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5)
절대회귀-125화(125/424)
제125회 이야, 남자시네.
서대룡은 황천각주 집무실에 놓인 화분의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이인자야, 대체 각주님은 언제쯤 돌아오시냐?”
일화검존이 맡기고 간 화분의 꽃을 이인자라 부르는 그였다. 집무실에서 자신이 세 번째로 중요하다는 농담에서 비롯된 별명이었다.
“나도 좀 데려가시지. 나 빼고 얼마나 재미있게 놀고 계시기에 이렇게 소식이 없나?”
검무극과 이안이 없으니 확실히 삶의 재미가 반으로 줄어든 기분이었다.
정기적으로 가졌던 장호와 술자리도 지난달부터 중단했다. 이안이 돌아온 후에 갖기로 미룬 것이다. 솔직히 셋이 있어야 재미있었다. 셋이 있어야 완성된 느낌이었다.
“흥! 이제부터 네가 일인자 해라. 오늘부터 내가 이인자다. 버림받은 우리가 다 해 먹자!”
사실 이미 다 해 먹고 있었다. 황천각의 주요 업무는 서대룡이 대부분 맡아서 진행했다. 선배들이 있었지만, 검무극이 가장 밀어주는 사람이 서대룡임을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그가 각주 대행이 되었다. 그리고 서대룡은 그 일을 누구보다 잘 처리했다.
검무극이 부재한 시기는 그가 성장한 시기였고, 본격적으로 인정을 받은 시기였다.
더불어 혈천도마에게 도법을 배우는 것 역시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혈천도마는 절대 검무극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치 검무극을 언급하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서대룡이 검무극에 관해 이야기해도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부님,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고요.’
그렇게 창가에 서서 검무극과 이안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고 있는데 집행무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준비됐습니다.”
“가시죠.”
어디서 뭐하고 계신지 모를 농땡이 각주님, 저는 또 일하러 갑니다.
건물 밖에는 집행 무인이 열 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보통 조사관 한 명에 두 명의 집행무인이 움직였기에 열 명이란 숫자만 봐도 오늘의 작전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호갑(白虎鉀)은 다 착용하셨습니까?”
“네, 착용했습니다.”
백호갑은 집행무인들에게 지급되는 보급용 보의였다. 진짜 보의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반 도검은 막아주는 효과가 있었다.
“갑시다.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긴장들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집행무인들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대취마가 기거하고 있는 대취림(大醉林)이었다.
대취마.
팔마존 중 일인인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해있어서 그를 취마라 불렀다. 그와 관련한 여러 소문이 있었다.
그가 항상 취해있는 이유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란 말도 있었고, 그의 독문무공이 취기를 이용하기 때문이란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는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를 따르는 무인들을 취객이라 불렀는데, 그들 역시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주당들이었다.
대취림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행무인이 문을 두드리자 입구를 지키던 취객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시오?”
“황천각에서 나왔소. 문을 여시오.”
“무슨 일로 오셨소?”
서대룡이 가져온 서류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취객 도호(都浩)를 체포하러 왔소.”
도호란 놈이 술에 취한 채 마차를 몰다가 저잣거리로 돌진해서 사람이 둘이나 죽고 열 명 이상이 다쳤다. 이후 마차를 버려둔 채 제 몸만 달아나 버린 것이다.
취객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도호는 여기 없소. 돌아가시오.”
“그대가 어떻게 아시오? 그 넓은 대취림에 도호가 있는지 없는지.”
“없다면 없는 줄 알고 돌아가시오.”
취객은 곧장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어차피 이렇게 나오리란 것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마존의 수하들은 고분고분 말을 들으면 다른 마존보다 약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하나가 말을 안 들으니 다들 안 들었다.
특히 근래 검무극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황천각 무인들의 권위가 잘 안 먹히기 시작했다.
“경고한 후 문 부수세요.”
“네.”
집행무인이 나서서 내공을 실어 경고했다.
“열을 세기 전에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수고 진입하겠소. 하나, 둘, 셋, 넷…… 아홉, 열.”
문을 부수려고 하던 그 순간.
끼이익.
문이 열리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나왔던 취객과 다른 취객이었다. 그는 입구를 지키는 취객들의 책임자 호양(湖陽)이었다.
호양이 서대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본림을 침입하고도 무사할 것 같소?”
“도호란 취객이 죄를 지었소. 무작정 감쌀 일이 아니오. 도호만 내어주면 돌아가겠소.”
“도호는 없소.”
