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233
235화. 고립무혼(孤立無魂)
천마가 파천도의 칼날을 옆으로 눕혔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무관이라고?
상관없다.
무관이 아니라 할아비가 와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무관은 떨떠름했다.
저놈이 수라마검을 받아낼 줄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눈을 부릅뜨고는 천마가 몸을 돌리기 전이다.
급습을 시작했다.
수라마검(修羅魔劍).
지옥의 전사가 마귀들을 죽였다는 전설의 검법이다.
하늘을 온통 귀기의 그림자들로 뒤덮어 버렸다.
역시 전설적인 검법답다.
살기가 촘촘한 그물처럼 천마의 면상을 향해 내려꽂혔다.
푸―항!
천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하니 무관이 명예도 저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비겁하게 급습을 강행해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귀기가 어린 검기가 덮쳐들었다.
천마는 당황한 상태였다.
귀영신법을 펼쳐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비…비겁한 놈!”
천마는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검기가 얼마나 빠르고 거센지 몰랐다.
선수를 빼앗겨 공격도 수비도 어려울 지경에 도달했다.
어느새 십 초가 지나자 수비마저도 어렵게 되고 말았다.
타―탕!
파천도의 칼날에서 검광이 부닥쳐 난무했다.
그만큼 무관의 공격은 집요했다.
악랄했으며 무서웠다.
천마는 무형신법을 펼쳐내면서 피신했다.
이대로 십 초만 지나면 자신이 질 것은 뻔했다.
파천도의 칼날은 천근이 나갈 정도로 무거운 무기였다.
쉽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공격에 앞서 내기를 다스려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몰렸을 경우는 초식을 펼칠 수 없었다.
단점이 무관의 공격으로부터 드러난 셈이었다.
“흥―흥흥?”
천마가 코웃음을 쳤으나 무관은 말이 없었다.
무조건 공격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는 천마였다.
파천도의 칼날을 어렵사리 옆으로 눕혔다.
오행검진을 펼치자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관의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검기에 자유롭지 못했다.
드디어 압박의 강도가 최절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끄―응!”
천마의 신형이 가슴을 울리는 신음과 비틀거렸다.
온몸을 검기에 노출을 시켰다.
공격기회를 잡기 위한 고육지계였다.
허공으로 엷은 핏줄기가 뿜어졌다.
핏빛 맛을 본 파천도의 칼날이 웅―웅 신음을 터뜨렸다.
천마는 그런 순간에 약간의 틈새를 얻었다.
공격하는 모습 그대로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방법을 선택했다.
겨우 어떻게 파천도법을 떨쳐낼 수 있었다.
푸―릉!
핏빛 맛을 본 것은 파천도만이 아니었다.
천구만패가 핏빛에 반응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격을 하겠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천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마풍도의 손잡이에 꽂혔던 칠살탈명도가 날았다.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에 여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
약간은 손해를 봤다.
하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검기를 피할 순 있었다.
“뒈져라!”
천마가 소리쳤다.
심기를 굳건하게 생성시킨 다음이다.
사방팔방을 뒤덮고 있는 검기 너머였다.
무관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천구만패에 심어졌던 칠살탈명도가 허공으로 날았다.
섬뜩한 섬광이 무관에게 급살처럼 달려들었다.
바로 칠살무형검진의 형태로 진격해 들었던 것이었다.
“커―억!”
무관의 입에서 풍선처럼 바람 빠지는 답답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핏빛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휘날렸다.
“헉헉―헉헉!”
천마가 비틀거리는 몸으로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무관이 공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걸었다.
돌돌돌!
* * *
늙은 여우는 살기 위해서 자신의 꼬리도 자르는 법이다.
서너 평정도 되는 어두운 석실이다.
무왕이 호랑이 무늬의 바둑판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그런데 손으로 닦고 있는 것이 아니다.
턱에서 자란 석 자는 됨직한 수염으로 닦는데 기막혔다.
쓱싹―쓱싹!
수염이 손처럼 척척 잘도 움직이며 닦아내고 있었다.
기능도 각지각색이다.
수염이 움직일 때마다 단단한 석류석이 한 치씩 깎였다.
삐딱하게 조금 옆에 붙은 수염은 기능이 달랐다.
조각난 돌조각을 모으고 있었다.
눈썹도 먼지를 모으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벌써 그의 무릎에는 돌가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원주인 마사도 바둑알을 열심히 깎았다.
그는 무왕처럼 수염으로 알을 닦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무릎에도 돌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뜻밖에도 바둑알을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럴 때마다 돌가루가 가슴으로 떨어지며 수북이 쌓였다.
어느 정도 되었는가 싶었는지 입에서 바둑알을 뱉어냈다.
바둑알이 진기를 머금은 상태였다.
허공에 떠오르게 만들어놓았다.
눈이 사팔뜨기가 되도록 쳐다봤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벌써 수백여 차례였다.
허공에 바둑알이 수백 개 정도는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무왕이 그런 성주를 멀뚱히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천석환마술(天石幻魔術)은 누구든지 눈속임이라 여기며 연마하지 않지요. 하지만 성주께선 이것이 옛날에 손오공께서 천왕석으로 바둑을 두던 술법이라 여기고 이렇게 도와주기니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무왕이 성주가 뱉었던 바둑알을 향해 입김을 불었다.
“후―후!”
바둑알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원주가 약간 놀란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바둑알을 찾았다.
하지만 허공 어디에도 없었다.
원주가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뭐냐? 결자해지 차원에서 놈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긴 했는데 성에 난리가 났단 말씀이시군요.”
