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2)
절대회귀-112화(112/424)
제112회 헤엄 좀 치시오?
비사인은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분노인지 알 수 있었다.
앞서 육랑이 했던 말 때문일 것이다.
대공자 하나 지키려고 몰려다니는 인생.
당연히 기분이 나빴을 테고 무시당한 기분까지 들었을 것이다.
만약 육랑만의 문제였다면 오히려 그를 죽인 것으로 그 일은 잊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었다. 다른 사도십삼랑들도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 의심은 아주 오랫동안 그를 괴롭힐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다독여 줄 생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나의 적이었고, 또한 이들의 분열과 비사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용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때 일랑이 나섰다.
“육랑을 살려서 증인으로 삼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그 역시 동료의 배신과 죽음 앞에 어쩔 수 없이 당황하고 흥분한 상태였다.
비사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에게 일랑의 말은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나와 형제 같은 이였는데, 그렇게 죽여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비사인의 시선이 일랑의 뒤에 서 있는 나머지 사도십삼랑을 향했다.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비사인은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때 내가 나섰다.
“그대들이 증인이지 않소? 당사자인 비공자를 제외하더라도 육랑이 배신했다는 것을 본 증인이 여섯이나 있지 않소?”
일랑이 걱정하는 바는 이것이었다.
“그들이 우리 전부를 한패로 몰고 가면, 우릴 믿지 않을 수도 있소.”
“지금 말은 사도맹을 대표하는 사도십삼랑 여섯의 증언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이야말로 사도맹 무인으로 살아갈 의미가 있소?”
일랑을 비롯한 나머지 사도십삼랑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들 거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비사인이 버럭 소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그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배후는 누구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소.”
나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과연 배신자가 한 명일까요?”
사도십삼랑이 일제히 차가운 시선을 내게 보냈다.
이 반응은 사실 비사인이 가장 먼저 보였어야 할 반응이었다. 하지만 비사인은 반응이 제일 늦었다. 그 역시 같은 의심을 하고 있어서다.
“확실하게 밝혀질 때까진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 일은 둘이서만 이야기합시다.”
나는 비사인과 사도십삼랑을 분열시키면서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번 일은 내가 비사인의 멱살을 틀어쥐고 끌고 가야 하는 일이다. 계가(計家)하는 그 순간까지 선수를 놓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비사인과 단둘이 자리를 가지기 전에 극악소마와 잠깐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당분간 비사인을 사도십삼랑과 떨어뜨릴 생각입니다.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겠군요.
―비사인을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면 단둘이 있는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극악소마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
눈치 빠른 극악소마가 불쑥 물었다.
―과연 그 이유뿐입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대답하자 오히려 극악소마는 눈빛으로 웃었다.
―역시 이공자는 저와 같은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었는데, 역시 소마님이 알아주시는군요. 그럼 나중에 사도맹 본단 인근 안가에서 뵙도록 하죠.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극악소마는 내 부탁을 받아들여 주었다. 적어도 공적인 일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보다 일 처리가 깔끔한 그였으니까.
* * *
나는 비사인과 함께 백야곡 동쪽에 있는 언덕에 나란히 섰다.
“배후가 누구요?”
“알려주면 내게 뭘 해줄 거요? 설마 이 중요한 정보를 공짜로 받을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
비사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젠장! 그 이름 한마디 듣는 것이 뭐가 이리 어렵소? 남자답게 말해주시오!”
“그건 남자다운 것이 아니라 한순간 우쭐대는 걸로 손해를 감수하는 머저리지요. 나는 거래는 반드시 합당한 가치를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오. 거래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언제나 한쪽이 불만을 가질 때입니다. 저울추의 균형을 잘 맞춰보도록 하죠.”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나는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회귀한 후 내가 기회가 되면 거둬들이려고 마음먹었던 기연들이 있다. 지금 그에게 말하는 이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를 만사동에 들여보내 주시오.”
만사동(萬邪洞).
사도맹의 성지로 사도맹주와 그 후계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삼백 년 전 사도맹의 절대자인 만사종주(萬邪宗主)가 당시 천마와의 격전 이후에 부상을 치료한 곳으로, 사도맹에서는 그곳을 성지로 삼았다.
비사인은 깜짝 놀랐다.
“거긴 왜 들어가고 싶은 거요?”
“예로부터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소.”
“그럼 알겠군요. 만사동에는 외부인을 절대 들여선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요구하고 있지 않소? 당신 목숨을 담보로.”
“과장하지 마시오. 배후가 누군지 몰랐어도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었소. 그러니 대단한 것을 가진 것처럼 굴지 마시오.”
