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5)
절대회귀-115화(115/424)
제115회 피 많이 납니다.
나를 바라보는 백망기의 표정에는 여러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두려움, 놀람, 흥분, 분노.
그중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놀람이었다.
“이렇게 젊다고?”
처음 내 검에 죽을 뻔했을 때는 내가 극악소마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착각했다고. 극악소마가 아니라면 이렇게 빠르게 검을 휘두르지 못했을 테니까.
“이봐, 늙은이.”
그에 대한 예의는 생략했다. 그의 삶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삼랑을 베는 순간, 그를 존중할 이유는 사라졌다.
“우리보고 귀신놀음 한다고 했나? 귀신놀음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잖아?”
“지금 뭐라 했느냐?”
“왜 무덤에서 기어 나와 후대 사람들 일에 개입하냐고? 당신은 당신 시대를 살면서 검황이란 이름까지 얻었잖아. 그걸로 부족했나?”
정곡을 찔리자 주위 공기가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등 뒤에서 천천히 가면을 제대로 쓰고 있는 극악소마의 열기였다. 그가 어떤 마음인지 굳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은 있는 법이다.
“이보게, 어린 후배. 어른에게 말버릇이 그리 고약해서 어디에 쓰겠느냐?”
“늙은이야, 어차피 너는 나를 죽일 건데, 예의까지 갖추길 바라면 너무 염치없잖아? 하긴 염치가 있다면 저 젊은 후배들에게 칼질을 해대진 않았겠지?”
주위 공기가 더욱 차가워지면서 그는 잘린 수염을 매만졌다. 나는 그의 살심을 더욱 키웠다.
“제자가 노망이 나서 권력 싸움에 뛰어들면 사부인 당신이 말렸어야지. 기다렸다는 듯 기어 나오면 어쩌자는 거냐? 쌍으로 노망났어?”
백망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래, 흥분해라. 더 흥분해라.
나는 저 멀리 서 있는 비사인과 사도십삼랑들에게 소리쳤다.
“이 늙은이들을 역사 속으로 돌려보냅시다.”
이쪽은 우리가 맡을 테니, 석관추를 맡으라는 뜻이었다.
절망이 가득했던 비사인의 두 눈에 희망이 피어올랐다. 백망기를 우리가 맡으면, 이번 싸움은 충분히 해볼 만했으니까.
반면 석관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사부까지 동원한 일에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백망기가 차갑게 물었다.
“요망한 너는 누구냐?”
“명부에 누락된 늙은이를 저승으로 데려갈 사람.”
그 순간 백망기가 벼락처럼 빠르게 검을 뽑았다.
번쩍!
날아든 검을 가까스로 피했다. 백망기의 공격은 빠르고 강력했다.
그 순간!
피잉!
극악소마의 혈앙지가 발출되었다. 백망기가 몸을 틀어서 피했고 내 검이 그를 찔렀다.
순식간에 우리가 격돌하면서 사도십삼랑과 비사인도 석관추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극악소마를 신경 쓰지 않고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그와 합을 맞춰 싸운 적이 없었고, 백망기를 상대하면서 어설픈 합공을 하려고 했다간 오히려 불리해질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나는 극악소마를 믿었다.
알아서 하겠지. 알아서 끼어들고, 알아서 피하고 알아서 도와주겠지. 알아서 잘 싸우겠지.
그렇기에 나는 백망기와 일대일로 싸운다는 마음으로 싸웠다.
챙!
다시 한번 격돌이 있었다. 그의 쾌검은 너무 빨라서 사도십삼랑이 받아낼 속도가 아니었다. 극악소마도 연속해서 피하기는 쉽지 않은 공격.
눈으로 보고 막으면 이미 늦다. 경험과 본능으로 막아야 했다.
그가 왼쪽을 공격하니 나는 오른쪽을 공격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목이 잘릴 것이다.
속도만을 고집했던 백망기의 초식이 현란해졌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너무나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까스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에게 기가 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초식을 주고받는 사이에 극악소마의 혈앙지가 발출되었다. 우리 움직임이 너무나 빨랐기에 혈앙지는 정말 신중하게 발출되었다. 까닥 잘못했다간 내가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대일의 싸움이었음에도 백망기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팔십 년 전에 검황이라는 이름을 달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는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검법도 검법이지만 백망기의 보법도 화려했다. 내가 풍신사보를 익히지 않았다면 이 보법에 완전히 유린당했을 것이다. 그는 혈앙지에 당하지 않으려고 나와 뒤엉키듯 싸웠는데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기가 막히도록 유연했다.
백여 초가 지났을 때, 검식을 나누던 백망기가 기습적으로 장력을 발출했다. 정말이지 변화무쌍한 공격이었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장력을 발출하며 막았다.
꽝!
