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61
62화. 설산신마(雪山神魔)
천마교와 마주한 대전(大殿)이다.
그곳에 북해도의 설산신마(雪山神魔)가 묶고 있었다.
그도 무림을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최정상급의 무인이다.
무림에서 다섯 번째로 손꼽히던 그가 놀라고 말았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놀라도 보통 놀란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어디까지나 지병이 있다고 알려진 멸절마후였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과거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다그쳤다.
아주 새파랗게 젊은이와 함께 자신을 찾아왔다.
그것도 대낮이 아니었다.
오밤중에 찾아와 그냥 깽판을 쳤다.
멸절마후가 소싯적의 약속을 지키라고 두들겨 팼다.
북해도가 자랑하던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용사들이 널브러지자 젊은이가 치료하면서 씨부렁거렸다.
“너무 약합니다.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천년단정이 필요하고요. 그러려면 삼성 정도 강하게 때려야 합니다.”
젊은이가 중얼거리자 멸절마후의 모습이 사납게 변했다.
당시에 마녀의 모습이 얼마나 흉악한지 몰랐다.
소싯적부터 그녀를 지켜 봐왔었던 설산신마였다.
예전의 그녀가 아님을 단숨에 파악할 수가 있었다.
윤기가 흐르며 가지런했던 흑발은 거친 백발로 변했다.
주름살에 가려진 얼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흉흉했다.
마치 한밤중에 지옥에서 찾아온 야차처럼 보였다.
그녀의 등장은 그렇게 공포부터 전해졌다.
살색(殺色) 짙은 보라색 눈동자에서 살기가 넘쳤다.
그런 모습이 너무도 무서웠다.
설천강기(雪天剛氣)를 연성한 설산신마도 질려버렸다.
마주할 수 없었을 정도로 얼굴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말도 없었다.
무조건 젊은이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듯이 덤볐다.
북해도가 자랑하는 고수들을 단번에 박살 냈다.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반갑다고 잔뜩 삐뚤어진 입술을 삐죽대며 웃고 있었다.
물론 젊은이와 귓속말로 다정하게 주절거렸다.
“이런 정도의 상처라면 병신이나 다름없어. 천년산삼에 숙성된 천년단정이 있어야만 치료될 거야.”
설산신마의 늙은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조금 더 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천년단정에서 설기가 형성되거든요. 그것을 얼굴에 바르면 주름을 사라집니다.”
“그래? 그렇다면 별수 없지. 꼬마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얼굴을 완전히 박살 내야지. 그래야 정신을 차릴 놈이야. 그렇지?”
“이들은 됐고요. 직접 얼굴을 묵사발 내야 효과가 있죠.”
멸절마후가 천마의 말대로 설산신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손녀사위의 말을 들었지?”
설산신마가 천마의 얼굴을 훑으며 씨부렁거리듯 말했다.
“제기랄! 그러니까 뭡니까. 얼굴의 흉한 주름살을 없애려고 왔단 말이지요?”
멸절마후가 머리를 끄떡였다.
“설천강기로 형성된 천년단정이 필요하단 말이고요.“
“내가 젊은이처럼 팽팽한 피부를 지니려면 어쩔 수 없다. 설천강기로 만들어진 천년단정이 당장에 필요하다. 자네가 북해도가 아니라 여기에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어휴! 누님께서 뭔가를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천년단정을 토하면 뼛골이 휘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네놈이 반쯤 죽인 다음에 꺼내 가란 말이냐?”
“소제를 죽일 정도로 급한 것입니까?”
“네가 저놈들처럼 병신이 된 다음에 내놓을 작정이야?”
멸절마후의 협박성 경고에 설산신마는 눈앞이 캄캄했다.
분노에 앞서서 절망감부터 느껴야만 했다.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빌었건만 정말 하늘도 무심했다.
한숨을 터뜨리며 정말 눈앞이 깜깜해서 할 말이 없었다.
“누님, 장장 백 년을 기다렸던 중원 입성입니다. 제가요 꿈이나 이룬 다음에 드리겠습니다.”
설산신마의 말에 멸절마후의 표정이 샐쭉하게 변했다.
그러자 얼굴의 주름살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네놈도 눈이 있으니까 지금 흉한 내 모습을 봤을 거다.”
멸절마후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이걸 없애기 위해선 당장 천년단정이 필요하다.”
“제길! 그거라면 깽판 치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요.”
설산신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오래전부터 누님이 원하신다면 드린다고 했지요. 지금까지 약속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았소이다.”
“저런! 장하다. 장해.”
“소제가. 원하는 만큼 드릴 테니 우선 화부터 푸시지요.”
멸절마후는 설산신마의 화끈한 대답에 푸들푸들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사내라면 사내답게 약속을 지켜야지.”
설산신마의 표정이 우거지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야 언제든지 나한테 사랑과 귀염을 받지!”
멸절마후가 아무리 손윗사람이라도 그랬다.
자신도 이미 백 세를 바라보는 노인이다.
나이가 많은 탓으로 무림에서 은퇴했다.
그런데도 마치 어린애 다루듯이 말했다.
더욱이 살얼음마저 살짝 얼어서 반들반들 빛나는 머리다.
그런 대머리를 어린아이처럼 쓰다듬자 환장할 일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결국엔 그녀의 행동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설산신마가 입술을 삐죽이며 딴죽을 걸고 나섰다.
