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
절대회귀-10화(10/424)
제10회 열 내면 지는 거다.
천천히 석굴의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내부는 공기가 잘 통하고 있었고 군데군데 석굴 상단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실내는 어둡지 않았다. 정교한 설계와 만듦새로 볼 때 정말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석굴을 따라 걸어가는데, 어느 지점을 통과하자 주위가 미세하게 일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스스슷.
순간 알 수 있었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고수만이 눈치챌 수 있는 최상위진법이 발동했음을.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죽은 이들은 왜 빠져나오지 못했겠는가? 관문이 어려우면 포기하고 나와버리면 되는데. 바로 이 진법을 빠져나오지 못해 죽은 것이다. 들어갈 때는 편히 걸어 들어갔지만, 관문을 돌파하지 못하면 결코 나갈 수 없는 지옥의 진법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제법 큰 광장이 나왔다.
그 광장의 입구에 제일 관문을 설명하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一, 검기와 검강을 사용하지 않고 적을 모두 베어라.
二, 시간 내 성공하지 못하면 열흘 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三, 준비된 자는 붉은 원에 서라.
‘열흘 후? 그때까지 먹을 것은?’
주위를 찾아보니 벽에 벽곡단(辟穀丹)이 가득 든 항아리가 있었다.
‘이 맛없는 걸 열흘이나 먹었다간 미쳐버리고 말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광장 가운데 그려진 붉은 원 가운데에 섰다.
잠시 후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사람 모양의 나무 인형 수십 개가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베어야 할 부분이 붉게 칠해져 있었다. 어떤 인형은 목을, 어떤 인형은 팔을, 또 어떤 것은 다리를.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그것들이 올라오는 순간 몸을 날렸고, 본능적으로 어떤 초식으로 무엇을 먼저 벨지를 결정했다.
쉭. 쉭. 쉭.
나무 인형이 잘려 나갔다.
인형들은 한자리에만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바닥의 판이 움직이며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혼잡한 상황에서 몇몇 인형들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저 인형을 놓치면 두 번 다시 올라오지 않을 것이고, 그 순간 도전 실패가 될 것이라고.
그랬기에 내려가는 인형부터 베었다.
과연 다른 인형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것을 베려는 내 진로를 방해했다.
훌쩍 뛰어넘으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놓칠 뻔한 인형이 잘려 나갔다.
갈수록 인형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처음에는 보법을 시험하는 관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관문은 판단력을 시험하는 관문이었다.
무엇을 먼저 벨 것인가?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이 우선이고, 보법은 그다음이다.
관문은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내 본능과 실력을 앞지를 정도로 정교하진 않았다.
그렇게 모든 인형을 베었고 무사히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만약 회귀 전 실력이었다면 이 첫 번째 관문을 절대 넘기지 못했다. 뛰고, 구르고, 날고 생난리를 쳤어도 실패했을 거다.
왜 열흘 후에 다시 시험이 재개되는지 알 수 있었다.
많은 도전자가 이 첫 번째 도전에 실패했을 것이고, 적어도 열흘은 곰곰이 연구하고 연습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인형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인형이 언제 바닥으로 내려갔는지 정확히 기억한 사람만이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을 테고. 머리가 둔한 도전자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도전해야 했겠지.
첫 관문을 보니 소천동의 돌파 시간이 평균 삼 년이라는 것도 이해가 간다.
드르르르릉.
첫 관문을 통과하자 동시에 두 번째 관문으로 향하는 석문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두 번째 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제일 관문을 벗어나기 전, 벽에 글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출구 쪽 벽에 먼저 왔던 고인들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아홉 번 만에 성공했다. 으하하하하.
―난 열여섯 번.
―이건 미친 짓이다!
―장장 서른일곱 번 만에 성공하다. 긴 고생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이곳에서 죽게 되는 것일까? 도저히 풀 수가 없다.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젠장!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없었다.
―여섯 번만의 성공, 감히 최고라 자부한다.
그중에 맨 아래 낯익은 필체가 보였다.
