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1)
절대회귀-121화(121/424)
제121회 어찌나 잘 잊는지.
이안과 나는 여행을 계속했다.
목적지는 귀령자의 가문인 귀문이었다. 아직 혼례가 열리려면 시간이 남았기에 일정에 맞춰 이안과 여행을 즐기며 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녀를 노리는 색마를 만나기도 했고, 정말 좋아서 목숨을 바쳐 사모한다는 순박한 공자를 만나기도 했다. 돈 많은 노인네가 황금을 싸 들고 와서 청혼하기도 했다. 색마는 죽었고, 공자는 울었으며, 늙은이는 망신당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새롭고 좋았지만, 뜻밖에 그녀가 더 좋아한 것은 절경을 구경하는 것과 그 지역의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이었다. 사람은 징글징글해도, 처음 나온 중원은 보는 것마다 새로웠으리라.
그녀는 마치 두 번 다시 이곳에 와보지 못할 거란 사람처럼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여행에 있었던 일들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이 요리 정말 맛있어요. 도련님도 드셔보세요.”
“난 이게 더 취향이야.”
“그건 너무 맵던데. 매운 거 너무 좋아하시면 속 다 버려요.”
“넌 사천 가서는 못 살겠다.”
“그래도 제대로 된 사천요리 먹어보고 싶어요.”
이제 주위의 시선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힐끗거렸지만, 우리가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들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근데 도련님. 우리 이렇게 놀아도 되나요?”
“안 될 이유는?”
“대공자는 지금 마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일 거예요.”
“그렇겠지.”
“혈천도마가 다시 대공자와 손을 잡았으면 어떻게 해요?”
“제발 좀 그러라고 해라. 다시 데려오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겠냐?”
“너무 유유자적이시라 제 마음이 불안해요.”
“불안해하지 마라. 내가 후계자가 될 운명이라면 천천히 돌아가도 될 테고, 안 될 운명이라면 매일 마존들을 만나도 안 될 거다. 그리고 지금은 마존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
“무슨 일요?”
“잡은 물고기에 밥 주기.”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실수를 하는지. 먼저 잡아둔 고기가 아니라면 새 물고기는 잡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걸 어찌나 잘 잊는지. 사람의 호의를 어찌나 당연시하는지. 먼저 잡혀주고, 계속 있어 주는 고마움을 대체 어디다 비교한단 말이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물고기 요즘 잘 먹고 있긴 해요.”
“그러니 나중에 불평하면 안 돼! 애정이 부족했다느니, 믿음이 부족했다느니!”
“그런 의미에서 저거 하나만 더 시켜줘요!”
“그 옆에 있는 것까지 다 시켜!”
물론 여행하면서 우린 무공수련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달리고 뛰고 비무하고. 그야말로 밥 먹고, 절경을 보며 즐기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든 시간을 무공수련에 몰두했다.
특히 요즘은 틈이 날 때마다 만사종주가 남긴 무학의 정수를 곱씹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비천검법 십이성 대성과 맞물려 뭔가 나를 간질이고 있다. 이런 간지러움은 항상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순간도 무공수련에 소홀하지 않았다.
이안은 이안대로 무공수련에 열중했다. 특히 임독양맥이 타통되면서 그녀는 비천검법 팔성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구성에 이를 상황이었다.
검술 수련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경공 수련.
“아아아아악!”
절벽에서 떨어지는 이안은 여전히 비명을 질러댔지만, 움직임은 예전과 달랐다. 허우적대던 팔다리는 차분하게 움직였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여러 차례 몸을 틀면서 바닥에 내려섰다. 휘청거리다가 앞으로 넘어지긴 했지만, 절벽에서 혼자 떨어져 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해냈어요!”
그녀가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뒤따라 내려온 내가 그녀 옆에 내려섰다. 마지막 순간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듯 허공을 걸어서 내려오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너 따라 하도 뛰어내렸더니 나도 좀 늘었다.”
“사람 이렇게 기죽이기에요? 저는 그 난리를 치고 내려왔는데, 이러시기냐고요!”
“나도 사람인데 잘난 척하고 자랑하고 싶잖아?”
“잘난 척 안 하셔도 충분히 잘났다고요.”
“아, 계속 잘난척해서 이 말 계속 듣고 싶다.”
“하세요, 제가 지치지 않고 해드릴게요.”
나에게 이렇게 헌신적이지만, 그녀는 노는 것 좋아하고 쾌활하고 밝고, 영민하고, 개인의 삶과 행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가 더 고맙고 좋다.
