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75
76화. 천마와 광마(狂魔)
“귀부의 도끼질은 투박하다. 하지만 예리하고 무거우면서도 날카롭다. 성난 칼질에 망부석도 동강 내고 달빛에 번뜩이는 살기는 개미 새끼의 허리도 자른다.”
천마의 인상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물론 각도와 방향까지 정확한 데다가 거리와 상관없다. 일정한 단면으로 잘리기에 명인으로서 인정받았다.”
“그거야, 귀부의 도끼질은 신화지경에 도달해 그렇지요.”
“하지만 자네의 솜씨는 틀렸다. 죄수가 원하는 결대로 잘랐다지만 어림없다. 모가지에 남겨진 상흔의 흔적이 너무 거칠다. 귀부의 칼질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다.”
판관의 지적에 천마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어느새 능금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살펴봐도 일급살수들의 칼질에 비하면 멀었다.
비록 잘린 단면이 반듯했으나 표면은 거칠고 엉성했다.
“아무튼… 좋다. 자네가 십오 년이나 칼질을 배웠기 때문에 묻겠다. 죄수를 효수할 때 사용한 기초수법을 말해보게나?”
판관의 질문에 천마는 바싹 타들어 가는 입술을 핥았다.
자신의 대답 여부에 따라 합격 여부가 판별이 날 터였다.
선임자들이 어설프게 대답했다가 경을 쳤다.
모두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까지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천마였다.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미리 준비했다.
“일도양단의 단두(斷頭) 초식을 전력으로 펼쳤습니다.”
천마의 음성만큼이나 판관의 놀람도 드높았다.
“뭐야? 폭풍살기가 아니라 일도양단이라고?”
“그렇습니다. 소관이 배운 수법은요, 누구나 배우고 싶어 안달하는 일도양단이란 수법이고요. 단천살기란 살인 수법은요. 귀부란 명인으로부터 사사(私事) 받은 다음부터 죄수의 목을 효수했지요. 그리고요…….”
천마의 말투가 길어지자 판관의 눈동자가 홀딱 뒤집혔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백치 눈동자…….
천마가 화들짝 놀라서 잔상법술을 펼쳤다.
판관의 전생이 ‘확’하고 눈길에 잡혀 들었다.
‘아니… 저놈은 광마(狂魔)?’
광마는 천마와 함께 명성을 날리던 미치광이 무사였다.
저놈이 판관이라니…….
천마는 속으로 웃었다.
“살인 수법은 무슨. 자네의 말뜻은 망나니면 배우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이고, 도끼질과 망자의 저주를 막아주는 단천살기(斷天殺氣)야. 결국엔 호신 수법을 연성했다는 뜻이잖아?”
천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생사 판관의 눈살이 찌푸려진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으니 따라와라.”
천마가 판관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거기는 임시로 만들어진 사형대였다.
그곳에 머릿결을 흐트러뜨린 소녀가 보였다.
모가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앙증맞은 모습과 갸름한 얼굴이 소아를 닮았다.
“제기랄! 어쩜 저리도 소아를 닮았을까?”
천마가 어깨에 메고 있던 천마풍도를 힘차게 뽑았다.
쓰―렁!
“일도양단이라고 했지?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잘라봐라.”
판관의 음성이 점점 높아지자 천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밥술이나 뜨면서 살겠다고 자격심사를 치르는 마당인데, 이렇게 까다롭고 힘이 들어서야 먹고 살겠나…….’
천마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15년이나 칼질을 배우면서 벼르던 일이기에 그랬다.
합격 여부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고 말 터였다.
허접스럽게 고생하며 살던지,
화려하게 영광을 누리며 살던지.
판관의 말 한마디에 달렸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천마는 눈알을 부릅뜨고 판관을 째려봤다.
“내가 말이다. 비록 칼솜씨가 떨어진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래도 칼질 십오 년에 풍월객주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 정도로 단천살기를 다룬다는 적통 제자다.”
천마의 음성에서 살기가 느껴지자 판관이 어리둥절했다.
