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36
37화. 몽유병(夢遊病)
수림(樹林).
아름드리 나뭇가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이었다.
천마가 비천수라도를 휘둘렀다.
방금 무형살기로 잘려 나간 나뭇가지를 햇살에 비춰봤다.
반듯하게 잘려 나간 나뭇가지다.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고는 돌연 중얼거렸다.
“정말 지랄 같은 수법이야. 그렇지 않은가 철로……?”
천마의 질문을 받은 철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지금, 펼친 수법이 무형살기의 실체란 말인가요?”
“그렇다네. 자네도 백팔마귀의 도법을 연성해서 알고 있겠지만 잘린 단면이 매끄럽지 않고 거칠지 않은가 싶네?”
“무슨 말인지 철로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소관은 실제로 신도를 휘둘러 잘랐고 소곡주는 생각으로 자르지 않았습니까요. 소곡주의 수법에 비하면 소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천마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철로다.
그가 천마가 펼쳤던 수법을 흉내를 내고 있었다.
‘제기랄! 저게 저렇게 잘리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철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천마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단순한 손짓에 나뭇가지들이 힘없이 툭툭 잘려 나갔다.
그렇다고 천마가 전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힘없이 나무가 잘렸다.
철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미리 잘라놓고 거짓으로 손짓을 하는가 싶어서 확인했다.
하지만 나무 밑둥지가 쇠처럼 단단한 상태였다.
그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나무를 자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철로는 소주의 재능이 한없이 부럽다.
하지만 소주는 불만이 많은지 표정이 밝지가 않았다.
“철로, 자네의 실력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네.”
“응?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들었단 말인가요?”
“백팔마귀의 도법을 죽으라고 연성하길 십 년은 됐지?”
“그래요. 힘들었지만 소곡주 덕분에 꼴찌는 면했지요.”
“중도에 그만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나처럼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백팔마귀의 백미에 해당하는 무형살기를 영원히 연성하지 못했을 거란 말이다.”
“몸뚱이가 굳다니 어림도 없습니다. 소관이 볼 땐 소곡주의 몸동작은 유연하고 부드럽고 누구보다 힘이 넘칩니다.”
“제기랄! 거짓말 마시게. 몸뚱이가 이렇게 굼뜨고 굳어져서 일도양단이 마음대로 펼쳐 지지가 않아 틀렸단 말일세.”
“지금 펼치고 있는 수법이 추사와 중경오사의 모가지를 단숨에 베어버렸다는 일도양단의 무형살기란 말인가요?”
“그렇다네. 백팔마귀의 도법을 단전에 집약시켜 일도양단의 수법으로 한꺼번에 쏟으면 되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네.”
천마가 구결을 알려주자 철로가 곧바로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아름드리 나뭇가지에서 ‘퉁’ 소리만 진동했다.
그렇게 몇 번을 시도하다가 그만두려는 찰나였다.
마지막으로 일도양단을 펼쳤다.
나뭇가지가 ‘툭’하고 잘려 나갔다.
“푸―하하하! 축하하네. 이젠 자네도 나처럼 무형살기를 발산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이네.”
천마가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자 철로는 기뻤다.
그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반신반의하면서 일도양단을 펼쳤다.
이것이 뜻한 데로 이뤄지자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술이 찢어지도록 입가에 매달고 싱글벙글 웃었다.
연습을 거듭하다가 천마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철로.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무형살기는 바로 사람의 모가지를 베면서 축적된 원혼이 모여서 만들어진 살기라네. 어렵게 얻었으면 귀하게 사용해야지 그렇게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그만 일도양단을 멈추고 호흡이나 가다듬게나.”
천마의 충고에 철로가 일도양단의 동작을 멈췄다.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귀곡산장의 곡주와 부장인 소혼(蘇魂)이다.
둘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곡주와 다르게 소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허! 도부꾼에 불과한 소곡주가 철로를 향해 무형살기를 가르치는 동작이 우습지만 제법 재밌어 보이는데요.”
소혼은 흑금마사에 도전장을 던진 천마를 눈여겨봤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무형살기다.
잔뜩 기대했는데 일도양단의 수법임을 알게 되었다.
적지 않게 실망한 소혼이었다.
“아이들도 배운다는 일도양단이라니 어설퍼 보입니다.”
귀곡산장의 부장인 소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팔마귀의 도법은 일정 수준까지 연마하면 그만이다.
소곡주처럼 15년의 세월을 허비할 만큼 절기가 아니다.
그런데 저렇게 형편없는 수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걸 배우며 좋다고 희희낙락하는 철로가 가엾게 보였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준비는 끝냈느냐?”
곡주의 질문에 소혼이 자신감이 넘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명령대로 백팔마귀의 도법에 정통한 놈들만 골라서 백팔명의 절정고수만 추렸습니다. 모두가 공명심이 강해서 아마도 살천관에 소곡주를 주검을 확인일 겁니다.”
“그렇겠지. 흑금마사의 대원들은 용서를 모르고 잔인할 정도로 무사로서 자존심이 강하니까 그냥 두지는 않겠지.”
“소관은 개인적으로 소곡주가 살아남아서 흑금마사로 명성을 떨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런 정도의 실력이라면 삼차 관문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똥오줌이나 지르고 기절할까 싶어서 걱정이 앞섭니다.”
“아들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빌어 볼 수밖에 없겠지.”
곡주와 소혼이 수림에서 사라진 잠시 뒤였다.
돌연 바윗돌이 들썩거리며 소아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숲에서 후다닥 달려 나왔다.
