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7
7화. 분근착골(分筋錯骨)
“이놈을 살려주면 추사처럼 내 얼굴에 상흔을 입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후환을 없애는 일이니 상관치 말라.”
“소곡주, 아무리 귀곡산장의 율법이 허술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상관이며 귀곡산장의 총관이란 말입니다. 그만하면 됐으니까 용서하세요.”
“난 이런 놈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철로는 천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말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추사처럼 모가지를 잘라버립시다.”
“이놈은 악랄한 놈이라서 고생하며 살게 내버려 둠세.”
“그러면 어쩌자는 것인가요?”
“나는 소곡주란 말이다. 나한테 기어오르거나 배신하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야만 내가 존재한단 말이다.”
천마는 잠자던 분노가 폭발해 잔인해지고 있었다.
“소관은 배신 따위는 모르니까 그만 용서해주세요.”
“어쨌든 망나니의 위상을 높여야 다시는 무시를 당하지 않겠지. 내가 그것을 시험할 것이니 구경만 하시게.”
돌연 시체처럼 늘어졌던 당처의 몸이 꿈틀거렸다.
몸뚱이가 새우처럼 굽어지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입가에 피거품을 물더니 눈알을 까뒤집고 말았다.
“소곡주, 혹시?”
“그렇다네. 이놈이 나를 고문할 때 즐겨 사용하던 분근착골(分筋錯骨)의 후유증으로 미래에 내가 죽는단 말이다.”
당처의 눈동자가 돌아가고 말았다.
껍질이 벗겨진 안면이 쪼그라들었다.
갈라진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당처의 비명에 놀란 철로가 뒤로 물러서며 몸서리쳤다.
“비명보다는 기절하는 것이 좋아.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당처는 근육과 뼛골이 뒤틀리자 고통을 감내하지 못했다.
철로가 뒤늦게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소곡주!”
마치 자신이 고문을 당하는 사람처럼 몸만 떨고 있었다.
‘너…너무 잔인하다. 소곡주가 어찌 저렇게 변했다지?’
철로가 천마의 얼굴을 반으로 가로지른 골패인 상처를 쳐다보며 잔인해 저야만 산다는 말을 곱씹고 있을 때였다.
몸부림치며 구르던 당처가 정신이 들었는지 소리쳤다.
“아―아악! 사―살려줘. 분근착골이란 수법은 제발…….”
당처는 살점과 뼛골이 오그라드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살려달라고 말했다.
중간중간에 입을 쩍쩍 벌리고 피거품을 뱉어냈다.
빌면서 사정했으나 천마는 오히려 코웃음 쳤다.
“흥? 귀곡산장에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한다지? 만약에 내가 자네에게 패했다면 과연 자비를 베풀었을지 의문이 든단 말이네. 아마도 지금쯤이면 사망유희를 즐겼겠지.”
천마가 잔인하게 씨부렁거렸다.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던 당처였다.
억지로 산발한 머리를 마구 뒤흔들면서 소리쳤다.
“커―억! 제발, 그건 오해일세.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고 나를 살려주게. 그러면 비천수라도와 총관의 자리를 자네에게 넘기고 부하로서 충성을 맹세하겠으니 제발 살려주게.”
“흥? 나는 말이다. 네놈이 자리 보존을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온 그따위 총관에는 미련이 없다. 귀곡산장의 곡주란 지리를 넘겨준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할 내가 아니거든.”
당처는 기절하고 싶었다.
흐릿해진 의식만큼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피눈물을 질질 흘렸다.
잔인해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천마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당처는 악다구니 쳤다.
“크―아아악! 차라리 죽여 주게. 아니, 살려달라고!”
당처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살고 싶다는 욕구에 횡설수설 주절거렸다.
어설픈 말을 듣게 된 천마가 피실 웃었다.
“글쎄, 나는 네놈처럼 잔인한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반은 죽이고 반은 살려줄게.”
천마가 팔뚝을 꺾었다.
와―작!
“네놈은 말이다. 잔악하게도 자네의 고문에 죽어간 미래의 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라. 그러면 철로의 말처럼 다시금 생각해 볼게.”
천마는 단순하고 무식했지만 영악했다.
주위에 당처의 비명을 듣고 몰려든 무사들을 둘러봤다.
한꺼번에 떠들면서 웅성거렸다.
“지금 도부꾼에 불과한 소주가 추사의 모가지를 효수하고도 모자라서 당처 총관을 개차반으로 쓰러뜨린 것인가?”
“보고도 모르는가. 지금 총관을 닦달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나 그렇다면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뜻이로군.”
“더군다나 추사처럼 모가지를 베지 않고 살려준다잖아.”
천마는 대원들의 웅성거림에 망설이지 않았다.
당처의 몸에 가했던 분근착골의 금제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반기는 사람은 철로였다.
천마의 행동에서 그가 슬며시 끼어들며 말했다.
“소곡주, 당처를 용서하기로 마음을 바꿨나요.”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당할 뻔했어.”
“아직도 개꿈 얘기를…….”
천마는 태평했다.
“나를 치료했던 귀의(鬼醫)에게 치료를 부탁하겠네.”
“아―알겠습니다. 소곡주의 뜻을 받들어 조치하겠습니다.”
철로가 총관을 살피면서 응급조치를 취하는 순간이다.
초로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노인은 누가 뭐래도 귀곡산장의 명의로 알려진 귀의였다.
꼽추처럼 허리가 굽었다.
대머리에 수염을 길렀으며 눈매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죽어가는 자네를 살렸더니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었군.”
귀의의 말에 천마가 코웃음 치고는 씨부렁거리듯 말했다.
“그가 먼저 나를 죽이려 들었고 대결은 정말 공평했소.”
“철로, 공평한 대결이었다는 소곡주의 말이 사실인가?”