“그러니까 저기서 있는 백치미녀의 모가지를 잘라라. 단숨에 뎅강 잘라서 증명해 보이면 참고하겠다.”
“제기랄, 초장부터 재수 없게 여자의 모가지는 무슨……!”
판관의 심사하는 기준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다.
비장의 무기를 꺼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천마다.
그는 천마풍도의 칼날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것이 무림연맹에 반기를 들었던 흑마대주를 박살 낸 무기인데 보고서 대화를 나눕시다.”
천마가 진드기처럼 달라붙었다.
그의 어투에 판관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뭐? 그게 무슨 말인지……?”
“뒈지고 싶냐고 물었단 말이다.”
판관의 성질만큼 천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은 이곳에서 바뀌게 된다.
과거에도 그랬다.
엉뚱하게 산장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인생이 꼬였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기가 싫은 천마였다.
그래서 천마가 말했다.
“그래. 뒈지고 싶다.”
천마의 바뀐 말투에 판관은 놀랐다.
“뭐야? 네놈이 미쳤구나?”
“미친놈이 미쳤다고 말하다니 정말로 미쳤구나.”
천마는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무사다.
녹신하게 두들겨야 시원하다는 생각에 팔을 벌렸다.
전신에서 살기가 겹겹으로 회오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 순간에 판관의 손이 의자에서 번쩍 들려졌다.
격살이란 절기를 펼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손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아주 가느다란 은사가 팔목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바라본 천마도 그랬지만 판관은 분노를 참았다.
오히려 당황한 듯이 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움―하하하! 대단하군, 대단해……!”
판관은 태평을 가장한 상태로 웃고 있었다.
그러나 웃음을 마주한 천마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가 침착하게 굴고 있는 이면에는 뭔가가 있었다.
복종과 굴복을 바라는 것 이외의 것이었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다는 사실을 읽고 있었다.
“정말 귀찮게 생긴 놈이야. 밥술이나 좀 떠보자고 밤새도록 달려왔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서야 먹고 살겠나―!”
판관은 거짓말보다는 진실에 가깝게 말하는 자였다.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거짓으로 말했다.
진실을 거짓으로 포장해 사실대로 말한다.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런 놈은 뼈다귀가 분리될 정도로 녹신하게 두들겨야만 정신을 바짝 차릴 놈이었다.
“정말 험한 꼴을 봐야 정신 차릴 놈이로군.”
천마의 독살스러운 살기에 판관의 안색이 변해버렸다.
그때부터였다.
천마의 매질이 시작됐다.
백보신권을 사용해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커―억! 우리 이러지 맙시다.”
판관은 의자에 손이 묶인 상태로 달아나고 있었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고, 살고 싶다면 살려주마.”
천마가 판관의 멱살을 잡아채 무릎을 꿇도록 만들었다.
“난 네놈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져서 죽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대답을 듣고 싶다.”
천마가 탁자에 발을 걸치자 판관이 화급하게 말했다.
“나를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웅! 틀렸다. 난 너를 죽이지 않는다. 대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테다. 자네에게 청탁을 넣은 소귀란 놈을 알고 있다. 그놈에게 못 볼 꼴을 보이도록 만들 것이다. 알겠는가?”
“여보시게 그것만은 제발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당과와 그놈에게만은 사실을 알려주지 말게나.”
“뭐라? 여보시게?”
“미…미안합니다. 습관이 돼서 그렇습니다.”
판관이 벌떡 일어서더니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천마는 판관의 행위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절은 무슨…….”
천마는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또박또박 말했다.
“나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봐라.”
판관이 골패인 상흔을 살펴보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눈동자에서 살기가 진동했다.
판관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어어! 네놈은 미쳐서 뒈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광마,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실망했다.”
판관이 천마를 살피다가 놀란 모양을 감추지 못했다.
“제기랄! 환생하신 것이오?”
“그랬다. 네놈이 귀검산장으로 발령을 내렸다. 그 바람에 운명이 꼬여서 미쳤다가 뒈졌단 말이다.”
“저런, 형님의 운명도 개새끼 팔자군요. 하여튼 그건 예전의 판관이 그랬던 것이고요. 지금의 나는 다르단 말이오.”
