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
절대회귀-13화(13/424)
제13회 내 성질은 더 더럽다.
“마군주. 이름 구천양(具天壤). 혈천도마 구천파의 동생입니다. 마군주에 오른 지는 올해로 팔 년이 되었고, 각종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 내면서 마군을 명실공히 모두가 인정하는 정예조직의 자리에 올렸습니다.”
서대룡은 마군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일은 잘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날아들었다는 투서를 볼 수 있을까?”
“네, 여기 있습니다.”
그가 투서를 보여주었다.
필체를 속이려는 듯 삐뚤삐뚤 쓰인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마군 내 심각한 비리 발생. 조사 요망.
한참 동안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자 서대룡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번 상상해 보자고. 황천각 내에 비리가 있어. 그걸 자네가 알게 되었어.”
서대룡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그럼 자넨 투서를 보낼 건가?”
“저라면 안 보냅니다.”
서대룡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지? 너와 상관없는 일인데.”
“아뇨,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럼?”
“투서를 보내봐야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무심히 툭 내뱉어진 그의 대답에서 어떤 패배주의가 느껴졌다.
“본교를 바꾸려고 자네의 황천각이 존재하는 거잖아?”
“정확히 저희는 본교를 바꾸려는 분들이 사용하는 칼이죠. 주체는 아니고.”
“윗대가리들이 바뀌지 않으면 본교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 말씀은 드린 적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렇지 않습니까?’였다. 원래도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기에 이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은 그와 잘 어울렸다.
“어쨌든 이 사람은 투서를 보냈어. 이 일이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렇게 자기 필체를 속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한데 이 사람은 왜 투서를 보냈을까? 자네 말처럼 이런다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대답 없는 서대룡 대신 이안이 슬쩍 나서서 대답했다.
“정의로워서 보냈을 리는 없을 테니…… 비리를 저지른 자와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리 있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투서를 서대룡에게 돌려주었다.
“암튼 우린 이 사람을 반드시 찾아야 해. 우리가 만만해 보이면 그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해야죠. 이미 명령을 받고 이렇게 왔는데.”
“내 말은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마군주가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어. 겁 안나?”
“네.”
“지난번 조사관 죽은 것 알지?”
“압니다. 그때 죽은 조사관이 제 직속 선배였습니다.”
“아, 그랬군.”
“저를 가르쳐줬던 사수셨죠.”
담담한 말속에 어떤 비애가 느껴졌다. 어쩌면 그가 마군에 속한 모든 마인들의 정보를 외우고 있는 것이 죽은 선배의 복수를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를 생각하면 슬픈가?”
“너무 허망하게 돌아가셨죠.”
“허망한 죽음은 아니야. 그 죽음이 자네와 나를 이곳까지 불러들였으니까. 그리고 겁은 내야 해. 놈들은 황천각 조사관을 죽이고, 동료까지 살인멸구한 자야. 한 마디로 뒤가 없는 놈들이지.”
“그런 더러운 놈들에게 겁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말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선배의 복수를 하고 싶어 했다. 저 작은 몸집에 큰 분노가 잠들어 있다.
“자, 그럼 조사하러 가볼까?”
서대룡과 함께 거처를 나오려는데, 이안이 따라붙었다.
“도련님!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녀는 마군을 조사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 돼, 공적인 임무니까. 이때다 하고 좀 쉬라고.”
그녀는 나에게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멀어져가는 우릴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이안이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뒤쪽으로 기를 내보내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이안. 이런 날들을 위해 나는 아주 먼 길을 걸어왔었으니까.
* * *
마군들이 기거하는 마룡원(魔龍院)은 본교 외전 서쪽 지구에 위치했다.
정예조직답게 건물 규모도 컸고, 시설도 매우 좋았다.
내가 서대룡을 데리고 마룡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마인 둘이 막아섰다. 큰 덩치를 자랑하는 마군들답게, 이 문지기들도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됨직한 덩치들이었다.
“어디서 오셨소?”
“황천각 특별조사관 서대룡이다. 비켜!”
서대룡은 작은 몸집이지만 강단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박력에도 두 마인은 전혀 긴장하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조롱했다.
“특별조사관?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그중 한 놈이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했지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기에 똑똑히 들렸다.
나나 서대룡이 뭐라 하기 전에 다른 놈이 얼른 나섰다.
“상부의 출입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소.”
서대룡이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명령서를 내밀었다.
“상부는 여기야. 자, 명령서다.”
“잠시 기다리시오. 상부에 보고할 테니까.”
“너희 상관은 우리가 직접 만날 거다. 비켜.”
나는 서대룡이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하나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허가 없이는 못 들어간다니까.”
“이 명령서가 허가서다!”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뭔 개소리요? 이곳에 왔으면 우리 법을 따라야지.”
“개소리?”
서대룡은 망설이지 않고 앞을 막아선 놈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빡.
“으윽!”
정강이를 부여잡던 놈이 번쩍 주먹을 들었다.
“이 새끼가!”
서대룡은 제 자리에 선 채 놈을 노려보았다.
“황천각 조사관을 치려고?”
놈은 감히 서대룡을 치지 못했다. 아무리 기세등등한 마군이라지만, 황천각 특별조사관을 폭행했다가는 그 즉시 뇌옥행이었으니까.
“어휴, 이 쥐방울만 한 것 패버리고 맷값 물어?”
이게 딱 마군의 수준이었다.
하긴, 어디 마군 뿐이겠는가? 본교의 수많은 마인이 앞뒤 가리지 않고 제 성질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에겐 마도가 없다.
