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4)
절대회귀-134화(134/424)
제134회 그야말로 악당 이인조.
“왜 싫습니까?”
조금 전까지 그렇게 싸우던 마존들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첫 번째로 대답한 사람은 취마였다.
“난 울타리에 갇히고 이런 것 질색이라서. 울타리 생각만 해도 갑갑하네.”
그의 말을 받은 것은 일화검존이었다.
“누구라도 받아들이라고? 그건 어렵네. 하다못해 산책을 해도 마음이 맞아야 하는 법이지.”
누굴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은 혈천도마가 말했다.
“내 말 뭐 들었나? 사람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다니까!”
마지막 이유를 댄 사람은 극악소마였다.
“왜 죽이면 안 됩니까?”
내 울타리에서 싸우고 미워하되 죽이지만 말라는 말에 대한 농담이었다.
다들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이유였지만 놀라운 점은 네 사람 모두 각자 이유가 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취마가 아까 내 흉내를 내며 놀렸다.
“아까 이공자 허세 떠는 것 봤습니까? 미래 그대들의 천마가 될 사람의 결정입니다. 이걸 교주께서 보셨어야 했는데.”
나는 과장되게 손사래를 쳤다.
“큰일 날 소리 마십시오. 자,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 오늘 한잔하시죠.”
창밖에 있던 극악소마도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관계를 맺은 마존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날이었는데, 그건 나뿐만 아니라 주점 주인장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술과 안주를 가져온 조춘배는 감격 그 자체였다.
“그렇게 좋습니까?”
“어떻게 안 기쁘겠습니까? 태어나 이런 경험을 해본 주점 주인은 제가 최초일 겁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죠. 여기 누가 모여서 술을 마시게 될지는.”
“지금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조춘배가 허리를 굽혀 마존들에게 인사했다.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인사한 후 물러났다. 일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그는 잠시 이쪽을 돌아보았는데,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자, 제가 한 잔씩 드리겠습니다.”
취마가 모두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어차피 가면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극악소마였기에, 술만 받았다.
혈천도마는 그의 술을 받자 옆으로 치우고 새 잔에 자신이 직접 술을 따랐다.
일화검존은 혈천도마 보란 듯이 취마가 따라준 술을 마셨다.
술 한 잔 따르는 것도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그들이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극악소마가 내게 물었다.
“한데 저는 왜 부른 겁니까?”
그는 당연히 내가 불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마님은 제가 부른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부른 겁니까?”
“취마님이 불렀습니다.”
취마가 극악소마를 보며 정중히 말했다.
“알려드릴 일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속으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은 서로에게 더없이 정중했다.
“이공자께서 우리보다 저기 도마 선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기에 와서 직접 들어보시라고 불렀습니다.”
취마가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면서 말했다.
“우린 곁다리에 불과합니다. 이공자의 중심은 저기 혈천도마 선배시지요.”
“취마께서는 곁다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닙니다.”
“과연 그럴까요?”
취마가 직접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내게 물었다.
“이공자, 소마님과 도마 선배 중 한 사람만 선택한다면 누굴 선택할 건가?”
“소마님요.”
취마가 눈을 껌벅이더니 다시 물었다.
“아까와 말이 다르잖나? 당사자가 앞에 있어도 도마 선배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제가요? 언제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딱 잡아뗐다.
“소마님과 제 사이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마님, 속지 마십시오. 지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려고 계략을 펼치는 중입니다.”
내 말에 취마는 오히려 재밌다는 듯 크게 웃으며 술을 마셨다. 그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굴러온 돌 무시하지 말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한 번을 봐도 평생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불쑥 물었다.
“정말 취마님은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까?”
술을 마시려던 취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무슨 뜻인가?”
“진짜 그런 사람이 있나 해서요. 한 번을 만났는데 평생 잊지 못한 사람은 상상이 안 가서요. 다들 있으십니까?”
나는 네 마존들과 한 번씩 눈이 마주친 후 말을 이었다.
“죽도록 친했어도, 못 보는 세월이 길어지면 어느새 남처럼 변하던데. 꽤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공백이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같이 어색하고. 전 그렇던데요? 아! 우리 검존님처럼 아름다운 분을 보고 못 잊는 건 인정합니다.”
