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2)
절대회귀-142화(142/424)
제142회 답은 당신에게 있다.
월풍문주 추생(秋生)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남의 여러 문파가 우리와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말들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신임하는 석형(席兄)의 입에서 나오니 더 화가 났다.
“협력? 어떻게? 구체적으로 말해보게. 몇 명을 언제 어디로 보내주겠다던가?”
석형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움을 주겠다는 대답을 했을 뿐, 그렇게 구체적으로 나선 문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밀을 유지했건만 이미 마교가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 입장이라고 생각해 봐. 마교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자넬 보냈겠냐고? 겉으론 걱정하는 척하겠지만, 우리 집 문단속하기 바쁘겠지.”
추생이 벌떡 일어났다. 당장 뭐라도 부술 것 같은 그의 기세에 석형이 그를 말렸다.
“고정하십시오.”
“화가 나는데 어떻게 참나? 이 마교 새끼들! 산 채로 씹어먹어 줄 테다!”
꽝!
추생이 일장을 내질러 벽에 구멍을 뚫었다. 사건이 터지고 벌써 벽에 이십여 개가 넘는 구멍이 생겼다. 막으면 또 뚫리고, 막으면 또 뚫리고.
추생은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치미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놈이 다시 돌아올까 봐.
추생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지금이라도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시죠.”
월풍문은 원래 정사지간의 문파로 무림맹이나 사도맹 소속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앞으로 무림맹 놈들에게 휘둘리게 될 거다. 놈들이 이번 일을 해결하면 그 일을 빌미로 무조건 무림맹에 복종해야 할 테고, 설령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우릴 무림맹에 복속시킬 거다.”
무림맹 소속 문파들은 해마다 정해진 돈을 무림맹에 내어야 한다. 그건 천마신교나 사도맹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추생은 정파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그의 속마음을 정확히 말했다.
“평소 해주는 것 하나 없으면서 꼬박꼬박 돈이나 뜯어가는 놈들 밑에 속하고 싶진 않겠지. 그렇지 않소?”
추생과 석형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한 젊은 남자가 대청에 들어와 있었다.
석형이 문주와 남자 사이를 막아서며 검을 뽑았다.
“누구냐?”
누군가 이렇게 들어올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긴장했다.
그러자 젊은 남자가 말했다.
“신교에서 나왔소.”
두 사람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입구에서부터 알리고 들어올 수도 있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았다. 지금 월풍문은 입구부터 내부까지, 수많은 무인이 북적대는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양해해 주시오. 북적대는 게 싫어서 조용히 들어왔소.”
추생은 석형을 뒤로 물렸다. 내가 마음먹고 기습했다면 이미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나는 월풍문의 문주 추생이오.”
일찍이 아버지를 여윈 그는 호남성에 있는 문파의 수장 중에서 가장 젊은 편에 속했는데, 나이는 이십대 후반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이번에 귀파에서 일어난 사건을 처리하러 나왔소. 사정상 신분은 밝힐 수 없지만, 이것은 알아보시겠지요?”
본교를 상징하는 악귀가 새겨진 신패를 그들에게 내보였다.
당연히 추생은 의심부터 했다.
“신패는 위조할 수도 있으니 그것만으로 믿을 수 없소.”
“이렇게 의심 많은 분이 어떻게 놈들에게 속으셨소?”
“말이 지나치시오!”
석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던 그때, 내가 손을 뻗었다.
쏴아아아.
내게서 발출된 마기가 석형의 몸을 옥죄었다.
그는 끙,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숨이 막혀오면서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때론 실력으로 신분을 대신할 수도 있는 법 아니겠소?”
주위를 장악한 마기에 추생은 다급히 말했다.
“그만! 이번에 수하들을 여럿 잃었는데, 또 잃을 순 없소. 그 사람 놓아주시오.”
내가 마기를 거둬들이자 석형은 숨을 몰아쉬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여전히 추생을 지키기 위해 그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내게도 그대처럼 충성스러운 수하들이 있소. 그들을 잃는다면 정말 내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 거요. 그건 여기 추 문주도 마찬가지일 테니, 두 사람은 경거망동 마시오.”