“살아는 있었지만 실로 위태로웠지요. 등 뒤에 배신자까지 두고서 말이오.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배신자는 여전히 비공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있었을 겁니다.”
그 말만큼은 반박할 수 없었는지 잠시 말이 없던 비사인이 내게 물었다.
“그대는 만사동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소?”
그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그곳에는 별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만사종주가 부상을 치료한 곳을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절경에 누각을 지어둔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삼백 년 전 천마와 만사종주가 싸웠고, 그 일을 만사동에 자세히 기록해두었다고 들었소. 나는 차기 천마가 될 사람으로서 그 싸움을 자세히 읽어보고 싶소. 아쉽게도 본교에는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비사인의 걱정은 이것이었다.
“당신을 그곳에 들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오. 다만 이 사실이 밝혀지면 그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나는 절대 만사동에 들어간 것을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설령 내가 밝힌다고 칩시다. 그럼 딱 잡아떼면 되지 않소? 당신이 아니라고 하는데 누가 내 말을 믿겠소?”
그는 결국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이 얻을 것에 비해 만사동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성지로 정해진 곳이긴 하지만 일종의 기념관에 불과했으니까.
만사동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후의 일이었다. 눈앞의 이 비사인은 이미 죽은 후의 일이었다.
“싫으면 마시오. 나도 굳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면서 들어가고 싶진 않소. 없었던 일로 합시다.”
“이공자, 치사하게 굴지 마시오.”
“비공자야말로 자기 목숨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 마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비공자만큼은 망설여선 안 된다는 말이오. 이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소. 그것도 이 고비만 넘기면 사도맹주의 자리에 오를 귀한 목숨이라면 더욱 그렇소. 다 집어치우고 딱 한 가지만 생각하시오, 당신 목숨!”
결국 비사인은 크게 숨을 내쉰 후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소. 만사동에 들어가게 해주겠소.”
배후를 알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알아내야 할 상황인 그였다.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소.”
“말씀하시오.”
“첫째 먼저 배후를 밝혀야 하오.”
난 그가 이런 요구를 하리라 예상했다.
“만사동 입구에서 말해주겠소.”
“좋소.”
첫 번째는 흔쾌히 서로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둘째는 딱 한 시진 만이오.”
“너무 짧소. 세 시진은 주시오.”
“두 시진. 더는 안 되오.”
“좋소.”
비사인이 검을 뽑았다. 나도 흑마검을 뽑아 검끼리 부딪쳤다. 챙! 하는 맑은소리가 약속의 징표로 울려 퍼졌다.
“혹 만사동이 이곳에서 사도맹 본단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소?”
“그렇소.”
“당장 둘이서 출발합시다.”
생각지 못한 제안에 비사인은 깜짝 놀랐다.
“그럼 사도십삼랑을 두고 가자는 말이오?”
“그렇소. 사도십삼랑도 두고, 극악소마도 두고 갑시다.”
비사인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위험하지 않겠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것이다.
지금껏 내가 혼자서 움직이는 모습에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한데 또 겁쟁이처럼 위험하지 않겠냐는 말을 꺼낼 수는 없으리라.
“지금은 둘이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할 거요.”
“왜 그렇소?”
“워낙 그대나 사도십삼랑의 무공이 고강해서 그대들 주위에 감시를 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오. 그래서 육랑을 포섭했던 것이겠지요.”
비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육랑이 죽은 지금 그들의 감시에 공백이 생겼소. 하지만 곧 그들은 육랑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고수를 감시자로 보낼 거요. 떠나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요. 지금 나와 만사동으로 떠납시다. 극악소마도 두고, 사도십삼랑도 두고 둘이 갑시다. 상대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대를 이기는 길이오.”
그럼에도 비사인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그가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러다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인데?”
갈등하는 얼굴이 더욱 일그러져 보인다. 자신의 감정이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는 얼굴. 어쩌면 이에 대한 연민이 그를 살려주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사도십삼랑이 있어서 살 확률이 올라갈지, 죽을 확률이 올라갈지는 모를 일이오. 아까도 말했듯이 남은 사도십삼랑 중에 또 다른 세작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소?”
비사인은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저들이 이중, 삼중으로 세작을 심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었으니까. 오직 일랑 백철기만을 확실히 믿을 수 있었다.
“게다가 만사동에 나를 넣어주려면 우리 둘이 움직여야 하지 않겠소? 저들이 알아도 괜찮겠소? 당신이 나를 만사동에 넣어준 것을? 그들뿐만 아니라 극악소마까지 알게 되는데?”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좋소, 둘이서 갑시다.”