장력과 장력이 만나면서 굉음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우린 서로 주르륵 뒤로 밀렸다. 공력이 거의 비슷했다. 만약 최근에 복용한 만년흑영지가 아니었다면, 내공에서 그에게 밀렸을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멀어졌을 때, 우린 대화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안 놀라고 싶지만 안 놀랄 수가 없군. 대체 어떻게 그 나이에 이런 심후한 내공을 지닐 수가 있나?”
나는 반갑게 그에게 말했다.
“친구야, 나 모르겠어?”
“뭐?”
“나 반로환동(返老還童)했다.”
순간 그는 내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누구긴. 말버릇 고약한 어린 후배지. 친구도 없으면서 누군지는 왜 묻나?”
그제야 백망기는 내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틈이 나면 그를 자극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싸움은 흥분하는 쪽이 지는 거다.
흥분한 그의 검에서 처음으로 검기가 발출되었다.
쇄애애애액!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꽝!
내가 발출한 검기가 날아든 검기와 충돌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극악소마는 혈앙지와 마극광폭장을 연속해서 발출했다. 이대일의 싸움이니 이 싸움은 우리에게 유리한 싸움이다.
난 검기발출식인 염천식을 연속해서 쏟아부었다.
극악소마 역시 쉴 새 없이 혈앙지와 마극광폭장을 발출했다.
백망기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장력을 발출해서 그것을 해소했다.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꽝! 꽝! 꽈아앙! 꽝!
지축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 엄청난 공방에 석관추와 비사인, 사도십삼랑도 싸움을 멈추고 결과를 주시했다.
공격이 멈추고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우린 깜짝 놀랐다.
그는 멀쩡히 서 있었다.
그리고 분노로 만들어내는 검황의 절기.
스스스스스!
그의 앞에서 검이 검 모양의 검기로 분열하고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일 수에 이곳에 있는 모두를 다 죽여버리려 한다는 것을. 사도십삼랑과 비사인을 죽여 석관추와 함께 우릴 상대하려 한다는 것을.
내 가슴 앞으로 흑마검이 떠오르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스슷!
비천검법 제칠식 유천식.
십이성 대성을 이룬 덕분일까?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많은 숫자로 분열되었다.
백망기의 검기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향해 날아갔다.
쉭쉭쉭쉭쉭쉭쉭!
쏴아아아아아아!
동시에 내 검기도 함께 발출되었다.
다음 순간, 장관이 펼쳐졌다.
공간을 수놓은 두 종류의 선들. 죽이려는 선과 지키려는 선.
그 두 선이 교차하는 순간,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는 폭음이 연속해서 터져나갔다.
비사인은 보았다. 자신의 얼굴로 날아들던 백망기의 검기를. 날아드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을 속도였다.
하지만 내 검기가 더 빠르게 날아와 그 검기를 찢어발기며 눈앞에서 파훼시켰다.
꽝!
다른 사도십삼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날아든 검기가 다른 검기로 찢겨나가는 모습은 평생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꽝! 꽝! 꽝! 꽈앙! 꽝!
극악소마는 스스로 검기를 파훼했다. 그러리라 믿고 그의 검기는 막아주지 않았다.
날아간 모든 검기가 사라졌을 때, 흙먼지도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백망기의 모습이 보였다. 불신과 놀람과 분노가 뒤섞인 그의 눈빛은 살기만이 가득했다. 석관추는 놀라고 당황했다. 사부의 비전절기가 막힐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릴 바라보는 비사인과 사도십삼랑의 눈빛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놀람을 넘어 경외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백망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최선을 다한다면 나는 혼신을 다할 거다. 네가 죽으면 너만 죽지만, 내가 죽으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는다.
나는 내 검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수십 수가 오갔다.
서로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어디를 어떻게 베였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극품천잠사와 귀호의까지 입었는데도 피가 튄다는 것은, 안 입었다면 이미 몇 군데 잘려 나갔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버티고, 또 버티자 백망기에게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가 이렇게 긴 혈전을 펼친 적이 언제였을까?
오십 년 전? 칠십 년 전? 어쩌면 이렇게 힘든 싸움은 없을 수도 있다. 검황이 된 이후에는 아무도 함부로 그에게 덤벼들지 않았을 테니까.
이 싸움에서 극악소마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우리 싸움이 너무 빨라 함부로 개입하지 않았지만, 확실하다 싶을 때면 혈앙지를 날렸다.
내가 위험할 때 혈앙지가 나를 살렸다. 적시에 날아드는 한 번의 혈앙지는 싸움의 판도를 바꾸었고 내게 기회를 주었다.
결국 백망기는 작전을 바꿔 극악소마부터 죽이려 했다.
극악소마를 향한 살심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미친 듯이 백망기를 몰아붙였다.
빈틈을 주면 극악소마가 죽는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극악소마를 이 싸움에서 잃고 싶지 않았다. 이 늙은이에게 그가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죽여도 내가 죽인다! 이 망할 늙은이야!
이 간절한 열망은 한 가지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냈다.
내 시야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백망기만 보였다.