취마는 또 한 잔의 술을 비웠다.
“새파랗게 젊은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이상하군.”
“또 무시하시네요. 젊은 사연도 무시하시고, 젊은 주정뱅이도 무시하시더니.”
취마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했던 말을 이렇게 다 기억해주고 있으니, 내 말이 탐탁지 않다가도 또 좋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알겠네, 내가 자꾸 잊네. 우리 이공자의 젊음이 평범한 젊음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말이야.”
“그럼요, 제가 애늙은이란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내가 술잔을 들자 취마가 건배했다.
마존들이 모이면서 처음보단 분위기가 경직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와 마시는 술은 왠지 모르게 흥겹다. 그는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잘 유도하고 술자리의 흥취를 일으키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자,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극악소마님을 선택합니다.”
그에게 건배하듯 술잔을 들어 홀로 술을 마셨다.
눈구멍 속 그의 두 눈이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 웃음을 보자 나도 기분이 좋았다.
또 뵈니 반갑습니다.
백망기와의 혈투 때문인지, 극악소마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동지애가 생겼다. 이건 마존이냐, 후계자냐 이런 문제와는 별개의 감정이었다.
그때 혈천도마가 전음을 보냈다.
―그래, 잘하고 있다. 다른 사람부터 챙겨라.
―자존심 상하지 않으십니까?
―이깟 일에 무슨 자존심이 상하나? 한 가지만 잊지 말게. 극악도, 취마도 절대 믿어선 안 돼.
이들을 알면 알수록 아버지의 고충을 이해할 수가 있다. 넷도 이렇게 힘든데, 여덟을 이끌고 거기에 교주가 해야 하는 수많은 일까지. 아버지, 정말 힘드셨겠습니다.
술자리 분위기는 좋았다.
다들 나에게 호의가 있기에 굳이 이 자리에서 자신의 까칠함이나 성질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맙게도 다들 잘 참고 있었다. 마존들과의 이런 일상적이고도 기분 좋은 회식이라니!
역시 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취마였다.
취마는 나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석 잔의 술을 마시면 꼭 안주를 집어 먹었다.
그때 한 번 눈이 마주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그 모습을 극악소마가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안다. 저 눈빛에 담긴 감정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부는 질투의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에 나와 친구하자고 졸랐던 사람이 극악소마였다. 그리고 이제 취마가 그 자리에서 나에게 호형호제하자고 조르고 있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사람.
언젠가 가면을 벗은 극악과 술을 깬 취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극악소마는 취마의 술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존과 마존 사이의 정중함만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고 있었으니까.
“이공자와 출교했다가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공자에 대해 많이 아셨겠군요.”
극악소마가 힐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공자는 그대나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많이 멉니까?”
“많이 멉니다.”
내게는 자신과 같은 악당이라고 하고선, 취마에게는 다른 정보를 주는 극악소마다.
“그나마 도마께서 이공자와 가장 가까운 편에 계시는 분이죠.”
극악소마의 말에 취마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도마 선배가요? 우리 검존 아니고요?”
그러자 극악소마가 일화검존을 쳐다보더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검존도 우리와 같지 않습니까? 친구시면 아셨을 텐데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일화검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극악소마는 일화검존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팔마존 중 가장 마존 같지 않다고 알려진 사람이 일화검존인데.
그때 혈천도마가 버럭 나섰다.
“무슨 헛소리냐! 검존은 너희 같은 것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위해 나서는 사람은 혈천도마였다.
“가면이나 뒤집어쓰고 다니는 주제에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너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다.”
술자리 내내 참기를 여러 번 했던 그가 결국 폭발한 것이다.
그의 거센 반응에도 극악소마는 화내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 모습에 더 화난 혈천도마는 금방이라도 멸천대도를 휘두를 기세를 드러냈다.
그때 일화검존이 나직하면서도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나서주면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혈천도마가 어디 이런 그녀의 반응을 몰라서 나섰겠는가? 혈천도마는 앞에 놓인 술만 연거푸 마셨다.
그때 일화검존이 뜻밖의 말을 했다.
“근데…… 저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혈천도마가 빈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혈천도마는 무작정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서 나선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저 가면 속보다 더 위선적이고 나쁜 놈들일 수 있지. 맞다.”