이안이 검을 뽑았다.
“자, 칭찬비 주셔야죠. 한 수 부탁드립니다.”
그녀와 한바탕 거칠게 싸웠다.
일부러 경공으로 절벽을 타고 날아오르며 싸웠다. 허공에서 검기가 날았고, 검기를 피하며 절벽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녀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느꼈다.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왔고, 그런 그녀에게 검기가 날아들었다. 검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그녀도 검기를 발출했고, 절벽을 타고 올라야 했다.
진짜 고수들의 싸움이었다. 내가 판을 짜고 유도하긴 했지만, 그녀는 훌륭하게 대처했다.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 역시 가르치면서 느껴지는 바들이 있었고.
그렇게 우린 다시 절벽 위에 올라섰을 때 싸움을 끝냈다.
“임독양맥 타통 후 진기의 움직임과 초식의 위력이 달라졌어요.”
“이때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
“알죠.”
그녀의 눈빛에 결의가 가득하다. 절경도 좋고, 맛있는 것도 좋지만 그녀 역시 타고난 무인이다. 무공이 성장하는 순간의 기쁨에 비할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잘하고 있어.”
“사부가 누군데 못하겠어요?”
날 향한 그녀의 두 눈에 감사와 존경의 빛이 가득했다.
“혼례 보고 싶다고 했지? 저기 저 산을 넘으면 우리가 가려던 곳이다.”
“한데 왜 혼례를 말릴까 말까 고민하시는 거죠?”
“부탁을 받았다. 혼례 좀 말려달라고.”
“누가요?”
“있어. 내가 큰 도움 받은 사람이.”
다른 것은 다 설명해도 이건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실 그에게 혼인하고 또다시 지옥 같은 삶을 살라고 매몰차게 말했지만, 그가 마음이 쓰였다.
귀령자가 아니었다면 회귀하지 못했을 거다. 나를 배신해서 자신이 가려고 했던 것, 나는 이해한다.
과거로 돌아갈 기회, 인간이 어찌 그 유혹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가 나를 배신하고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그 혼인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결정은 그를 만나고 하겠지만, 웬만하면 혼인을 말려줄까 한다. 그렇게나 간절했으니.
“혼인하는 여인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그렇지는 않을걸?”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을 거다. 귀령자는 혼인 생활을 지옥이라 표현했으니까.
“혼례가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서진.
낭인 시절 나의 유일한 친구. 귀령자의 동생인 그녀가 회귀대법에 관해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 일단 가보자.”
내가 절벽에서 몸을 날렸다. 뒤에서 이안의 외침이 들렸다.
“저 원래 높은 곳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렇게 막 가버리시면 안 된다고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이안도 망설이지 않고 나를 따라 몸을 날렸다.
* * *
귀문의 밤이 깊었다.
귀령자 서공(徐孔)은 귀문의 후계자가 된 이후, 잠자는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빠졌다.
낮에는 귀문의 후계자에게만 전해지는 비전귀술을 익혀야 했고, 밤에는 회귀대법을 연구해야 했다. 오랜 세월 가문의 숙원이었으니, 대대로 내려오는 자료만 수천 권이 넘었다.
오늘도 그는 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이 정성으로 검술을 익혔으면 천하제일검이 되었을 거야.”
귀령자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이렇게 참견하는 시간에 검술을 익혔으면 일인자는 네가 되었을 거다.”
방에 들어온 사람은 그의 동생 서진이었다.
“그렇게 무리하다 병 나. 오라버니 쓰러지면 그 일 다 내게 온다고.”
“걱정 마라. 귀신하고 약속했다. 이 연구 끝날 때까지는 날 안 잡아가기로.”
“내가 만난 귀신은 그런 말 안 하던데?”
그제야 귀령자가 책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휴, 우리 오라버니 그러잖아도 못생긴 얼굴, 피곤하니까 더 못생겨졌네.”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않아?”
“그런 착각은 오직 거울만 받아준답니다, 오라버니.”
귀령자가 큰소리로 웃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나마 자신의 숨통을 틔워주는 사람이 동생이었다.
서진이 가져온 책자를 책상에 올려두었다.
“여기. 정리하라는 것 다 정리했어.”
“고생했다.”
“고생했지. 나야 오라버니처럼 천재가 아니잖아? 오라버니 한 번 볼 것 다섯 번은 봐야 한다고. 뭐가 이리 쓸데없이 어려운지. 정말 힘들어.”
