그가 절정에 도달했다.
돌연 소린의 목덜미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우두둑!
소린의 목덜미에서 핏물이 뿜어지고 있었다.
소귀는 잔인했다.
핏물을 빨아먹고 있었다.
늑대처럼 그렇게 핏물을 빨아 먹던 소귀가 몸부림쳤다.
몸이 심하게 비틀리자 본능적으로 발악하기 시작했다.
“아아! 안 돼, 여기서 이대로 멈추면 만사가 끝장난다.”
소린은 그런 순간을 기다렸는지 소귀를 끌어안았다.
색골마공을 펼치면서 용을 쓰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소린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소귀의 눈을 치떴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빗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악마처럼 냉랭한 표정도 일그러졌다.
숨결도 어느새 거칠어지고 있었다.
“헉헉! 이대로는 정말…. 여기서 절대로 포기할 순 없어.”
소귀는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몸을 벌떡 일으키자 소린이 떨어지지 않고 끌려왔다.
고통스러움에 일그러진 얼굴.
소린은 신음을 토해내며 소귀를 끌어안았다.
그런 그녀의 백회혈에서 기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섭혼색공
소귀의 몸으로 이식되고 있었다.
소귀는 다소 정기를 보충했는지 쇠창살을 부여잡았다.
토굴을 가로막고 있는 아홉의 쇠창살이다.
그중에서 이미 반은 폭약을 터뜨려 뜯어낸 상태였다.
나머지를 뜯어내면 되었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았다.
소귀가 진기를 쏟아내며 섭혼색공을 펼쳤다.
진기를 잃은 소린의 몸은 몰라보게 수척해지기 시작했다.
“헉헉! 소귀 귀공자님 소린은 이젠 견딜 수가 없어요.”
“힘을 내란 말이야. 내가 아니고 소주라면 포기했겠어?”
“흑흑! 숙성된 천년 동자삼의 약력도 몽땅 뽑혔어요.”
“시끄럽다. 아직 멀었으니까 잔소리는 싫다고…….”
“천하의 섭혼색공도 소곡주를 이길 수는 없단 말이에요.”
“이런 망할 년. 주둥이를 닥치란 말이다.
그는 개망나니와 다름없는 놈이다.
그런 개새끼의 살점을 하나씩 뜯어서 씹어 먹을 것이다.
네년은 나를 위해 섭혼색공으로 헌신하란 말이다.”
소귀는 억센 손으로 굵은 쇠창살을 거머쥐었다.
힘이 들어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신의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힘에 버거웠다.
하지만 소귀는 포기를 몰랐다.
팔뚝만큼 굵직한 쇠창살에 달라붙었다.
놈을 죽여야 했다.
소주…….
그래, 그놈이었다.
그놈을 죽이지 않고는 한이 풀리지 않았다.
그것이 싫은 소귀였다.
그래서다.
자신이 연성한 무왕법전의 마지막 구결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명인이 저곳에 있었다.
그를 찾아서 비술을 익혀야만 했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위 속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박혔던 쇠창살이다.
그것이 뜯어졌다.
소귀는 이에 힘을 내어 더욱 용을 쓰기 시작했을 때였다.
돌연 푸른색의 검기였다.
소귀의 얼굴을 휘감고 지나가 버렸다.
뒤늦게 소귀가 ‘아’하고 신음을 삼키며 몸이 휘청거렸다.
얼굴에 예전의 흉터와 반대로 그어진 상처가 생겼다.
소귀는 흘러내린 핏물만큼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하지만 소린은 기력을 다했다.
창백해진 얼굴에 비해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흑흑! 소귀 귀공자님 소녀는 이젠 견딜 수가 없답니다.”
소린이 한동안 몸을 떨다가 무릎을 꿇는 순간이다.
소귀가 얼굴에 상흔을 남기고 사라진 검기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의지를 세우듯이 중얼거렸다.
“소주 네놈이 여기에 왔으렷다?”
* * *
“뭐. 화끈하고 자극적인 사건이 없을까?”
천마교에 바람둥이로 알려진 마녀가 다섯이다.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렸다.
재미없어 한숨 쉬던 그녀들에게 금위군 창설이 전해졌다.
하나같이 머릿속을 파고든 기발한 생각들이 있었다.
교내의 고수들을 욕보이자는 뜻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낭인들을 골라 보자는 얘기였다.