“본각의 정보망을 무시하지 마시오. 도호가 이곳으로 돌아갔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으니까. 만약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대 역시 죄인을 은닉한 죄를 짓는 셈인데, 그래도 되겠소?”
순간 호양이 차가운 마기를 일으켰다.
오늘 근무하는 취객들의 책임자답게 그의 기세는 날카로웠다. 황천각 조사관쯤은 뒷걸음질을 치게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는데, 서대룡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대룡의 기세가 호양을 압도했다. 혈천도마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법을 배우고 꾸준히 수련해온 결과였다.
자신도 모르게 호양이 뒤로 물러서던 바로 그때, 사납게 생긴 중년인이 대취림에서 걸어 나왔다.
짝!
남자가 사정없이 호양의 뺨을 후려쳤다.
“병신 새끼가! 저따위 조사관에게 밀리고 있어.”
나가떨어졌던 호양이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온 남자는 바로 대취림 삼대 취객 중 일인이자 성질이 더럽기로 소문난 구마영(俱瑪英)이었다. 그의 악명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혈질적인 성격에 뒷일을 생각지 않고 손부터 나간다고 했다.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서대룡이 인상을 굳혔다.
‘하필이면.’
구마영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서대룡의 앞까지 걸어 나왔다.
“술맛 떨어지게 왜 지랄인데?”
“이곳의 도호란 자가 술에 취해 마차를 몰다 사고를 냈소.”
“취객이 술에 취한 것은 당연하고 마차를 몰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법이거늘, 왜 이리 떼로 몰려와서 지랄들인가?”
“취객이라 해도 취한 상태에서는 마차를 몰 수 없는 것이 정해진 법이오.”
“지랄한다. 너는 법 다 지켜?”
“적어도 술 마시고 마차를 몰아 사람을 죽이진 않소.”
구마영이 서대룡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독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에 서대룡이 인상을 찌푸렸다.
“날 똑바로 봐.”
서대룡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적당한 놈 찾아서 그놈이 마차를 몬 것으로 처리해. 내 눈 봐. 알았어?”
“그럴 수 없소.”
“뭐라고? 다시 말해봐.”
“그럴 수 없다니까. 비키지 않으면 당신도 체포하겠소.”
구마영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술병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서대룡의 머리에 부으려고 높이 들었다.
뒤에 선 집행무인들의 손이 일제히 검손잡이를 잡았다.
명령이 떨어지면 달려나가서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기세였다.
구마영의 시선이 집행무인들을 향했다.
“지랄한다, 뒈지고 싶으면 그 검 뽑아봐.”
구마영 뒤에 있던 취객들 역시 병장기를 뽑기 위해 자세를 갖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서대룡이 손을 들어서 집행무인들을 말렸다. 여기서 칼부림이 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럼 그렇지, 비웃음을 지으며 구마영이 서대룡의 머리에 술을 부으려던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나직한 경고가 들려왔다.
“그 술 부으면 그 손목 자르고, 네 피로 그 술병을 가득 채워서 네 머리에 부을 거다.”
누구 목소리인지 확인한 서대룡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각주님!”
서대룡이 돌아서자 검무극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내 새끼들, 고생 많다.”
그의 등장에 서대룡과 집행무인들이 크게 기뻐하며 그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각주님!”
“각주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이렇게 환대받는 수장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검무극을 반겼다.
그들과 인사한 후 검무극이 구마영에게 걸어왔다.
“너희 마존께서 술을 사람 머리에 버리라고 가르쳤나?”
대취마가 언급되자 구마영의 눈에 살기가 솟구쳤다.
하지만 검무극의 기세는 그를 압도했다. 마기를 발출하지 않았음에도 기세만으로 구마영을 옭아맸다. 구마영의 전신 솜털이 공포와 함께 일제히 곤두섰다.
‘이공자 기도가 이 정도였다고?’
구마영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소문만 듣던 이공자였는데, 직접 대하는 완전히 다른 압박감을 주었다.
“그것도 황천각 조사관 머리에 술을 부을 생각을 하다니. 너 어디 폐관 수련하다 나왔어? 내 소문 못 들었어? 아니면 내가 자리 좀 비웠다고 영영 안 돌아올 줄 알았어?”
구마영은 검무극을 무섭게 노려볼 뿐 감히 뭐라 변명하지 못했다. 예전에 마군주를 베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후계자니까 소문이 부풀려졌다고 여겼는데 진짜 베었구나 싶었다.
“들어가서…….”
검무극이 서대룡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구라고?”
“도호입니다.”
검무극이 다시 구마영에게 말했다.
“들었지? 도호란 놈 데려와. 당장!”