“안다, 알아.”
귀령자는 동생이 안쓰러웠다. 꽃다운 청춘에 연구로만 보내고 있으니.
외모도 빠지지 않고. 무엇보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동생이었다. 밖에 나가면 인기가 많은 그녀였는데, 요즘은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있었다.
서진은 그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라버니, 정말 회귀대법이 가능하다고 믿어?”
“믿는다.”
귀령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천리를 거스르는 일인데도?”
“그래도 믿어.”
동생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귀령자가 왜 모르겠는가?
“힘들지?”
“답답해서 그래. 이렇게 연구하다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우리 자식들도 이 연구실에 갇혀서 평생을 보내겠지?”
“내 대에서 꼭 성공할 거다.”
“해낼 거면 부디 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내 줘. 그렇지 않으면…….”
귀령자는 느꼈다. 동생은 거의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음을. 원래 동생은 활동적인 성격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긴 해도, 언제까지 버틸지는 알 수 없었다.
돌아서 나가려던 서진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좋아, 오라버니 말처럼 회귀대법이 가능하다고 쳐. 그래서? 과거로 가면? 과거로 돌아가면 오라버니는 뭐 할 건데? 또 틀어박혀서 연구할 거야? 회귀는 해냈으니, 환생 연구라도 할 거야?”
“!”
“그게 아니라 다른 일을 떠올렸다면…… 오라버니, 우린 잘못된 인생을 사는 거잖아? 지금 그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돌아가서 살고 싶은 삶, 그걸 살아야 하잖아?”
귀령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많았지만, 서진은 더는 오라버니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일찍 자. 진짜 얼굴 많이 상했다.”
그녀가 연구실을 나가자 귀령자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댔다.
동생 말이 맞다. 지금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면, 돌아갈 이유도 없어질 거다. 하지만 회귀대법을 이루는 것은 가문의 숙원이었다. 후계자가 된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때 시종이 와서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너무나 기다렸던 사람이 내일 이곳에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 * *
나와 이안이 도착한 곳은 귀문이 있는 마을의 한 객잔이었다.
이안은 가면은 허리에 찼고 면사를 착용해서 눈만 내놓고 있었다.
침상이 두 개 있는 방을 구한 후, 식사를 주문했다.
둘이 여행 다니면서 객잔에 묵을 때는 이렇게 한방에서 지냈다. 불편하지 않냐며 따로 자라고 해도, 이안은 오히려 좋아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 잠드는 게 재미있다는 것이 그녀의 이유였다.
그렇게 객잔 일 층에서 이안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 손님들이 귀문의 귀령자의 혼례 소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래 이 마을의 화제는 단연 그 혼례였던 모양이다.
“귀문이 임씨검문과 사돈을 맺게 될 줄은 몰랐군.”
“나도 놀랐네. 임씨검문(林氏劍門)은 대대로 검가와 사돈을 맺어오지 않았나?”
“임 소저가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하더군.”
“귀문과 검가의 결합이라,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군.”
“아, 저기 귀문의 후계자가 아닌가?”
나와 이안의 시선이 그들을 따라 바깥을 향했다.
길가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자 나는 마음이 격동했다. 그는 바로 젊은 시절의 귀령자였다. 그를 중년 때부터 봤으니, 그때 얼굴이 다 남아 있었다.
‘반갑소, 귀령자.’
회귀 전 인생에서 그와는 몇 차례 짧은 만남이 다였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수십 년에 걸친 만남이었다. 절로 대법 재료를 구하던 지난 고생이 떠올랐다.
귀령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길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곳으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도착했다. 선두에 서 있던 여인이 말에서 내리자 뒤따르던 이들도 따라 내렸다. 보아하니 그들은 여인을 보필하는 무인들이었다.
귀령자가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임 소저!”
그녀는 바로 귀령자의 정혼자인 임향(林香)이었다.
“공자님? 왜 여기 계셨어요?”
“소저가 온다는 소식 듣고 마중 나왔소.”
그녀를 바라보는 귀령자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졌다.
“고맙소, 이번에 청혼을 받아줘서.”
“공자님을 믿고 내린 결정이에요.”
“아버님은?”
“허락은 하셨지만……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꼭 아버님 마음을 돌리겠소.”
귀령자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한 몸 다 바쳐서라도 꼭 행복하게 해주겠소. 누구도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을 막을 수는 없을 거요.”
나는 깜짝 놀란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당신? 부인을 이렇게나 좋아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