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20
21화. 영화부인(寧花夫人)
불상을 모신 불당(佛堂).
화개장터의 모후인 영화부인이 법술을 일으켰다.
그녀는 손에 들려진 허수아비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손자인 마루의 형상을 닮았는데 모골이 형편없었다.
너저분하게 축 늘어지고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얼마 전에 복수의 화신으로 날려 버린 귀영(鬼影)이었다.
그런 허수아비가 엉망으로 변해버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영화부인이 허수아비를 쳐들었다.
힘없이 머리가 반쪽을 갈라졌다.
이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새까맣게 타들었다.
혼령을 심었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손자들을 살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젠 복수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음― 음! 소주라고? 어떤 새끼인지 혼령을 확인해 볼까?”
영화부인은 못내 천마의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금방 두 눈에 비술을 걸어서 확인에 들어갔다.
인지와 검지를 합쳐서 눈에 척 붙였다가 떼었다.
희미한 영상이 보였다.
일남 일녀였다.
법전 끝에 해당한다.
희뿌연 광채가 보이는데 사내였다.
그가 천천히 걷는 듯싶었다.
몸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환영귀보.
백팔마귀의 기본 보법인데 환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나가 둘이고 둘이 셋이다.
그렇게 108개나 보였다.
영화부인이 허수아비의 목을 비틀자 환영이 사라졌다.
사내와 계집이 다시금 보였다.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은 여인이었다.
혼령이 희미해서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분명 아니었다.
혼령이 선택했다면 저렇게 형편없는 모습은 아닐 터였다.
문제는 앞에 걷고 있는 사내였다.
희미한 모습이 보통이 넘었다.
비쩍 말랐으나 체격이 당당했다.
과거, 현재, 미래.
어떤 혼령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가 똑같다.
삼생이 같다면 특별한 경우였다.
이는 만만치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영화부인이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먼저 혹이 보였다.
그것이 커졌다가 작아지면서 휘광이 발생하고 있었다.
영화부인은 흥미를 느꼈다.
소주라는 놈도 혹이 달렸다.
그러면 그놈의 삼생인 과거, 현재, 미래가 분명할 터였다.
얼굴에 비치는 골패인 상처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혼령도 남다르게 쭉 뻗쳐서 지옥과 연결이 되어있었다.
이건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증조였다.
그런데도 지옥에서 발생한 귀기가 달라붙지 않았다.
여기에 영화부인은 그를 남다르게 보고 있었다.
“저놈은 천운비술을 연마한 놈이다.”
적어도 귀기들이 없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가 남다른 어떤 법술을 연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부인은 다시금 자세히 살펴봤다.
허수아비가 눈에 보였다.
자신이 애지중지한 허수아비와 닮았다.
영화부인은 자신의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흥! 재미있군. 어디 어떤 실력인지 한번 볼까나?”
영화부인은 흥미가 제법 동한 모양새다.
떨리는 눈길…….
사나운 눈초리가 마치 짐승처럼 매섭다.
매섭고 차가운 눈초리로 그의 영상을 쭉 끌어당겼다.
그런데 이것이 뭔가 어느새 눈앞에 당도해 있었다.
헉!
영화부인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제법이었다.
느린 것처럼 보였지만, 번개처럼 다가올 정도로 신법도 남달랐다.
그런데 시력은 나쁜 모양이었다.
자신이 턱 가로막고 있는데도 그냥 곧장 다가왔다.
부닥치면 상처를 입을 것이 뻔했다.
어쩌면 죽게 될지도 몰랐다.
지옥과 연결된 귀기의 영향으로 지옥으로 직행할 터였다.
자신과 부닥쳤던 사람들이라면 영락없이 죽었다.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로의 몸이 딱 부닥치는 순간이었다.
영화부인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에서 번개가 번쩍 일어났다.
“허―억!”
영화부인은 그쯤에 깨어났다.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형상이 사납다.
영화부인은 초조한 기색으로 운기조식이 들었다.
“아무래도 직접 나서서 손자들을 치료해야 하겠구나.”
* * *
대전(大殿)과 마주한 화원(花園).
그곳은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여인들이 기거하는 규중심처가 틀림없었다.
바로 그곳이다.
천마가 박쥐처럼 신비하게 대전으로 날아들었다.
예전과 다르게 서글서글한 눈동자는 살기가 번뜩거렸다.
삐쩍 마른 몸뚱이에 골패인 상처는 변함이 없었다.
천정과 기둥 사이를 건너갔다.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귀신처럼 사라진 다음이다.
‘예전의 기억이 맞는다면 틀림없이 여기가 분명해…….’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곳에 들린 적이 있었다.
부관이었던 마황의 고향이라 그랬다.
충성심이 남달랐으나 나중에 배신했지만…….
천마가 잔상법술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갑자기 바닥이 쫙 갈라지면서 뭔가가 올라왔다.
바로 은장(銀匠)으로 장식된 방석이다.
그곳에는 화려해 보이는 귀부인이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새파랗게 비치는 눈동자가 등장했다.
은신술을 사용한 것 같았다.
갑자기 머릿결이 나비의 날개처럼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투명한 살결에 가려졌던 얼굴이 드러났다.
요사스러운 기운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얼굴의 윤곽이 서서히 천마의 눈길에 잡혀 들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화개장터의 모후인 영화부인이었다.