“허허! 그것참, 그런데 말이오. 그동안 세월이 너무나 많이 흘러갔습니다. 누님이 원하는 정도로 약효가 남아 있을는지요. 내 장담할 수가 없으니 그렇게 아시지요.”
눈빛이 변한 멸절마후가 설산신마의 속마음을 읽었다.
한동안 거미줄처럼 늘어진 뺨으로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놈아! 애써서 변명할 일이 없다. 네놈이 천년 산삼을 복용한 것도 그렇고. 내가 전수해준 설천강기를 연성한 덕분에 원수를 갚았다. 설마하니 그동안 베풀었던 은덕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멸절마후가 연속적으로 과거의 일을 들먹였다.
설산신마의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마녀의 성질은 불같았다.
원하면 단도직입으로 말하지 말을 돌리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그렇다면 과거의 약속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속내를 알 수가 없는 설산신마였다.
그는 속만 바싹바싹 타들어 미칠 지경이었다.
“허허! 소제는 아직 생생합니다.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어찌 누님의 은덕을 잊었겠소. 당시에 누님의 도움으로 복수할 수 있었소.”
설산신마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능구렁이답다.
결단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멸절마후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는 모양이었다.
약간 흔들리는 보라색 눈빛을 살짝 감추며 말했다.
“호호호! 그렇다면 좋다. 그동안 내가 베풀었던 은덕을 아직도 잊지를 않았다니 과연 자네는 사내답다.”
“허허! 사내다운 호기야 누님을 닮았기 때문이지요.”
“호호호! 어린놈이 아부는… 여전하구나.”
탐색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후가 선수를 치고 나왔다.
“호호호! 네놈도 지금부터 판단을 잘해야 본전이다. 너의 단전에서 설천강기(雪天剛氣)로 형성된 것 말이다. 지금부터 천년단정(千年丹精)을 나한테 받치거라!”
멸절마후의 요구에 설산신마는 노안(老眼)을 껌벅였다.
설산신마는 생각 끝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얼굴에 맺혔던 땀방울이 얼어붙었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뭐요? 방금 뭐라고 하셨소. 정말 천년 산삼의 진액이 아니란 말이오? 백 년의 진기로 형성된 천년단정을 달라 하셨소?”
“왜? 막상 달라고 하니까 주기가 아까우냐?”
“허! 아까운 것이 아니라, 천년단정을 토하면 나는 죽소.”
“이놈아 네놈은 이미 소싯적에 죽었을 몸이었다.”
“제기랄! 그래, 좋소이다.”
“내가 선뜻 내준 천년 산삼 덕분이다. 원수를 갚고도 백 세까지 살았다. 천년단정까지 형성했는데 싫단 말이지.”
“아! 주면 되지 않습니까요.”
“그렇다면 천수를 누린 셈이다.
그런데 감히 나와의 약속을 깨다니 정말 실망스럽다.”
멸절마후의 백발이 허공으로 확 치솟았다.
그러자 대경실색한 설산신마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소싯적에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그것도 무림인들이면 누구나 탐을 내던 천년 산삼이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천년단정을 완성치도 못했다.
원수 놈도 죽이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천년단정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보물이 아니었다.
북해도를 대표하는 신물(神物)이었다.
그것은 비천(飛天)하던 천룡의 여의주였다.
무림의 사대 보물 중의 하나다.
만년주옥(萬年珠玉)처럼 귀중한 것이었다.
주화입마의 치료에 최고로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런 효능 이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천년단정을 시신이 물고 있으면 원래의 모습을 환원된다.
그렇게 소중한 천년단정이다.
설산신마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얽힌 은원이 절실히 중요해도 그랬다.
북해도의 사활이 걸려서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한천고검을 뽑고 당당하게 겨뤄봐?‘
설산신마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네.‘
그는 북해도의 도주이며 설산신마라는 거물급 인사다.
그의 투명했던 안색이 회복되면서 가슴도 차가워졌다.
‘아니다. 마녀가 천년단정을 요구한 것을 보면 틀림없어. 분명히 주화입마를 당했는데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야.’
설산신마가 멸절마후를 동태를 면밀하게 살폈다.
‘천년단정을 고스란히 내주면 북해도가 위태로워지는데. 이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환장하겠네.’
설산신마의 머리통은 터질 것처럼 복잡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실타래처럼 얽혀 실마리가 잡혀 들지를 않고 있었다.
“좋습니다. 달라 하시니 본문이 망해도 드리겠습니다.”
“짜―식! 이제 결정을 내렸느냐?”
“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선 소신도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이놈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줄 거야 말 거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설천강기를 연성하지 않았다면 해악이 많습니다. 먼저 신공을 연성하신 다음에…….”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천마가 순간적으로 다가와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멸절마후가 매타작을 시작했다.
얼마나 강하게 두드렸는지 신음이 절로 터지고 말았다.
“끙! 누님 잘못했습니다.”
“줄 거야?”
“네… 드리겠습니다.”
억지로 대답한 설산신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당한 현실이 믿어 지지가 않았다.
정말 멸절마후의 손속이 너무도 빨랐다.
얼마나 빠른지 터지고 나서야 한걸음 물러섰을 정도였다.
마녀의 앞에서 어린애처럼 머리를 주억거렸을 뿐이었다.
“여… 여기에 있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흥? 얻어터지기 전에 진작에 내줄 것이지…….”
설산신마로부터 천년단정을 넘겨받은 멸절마후.
천마가 일러주는 방식대로 운기조식에 들었다.
설산신마가 천마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가 누군데 누님이 자네의 말을 그대로 따르느냐?”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