구마영은 표정이 일그러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무극은 거침없이 흑마검을 뽑아 들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에 그곳에 있던 취객들의 심장이 차갑게 쪼그라들었다.
“너는 주정뱅이지만, 나는 미친놈이야.”
검무극이 한 발 앞으로 나갔을 때, 구마영은 더는 버티지 못했다.
“데리고 나오겠소!”
구마영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일부러 구마영을 거칠게 다뤘다. 서대룡과 집행무인들의 사기를 위해서였다. 오늘 일은 교내에 소문이 날 거고, 앞으로 내가 없다고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진 못할 것이다.
서대룡과 집행무인들이 내게로 모여들었다.
“언제 오신 겁니까?”
“지금 막. 옷 갈아입고 아버지 뵈러 가려는데, 자네들이 여기 왔다기에 천마전 가는 길에 들렀다.”
서대룡은 너무나 감동해서 눈물까지 맺혔다.
“그렇게 좋냐?”
“저도 각주님 돌아오신 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주정뱅이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피해서 좋은 게 아니고?”
“아까 냄새 맡으니 그놈 술 비싼 술이었습니다. 박봉에 언제 그런 술 마셔보겠습니까? 얼굴에 흘러내리는 술맛이라도 봐야죠.”
검무극이 서대룡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 본 사이 서대룡은 더 성장해 있었다. 무공실력이나 기세는 물론이고, 여유까지 있었다. 구마영 같은 놈을 상대할 때는 이렇게 침착해야 한다.
“이거 자주 출교해야겠는걸?”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각주님 안 계시니까 심심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서대룡의 말에 집행무인들이 웃었다. 검무극은 그들을 다시 보니 기분이 좋았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헤어졌다 다시 보니 너무 반가웠다.
그러는 사이 다시 문이 열리고 구마영이 도호를 질질 끌고 나왔다. 얼굴이 터져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구마영의 화풀이가 놈에게로 간 모양이다.
“체포해!”
집행무인들이 도호를 체포했다.
구마영이 마지막 자존심을 발휘하려는 듯 검무극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반면 검무극은 아까와는 달리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취객이니 술 마시는 것, 안 말리네. 대신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마셔야지. 협조해 줘서 고맙네.”
이런 짐승 같은 놈은 몰아붙이기만 해선 안 된다. 그럼 결국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자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수하들 앞에서 자존심을 꺾었으면 이렇게 살짝 펴주는 것도 관계의 요령이다.
“다음에 한잔하세. 내가 사겠네.”
검무극의 말에 구마영은 그저 코웃음을 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집행무인들이 도호를 데리고 황천각으로 돌아갔고 검무극과 서대룡은 천천히 천마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나가셔서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없네.”
“다행입니다. 극악소마가 혼자 돌아왔다는 소식에 걱정 많이 했었습니다.”
“날 죽이고 혼자 돌아왔을까 봐?”
“정말 그때는 악인곡에 가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오늘 이 자리에는 다른 조사관이 있었겠지.”
“그래서 안 갔죠. 이제 각주님도 오셨으니 며칠 휴가 좀 쓰겠습니다.”
“도마 어르신께 말씀드리겠네. 사랑하는 제자가 휴가까지 내고 지옥 훈련 준비 끝냈다고.”
“……휴가는 무슨 휴갑니까? 일해야지요.”
“그렇지? 모처럼 나 왔는데 어디 가면 안 되겠지?”
서대룡과 마주 보며 웃었다. 그와 농담을 나누니 정말 본교로 돌아온 것이 실감났다.
“헛!”
순간 서대룡이 발걸음을 멈추며 속삭였다.
“북서쪽요. 안보는 척 보십시오.”
그곳에 한눈에 시선을 잡아끄는 여인이 서 있었다.
“본교에 저런 미녀가 있었습니까?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런 몸매일 수가 있죠? 아아! 천상에서 내려왔나 봅니다.”
“마음에 드냐?”
“누군들 안들겠습니까?”
“만나볼래?”
“어휴, 저는 눈도 못 마주칠 것 같은데요.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만나보라고요? 어떻게요?”
“이번에 나하고 같이 왔다.”
“네? 네에?”
서대룡이 깜짝 놀라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거짓말 마십시오.”
“진짜야. 나랑 친해.”
“각주님이 저런 미녀를 안다고요? 친하다고요? 우리 사이에 뭔 그런 허세를 부리십니까? 이야, 이제 보니 각주님도 남자시네요.”
검무극이 여인을 손짓해 불렀다.
그러자 여인이 두 사람이 서 있는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