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1)
절대회귀-131화(131/424)
제131회 내가 경험했던 주정뱅이들은.
다음 날 황천각 집무실에 들어서자 서대룡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날 보자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무사하셨네요.”
“왜? 취마의 술독에 빠져 죽기라도 했을까 봐?”
“술 잘 못 드시잖아요?”
“나 잘 마셔. 자네들하고 마실 때 조심한 거지.”
“왜요?”
“주사라도 부릴까 봐.”
“각주님 주사 있으세요?”
“있어.”
“어떤 주사인데요?”
서대룡에게는 말해줄 수 없는 주사였다. 기분이 한없이 추락해서 극도로 우울해졌으니까. 낭인 시절 서진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술 때문에 폐인이 되었거나 결국 술에 취해 화무기를 죽이러 갔을 거다. 화무기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를 지지하는 자들에게 죽었겠지.
나는 내 주사를 반대로 말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 난다.”
“상상이 안 갑니다!”
“오른팔에게 잔소리도 엄청 하고.”
“그건 상상하기 싫고요.”
“이제 알겠냐? 내가 술을 자제하는 이유를?”
“아뇨, 마시세요. 우리 앞에서라도 주사 부리십시오. 각주님도 쌓인 화, 푸셔야죠. 이 오른팔, 잔소리 반 시진까진 받아줍니다!”
문득 서대룡을 처음 만나던 순간이 떠오른다. 음침한 기운을 몰고 내 방으로 들어오던 그의 모습이. 그야말로 우울하고 삐뚤어져 있었는데, 이제 나를 저렇게 위로하고 있다.
“저녁에 우리 또 뭉치기로 했는데, 각주님도 오십시오. 장 군주가 각주님 보고 싶어 할 겁니다.”
“그래. 오늘 저녁에 보자.”
“네. 저는 화분에 물만 주고 나가겠습니다.”
서대룡이 창가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었다.
“이제 일인자께서 돌아왔으니 너는 이제부터 이인자다.”
“무슨 말이야?”
“일인자는 모르는 애환이 있답니다.”
그때 무심코 창밖을 보던 서대룡이 헉, 소리를 내며 깜짝 놀랐다.
가서 보니 누군가 황천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예전에 극악소마가 저 연무장을 가로질러 왔듯이, 또 다른 마존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모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술병은 주인이 누군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취마가 황천각에 들어선 것이다. 그의 뒤로 한 여인이 뒤따랐는데, 그녀는 바로 나룻배를 태워준 대취림의 삼대취객 여빈이었다.
취마의 등장에 지나가던 조사관들과 집행무인들이 숨을 죽였다.
내가 황천각주가 되고 나서 정말 이곳에선 한 번도 못 봤던 마존들을 너무나 자주 보는 것이다.
서대룡이 날 보며 물었다.
“어떻게 마존들을 만나러 갔다 하면 그들이 여길 찾아오죠? 어젠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어요?”
“어제 마신 술이 부족했나 보지.”
“저렇게 휘청거리면서 걸어오는데요?”
정말 그는 멀리서 봐도 술에 취한 것이 표가 났다. 취마는 정말 온종일 취해 있었다.
“가서 손님 맞아라.”
잠시 후, 서대룡의 안내를 받으며 취마와 여빈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취마님.”
“또 보네, 우리 이공자.”
그가 우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친근하게 인사했다.
“어제 그렇게 함께 술을 마셨으면 적어도 한 며칠은 지나서 만나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공무로 왔네.”
“혹시 도호를 만나러 오신 겁니까?”
“그렇네. 사고를 쳤다지만 그래도 내 사람 아닌가? 한 번은 보고 뇌옥에 보내야지.”
정말 생각지 못한 이유의 방문이었다.
“내가 보겠다는 것은 아니고, 여기 이 사람이 만나볼 거네.”
“그러시죠.”
나는 서대룡에게 말했다.
“도호에게 안내하게.”
“네.”
서대룡이 여빈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자 취마에게 말했다.
“어제 많이 취하셨던 것 같은데, 속은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그러니 우리 해장술 한잔하세.”
취마가 술병을 들고 흔들었다.
“아직 일하는 중이라 안 됩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뭐든 술 마시고 하면 더 잘 된다고. 술 마시고 뇌옥에 다 처넣어!”
“그렇게 기분 내다 도호가 사고 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만 죽으면 다행이지만, 저는 멀쩡하고 애꿎은 남들을 죽인 것이 문제지요.”
“도호는 어떻게 되나?”
“아주 오랫동안 뇌옥에 갇혀 지내야 할 겁니다. 최대 형량을 적용할 작정이거든요.”
“술 없이 지내기 힘들 텐데.”