“팔자 얘기를 들먹여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무인들의 목을 천명이나 효수했어. 그래서 무형살기란 아주 독특한 도법을 연성했다가 한마디로 개새끼처럼 미쳐버렸다.”
“교주로서 소원을 이루고 천하를 통일했으면 됐지요. 뭐가 억울해서 환생해 나를 놀라게 만들고 있소?”
“그런 네놈은 뭐가 억울해서 환생했냐?”
“내 죽어서 지옥에 들었지 않았겠소.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웃깁디다. 모가지를 많이 잘라서 좋은 일을 하라고 살려 줍디다. 그래서 환생해 살고 있는데 술도 끊고 계집도 없고요. 재미가 없어서 죽을 지경이란 말이외다.”
“사람을 얼마나 죽였기에 염라대왕이 놀랐단 말이더냐?”
“저승에 가서 알았지만 구백구십에다가 아홉이 됩디다.”
“나하고 비교하면 하나가 모자라군.”
“바로 그거요. 내 평생에 한 놈을 살려줬는데 바로 판관이었단 말이오. 그래서 그놈으로 환생한 것이외다.”
“하여튼 운명을 바꾸고 싶으니까 좋은 곳으로 보내줘라.”
“착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오. 아니면 무형살기를 완성하고 싶다는 것인지 말씀하시오.”
“지금 환생한 놈이 귀곡산장의 소곡주다. 15년이나 백팔마귀의 도법을 연성했어. 무형살기를 깨달았지 뭐야. 그런데 몸뚱이가 굳어서 유연하지가 못해서 탈이다.”
“그러니까 몸을 유연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지요?”
“일단은 그렇다.”
“그렇다면 쉽소. 자고로 남자의 용기는 기물에서 나오고요. 배짱은 귀두가 만든다고 했소이다. 그러니까 깨알 자르기를 시도하면 몸이 유연해집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말해봐라.”
“그렇다면 일단 백팔마귀란 도법의 정수를 펼쳐보세요. 얼마나 뻣뻣한 몸인지 확인하고 처방을 내리겠습니다.“
천마가 망설이지 않고 백팔마귀의 도법을 펼쳤다.
판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이 환생에서 연성했던 무형살기를 펼치며 상대했다.
도기가 얽혀들면서 사방에 그물처럼 망을 형성했다.
그러자 판관의 보라색 눈동자에서 광채가 번뜩거렸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광기였다.
여태까지 자신의 살기 앞에서 견디는 이가 드물었다.
그런데 천마는 움찔거렸을 뿐이다.
눈치를 보면 당황하지도 않았고 물러갈 기세도 아니었다.
“아니 내공은 사용하지 않고 무형살기만 펼치는 것이오? 혹시 내공을 사용하면 미쳐버린답디까?”
“앞으로 무형살기만으로 무림을 정복할 것이란 말이다.”
“좋습니다. 동부전선에 형님처럼 환생한 놈들이 있지요. 그들은 살인한 다음에 유희를 즐긴다고 합디다. 굽혀펴기부터 시작해 기마자세를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마가 무형살기의 기본자세를 펼쳐 보였다.
“형님이 연성했던 수법으로 깨알 자르기를 증명했지요. 그러니까 형님도 그들처럼 천마풍도로 시험을 보이세요. 그러면 몸뚱이가 유연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판관이 비법을 공개하자 천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꼼지락거리며 천마풍도를 꺼내 놓았다.
병장기를 바닥에 ‘쿵’하고 가져다 댔다.
칼날이 쓱 벌어지면서 중심을 잡아줌과 동시였다.
손을 활짝 편 상태에서 굽혀펴기를 시작했다.
몸뚱이가 내려왔다가 올라가는데 흔들림이 없었다.
끼룩끼룩하는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그렇게 백이나 훨씬 넘었는데도 힘찼고 강했다.
“이차도 합격으로 쳐줄 테니 일도양단을 펼쳐보세요.”
천마는 깨알을 쓸어모아서 병기로 내려치고 있었다.
‘팍팍’하는 소리가 들렸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