흘러간 세월처럼 늙었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내공도 절정에 도달했는지 눈에선 살기가 진동했다.
그녀는 지금 시체처럼 늘어진 마루를 치료하고 있었다.
등덜미에 장심을 붙이고 전력으로 진기를 쏟아부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백회혈에서 뿌연 광채가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바로 찰나의 순간에 해당한다.
천정에서 가느다란 실선이 스르르 내려왔다.
거기에는 추혼정이 매달려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방향과 각도는 물론이고 세기까지 조정한 듯싶었다.
머리 꼭대기에서 한치 정도 떨어진 상태였다.
이윽고 영화부인이 운기조식을 끝낸 모양이다.
전신에서 넘치던 기체가 백회혈로 쭉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바람결에 흔들리던 추혼정도 함께 빨려들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머리통에 고스란히 푹 박혀버렸다.
“…커―억!”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버린 영화부인.
그녀는 창백하게 변해버린 얼굴로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 혼자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손자인 마루의 생사가 걸렸다.
위기였지만 그녀는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난 네놈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 나를 공격했다면 의당히 죽였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로가 공평하게 타협을 보는 게 어떻겠는가?”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이건 둘 중의 하나다.
이미 자리를 떴거나 아니면 심리전의 도사란 뜻이다.
영화부인이 눈알을 굴려서 사방을 훑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가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그랬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후자가 맞는다고 생각해 보는 영화부인이었다.
‘제기랄! 더럽게 됐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 영화부인.
그녀의 백회혈에 추혼정이 박혀 있었다.
전신은 마비되었다.
꾀죄죄한 모습이 초라하게 비쳤다.
그러나 영화부인은 무림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무인이다.
간담이 서늘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놀라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일에 불과했다.
위기에 처하면 처할수록 냉정해지는 모습이 그녀였다.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만큼 무림에서 노련한 모후로 통했다.
“누군지 정체부터 밝혀라.”
탐색전에 들어간 영화부인의 질문을 받은 천마였다.
그가 대답 없이 낄낄낄 웃었다.
진작부터 영화부인의 의도를 읽었다.
쐐기를 박듯이 한마디 던지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천마가 중얼거린 음성이 특별났다.
일장 안에서 맴돌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진기가 전혀 실리지 않았는데도 사물이 들썩였다.
영화부인은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음성이 귓구멍으로 파고들며 머리통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중에는 눈앞이 캄캄해지자 진땀이 솟구쳤다.
정말 모발이 곤두설 정도로 영화부인은 놀라고 있었다.
“호호호! 네놈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미처 몰랐네.”
“당신의 음모는 너무나 완벽했다. 그래서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하룻밤에 여기로 올 수 없는 놈이었거든.”
영화부인은 천마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등덜미다.
그것도 뒤통수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가슴으로 파고든 싸늘한 음성에 놀랄 만도 했을 터였다.
아무도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결정이 실수였다.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영화부인.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느끼며 후회하고 말았다.
손자인 마루만 치료할 생각만 했었다.
여기는 엄연히 자신이 침실이다.
그래서다.
저놈이 침범할 수 있다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놈은 일반 무인과는 많이도 달랐다.
금강불괴를 연성한 자신의 몸뚱이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타격이라 무시했다.
뒤늦게 살펴보니 아니었다.
아들과 손자인 마루가 당한 수법이었다.
‘커―억! 분근착골이라니 아주 더럽게 됐네.’
“아직도… 마광과 마루처럼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어.”
천마는 중얼거리고는 은밀하게 밖으로 사라졌다.
“야! 개자식아. 그렇다고 그냥 가면 어쩌자는 거야?”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간 뒤다.
천마가 돌아왔다.
싸움이 벌어졌는지 전신이 엉망진창이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사지가 뒤틀렸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영화부인 앞에 뭔가를 던졌다.
둘째인 마초와 셋째인 마귀다.
얼마나 천마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망가졌다.
오관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상태 그대로다.
시체처럼 늘어진 마루의 곁에 꾸겨지듯 머리부터 박혔다.
영화부인이 말했다.
“그래, 내가 그랬다. 황금을 빼앗겼기에 술수를 부렸다. 그러니까 손자들은 상관이 없으니 나를 처벌하라.”
천마는 영화부인을 향해 말없이 웃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간 잠시 뒤였다.
이번에는 천마가 옷깃이 거덜이 되어서 나타났다.
상대의 저항이 심했는지 혈도마다 옷깃이 찢긴 상태였다.
그의 옆구리에는 마성과 막내인 마도가 끼어있었다.
마가의 형제들 몽땅 천마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그래, 내가 황금을 빼돌렸고 소문도 내가 냈으며 절정고수들도 내가 불러드렸다. 모두 네놈을 죽이고 누명을 씌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나를 처벌하고 애들은 놔주란 말이다.”
영화부인이 눈깔을 회까닥 까뒤집고 악다구니를 쳤다.
천마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묵묵히 마초의 다리를 잡아서 거꾸로 들었다.
사타구니를 주먹으로 꽝하고 내렸다.
“커―억!”
마초가 불알을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다가 기절해 버렸다.
천마는 그런 그의 몸뚱이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쥐불놀이하듯이 그렇게 돌렸다.
마초의 흉상에서 시뻘건 핏물이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