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59
60화. 면접(面接)
창턱 너머로 비치는 시장을 살쾡이처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변신 중이다.
중년의 서생을 닮은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착용했다.
갸름한 얼굴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상처를 가리듯이 가발을 뒤집어썼다.
눈을 치뜨면 살쾡이처럼 제법 살기가 번뜩거렸다.
늘씬한 몸뚱이를 가리듯이 허름한 채색의 옷을 걸쳤다.
평범한 서생처럼 위장했다.
완벽한 변신이다.
하지만 태생은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새다.
자세히 뜯어보면 아름다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도 그녀는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런 그녀가 한동안 시장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저만큼 멀리다.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시장에서다.
유난히도 돋보이는 사내였다.
그것도 그냥 사내가 아니었다.
까까 대머리 중이었다.
투명한 백팔염주를 목에 둘렀다.
탁발을 나왔는지 시장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그녀의 눈길이 머무는 시선은 탁발승이 아니다.
물론 허리에 두르고 있는 전대(錢帶)도 아니었다.
백팔염주가 걸린 목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목걸이였다.
광채가 서린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보물이었다.
천사는 옳지 싶어 이마를 탁하고 쳤다.
“어허! 목덜미에 걸린 물건에서 광채가 느껴진단 말이야. 틀림없이 전대미문의 보물이 분명하니 슬쩍 해야지. 그나저나 장가의 패거리들이 녀석의 전대를 노리고.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는데 어째 아직도 조용한 거야?”
천사가 중얼거리고 사방을 훑었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다.
사방에서 움직이는 장가의 일행들이 눈길에 잡혀 들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 무리를 이뤄 작업을 시도할 터였다.
작업이라고 해봐야 별것이 아니다.
소매치기를 시도해서 보따리를 빼돌릴 것은 뻔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뭔가가 조금 달랐다.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까지 참여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다.
천사는 저놈들이 전대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노리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둘러 할머니와 어린아이의 곁으로 접근했다.
그들 모두는 각자 맡은 임무에 충실했다.
천마의 뒤를 따르며 하나씩 몰려들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천마는 한가했다.
가끔 보따리를 추스르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장통은 워낙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천마는 어깨와 몸이 부닥치며 곤란을 겪는 듯싶었다.
이윽고 장가 일행이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모양이다.
할머니가 일부로 천마와 부닥치며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금방 ‘으악’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이내 입에 거품을 물고 지랄을 떨기 시작했다.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천마가 화들짝 놀라서 당황하는 순간이다.
어린아이가 할머니라고 외치며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예리한 칼날로 전대를 긁었다.
장가의 일행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보따리를 빼돌렸다.
그러자 천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할머니를 구급하며 몸이 부닥치는 찰나의 순간을 노렸다.
그녀의 손이 귀신도 모르게 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벌써 기물을 꿀꺽 삼켰다.
뱃속에서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알싸한 느낌이 좋았다.
천사는 우선 안심했다.
“할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할머니… 할머니!”
천사가 할머니의 어깨를 흔들었다.
천마는 보따리를 잃어버린 사실도 몰랐다.
할머니를 구급하고자 황급히 혈도를 찍었다.
‘제기랄! 혈도를 찍다니, 이놈이 무림인이었단 말인가?’
천사가 중얼거리는 순간이다.
할머니가 정신을 차렸는지 거품을 닦으며 일어나 앉았다.
천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사람들의 속으로 사라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저 할망구가 간질(癎疾)이 있다더니 오늘도 또 그랬네?”
“그렇게 말이야. 오늘도 누군가가 빈털터리로 털렸겠군.”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천마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의 허리에 둘러찼던 보따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천마는 전대를 찾기보다는 가슴께를 어루만졌다.
이내 끙하고 신음을 터뜨리고는 천사를 쳐다보았다.
‘흐―억!’
천사는 대경실색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지글지글 타는 듯한 사내의 눈초리에 예사롭지가 않았다.
천마를 쳐다보던 천사는 간담이 서늘해져 흠칫 떨렸다.
‘무…무슨 놈의 눈빛이 저렇게 날카로워……?’
천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뒤로 물러서며 몸서리쳤다.
자신도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듯이 전대를 보여줬다.
천마는 싸늘한 눈길을 거두며 찌푸린 눈살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백팔영사의 유품에는 학정홍(鶴精紅)이 들었기에 한평생 살을 비벼대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군.”
“………”
학정홍이란 천년 학의 내단(內丹)을 말한다.
무림인이 복용하면 한 갑자의 내공을 증진시킨다.
반면에 일반인이 복용하면 무병장수를 누린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최음의 약이 들어있었다.
“제기랄! 곰보나 째보만 아니면 상관없어. 하지만……?”
천마가 화들짝 놀라서 곁에 있던 천사에게 말했다.
“형씨. 난 풍월객주의 별관에 머무르는 탁발승이외다. 방금 여기에 간질을 일으키던 할머니를 아시오? 어디에 사시는지는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허! 소생은 귀검산장에 근무하는 천사라고 하외다. 초행길이라 할머니가 어디에 사는지 모르겠소.”
“아이고, 이거 큰일이네. 할머니가 복용했다면 난 살아도 못살아. 어찌 꼬부랑 할머니와 부부로 지낸단 말이냐?”
천마의 말에 천사의 눈동자가 자신도 모르게 떠졌다.