“잘 생각하셨소.”
비사인의 얼굴에는 결의가 차올라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결정을 내리면 안 될 일이다. 이렇게 쉽게 상대방의 의도대로 움직여선 안 된다. 상대가 악인이면 이미 망한 거다.
하지만 비사인아, 이번만은 잘했다.
네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모르지만, 나와 손잡는 것이 네 비극적 운명의 수레바퀴의 방향을 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거다. 방향을 바꾸도록 더 힘차게 고삐를 당겨라.
“그대가 사도맹주가 되도록 내가 돕겠소.”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 거요. 당신의 도움을 받아서 사도맹주가 되면.”
“세상 사람들은 영원히 그 사실을 모를 거요. 언젠가 내가 천마가 되고, 당신이 사도맹주가 되어 우리가 만났을 때, 이때를 추억하며 악수나 한 번 합시다.”
비사인은 나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나라고 사람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이 순간이 너무나 싫어서 나를 죽이려 들지, 아니면 정말 이날을 고마워하며 내 손을 잡을지.
“갑시다.”
내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그가 내 뒤를 따라 달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백야곡을 빠져나갔다.
* * *
십 여일 후, 우린 인적없는 길로만 달렸고 이윽고 한 절벽 위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어떤 감시도 미행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비사인은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쏴아아아아악.
쏟아지는 폭포를 내려다보며 비사인이 물었다.
“헤엄 좀 치시오?”
“물속에서 장강수귀(長江水鬼)들 상대하면서 밥도 먹을 수 있소.”
“그럼 날 따라오시오.”
비사인이 먼저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고 그 뒤를 따라 나도 뛰어내렸다
만사동의 입구는 위치를 알지 못하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폭포 아래에 나 있는 좁은 입구를 통해 헤엄쳐 들어갔다.
물살이 센 곳에 있어 애초에 잘 보이지도 않았고, 들어가면 끼어서 절대 못 나올 것 같은 좁은 구멍이었다.
그 입구를 통과해서 좁은 통로를 헤엄쳐 들어갔다. 더 들어가다간 익사하겠구나란 공포에 휩싸일 정도로 깊이 들어가서야 우린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길은 연못과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은 동굴 안이었다.
“천마와의 일전에서 부상을 입은 만사종주께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오셨다고 하오.”
“그 좁은 통로가 이곳으로 이어져 있다니 하늘이 그를 살렸소.”
“그래서 우린 이곳을 성지로 삼았소.”
우린 동굴 앞에 나란히 섰다. 원래는 안으로 쭉 이어진 동굴이었는데, 입구를 막아 문을 만들어둔 것이다.
“정해진 방식으로 내공을 주입해야 열 수 있는 문이오. 억지로 열려고 하다간 이곳이 무너져 버리지. 자, 이제 말해주시오. 배후가 누구요?”
나는 곧장 그에게 배후를 밝혔다.
“사도맹 대장로 석관추요.”
비사인은 깜짝 놀랐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일 것이다.
“그럴 리가 없소. 석 장로는 오래전에 물러나서 원로원에 들어갔소. 그라는 증거가 있소?”
“흑살주가 실토했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죽었소.”
비사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증거도 없이 지금 석 장로가 배후라고 하는 거요?”
“증거가 왜 없소? 천마의 둘째 아들인 내가 증인으로 말하고 있는데.”
“!”
“나를 믿지 않는다면, 애초에 당신은 여기 서 있으면 안 되는 거요. 당신 대체 뭐 하는 거요?”
나의 질책에 비사인은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니요. 당신을 믿소. 믿으니까 왔지. 석 장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그렇소.”
그만큼 석관추는 사도맹 무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석 장로는 자신의 손자를 후계자로 만들려고 하고 있소.”
그제야 비사인은 이 상황을 이해했다.
“아! 그래서였군. 석 장로는 손자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소. 내 앞에서 손자 자랑을 여러 번 했었소. 그땐…… 손자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구나 싶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오.”
비사인의 눈빛에 차가운 살기가 스쳤다. 석관추며 그 손자며, 지금껏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말과 일이 새로운 의미가 되어 그의 심장을 차갑게 얼리고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요.”
비사인은 남자답게 약속을 지켰다. 그가 벽에 손바닥을 대고 내공을 주입하자 문이 열렸다.
“이곳에 들어온 것은 죽을 때까지 비밀이오. 그리고 딱 두 시진이오. 그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내가 들어갈 거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천천히 만사동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