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48
49화. 이격살인(離隔殺人).
오감을 끊었기에 이미 몸뚱이는 죽은 상태였다.
생명이 없는 곳에서는 심도는 머물지 못한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천마였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을 절단되지 않으려고 이미 피를 뿜었다.
깊은 상처를 방지하려고 무형의 살기까지 펼친 상태였다.
눌러오면 뒤로 물러서면 될 터였다.
그렇게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에 천마는 질려갔다.
그리고 번개처럼 하나의 피신법이 뇌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소아.
그 아이라면 자신을 능히 구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미 피는 뿜어졌다.
제삼의 공격을 대비한 시간은 억겁처럼 흘러갔다.
‘소아야, 뭐하니. 얼른 다가와서 오라비를 도와다오.’
천마의 침소로 들던 소아는 당황했다.
천마가 돌연 가부좌를 틀고 앉은 순간부터였다.
뭔가가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느꼈다.
더군다나 몸속에서 이상한 광채가 솟아난 상태였다.
목덜미를 감싸면서 방어망을 형성했다.
거기서 뭔가가 출렁거리는 물체가 눈길에 잡혀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었다.
갑자기 그의 목에서 핏물이 터지며 솟구치고 있었다.
이때의 소아는 뭐라고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목에서 저절로 피가 솟구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소아는 이건 뭔가가 있다고 판단했다.
동작을 멈춘 상태 그대로다.
천마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저렇게 당했다면 신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틀었을 터였다.
한데 천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반응이 없다는 것은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했다.
소아는 무공은 모르나 눈치는 빨랐다.
그렇다고 이대로 마냥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머릿속만 복잡해졌을 뿐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몰랐다.
“오라버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지요.”
소아가 종알거리고는 천마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소아만이 아니었다.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명줄이 끊길 것은 자명했다.
소아가 어제처럼 혈관에 침을 꽂아 주기를 바랐다.
아니.
아니다.
자신의 몸을 살짝만 건드려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천도는 사라질 터였다.
하지만 소녀는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신중해서 탈이었다.
아름답게 생긴 눈썹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또렷해진 눈으로 뜯어보고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주 오라버니, 소녀가 다가가서 살펴봐도 되겠지요?”
‘그래, 이것아. 어서 다가와 내 몸을 살짝 건드려다오.’
소아가 천마의 전면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세히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젖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분명히 상처를 입은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였다.
소아의 눈에는 어떤 무기나 기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핏물이 솟아났다가 멈췄다.
그리고 또다시 솟아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살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몸뚱이는 죽은 시신처럼 비치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허공에 떠오른 광채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건 또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소아가 자신의 소매를 가만히 쳐다봤다.
옷가지의 보푸라기가 바람결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움직이면 죽는다는 글자였다.
그리고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적고 있었다.
소아는 생각했다.
여기에 없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함이 분명했다.
설마하니 자신한테 알리는 뜻은 아니란 사실을 직감했다.
소아는 오래 걸리지 않아 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하―! 누군가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구나?
그렇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알린단 말이지?’
소아는 생각 끝에 몸서리쳤다.
천마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사색이 되고 말았다.
한 달에 한 번은 핏물을 마셔야 하는 소아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몸서리를 쳤다.
그러자 천마의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나타났다.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쿵’하고 바닥을 들이받았다.
소아가 깜짝 놀랐다.
천마의 몸뚱이를 붙잡으려고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광채가 사르르 움직였다.
천마의 목에 휘감기는 것이었다.
소아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다.
천마가 ‘에취’ 재채기를 하고는 어깨를 펴면서 말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소아가 몸서리를 쳤기에 살아날 수가 있었다.
이격살인(離隔殺人)이라고 천도의 비술이다.
황궁의 내시들이 사용하는 비밀살인의 암살 방법이란다.
무림이란 이렇게 사납고 무서운 곳이다.
너는 무공을 연성하지 말아라.”
천마의 말에 한동안 눈만 껌벅이던 소아였다.
그러던 소아가 갑자기 씩 웃었다.
뭔가 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고개를 숙이더니 수줍듯이 냅다 도망쳤다.
천마가 소아를 불러 세우려다가 그만두며 한숨을 쉬었다.
“에―효! 너무 수줍어해서 사귀기에는 틀린 모양이다.”
* * *
천마는 술을 마셨다.
그것도 한두 잔이 아니다.
말술이다.
엄청나게 마셨고 무진장 취했다.
갑자기 그녀가 생각나서다.
초롱…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던 여인이다.
가슴이 아렸다.