“내 듣기로는 학정홍이란 말이오. 시대에 보기 드문 보물이라고 들었소. 내공을 올리고 무병장수한다고 들었는데 뭐가 잘못됐소.”
“형씨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요. 한번 붙으면 일주일은 보통이고요. 뼛골의 진액이 빠질 때까지 지랄을 떨어야 한단 말이오. 그런데 할망구가 복용했다면 큰일이잖소.”
“허허! 그거 큰일이군요. 학정홍에 그런 약효가 있었소.”
“그런 정도면 말도 하지 않겠소. 한 번이면 임신하오.
두 번이면 아들을 낳지요. 세 번이면 천재를 낳는단 말이오.”
“그럼 네 번째라면 어찌 되는지 말씀해 주시겠소?”
“쌍둥이를 낳는데 선천적으로 무공을 익힌 애를 낳지요.”
“허허! 그러면 서로가 좋은 일인데 걱정도 정말 팔자요.”
“우라질! 아이를 낳아도 궁합이 맞아야 한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기형아를 낳아서 문제가 생긴단 말입니다. 그러니 형씨가 나 좀 도와주시오. 노파가 어디에 사시는지 말씀해 주시오. 그러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천마의 말에 천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만약에 할머니가 이미 복용했다면 어찌해야 하오?”
“단숨에 토해내야만 하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천사의 서글서글한 눈동자에 살짝 그늘이 졌다.
하지만 상관없다는 투였다.
오히려 천마의 몸을 훑으며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풍월객주의 특실이면 무공과 지위도 괜찮은 편에 속했다.
다만 탁발승에 어리벙벙하고 촌놈처럼 생겼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봐줄 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이 있었다.
녀석의 이름이 소주라는 사실이다.
하필이면 녀석이 무연공주가 꼬셔서 데려온 사내였다.
천사는 거기까지 생각지 못한 터라 당황한 상태였다.
“아니, 한시가 급한데 뭘 그렇게 째려보고 살펴보시오?”
“만약에 말이오. 학정홍을 남자가 복용하면 어찌 되오?”
“남가가 복용하면 객사하고 만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공이… 증진하지 않는지 모르겠소”
“학정홍의 양기는 내가 이미 섭취했기에 소용이 없소.”
“저런. 그랬군요. 소생도 초행길입니다.”
천사가 양팔을 펼쳐 보이고 누군가를 가리켰다.
“엿장수에게 물어봅시다. 그가 아는지 누가 알겠소?”
“아이고, 형씨께서 이렇게 도와주시겠다니 감사합니다.”
“하여튼 할머니를 찾아봅시다. 소생도 형씨처럼 초행길입니다. 우선 엿장수에게 할머니의 행방을 물어봅시다.”
천마가 할머니에 대해서 엿장수에게 물어보는 순간이다.
저만큼 멀리서 무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천마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천사를 무희에게 소개하려고 했는데 그새 사라졌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천마가 어리둥절 해하자 무희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찾을 필요 없어요. 그년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그년이라뇨? 그렇다면 그가 변장했단 말인가요?”
“그래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여의주를 잃어버렸고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알고 계시는지 신통합니다.”
“계집이 감히 남의 신랑을 희롱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무희가 화가 치솟는지 술을 마구 퍼마시기 시작했다.
* * *
수비(壽婢)는 멸절마후의 하녀이면서도 비서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여인이다.
장로들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지위가 꽤나 높다.
무희가 멸절마후를 접견하려다가 거절을 당했다.
성질도 사나운 무희다.
그녀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칼을 뽑아 들기가 무섭게 공격해 나갔다.
“감히 하녀에 불과한 네년이 멸절마후의 비서라고…. 나를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기가 어딘데 감히 칼을 뽑다니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수비는 당당했다.
신분과 지위로 보면 당연히 무희에게 뒤졌다.
하지만 그녀가 칼을 뽑아 든 이상에는 꿀릴 게 없었다.
등허리에 차고 있던 쌍검을 뽑아서 공격을 받아쳤다.
창창―창창창!
무연공주인 무희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천마의 도움으로 초절정의 끝자락을 벗어난 상태였다.
칼을 휘두르는 도법이 날카로웠다.
칼끝에서 도기가 뿜어지며 공격을 주도했다.
이렇게 되자 수비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도 자신의 일수도 받지 못했던 무희였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는 엄연히 달랐다.
자신이 뒤로 밀리자 얼굴이 능금처럼 달아올랐다.
“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접견을 허용하면 너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니 물러서란 말이다.”
“흥? 정식적으로 면회를 요청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아니, 이 계집년이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무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연공주가 멸절마후를 접견하겠으니 전하란 말이다.”
“흥? 그렇게 멸절마후를 접견하고 싶다면 나를 죽여라.”
무희는 치를 떨었다.
고집불통인 꼴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몰랐다.
무희가 잠시 망설이는 순간이다.
저만큼 멀찌감치 떨어진 문간에 천마가 등장했다.
그러자 백팔마녀들이 와르르 몰려들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천마를 훑으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호호호! 어머나, 이게 누구야.”
“금남(禁男)의 구역에 두꺼비처럼 생긴 탁발승이라니…….”
“그것도 버젓이 등장하다니 참으로 신기한 놈이네.”
“호호호! 오라. 누군가 했더니 무희가 꼬셨다는 사내군.”
천마는 여인들이 몰려들자 불호부터 외웠다.
“아미타불―관세음보살!”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