언젠가는 있었겠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마도를 잃어버렸다.
본교가 무림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포악하고 강한 것이 정의고 진리라는 그릇된 편견으로 뭉친 악인들의 집합체. 누군가 본교를 이렇게 욕한다면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으리라.
서대룡이 목청을 높였다.
“비켜!”
“상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니까!”
놈들은 비키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기에 서대룡이 이 말을 했을 것이다.
―투서를 보내봐야 바뀌는 것이 없으니까요.
저 작은 몸집으로 하는 지금의 실랑이가 본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내가 나섰다.
“내가 누군지는 아나?”
내가 나섰음에도 두 놈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나인 줄 알면서도 이랬다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사정없이 놈의 하물을 걷어찼다. 정강이를 차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으니, 더 중요한 것을 찬 것이다.
퍽!
“으아아아아악!”
놈은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맷값 타령을 해?”
당황한 다른 놈의 얼굴에는 내 주먹이 박혔다.
꽝!
그 큰 덩치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서대룡이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설마 마군을 이렇게 대놓고 패버릴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뭐해? 앞장서야지.”
“네, 가시죠.”
서대룡 앞장섰고 내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어느새 소식이 전해졌는지 본관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일단의 마인들이 우르르 그 앞을 막아섰다.
“비켜!”
아무도 비켜서지 않자 서대룡은 명령서를 내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거 안 보여? 너희들은 지금 정식으로 내려온 조사를 방해하는 거다. 전부 뇌옥에서 썩고 싶어?”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코웃음을 칠 뿐 누구 하나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더구나 서대룡의 몸집이 작아서 더욱 얕잡아봤다.
그들 사이가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 와서 행패를 부린다더냐?”
“특별조사관 서대룡이다. 그대는 신분을 밝혀라.”
“마군 일대주 고당(高黨)이다. 됐냐, 이 새끼야?”
그때 서대룡이 재빨리 내게 전음을 보냈다.
―이 자가 실질적인 서열 이 위인 자입니다. 마군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 알려진 자입니다.
그가 전음을 보내느라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을 고당이 본 모양이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감히 사람을 앞에 두고 전음질을 해?”
정문에 있던 놈들이나 이놈들이나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이들이 나를 무시하는 이유는 마군 자체가 형을 지지하는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마군주의 형인 혈천도마 역시 형의 뒷배로 알려진 사람이고. 그러니 이렇게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고 대주, 나는 엄연히 공식적인 명령을 받고 내려온 황천각의 특별조사관이오. 말조심하시오!”
서대룡은 고당 앞에서도 당당했다.
‘마음에 드네.’
쓰레기 같은 혈천도마 제자들이나 안하무인인 마군을 보다가 서대룡을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서대룡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당이 눈알을 부라렸다.
“말조심? 안 하면 어쩔 건데?”
“황천각 조사 방해죄 및 조사관 모독죄로 전원 체포하겠소.”
“체포? 으하하하하.”
그가 크게 웃자 주위에 있던 수하들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할 수 있으면 해봐!”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행 무인들이 함께 왔어도 이렇게 나왔을 자들이었다.
서대룡이 더는 어쩌지 못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다시 내가 나서야 할 때다.
“고 대주, 오랜만입니다.”
난 성큼성큼 고당에게 걸어가서 반가운 얼굴로 악수하듯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언제 마지막 봤죠? 지난 연회에서였나요?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반가워하는 나에 반해 고당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마군주를 급히 좀 뵈어야 할 것 같으니 텃세는 여기까지만 하시고 길을 열어주시죠.”
그러면서 그와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길이 열렸고 서대룡과 나는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 함께 들어갔다.
처음의 기세에 비해 너무 손쉽게 길을 열어주는 고당의 모습에 그의 수하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복도를 걸어가 계단 앞에서 고당과 작별했다.
“다음에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너무나 쉽게 길을 열고 계단을 올라왔기에 서대룡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고당과 아는 사이였습니까?”
“아니. 오늘 처음 봤다.”
“한데 어떻게?”
“저놈 한동안 왼손으로 밥 먹어야 할 거야. 아까 악수할 때 놈의 손을 부러뜨렸거든.”
“뭐라고요?”
너무 놀라 서대룡이 소리를 질렀다.
마군 대주의 손을, 그것도 아무런 표도 내지 않고 부러뜨렸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한데 왜 놈은 수하들을 시켜 공격하지 않았죠?”
“그럼 자신이 당한 것이 밝혀지잖아? 악수하다가 손이 부러졌다? 수하들 앞에서 쪽팔려서라도 표 못 내지.”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손이 부러진 고당이 반격하려 할 때, 난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까불면 영원히 이 손 못쓴다.
부러진 손을 완전히 으스러뜨릴 듯 꽉 잡았다. 앞서 혈천도마 제자의 팔을 재기불능으로 으스러뜨린 전례가 있었기에, 고당은 겁을 먹은 것이다.
“저 성질 더러운 고당이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그냥 안 있으면?”
“어떤 해코지라도 하겠죠.”
“그랬다간 대가리 터져서 죽게 될 거야. 이건 예언이야.”
서대룡이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존경스럽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격이…….”
“왜 말을 하다 말아? 더럽다고?”
“…….”
“거짓말은 못 하시는 성격이다?”
“그래서 미움을 많이 받습니다.”
“누군가에게 미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감이 될 수도 있지.”
잠시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서대룡이 화제를 돌렸다.
“마군주 집무실은 칠 층입니다. 가시죠.”
“쓸데없이 높네. 가자.”
그렇게 우린 칠 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