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evil RAW novel - Chapter 91
92화. 천애절벽(天涯絶壁)
진기를 잃기 싫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행동을 일부러라도 늦게 취해야만 했다.
그게 순서였다.
그래야 겨우 버틸 수가 있었다.
아주 특수한 곳이기에 조심스러운 몸가짐들이었다.
허―흠!
역시 우려한 생각대로다.
절벽을 기어오르던 천마가 멈췄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돌연 뒤를 돌아다봤다.
어설픈 행동에 모두가 일자로 쭉 늘어졌다.
절벽에 엿가락처럼 달라붙었다.
“얼씨구? 서둘지 않고 또 뭐냐?”
홍옥주의 호통에 천마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천마가 풍월폭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한 가지 잊은 사실이 있습니다.”
천마가 서 있는 곳은 아슬아슬한 벼랑이다.
미끄러지기 쉬운 한 뼘의 공간만 있는 비탈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약간의 공간이 존재할 뿐이다.
수직을 넘어서는 만장 천애의 절벽이었다.
빙판이어서 발도 붙이기도 어려운 위험천만한 장소였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쉼 없이 올라다닌 듯했다.
미끄럽게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생각하기 싫지만 추락하면 여지없이 콩가루가 될 판이다.
한데 녀석의 행보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태연하게 척하니 발까지 붙이고 섰는데 자세가 특별했다.
여유롭고 한가한 자세, 그것도 발만 떡하니 붙인 모습이다.
몸이 완전히 가로로 꺾여 있는 상태였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가 여유로웠다.
뒤를 따르던 모두가 자리에 설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아니, 뭐야! 잘 가다가 돌아서서 잊었다니 그게 뭔데?”
홍옥주는 아예 발을 빙판 속에 ‘꽉’ 박고 섰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최고였다.
조금 뒤는 공용수였다.
그는 내공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아예 가부좌를 튼 상태로 빙판에 털썩 앉았다.
천마처럼 한가하고 여유 있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젊은 공자인 선운 공자는 가소롭다는 듯싶었다.
허공에 두둥실 몸을 띄운 상태였다.
아무래도 능공허도(能空虛道)란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추도는 언제든지 발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유 있는 자세와 살기.
평범한 자세가 평소 그의 습관인 듯이 보였다.
그저 검을 수직으로 내려서 얼음에 살짝 댄 상태였다.
머릿결만 입김으로 훅 불어 제치고 있을 뿐이었다.
푸―우!
얼굴이 약간 드러났다.
매서운 눈동자와 꽉 다물린 입술.
조심스럽게 그것도 이내 사라졌다.
대신 흰 입김에 머릿결이 허공으로 떴다가 돌아왔다.
짧은 순간이다.
날카로운 눈매로 천마를 째려보며 질리도록 만들었다.
이―크!
천마가 그런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슬쩍 등평도수란 절기를 거두고 말았다.
“아니 도대체 어떤 귀물을 얻은 거야? 이렇게 험한 지역으로 우리를 데리고 온 것이냐고? 설마 우릴 모두 처치할 생각이면 오산이야. 혼자 독차지하려고 술수를 부리는 것은 아니겠지?”
홍옥주가 잔뜩 기대한 눈길로 삐딱하게 쳐다봤다.
“진기를 일으키면 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천마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풍월폭포에 시커먼 뭉게구름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구름이 뭉쳤다가 흩어져 내렸다.
그 사이로 번개도 울렸다.
“똑똑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때마침 천둥 벼락이 내려쳤다.
우르릉!
쳐다보면 무섭다.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런 곳을 천마가 방향을 가리켰다.
모두가 어이가 없는지 눈길들이 사납게 변했다.
특히 젊은 선우 공자의 표정은 우거지상으로 구겨졌다.
“왜? 이놈이 저놈한테 한번 뒈져볼까―!”
천마가 관솔이 박힌 주먹을 내보였다.
선우 공자가 어쩔 줄을 몰라 홍옥주를 흘겨보고 있었다.
홍옥주가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근무수칙, 제 삼조. 침입자를 무조건 족쳐버린다.”
홍옥주의 말에 선우 공자의 얼굴이 구겨지고 말았다.
‘망할 놈의 자식,’
선우 공자가 중얼거렸다.
검은 구름이 휘몰아치는 초소의 왼편을 쳐다봤다.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은 산정(山頂)이 보였다.
평지에서 볼 때는 항상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다.
막상 산 중심으로 돌아 나오자 까마득한 절벽이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거기다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먹구름들이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금방 암흑천지로 변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왜 날씨가 변한 거야.”
검고 차갑고 어두운 바람과 흑색의 구름,
쳐다만 봐도 몸이 오싹 떨릴 지경이었다.
풍월폭포가 생긴 것은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얼어붙는다.
“뭐야? 저곳으로 올라가야 숨긴 유물이 있다는 것이냐?”
홍옥주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저렇게 높은 곳에 숨겨뒀단 말이지?”
천마가 산비탈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가 그곳을 쳐다보니 까마득하고 아련했다.
“어―휴!”
홍옥주가 그곳을 보고는 우선 한숨을 쉬고 말았다.
너무 높아서 까마득하다.
아무리 경공술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랬다.
누구라도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홍옥주는 저런 곳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 같았다.
가슴이 터지라고 크게 한숨부터 쉬었다.
“어휴! 저 높은 곳에……?”
홍옥주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없다는 표정에 애교가 넘치고 있었다.
“저곳을 어떻게 올라간다지?”
천마가 그녀의 붉고 예쁜 입술을 눈여겨보며 씩 웃었다.