혈천도마의 진솔한 말에 일화검존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우리가 뭐 대단하다고 이런 사람이네 저런 사람이네 하겠나? 다만 적어도 저자들 앞에서만큼은 들키지 말라고. 가면쟁이, 주정뱅이 놈들에게는 놀아나지 말라는 거다!”
그러자 취마가 슬쩍 말했다.
“왜 가만있는 나에게 그러시오?”
“너도 똑같아! 음흉한 놈! 가식적인 놈! 남들은 다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너희 두 놈! 이공자에게서 썩 물러나라!”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다 쏟아낸 혈천도마였다. 꼬장꼬장하긴 해도 심계가 깊은 그인데, 나와 검존의 일이다 보니 감정이 격해져 버린 것이다.
반면 욕을 들어도 싱글벙글 웃고 있고, 술을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악당 이인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천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미안함을 전했다.
“이공자, 분위기 깨서 미안하네.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날 생각은 없었는데.”
“아뇨, 어르신이 먼저 일어나는 것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오늘 술자리는 여기까지 할 겁니다.”
나는 나머지 세 마존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취마가 마지막 잔을 비우며 말했다.
“박힌 돌 빠지지 않게 확실히 망치질해주는 건가?”
“그럼요, 어르신이 화나서 가는데 무슨 술입니까? 도마 어르신이 제 날갭니다. 날개가 날아가면 저도 갑니다.”
박힌 돌은 쉽게 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날 위해 이 술자리까지 와준 그에 대한 내 고마움의 표시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내 전음에 마음이 울컥했는지 혈천도마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취마가 웃으며 말했다.
“날개는 포기할 테니 나와는 형제나 하세.”
그러자 극악소마가 말했다.
“나와는 친구하고.”
마지막 일화검존도 빠지지 않았다. 기분이 가라앉은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빠질 수 없었으리라.
“나는 이미 특별한 친구라서.”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혼자 뿌듯해했을 뿐 우리가 비무 친구임을 자랑하지는 않았다.
“자, 끝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다시 앞서 보였던 기도를 발출했다. 위엄과 기품이 가득한 기도를 뿜어내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여러분들을 이끌 미래의 천마로서 말씀드립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제 울타리 안에서는 얼마든지 싸워도 좋습니다.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아! 정말 너무 하십니다!”
마존들이 획획 몸을 날려 그곳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간 것이 아니라 각자 경공의 절기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다 사라졌다.
“다 듣고 가시라고요! 도마님! 어르신마저!”
하지만 이미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텅 빈 자리지만 아직도 그들의 열기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일 층을 내려다보니 조춘배는 취마가 던져주고 간 전표를 가슴에 품은 채 아련한 눈으로 마존들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장, 나와 술 한잔합시다.”
“좋습니다, 각주님.”
조춘배가 올라와서 내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나도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우린 함께 술을 비웠다. 마존들을 상대하느라 심력 소모가 심했는데, 이렇게 조춘배와 술을 마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춘배가 내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힘드십니까?”
“힘들어 보입니까?”
“저 마존분들을 상대하려면 얼마나 힘드실까 해서요.”
“네, 힘듭니다.”
내가 솔직히 말하자 조춘배가 씩 웃었다. 온갖 손님들을 상대하며 삶의 고달픔과 애환을 겪어온 그의 얼굴 주름이 오늘따라 멋있게 보였다.
“제가 힘들어하면 우리 마누라가 절 안아주면서 제 귀에 뭐라고 속삭이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합니까?”
“약해빠져가지고.”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금슬 좋은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나는 잘 안다. 가끔 절절한 위로보다 저런 농담에 더 힘이 날 때가 있음도 잘 안다.
조춘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가 한번 해드릴까요?”
“아뇨,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해줄 분이 오셨거든요.”
“네? 누가요?”
순간 조춘배는 등 뒤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느꼈다.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곤두섰고 마존들과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리라. 조춘배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어이쿠!”
조춘배가 기겁하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어느새 올라오셨는지 아버지가 뒤에 서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약해빠져가지고.”
내가 웃으며 조춘배에게 말했다.
“주인장, 가게 문 닫으시고 여기 새로 술상 한 번 더 차려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