나뭇가지를 세심하게 살펴보고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뭇가지가 베어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뭔가에 놀란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다람쥐처럼 달아나다가 멈춰 섰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무형살기란 내공을 연성하는 차원과는 다르단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숨어서 지켜보지 않아도 된단다.]* * *
“귀곡산장의 터줏대감이신 공자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곡주와 흑금마사의 사령이신 추포사자가 왔어요. 소곡주가 기침(起寢)하시기를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소린은 약사발을 대령한 상태다.
어젯밤에 선체로 잠이 들었던 천마다.
그의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깨우고 있었다.
그는 지금 무거워진 눈꺼풀을 손으로 잡아서 치켜들었다.
소린을 쳐다보는데 졸음이 한눈에 그득했다.
“아―함 졸려라. 소린 지금 누가 왔다고 했느냐?”
“아이참! 곡주와 통천계곡의 사령관이 찾아왔어요. 급한 일이 발생했다고 소곡주를 찾고 계신단 말입니다.”
천마는 잠을 자면서도 환영귀보를 펼쳤던 모양이다.
슬쩍 움직였는데 신형이 흐릿해졌다.
허공으로 가볍게 떠올라 이리저리 날기 시작한 천마.
소린의 손을 붙잡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코까지 드르릉 골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킥킥거리던 소린이다.
그녀가 일순간에 손가락을 깨물어 핏물을 내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입에 물렸다.
천마가 쪽쪽 빨면서 중얼거렸다.
“히히히! 아직도 동자삼이 숙성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백일이 지나야 숙성이 되지요.
그동안 깨달은 무형살기의 비법을 알려주세요.”
천마는 소린의 요구대로 행동했다.
최근에 깨달은 무형살기의 구결을 자세히 들려줬다.
중얼중얼―쫑알쫑알!
때마침 소아가 천마의 침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귀를 쫑긋거리며 한동안 엿듣고 있었다.
* * *
귀곡산장의 곡주인 소맥.
그는 선천적인 재능을 믿지 않았다.
소싯적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뼈를 깎듯이 노력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장자인 소주란 아들놈은 달랐다.
마치 재능을 타고난 절정고수처럼 행동했다.
무형살기를 연성한 행동이 그랬다.
몽유병 환자처럼 잠을 자면서도 무공을 연성했다.
더군다나 허드렛일이나 거드는 시녀였다.
그녀에게 생전에 듣지도 못한 살인미소를 가르쳤다.
절기를 전수하는데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색기에 물든 계집의 눈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제기랄! 앞으로는 저놈이 아니라 계집이 문제로다.”
* * *
귀공자 소귀는 무공의 귀재답게 영악했다.
언제나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는 꺼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귀곡산장의 전통 무공인 백팔마귀의 도법도 그랬다.
그는 소싯적에 완성했다.
맏형인 소주가 15년이나 되어서야 깨달은 무형살기다.
그것도 쉽게 알아낼 정도로 오성이 뛰어났다.
언제나 지혜롭고 사교성도 뛰어났다.
활동적이면서도 언변도 좋았다.
외가도 빵빵해서 후기지수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불만이 많았다.
자신에게 따라붙은 귀공자란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곡산장의 장자인 소주는 둔재였다.
그가 소곡주로 불리는 사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바보 같고 어리석으며 무공도 형편없는 녀석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술수가 녀석을 흥분시키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에 사건을 조작해 없애는 것이 소원이었다.
“적장자가 좋긴 좋은가 봅니다. 태생도 불확실한 녀석이지요. 무능해도 소곡주의 자리를 20년이나 꿰차고 있어요. 이거 서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젠 소제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시던지, 도전장을 받아주든지 양자택일을 하시지요.”
마녀의 피붙이라는 말에 눈이 뒤집힌 소주.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볐다.
소귀는 속으로 비웃으면서 소주를 수도 없이 때렸다.
그러다가 단 한 방을 얻어맞았다.
얼굴이 뭉그러진 상태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에 격분한 사부인 추사가 살수를 펼쳤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는가 싶었다.
녀석이 즉사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일도양단이란 평범한 수법을 펼칠 때까지는 좋았다.
음모가 계획대로 진행된 상태였다.
소귀는 처음으로 사람이 미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추사의 모가지가 잘리고 고스란히 피를 뒤집어썼었다.
소주의 공격에 소귀는 떡판이 되도록 얻어터지고 말았다.
정말 귀의가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면 뒈졌을 터였다.
그리고 오늘이다.
병상에 누운 상태로 병구완한 지도 백일이 지났다.
소귀는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한 상태였다.
내공도 회복되어 모처럼 만에 비천삼식을 펼쳤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부친인 소맥의 병문안을 받게 되었다.
“그래, 상처는 괜찮으냐?”
“아버지의 눈에는 소자가 괜찮아 보이십니까?”
소귀의 눈두덩이가 아직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런 자국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이빨을 뿌드득 갈아붙였다.
“개자식이 흑금마사에 도전장을 던졌다고 들었습니다.”
곡주인 소맥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소주가 아무리 멍청해도 귀곡산장의 소곡주다. 흑금마사의 도전자이니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라.”
“소자는 개자식을 씹어먹지 못해 한스럽습니다. 스승을 죽이고 외숙의 얼굴을 벗기려 들다니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형은 백팔마귀의 도법만 연성했다. 수법이 사납고 무섭도록 잔인해서 그랬지. 원래 본성은 착하며 가슴은 여리다.”
“본성이 착하면 뭐 합니까? 스승님의 모가지를 단칼에 효수했단 말입니다. 피를 뒤집어쓰고 소자를 무지막지하게 짓밟았지요. 그런 사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소자는 용서할 수 없으니 기회를 주시지요.”
“기회를 달라니. 어떻게 하겠다는 뜻이냐?”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