비극(秘戟)이란 창을 가슴에 꽂고 죽음을 선택한 여자.
그게 그녀의 사랑법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닮은 여자가 여기에 있었다.
백발무희.
오지의 땅을 사드린 그녀를 오랜만에 만나서였다.
비틀거리는 신형… 무희가 얼른 부축했다.
“누…구?”
“저예요. 무희… 벌써 잊었어요?”
그녀도 취했으나 인사불성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부릅뜨고 천마를 쳐다봤다.
그가 바보처럼 히쭉히쭉 웃었다.
눈동자에 수정처럼 해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슬픔인지 기쁨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울자 무희도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사랑했나요?”
천마가 머리를 끄떡였다.
“그럼 사랑할까 봐요.”
무희가 천마를 눈을 쳐다봤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살기에 그리움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호호호!
아버님과 조부 앞에서 사랑을 맹세한 사이다.
조금은 안심은 될지언정 기분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무희는 그것이 싫다는 듯이 행동했다.
천마를 와락 끌어안고 침실로 향했다.
“아무리 추방을 당했어도 그렇지 이게 뭐예요.”
“우―헤헤헤! 사랑했었다. 그리고 무희. 자네를 만나 눈물이 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당신을 만나서 기쁘단 말이다.”
“그래서 행복한 거야? 사랑해주는 여인이 많아서요?”
“나는 수줍고 멍청해서 그게 사랑인지 몰랐다. 그런데 당신을 가만히 살펴보니 역시나 사랑인가 싶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놈은 무심하게 넘겼다. 당신처럼 화끈하게 고백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무희는 기분이 은근히 상했다.
아무리 취중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자신 앞에서 다른 여자의 관심을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느꼈다면 이건 결단코 간과할 일이 아니었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평소보다 잘해 준다는 생각과는 별개였다.
자신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올 줄 그녀도 몰랐다.
“당신을 짝사랑한다는 그 여자는 나보다는 예쁘겠지?”
무희는 자신이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자신이 미웠다.
왜 이딴 유치한 질문을 던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여자가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듣고 싶었다.
그 여자보다 예쁘단 말을…….
“그 여자는 소싯적에 만났거든. 주검을 넘나들면서 맹세했지. 첫 번째로 만나는 여인은 무조건 살려 주기로…. 그래서 당신을 살려준 것이라서 기억이 남다르다.”
“그럼 두 번째에 만나는 여인은 어떻게 할 건데요?”
“죽이지. 무조건 죽였지.”
“그럼 제가 첫 번째란 말이지요?”
“물론이다. 그래서 이렇게 술도 같이 마셨단 말이다.”
“그렇다면 첫사랑 여인은 어쩌고요?”
“첫사랑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더냐?”
무희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그녀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보다 예쁘다는 것인지 확실하게 말해보세요.”
“그게. 예쁘긴 한데… 에―효! 잘 모르겠다.”
천마는 머리를 흔들었다.
무희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첫사랑 여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체가 싫었다.
자신은 팔등신의 미녀다.
그런 자신을 두고 고민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훨씬 예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입으로 자존심까지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천마가 천마풍도를 뽑아 들더니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세찬 칼질에 분노가 넘쳐나고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단다. 십 년이 넘는 사랑과 백일밖에 되지 않은 사랑이다. 그것을 비교는 너무나 잔인하다.”
무희는 천마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잔인한 심정이 사랑일지는 몰라도 너무나 친숙했었다.
사랑의 감정이 넘치기에 그랬다.
오랫동안 사귀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백일이라면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상처가 완치되면 헤어질 사이였다.
그런데 너무 오래도록 붙어있었다.
무희는 천마교에서 자랑하는 백팔마귀의 일원이다.
천마는 귀곡산장의 용사다.
생각하면 서로 불과 물의 사이였다.
천마의 성품을 봤을 땐 그는 천마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태껏 좋은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하룻밤에 성격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변해야 하는데 그럴 확률이 적었다.
태생이 천마교의 습성에 젖어서 살았기에 그랬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천마교였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었다.
온갖 술수에 능통하고 활용하며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단숨에 먹히고 죽는다.
그렇게 비장함 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바로 무림이다.
그렇다면 정리가 최선의 방책이다.
사랑해서도 좋아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동정이 개입되면 떨어지기가 어려울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무희가 입술을 곱씹을 때였다.
헤어지자. 그래, 그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이야.
여기서 정이 깊어지기 전에 헤어지자고 생각했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무희가 마음을 독하게 먹는 순간이었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