무왕이 먼저 말문을 텄다.
“놈이 범인이라 하기엔 어딘가 좀 미심쩍지요. 놈에게 죄를 씌우긴 했는데 문관이 뜻밖에도 괴인의 공격을 받았고 무관과 함께 사왕부를 조사해 보니 그곳에 그놈이 드나들던 흔적이 귀혈포에 남겨져서 골치가 아프단 말이지요?”
원주인 마사가 대답 대신에 바둑알을 뱉어냈다.
퉤!@“퉤!”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게 만든 다음이다.
조금 전에 사라졌던 바둑알을 찾고 있었다.
“허허, 그것참!”
원주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무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허허! 그놈의 운세가 전화위복의 상이지만 놈은 단명할 상이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게나.”
무왕의 태평한 말에 원주가 왈칵 화를 냈다.
“놈의 운세보다는 내 운세가 다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왕이 놀랐는지 수염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화통을 삶아 먹었는가? 왜 그렇게 소리치고 야단이야?”
무왕이 화가 잔뜩 난 원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놈 때문에 성주의 자리가 위험해서 화가 난 게로군.”
무왕은 태평했다.
바둑판 면을 정성 들여서 닦기 시작했다.
“자네의 운세는 끝난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나.”
원주가 거칠게 바둑알을 입에 넣고 마구 씹기 시작했다.
우두둑―우두둑!
이번에는 잘못 씹은 모양인지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제기랄! 퉤퉤 이거 왜 이렇게 쓴가? 퉤퉤!”
원주가 횡 하니 돌아앉았다.
그러자 조금 전에 사라진 바둑알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더니 하나로 환원되었다.
“자자! 우리 이러지 말고 바둑이나 한판 둬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둑알이 떨어져 내렸다.
바둑판에 하나의 진도를 형성해 놓고 있었다.
바로 촉성에 대한 지도였다
원주가 슬쩍 어깨너머로 건너다봤다.
바둑판을 응시하였다가 흥하고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흥? 진도를 그리려면 제대로 그리시지, 그게 뭐요?”
“허허! 너무 그러지 마시게. 나도 새로 배운 귀술이라네.”
“귀술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자네가 군주를 찾으려고 영화부인을 만났다면서?”
“허수아비를 이용했다가 된통 혼났었습니다.”
“내 영화부인의 말을 듣고는 놈의 단점을 찾았다네?”
“오호! 그거 잘된 일이군요.”
원주는 화가 단단히 난 듯이 손을 휘저었다.
순식간에 바둑알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바둑알이 모여들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이 되었다.
“허허!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단 말이네.”
“무슨 말이오? 이젠 바둑알로 점도 칩니까?”
“여기를 보시게나.”
원주가 바둑판의 모형을 봤던 모양이다.
“거긴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허허! 알고 있다니 다행이오.”
“지금 장로들과 원로들까지도 놈을 의심하지. 어떻게 하면 진짜 범인을 잡을까 온갖 지혜를 짜느라고 전전긍긍하는 마당에 누가 그것을 몰라서 이곳에 온줄 아십니까요?”
무왕이 원주를 은근한 시선으로 건너다봤다.
“허허! 나 이런! 그럼 자네는 뭘 어쩌려고 하시는가?”
원주가 돌아앉았는데 얼굴에 화가 잔뜩 돋았다.
“그놈을 죽일 수 있는 비법이나 서둘러 말해 주시오.”
“자네는 영화부인의 말을 들어서 단점을 알지 않은가.”
“영화부인의 말은 귀술의 근원지인 놈의 집안을 박살 내야 힘을 잃는다는데 무왕도 그런 귀술을 믿는단 말이오?”
원주는 말은 그렇게 했으나 태도는 달랐다.
진도를 설치한 바둑판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천석환마술로 살펴보니까 귀곡산장에서 정기가 왕창 묻어납디다. 분명히 그곳에 뭔가가 있을 테니 서두르세요.”
“그렇지 않아도 훈련까지 마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놈이 백팔마귀란 수법을 펼쳤으니 동상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모조리 박살 내야만 놈이 맥을 추지 못합니다.”
“영화부인이 귀술을 펼치려고 귀곡산장으로 떠났습니다.”
“허허허! 못된 성미를 지닌 할망구가 꼬리를 흔드는군.”
“구미호라도 별수가… 그런데 그건 무슨 말씀이오?”
“놈을 이용해서 복수하고자 술수를 부린단 말이네.”
“끄―응! 제기랄! 알고 있으나 별수가 없지 않소이까?”
원주가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긴 그놈의 단점을 알아낸 것만도 다행스럽지요.”
“허허, 그렇다면 영화부인에게 상을 줘야 할 판이군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놈에게 줘야지.”
“흥? 그놈은 사형수에다가 반란군의 수괴란 말입니다.”
원주의 목에서 핏발이 치솟았다.
“허허! 그것참!”
무왕이 수염으로 바둑판을 닦아내고 있다가 말했다.
“대체 그놈이 잘못한 일이 뭔지 시원하게 말해보게나.”
무왕의 질문에 원주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개탄했다.
“허허! 나 이것 참!”
원주는 결국 한숨을 쉬고는 힘겹게 대답했다.
“놈이 도망을 다니다가 촉성으로 피신하는 바람에 난동이 일어서 이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디다.”
무왕이 약간 놀라는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허! 그놈 참! 곰처럼 생겼어도 구르는 재주가 있었군.”
무왕이 바둑알을 움직여서 판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한동안 바둑판을 주시하다가 중얼거리듯이 묻고 있었다.
“자네가 성주로 등극한 사실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