마치 검은 배경에 백망기만이 홀로 백의를 입고 내 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모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모두 차단되었다. 오직 내 소리와 백망기가 내는 소리만 들렸다. 무공을 배운 이후 처음 겪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백망기의 검과 내 검이 부딪쳐서 불꽃이 튀던 그 순간.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다.
이제 백망기마저 사라졌고, 내 눈에는 오직 그의 검만 움직였다. 내 검만 보였다.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나가면 이 검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점점 더 확실하게 백망기의 검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안술로 밝아진 내 시력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가 느려진 것도, 내가 빨라진 것도 아니다. 이 속도에 내가 먼저 적응한 것이다. 내 눈이 적응한 것이다.
검만 보였는데 다시 백망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 보인다.
이제 비로소 보인다.
그가 힘들어하는 것이.
그가 후회하는 것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그리고 보았다.
완벽했던 그가 보인 단 하나의 빈틈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내 검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후였다. 내 검과 몸은 하나였다.
푹!
내 검이 백망기의 심장을 관통하는 그 순간.
시야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위의 어둠이 사라지면서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백망기의 몸에는 이미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혈앙지가 적중한 곳이었다.
나는 백망기가 언제 그것에 적중당했는지 알 수 없다. 백망기는 우릴 둘을 데리고도 이렇게나 잘 싸웠던 것이다.
놀람과 경악, 허무함과 두려움. 온갖 감정이 다 깃든 그의 마지막 눈빛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그에게 해줄 말도 없었다.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백망기는 절명하며 쓰러졌다.
십이성 대성을 이루지 못했다면 이 싸움에서 졌을 것이다. 극악소마와 합공하지 않았어도 우린 죽었을 것이다.
무림에는 이런 괴물 같은 전대 고수들이 존재한다. 무림맹에도 있고, 본교에도 있으며 이렇게 사도맹에도 있다.
화석처럼 굳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마지막 불꽃을 피우려는 옛 고수들이. 그래서 무림이 무서운 법이다.
“아이고, 죽겠다.”
나는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웠다. 얼마나 심력 소모가 컸으면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정말 누가 검을 찔러오지 않는 한,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아이고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극악소마도 내 옆에 철퍼덕 앉았다. 내 가면 아래 그의 턱이 보였다. 턱 아래로 피가 굳은 것이 보였다.
“다쳤습니까?”
“가볍게 긁힌 겁니다.”
“못생기셨을 건데, 얼굴 다치면 안 됩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지 생각도 못 했는지 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힘들게 싸우고도 웃기고 싶습니까?”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죠.”
“이공자는 피 많이 납니다.”
“아파죽겠습니다.”
극악소마는 혈도를 눌러 팔과 다리, 그리고 배와 어깨를 지혈해주었다.
이 여행을 시작할 때, 그가 내 상처를 지혈해 주는 순간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저쪽 싸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물음에 극악소마가 힐끗 고개를 돌려서 한참 싸움 중인 곳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대충 끝나갑니다.”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안 하는 걸 보니, 비사인 쪽이 이기고 있는 모양이다.
우린 잠시 말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내가 먼저 말했다.
“고맙습니다.”
잠시 사이를 두고 극악소마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우린 서로 고맙다는 말만 했다. 다른 말은 붙이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새 가면 사주겠습니다.”
“더 좋은 거로 사주십시오. 그 가면은 오래 쓰고 있으면 땀이 차더라고요.”
“그러지요.”
바로 그때였다.
“크아악!”
누군가의 목숨이 끊어질 때 나는 비명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사인과 세 명의 사도십삼랑의 검이 석관추의 몸에 박혀 있었다.
싸우던 중에 사도십삼랑 두 명이 더 희생되었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악인은 홀로 저승에 가는 법이 없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비사인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백망기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가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덕분에 죽을 뻔했습니다.”
그는 웃지 않았다. 여전히 결의에 찬 눈빛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채 말했다.
“이 길로 곧바로 석관추의 손자를 죽이러 갈 작정입니다.”
그는 예전에 나를 대할 때보다 더 정중했다. 그리고 내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증거는 우리 사도십삼랑의 증언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게 통하는 사도맹을 꼭 만드십시오.”
“그럼 다음에 뵙지요.”
비사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만났던 비사인과 지금의 비사인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이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고 떠나자 극악소마가 물었다.
“본교를 위해서는 저 비사인보다, 더 머저리를 후계자로 앉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겠지요.”
“한데 왜 저 사람을 도운 겁니까?”
석관추의 손자가 쓰레기 같은 놈이었기에 시작된 일이기도 했지만, 극악소마에게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상대가 너무 머저리 같으면 재미없잖아요?”
극악소마가 피식 웃었다. 그도 같은 생각일 거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불타오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우리도 가시죠?”
“아아아,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습니다. 업어주십시오.”
“엄살 피우지 마십시오. 지금 반대쪽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나와 극악소마가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그곳을 나섰다.
우리가 떠나는 그곳에는 희미한 달빛만이 늙고 더 늙은 욕망이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비출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