“저것은 풍월폭포라고 합니다. 진기를 일으킨 사람에게만 덤벼듭니다. 한번 걸려들면 천애의 절벽으로 추락사하기 일쑤입니다. 아주 무서운 바람이니까 조심하길 바랍니다.”
공용수의 얼굴에는 의문이 담겼다.
추도의 표정은 자못 심각해졌다.
선우 공자는 오히려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피식 웃었다.
천마의 말에 제일 놀란 사람은 역시 홍옥주였다.
“뭐야. 진기를 일으키면 안 된단 말이냐?”
천마의 경고성 발언에 모두가 구름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피식 웃는 표정들이 가볍다.
뭐 어떠냐는 식이다.
“허허허!”
공용수가 모처럼 만에 웃으면서 허공을 올려다봤다.
일반 구름과 조금은 다르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악마의 형상처럼 위협적인 일은 아니었다.
검은 구름이 사납게 뭉쳤다가 흩어지는 것이 별로였다.
일반 고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떼구름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나같이 절정의 무공을 연성한 고수들이다.
여기에 기가 죽을 그들이 아니었다.
천마의 경고성 발언에 그저 피식 웃었을 뿐이었다.
“먹구름은 여기에 방문하면 능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뭐가 무섭다는 것인지 자세히 말해보아라!”
홍옥주의 말에 천마가 말했다.
“내공을 일으키려면 자연히 진기가 움직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름을 들이키게 될 것입니다. 산공(散功)이 되어 추락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천마가 아련한 절벽 하부를 가리켰다.
“저곳에 해골이 수 백구는 더 있습니다.”
그가 무섭다는 듯이 몸을 바르르 떨기까지 했다.
천마의 말에 모두가 의심이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그중에서 선우 공자가 더욱 심한 편이었다.
유물을 내주기 싫어서 둘러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천마가 자신들을 우롱한다고 느낀 모양이다.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지고 있었다.
“아니 저놈이 또다시 사기 치고 있구나.”
공용수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제법 여유롭고 한가한 그의 행동이 변했다.
사나운 짐승처럼 온몸에 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음―음!
그리고 싫은 내색을 보인자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추도란 살수였다.
그는 천마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한이 맺힌 사람처럼 살기를 번득거리며 덤빌 태세였다.
쓱―싹!
공용수가 그런 살기를 차단하기 위해 몸으로 가려줬다.
“허허, 자넨 우리가 보통 사람들로 보이는가?”
천마가 살기를 느끼고 얼른 뒤로 물러서 버렸다.
“경고했으니 믿든지 말든지 여기선 자유입니다.”
“여기서 진기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어떻게 올라가는가?”
“지금부터 벽호공을 사용해 기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뭐야 우리더러 개처럼 기란 말이더냐?”
천마가 말을 하려는데 추도의 사나운 눈과 마주쳤다.
‘제기랄 놈!’
천마가 속으로 씨부렁거렸다.
그리고는 얼른 홍옥주의 예쁜 눈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녀의 눈길도 사납기 그지없었다.
“제기랄!”
무섭다.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얻어터질 것 같은 생각에 뒤로 물러섰다.
“허허허! 이거야 원!”
홍옥주가 그가 물러선 만큼 앞으로 다가섰다.
평범한 천근추란 수법이었다.
하수들이나 사용하는 하찮은 수법을 그녀가 사용했다.
천마는 바싹 긴장한 채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디냐? 빨리 말해. 어디에 유물이 있다는 것이냐?”
천마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저기에 있습니다.”
허공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있는 절벽이었다.
벽면에 거꾸로 자라 있는 늙은 소나무를 가리켰다.
“저기, 소나무 안에 숨겼으니까 꺼내 가시기 바랍니다.”
구름결에 소나무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 자리했다.
중간 부위는 아예 뒤로 넘어갈 정도로 휘어져 있었다.
저런 정도의 절벽이라면 어림도 없다.
경공술의 대가인 귀영일수(鬼影一手)도 어려울 터였다.
험지에 유물을 감췄다니 모두 뜨악한 표정들이었다.
“타―앗!”
돌연 기합 소리가 터지고 있었다.
선우 공자는 성질이 지랄 맞게 급하다.
유물이 숨겨진 곳을 알게 되는 순간에 몸을 날렸다.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몸이 허공으로 비상해 올라갔다.
잠룡승천(潛龍昇天)이란 신법이다.
무림에선 뛰어난 신법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허공으로 부상하기 위해선 최상의 신법이었다.
십여 장까지는 그래도 멋지게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날개를 펼쳐서 하늘로 비상하는 새처럼 보였다.
그렇게 아름답고 멋들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회전한 다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허공에서 둥글게 재주를 넘을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한쪽 발을 다른 발로 걷어차고 재주를 넘은 다음이었다.
휙!
일장 정도를 다시 비상했다.
이것이 탄천(氽天) 혹은 비룡(飛龍)이란 수법이었다.
“카―아! 멋지다.”
홍옥주가 찬사를 터뜨렸다.
잠룡승천이란 수법이라면 몰라도 탄천이라니―!
그녀의 눈이 혹했고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짝짝짝!
새처럼 날던 선우 공자가 돌연 추락하고 있었다.
“어―어!”
모두가 안색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선우 공자가 떨어지는 모습이 평소와는 달랐다.
옷에 진기를 잔뜩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천히 하강해야 마땅했다.
빠르게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휙!
떨어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모두가 놀라서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못할 형편이었다.
쳐다보고 놀란 비명만 지르며 지켜볼 뿐이었다.
“어머머! 저걸 어떻게 해!”
하긴 절벽 중간이었다.
그것도 빙판 위에서였다.
어떻게 도와줄지 의문이었다.
그랬지만 천마는 달랐다.
절대악인
— 정원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