모두가 노리개로 삼겠다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흥미 있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은 자화일란 강수미였다.
그녀가 천화일추(天花日秋) 임상종(林相宗)을 부추겼다.
여기에 동의한 금천 공주다.
밀담을 나누자 모두가 우르르 움직였다.
비영일자 천지를 강제로 끌고 나왔다.
금천공주가 기거하는 원내로 쳐들어간 상태였다.
“우리가 금의군으로 변장해 멋진 놈을 고르자 이거야?”
강수미가 머리를 끄덕이며 눈살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거 좋은데? 사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하잔 말이지? 땀 냄새 발 냄새를 맡으며 동고동락이라. 아, 벌써 가슴이 울렁이네?”
그녀들은 기대와 호기심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남장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말이야. 목욕도 하지 못하고 어떻게 견디겠어. 구린내 냄새를 맡는 건 고생하는 일이 아닌가?”
“어머! 그게 무슨 소리야? 언제나 고린내 풍기는 사내놈들을 사랑했잖아.”
“그러게. 발 냄새를 영원히 맡겠다고 하고선…….”
강수미가 놀리듯 말하자 비영일자 천지가 웃고 말았다.
그녀도 오랫동안 몸살을 앓고 난 뒤였다.
어쩐지 그가 무서워 꼼짝 않고 지낸 덕분이다.
그나마 몸이 조금 회복된 것이다.
“어머머! 내가 언제 그랬어? 할 거면 언니들이나 해. 난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당분간 쉬고 싶을 뿐이야.”
“남자가 싫다니 요즘 뭐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 보지?”
은근한 웃음에 둘의 시선이 부딪쳤다.
금천공주가 먼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이렇게 하자고! 나에게 인피면구(人皮面具)가 있는데 말이야. 그걸 하나씩 쓰고 내일 당장에 달려가 슬쩍 끼어들자고.”
천화일추 임상종이 품속에서 면구를 꺼내 보여줬다.
하나같이 우락부락했다.
사내다운 인상을 풍기는 면구였다.
수염도 있고 각진 얼굴에 금천공주가 까르르 웃었다.
“좋아하는 사내놈들의 얼굴 껍질을 벗겨온 것 아냐?”
각자 면구를 쓰고 상대를 쳐다봤다.
진정 사내들처럼 생긴 얼굴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걸 누구에게 씌우고 밤새 그 타령을 했을까?”
임상종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호호호! 사내놈들 몸만 좋은 줄 알았지. 같은 여자의 몸을 애무하는 것도 썩 괜찮더군.”
임상종이 씩 웃었다.
음흉스럽게 금천공주가 털보 사내를 향해 몸을 꼬았다.
“어머, 털보 서방님! 소녀가 얼마나 사모했는지 몰라요.”
돌연 금천공주의 품에 안겨들어 애교를 떨었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애무까지 했다.
금천공주도 싫지 않았던지 맞장구를 쳐줬다.
“그랬소? 이놈도 그대가 그리워 밤마다 찾아오지 않소?”
사내 음성을 내는데 어딘가 석연치가 않았다.
“어머나 사내 변장은 됐으나, 음성변조는 어떻게 한다지?”
여인들은 그런 방면에 도사였다.
깔깔대며 장난쳐도 금방 문제점을 지적해 낸다는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 사내 음성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
강수미가 음성변조 수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모두가 그 방면에는 최고의 실력자들인 모양이었다.
내공을 끌어올렸다.
음정 변화를 한동안 연습하고는 만족했다.
“호호! 강 언니의 변장은 그럴 듯싶어. 사내로 많은 여인을 능욕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
임상종이 놀리면서 던진 농담에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사내의 음성에 걸맞은 면구를 찾아 돌려쓰며 애를 썼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강수미만 너무도 능숙하게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 같은 여인을 좋아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강수미도 그런 방면에 능숙해 있었다.
어딘가 좀 색다른 분위기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하나같이 이상한 것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쑥덕대던 그녀들이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성내가 그렇게 조용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어찌 비린 생선을 싫어할까.
“어머머. 저기 걸어오는 저놈의 엉덩이가 유별나다.”
사내였다.
엉덩이가 오리 궁둥이다.
힘깨나 쓸 것 같았다.
자세도 그럴싸해 보였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