―병신들.
나에 앞서 이 관문을 통과했을, 바로 아버지였다.
“하하하.”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아버지는 한번 만에 통과하신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조상님들인데 과감하게 욕부터 박아 넣어 주시는구나.
“아버지, 저도 한 번에 통과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걸음을 옮겨서 두 번째 관문이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두 번째 광장에도 어김없이 비석이 서 있었다.
一, 벽에 걸린 검을 이용해서 한 시진 안에 돌을 양단하라. 검기나 검강을 사용할 수도 있다.
二, 시간 내 성공하지 못하면 이십 일 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三, 준비된 자는 붉은 원에 서라.
이번에는 재도전이 이십일 후다.
쉽게 계산해서 첫 번째 관문보다 두 배는 더 어렵다는 의미.
‘벽곡단으로 이십 일을 견디라고? 차라리 죽고 말지.’
나는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채 광장 가운데 있는 붉은 원에 섰다.
철컹.
바닥에서 석탁(石卓)이 올라왔다. 석탁 위에는 어른 머리통만 한 쇠공이 놓여 있었다.
‘이 쇠공을 자르라는 건데.’
주어진 시간은 한 시진.
쇠공 하나를 베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천천히 쇠공을 살폈다.
겉면이 매끈한 것이 일반적인 쇠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돌이었다.
당연히 무쇠보다 더 강한 재질이겠지? 들어보니 내공을 발휘하지 않고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벽에는 시험에 사용할 검이 수백 자루나 걸려 있었다. 종류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길이가 긴 장검도 있었고, 짧은 단검도 있었다. 무거운 중검(重劍)도 있었고, 가벼운 검도 있었다. 심지어는 허리에 차는 연검(軟劍)도 있었다.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검이 있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니 잘 선택해서 여러 번 도전하라는 뜻.
천천히 걸어가서 벽에 걸린 검을 한 자루 꺼내 들었다. 잘 만들어진 일반 철검이었다.
나는 구체 앞에 서서 마음을 다스린 후 힘차게 검을 내리쳤다.
쨍강,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이 부러져 날아갔다. 반면 구체는 흠집조차 남기지 않았다. 정말 강한 금속이었다.
나는 다시 구체를 살폈다. 눈으로 봐선 별다른 것 없는 쇠공.
다시 검을 가져와서 이번에는 종으로 휘둘렀다.
이번 역시 검만 부러졌을 뿐, 구체는 멀쩡했다.
“역시 그냥은 안 되는구나.”
새 검을 가져와서 내력을 주입했다.
우우웅.
곧바로 검에서 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검강을 일으킨 것이다.
회귀 전 이 나이 때는 검기는 사용할 수 있었지만 검강은 일으키지 못했다. 검강의 묘리를 깨친 것은 삼십 대가 되어서였다.
“회귀한 후 첫 검강이구나.”
무인마다 검강의 색이 다른데, 같은 심법을 익혔더라도 사람에 따라 그 색이 조금씩 달랐다. 나는 그것이 항상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검강이 풍겨내는 이 색을 좋아한다. 어떨 때는 바다 같기도 하고, 어떤 때 보면 하늘 같기도 한, 이 기분 좋은 푸른색을 말이다.
검강으로 천천히 구체를 자르려던 그 순간.
불현듯 엄습한 위화감에 재빨리 내력을 회수했다. 그러자 검에 서린 검강이 사라졌다.
‘이건 너무 쉽잖아?’
얼핏 생각에 철검으로는 잘리지 않기에 도전자들이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는 시험이라 생각했다. 검기로는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검강을 깨우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시험이라고.
한데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 후기지수라면 슥슥 자르고 통과할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관문이라고?
반대로 검강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이 검강을 일으킬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한쪽은 너무 쉽고, 다른 한쪽은 너무 어렵고. 뭔가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선배들이 벽에 남긴 글을 보러 갔다.
―검강으로 일수에 양단하다.