석형에게 말했지만 사실 추생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눈치 빠른 추생이 석형을 내보냈다.
“자넨 나가 있게.”
“네.”
이 상황에서 순순히 나가는 것을 보니, 전음을 보낸 모양이다. 어차피 그들 두 사람만으로는 나를 상대할 수 없으니 나가서 월풍문의 고수들을 모두 불러 모으라는 명령이었을 것이다.
둘만 남았어도 추생은 당당했다.
“일을 저지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수습하겠다니,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시는 거요?”
“수습이 아니라 조사요. 앞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니까.”
추생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본교 마존을 사칭한 천명회에게 당했고, 우리가 저지른 짓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최근 몇 차례 비슷한 일이 벌어졌지만, 아직 중원의 문파들이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즉, 천명회가 본격적으로 수면에 부상하지 않은 시기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시오. 내가 당신들을 해치려고 온 거라면, 지금 이렇게 말씨름이나 하고 있겠소?”
그 말이 와닿았는지 비로소 추생은 지난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신교에서 나왔다면서 사람이 찾아왔소.”
“누구라고 하였소?”
“그는 극악소마였소.”
놈들이 마존을 사칭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극악소마인 줄은 몰랐다.
나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극악소마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다른 사람도 아닌 극악소마 행세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어떻게 생겼소?”
“백색 가면을 쓰고 왔었소.”
하긴. 가면을 쓰고 있으니 사칭하기 가장 쉬운 마존이 극악소마이긴 하겠다.
“가면을 썼다고 그를 믿었소?”
그러자 추생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는 진짜 극악소마였소.”
“왜 그렇게 믿는 거요?”
순간 추생은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순식간에 본문의 고수들을 죽였소. 그의 지풍에 얼굴에 구멍이 뚫렸고, 그의 장법에 몸통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소. 죽은 사람 중에는 본문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고수도 있었소. 그가 극악소마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오?”
극악소마의 독문마공인 마극광폭장과 혈앙지까지 흉내 낸 모양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추생이 믿을 수밖에.
“나를 지키려던 이들을 죽여 피바다로 만든 후 극악소마는 우리에게 마교에 복종하고 충성을 맹세하기를 강요했소.”
놈은 오직 상대를 겁주기 위해 불필요한 살생을 저질렀다. 그 행위 하나만으로도 그는 죽어 마땅한 악이다.
“그리고는 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아시오? 차라리 놈이 우릴 학살이라도 했으면 지금보다 덜 황당할 거요. 재수 없게 걸려서 죽는구나 했을 테니까.”
“그자가 무슨 짓을 했소?”
“떠나면서 돈을 뺏어갔소. 그는 지금 내놓을 수 있는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했소. 본문의 돈을 다 털어갔지. 도둑질이나 하는 주제에 그대들이 무슨!”
뒤에 어떤 욕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돈은 얼마나 가져갔소?”
“육만 이천 냥쯤 될 거요.”
이제야 추생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벽에 이렇게 구멍이 많이 뚫렸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다른 이유로 싸우다 졌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거요. 마교에 복종하라고? 웃기지 마시오! 그건 핑계고 그자는 돈을 뺏어가려고 내 수하들을 그렇게 죽였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고작 돈 때문에 내 수하들이 죽었단 말이오! 차라리 처음부터 돈을 달라고 하면 될 것을!”
그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정말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소. 나는 제명에 죽지 못할 거요.”
추생이 말하는 것으로 볼 때, 평소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그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죽은 이들의 가족들, 친구들, 살아남은 이들. 희생자의 숫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 추 문주께서는 너무 화가 나 있어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소.”
“내 장점이 대체 뭔데!”
내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읽었다.
“월풍문주 추생, 머리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좋다. 자존심이 강하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다.”
“그건 어떤 놈이 내린 평가요?”
“본교 통천각 호남지단주요. 한번 만나보시겠소?”
추생은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힘 빠진 어조로 자책했다.
“명석하고 판단력이 좋으면 뭐하겠소?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복수는 해야 하지 않겠소?”
복수란 말에 추생이 눈에 힘을 주었다.
“할 거요, 반드시 할 거요.”
나도 같은 마음이었을 때가 있었다.