“그럼 사고를 치지 말았어야죠. 한데 정말 도호 때문에 직접 오신 겁니까?”
“그 일은 핑계고. 잊었나? 우리 호형호제하기로 했잖아?”
그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호형호제란 말을 세 번이나 쓰고 있다. 지금 나를 향한 눈빛도 꽤 진지하다. 그가 진심으로 이런다고 믿을 수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취마의 말도, 저 눈빛도 믿지 않는다.
내가 경험했던 주정뱅이들은 술에 취했을 때만큼은 세상 진지하고 진실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거짓말도 많았고, 허풍도 가득했다.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었기에 온갖 이야기로 치장되어 있음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취마, 당신은 어떻소? 당신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오? 정말 그 텅 빈 허무함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이오? 정말 그 주정뱅이들의 최종 수장에 불과하오? 아니라면…… 당신은 왜 이렇게 취해 있는 거요?
“왜 저와 친해지고 싶으신 겁니까?”
“자네가 좋아서라기보단 대공자가 싫어서겠지. 내 술병을 깨서 돌려보냈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지.”
“왜 술병을 깨서 보냈을까요? 취마님이 이렇게 기분 나빠 할 것쯤은 예상했을 텐데.”
“그 속을 내가 어찌 알겠나?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면 모를까.”
“술 마시면 상대에 대해 아십니까?”
“알지.”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나를 쳐다보았지만 취한 눈빛이라 그의 마음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평가는 의미 없네. 어제의 자네와 지금의 자네는 다른 사람이니까.”
“하루 만에 어떻게 사람이 달라집니까?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같은 사람입니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나? 그때의 이공자와 지금의 이공자는 나를 보는 마음이 같나?”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혈천도마에게 취마가 음흉한 놈이란 말을 들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같은 마음으로 그를 보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오늘 또 마시자는 거네. 또 다른 우리가, 또 다른 날 술을 마시는 거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보세.”
그래, 운명이 나를 당신과의 술자리로 이렇게 밀어붙인다면. 그래, 또 마셔봅시다.
“저녁에 풍류주점에서 술 마실 겁니다. 그리로 오십시오. 대신 이쪽에는 여럿 모이니 아까 함께 왔던 여 무인도 데려오십시오.”
여빈을 통해 취마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취마가 혼자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좋네, 데려가겠네.”
술 약속이 잡히자 취마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이 좋은 건가? 아니면 나와의 술자리가 좋은 건가? 알 수 없는 그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서대룡과 여빈이 돌아왔다.
취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따 보세.”
“미리 말씀드리지만 풍류주점에는 헤엄칠 곳이 없습니다.”
주사 부리지 말라는 소리였는데, 취마는 술잔에 빠져서라도 치겠다면서 헤엄치는 시늉을 하며 집무실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가자 서대룡이 다급히 물었다.
“무슨 소립니까?”
“풍류주점으로 오라고 했다. 여빈도 함께 데리고.”
“아니 왜요?”
“술 마시고 싶다고 해서.”
“각주님은 저희 걱정도 안 되십니까?”
“누굴 걱정해? 마군주를? 혈천도마 제자를? 내 호위 이안을? 누굴 걱정해야 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걱정할 사람이 없긴 없네요.”
“겁나? 겁나면 안 와도 돼.”
서대룡이 탄식했다.
“아시다시피 저란 사람은 이런 도발이 절대 통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저 문 앞까지 뒷걸음질 친 후에, 잘 다녀오시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겠죠. 제 간은 콩알만 하니까요.”
“지금은?”
“그 콩알이 불어서 배 밖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봤자 호두 크기인데, 제 기분은 취마와 대작(對酌)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무공에 자신감이 붙어서 이런 어설픈 자만심이 생길 때가 딱 죽기 좋은 때죠?”
“다 알고 있어서 가르칠 것이 없다. 이만 하산해라.”
“예전의 저라면 방금 말씀하신 하산을 이 세상 하직으로 받아들였을 거라고요. 못 내려간다고 바짓가랑이 잡았을 겁니다. 한데 지금은 무슨 생각 드는 줄 아십니까? 강호가 별거야? 취마가 별거냐고! 남자답게 부딪쳐 보면 되지,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 하겠어? 이런 미친 마음부터 든다고요. 제발 말려주십시오. 혹시 저 주화입마에 빠졌나요?”
너스레를 떠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대룡은 자신의 자만을 스스로 경계하고 있었다. 똑똑한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 이래서다.
“조사실에서는 여빈과 도호가 무슨 대화를 나눴나?”
“별말 안 했습니다. 여 무인이 도호에게 술 한 잔 줘도 되냐고 해서 독이 있는지 확인한 후 주었습니다.”