―검강을 사용하지 않고 자르려고 여든아홉 번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검강으로 잘랐다.
―난 검강을 사용하지 않고 잘랐다.
―대체 어떻게? 믿을 수가 없다.
―젠장! 내 검기로는 잘리지 않는다. 나는 검강을 발출할 수 없는데, 어쩌지?
―검강을 연구한 지 이백 일째. 벽곡단은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다.
―저 위에 검강을 사용하지 않고 잘랐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에 한 표 보탠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아버지가 남긴 글귀였다.
역시 마지막에 남겨진 아버지의 글귀.
―지랄 났네.
하하하. 조상님들에게 지랄 났다니요. 이런 분이 근엄한 척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근데 이번에는 그 옆에 한 마디를 덧붙여 두셨다.
―열 내면 지는 거다.
‘열 내면 진다? 왜 이런 말을 덧붙이셨지? 아버지라면 첫 관문처럼 욕 한마디하고 마셨을 텐데.’
열 내면? 열 내면? 혹시?
나는 재빨리 처음의 석판으로 갔다.
一, 한 시진 안에 돌을 양단하라. 검기나 검강을 사용할 수도 있다.
내 눈에 들어온 글귀.
검기나 검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사용해서’가 아니라 ‘사용할 수도 있다’였다. 다시 말해서 그냥 자르다가 정 안 되면 사용하라는 뜻 아닌가?
생각해 보니 주어진 시간도 너무 길다. 한 시진이면 저런 돌 수백 개는 자르고도 남을 시간이다. 끝으로 벽에 걸린 검의 숫자 역시 과하게 많고.
‘아! 이번 관문은 반드시 검기나 검강을 사용하지 않고 잘라야 한다.’
아버지가 열 내면 진다는 말씀은 검강을 쓰지 말라는 어떤 경고 같은 것이었다. 검강을 일으키면 검에서 뜨거운 열이 나니까.
그 추측에 힘을 보태주는 사실이 있다.
재도전 기간이 이십 일이란 것은 제일관문보다 더 까다롭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건 그냥 베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쨌든 검강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다시 구체 앞으로 갔다.
반드시 검강을 사용하지 않고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구체는 달라 보였다.
‘대체 어떻게 베면 이것을 자를 수 있을까? 세로로? 가로로? 횡으로? 비스듬히? 아니면 쾌검(快劍)으로? 중검으로?’
준비된 검으로 다양하게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애꿎은 검만 부러질 뿐, 구체는 잘리지 않았다.
삼십여 차례 실패를 거듭한 후, 나는 반쯤 포기한 채 벽에 기대앉았다.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야속한 시간은 자꾸 흘러 이제 시간은 채 일각도 남지 않았다.
‘이십 일 후에 다시 도전해야 하나?’
나는 반쯤 자포자기 상태였다.
‘검강으로 잘라버리고 통과해버려?’
하지만 아버지가 일부러 글까지 남겨뒀는데, 쉬운 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어렵구나, 어려워.’
그렇게 자포자기한 채 앉아 있다가 무심코 기를 발출했다. 산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기발출 연습이었다.
내 몸에서 뻗어나간 한 줄기 기운이 구체에 닿았다.
‘네가 멧돼지면 좋겠다. 그럼 단칼에 잘려질 텐데.’
기운이 구체를 감싸며 천천히 표면을 느꼈다.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어?”
구체 표면에 미세한 선이 있었다. 눈이나 보거나 손으로 만졌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선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그것을 느꼈다. 내 기운은 새가 알을 품듯 그것을 감싸기 시작했고, 구체와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선은 구체를 따라 쭉 이어지다가 다시 시작점에서 만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나와 구체 사이에는 내 기운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기운으로만 구체를 느끼며 정확히 그 선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쉭.
강하게 내리치지 않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구체에 나 있는 선을 내리치는 데 집중했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쩍.
구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 선이 바로 구체를 정확하게 가를 수 있는 일종의 급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르르.
잘린 구체의 빈 곳에서 한 알의 단약이 굴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