잠을 자도 복수, 밥을 먹어도 복수, 사람을 봐도 복수. 오직 머릿속에 어떻게 복수하지란 생각만이 떠올라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던 시절.
추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적이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서진을 만난 것처럼, 그는 나를 만났다.
“그 복수, 내가 도와주겠소.”
추생이 탁자로 가서 식은 차를 주전자 채로 벌컥벌컥 마셨다.
“정말 당신들 짓이 아니오?”
“당신도 뭔가 이상하지 않소? 만약 진짜 극악소마가 당신 돈을 노렸다면 육만 이천 냥만 빼앗고 갔겠소? 기둥뿌리가 다 뽑혔을 거요.”
“그냥 일종의 유희였다면?”
“이따위 유희를 즐겼다간 천마이신 교주님 손에 죽게 될 거요. 설령 유희였다고 칩시다. 만약 그랬다면, 이곳에 누가 살아남아 있겠소?”
“나도 솔직히 이상했소. 그래서 난 극악소마가 미친 줄 알았소.”
흰 벽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다간 언젠가 미치겠지만.
“아직은 멀쩡하오. 얼마 전에도 만났으니까.”
내가 극악소마와 만났다는 말에 추생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내가 보여준 실력 때문에 허풍이라 여기진 않는 눈치였다.
“극악소마가 정말 그대 본교에 있단 말이오?”
순간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출발했을 때 극악소마는 악인곡에 없었으니까.
“있었소.”
이렇게 대답한 것은 굳이 추생과 말씨름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극악소마 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아버지는 사람 속은 절대 알 수 없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극악소마가 아무리 악인이라도, 이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아니다.
“그자가 가짜라면, 당신네 교단에 있는 사람도 가짜일거요.”
대체 얼마나 강렬한 모습을 보였으면 이런 말까지 할까 싶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대청을 둘러보았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월풍문의 무인들을 죽이고, 돈을 뺏어가는 모습을.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돈 때문에? 아니면 우릴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해되지 않는 이 사건에서 저들에 관한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좋소. 당신 말대로 가짜라고 칩시다. 그 가짜 놈은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 거요? 무림맹과 이간질이라도 하려는 거요? 전쟁이라도 일으키려고?”
“그랬다면 무림맹에 속한 정파 문파를 건드렸겠지.”
“그럼 대체 무슨 일이오?”
“그래서 내가 온 것이오. 무슨 일인지 밝혀내려고.”
잠시 나를 응시하던 추생이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는 앞서 나간 석형과 수십 명의 월풍문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추생이 혼자 나가서 석형에게 말했다.
“수하들 다 물리고, 객방을 청소해서 내어드려라. 당분간 귀빈으로 모실 거다.”
“네, 알겠습니다.”
석형은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무인들을 불러 모았지만 나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추생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당신도 그놈과 한패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소. 그래도 당신을 믿어볼 작정이오. 왜인지 아시오? 나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다 갑자기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아버지! 할아버지!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더는 희롱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본문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수하들을 살려주십시오!”
날 만나는 운명인 걸 보니 이미 그의 조상은 충분히 돕고 있다.
한바탕 고함을 내지른 그가 진짜 속마음을 드러냈다. 바깥에 수하들이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이 오는 바람에 난 망했소. 당신 말대로 그가 가짜 극악소마라면, 난 복수를 그만둘 수가 없으니까. 진짜 마교라면 어쩔 수 없다고 포기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당신 때문에 나는 평생 돌아갈 수 없는 다리에 올라섰소. 평생 이 끝도 없는 복수교를 건너야 한단 말이오!”
“그 다리 내가 건너게 해주겠소.”
과거에는 뒤늦게 도착해서 급한 마음에 제대로 조사도 못 하고 이곳을 떠났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고, 이안을 보지 않았다. 남을 보지 않고 나만 보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추생도 보지 않았다.
“무림에 수많은 문파가 있는데, 하필 당신네 문파를 고른 이유가 있을 거요. 왜 당신일까? 젊고 명석하고 다혈질적이고 자존심도 강하고. 이 종이에 적힌 내용 말고, 당신에게 또 뭐가 있소?”
내가 그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놈들이 당신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요. 어서 답을 내놓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