대취림의 관례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술일까?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다급한 보고가 들려왔다.
“각주님, 도호가 자결했습니다.”
놀란 나는 서대룡과 함께 취조실로 달려갔다. 도호는 머리가 깨진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벽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죽었습니다.”
그곳을 지키던 수하의 보고에 서대룡이 자책했다.
“술 주는 것을 막았어야 했을까요?”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술 때문이 아니라 여빈이 죽으라고 전음을 보냈겠지.”
“대체 왜 죽으라고 명령을 내린 걸까요? 어차피 뇌옥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을 자인데요.”
문득 취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술 없이 지내기 힘들 텐데.
정말 그래서 죽인 거요? 수하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이래도 저녁에 올 거냐?”
서대룡은 화가 난 듯 보였다. 도호에게 자신이 사신을 안내한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갑니다. 강호가 별겁니까? 취마가 별거냐고요?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저 말리지 마십시오.”
이래서 똑똑한 사람이 더 빨리 죽기도 하는 법이고.
“자네 주화입마인 거 같아.”
* * *
풍류주점에 가기 전에 나는 형을 찾아갔다.
그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한창 일하고 있었다.
천마의 핏줄이라고 놀고먹을 수는 없었다. 내가 황천각주 일을 맡았듯, 형 역시 천마전에서 내려온 일을 하고 있었다.
천마신교라는 거대한 조직은 수많은 사람이 각각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해야 했고, 형은 그 누구보다 조직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을 잘했다.
내가 방에 들어온 것을 알았음에도 검무양은 잔뜩 쌓인 서류 더미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잘 지냈어? 거기 쌓여 있는 서류에는 사람이 왔으면 인사부터 하라는 말은 안 쓰여 있지?”
검무양은 들은 척도 않고 일에만 열중했다.
“그래, 형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잘하는 사람인 것 아니까, 일하면서 들어. 왜 취마를 거부한 거지? 깨진 술병까지 보내면서?”
찰나간 검무양의 손길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보낸 술병에 술 가득 채워서 찾아갔어. 나 엄청나게 좋아하던데? 형한테는 화가 많이 났고.”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형의 반응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신안술로 그의 얼굴과 몸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자신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주 미세한 반응이 있었다.
“취마가 형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그러자 검무양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궁금한가 보네.”
“뭐라고 하더냐?”
“직접 만나서 물어봐. 아, 안 만나주려나?”
검무양의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거리는 것을 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참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형이 취마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 설령 이유가 있어도 감수하고서라도 받아들였을 거다. 이번 일에는 분명 뭔가 내막이 있다.’
검무양의 반응에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덕분에 난 취마를 공짜로 얻었어. 오늘도 나 찾아왔더라. 친해지고 싶다면서. 오늘 저녁에도 술 마시기로 했고.”
검무양의 시선이 다시 서류를 향했다.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가라.”
이렇게 와서 놀리면 분명 싸늘한 한마디쯤은 했을 형이었다. 형은 끝까지 참았다. 마치 한마디 말이라도 하면 술병이 떨어져 깨지기라도 하는 듯.
그 반응을 본 것만으로도 오늘 방문의 목적은 충분히 이뤘다.
* * *
검무극이 나가고 잠시 후 그곳에 마불이 들어왔다.
“이공자가 왔었다고 들었습니다.”
“절 떠보러 왔더군요. 왜 우리가 취마를 거절했는지 알고 싶어서.”
“알고 있던가요? 술병에 대해서?”
“아뇨,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마불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앞으로도 이공자는 몰라야 합니다. 우리가 거절한 것이 아니라 취마가 거절한 것임을.”
애초에 깨진 술병을 보낸 사람은 검무양이 아니라 취마였다. 취마가 검무양에게 보낸 빈 술병은 깨져 있었다.
검무양은 그것을 취마가 자신과 손을 잡지 않겠다는 거절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취마는 왜 무극이를 선택한 걸까요? 나와 무극이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도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밝혀내서 취마를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불은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생각했다.
“취마는 종잡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가 휘젓기 시작하면 이공자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혈천도마와 극악소마는 서로도 싫어하지만 취마는 더 싫어합니다. 결국 이공자가 정성껏 모아온 마존들이 분열될 겁니다. 취마를 얻게 되면 다른 마존 중 누군가를 잃을 겁니다. 어쩌면 세 마존 모두를 잃을 수도 있겠지요.”
마불의 눈빛은 그의 황금빛 몸만큼이나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히려 불리한 판국을 역전할 기회입니다.”
검무양은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그러다 무난하게 취마까지 무극이에게 가세하게 되면 어쩌려고요?’
하지만 어차피 깨진 술병을 받는 순간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부디 취마가 자신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큰 주사를 부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