철로가 귀의의 질문에 한치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귀의가 가느다란 눈매로 천마를 아래위로 훑었다.
‘개새끼, 네놈이 무덤을 팠으니 나를 원하지 말아라.’
귀의가 꼽친 등을 활짝 피면서 천마를 째려보며 말했다.
“총관이 비천수라도를 꺼내서 비천삼식을 펼쳤는데도 죽지 않고 머리통으로 들이받아 묵사발을 만들었단 말이지?”
철로가 대답했다.
“그렇다질 않소. 귀의도 연성한 환영귀보였단 말이외다.”
“알았네. 총관이 뒈지지 않았으니 사실이 밝혀지겠지만, 그는 모후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잘못이라네.”
“무슨 소리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예전처럼 비굴하게 저놈에게 분근착골의 고문을 당해야 좋았단 말입니까?”
“자네는 백팔마귀의 도법을 십오 년이나 연성하고도 깨우치지 못했던 둔재였다. 반면에 소귀 귀공자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헤아릴 정도로 천재였단 말이다.”
“흥? 그가 천재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건드리면 죽는다.”
“비록 배다른 동생이지만 귀곡산장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이었다. 그를 두들겨 패고 사부를 죽였다. 이젠 숙부의 얼굴까지 벗기다니 자네가 소곡주인지 의심스럽단 말이다.”
“흥? 끼리끼리 요직에 앉아 놀고들 자빠졌으니 귀곡산장의 미래는 뻔하외다.”
“끼리끼리라니 자네 말조심하란 말이다.”
“일도양단에 모가지가 달아나고 환영귀보에 당할 놈이라면 일찌감치 떠나는 것이 신상에 좋단 말이외다.”
“떠나려면 자네가 떠나는 것이 순서다. 귀곡산장은 동부전선을 지배하는 집단이다. 네가 없어도 잘만 성장했다.”
천마가 코웃음 쳤다.
“비록 흑금마사가 사라진 작금에 이르러 세력이 약해진 상태여서 수시로 압박을 받아왔단 말이다. 이런 마당에 자네마저 복수심에 들떠서 날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그러니 모후가 개입하기 전에 떠나란 말이다.”
“귀의, 네놈이 나를 살렸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이구나.”
천마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나는 천…마다. 누구든지 덤비면 죽는다.”
골패인 상처가 씰룩하는데 지렁이처럼 징그럽다.
“돌았군. 완전히 돌았어. 이놈아, 위계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놈들이란 말이다.”
“자네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다면 살리지 않았다.”
“떠나라는 말을 하고 싶거든 귀곡산장을 말아먹고 있는 모후의 패거리들에게 말하란 말이다.”
천마의 부리부리한 눈동자에서 살기가 진동했다.
귀의는 찔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말았다.
‘제기랄! 무슨 놈의 눈동자가 저렇게 사나워…….’
* * *
귀곡산장이 발칵 뒤집혔다.
천마가 추사의 목을 효수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이다.
총관인 당처를 머리통으로 들이받아 병신을 만들었다.
그런 소문이 산장에 쫙 퍼졌다.
그것도 자신들도 연성했다고 알려진 환영귀보다.
산장의 고수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소주는 누가 뭐래도 둔재였다.
귀곡산장의 고수라면 누구나 연성했다고 알려진 백팔마귀의 도법을 무려 십오 년이나 걸려서 연성한 까닭이다.
그것도 다른 무공을 연성하지 못할 정도로 둔재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소귀였다.
그랬던 그가 귀곡산장의 총관인 당처를 단숨에 물리쳤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대원들이 수군거렸다.
“망할 놈의 15년 뚝심이 오늘의 그를 그답게 만들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숨기고 15년 외길을 걸었다니 놀랍다.”
천마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자 골치가 아팠다.
귀곡산장에 곡주를 넘어서는 초절정의 고수가 존재한다는 말에는 코웃음까지 쳤었다.
“제기랄! 지금까지도 백팔마귀의 도법도 완성하지 못한 주제인데 천부적인 재능에다가 초절정의 고수는 무슨……!”
천마는 백팔마귀의 도법을 연성하다가 화가 치솟았다.
비천수라도를 내던지고는 전각을 박차고 사라졌다.
* * *
소린(小隣)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하녀다.
소싯적부터 소주의 뒷바라지를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녀는 오늘도 어제처럼 산삼의 뿌리를 씹고 있었다.
그리고 약탕을 다리면서 습관적으로 숯불에다가 부채질하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가 이내 졸린 눈깔을 비비고는 하품을 해댔다.
그렇게 반복하다가 피실 웃으면서 몸을 움찔거렸다.
그가 오기 때문이었다.
몸에도 익숙한 느낌이 전신을 헤집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콩콩 뛰었다.
얼굴이 금방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요즘 들어서 천마를 훔쳐보는 일이 많아졌다.
백팔마귀의 도법을 연성하는 그를 남몰래 비켜보았다.
그를 쳐다보면 어느샌가 가슴이 뭉클해지기 일쑤였다.
공연히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날이 많아질 질수록 그녀의 가슴앓이도 심해졌다.
귀곡산장의 터줏대감인 소주.
소린은 이래선 안 된다고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었다.
“정말. 지랄 같은 하루가 시작될 거야. 그렇지, 소린?”
저만큼 멀리서다.
가볍지 않은 발자국이 귓가를 스치듯이 들려왔다.
소린은 미소를 짓던 표정 그대로 머리를 끄떡였다.
붉어진 뺨을 감추듯이 고개를 숙였다.
천마는 백팔마귀의 도법을 연성하기 위해서 등장했다.
한결같이 발걸음도 무겁게 지축을 쿵쿵 울린다.
평소와는 다르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