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7)
절대회귀-147화(147/424)
제147회 대체 누구와 손을 잡았기에.
“싫습니다.”
극악소마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감히 사백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악인곡 악인들을 풀어서 극악소마를 죽이려 했으면서 저런 뻔뻔한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이깟 가면이 뭐라고!”
양처기가 가면을 벗었다. 쭈글쭈글한 늙은이가 모습을 보였는데, 그는 정말 못생긴 추남(醜男)이었다. 회귀 전 보았던 극악소마의 잘생긴 얼굴과 너무나 대조되는 얼굴이었다.
“어서 벗어라!”
“싫습니다.”
“그래, 넌 언제나 나를 무시했지.”
극악소마는 사부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성격에 사백의 말을 이렇게 순순히 들어주는 것도 사부의 사형이기 때문일 테고.
“사제가 죽는 순간, 너는 그 가면을 쓸 자격을 잃었다.”
“무슨 뜻입니까?”
“네 사부가 널 옹호할 때나 백면문이지, 넌 이제 백면문이 아니다. 내가 널 파문하겠다.”
극악소마가 무공을 배운 문파는 사파 계열의 문파인 백면문(白面門)이었다. 이후 극악소마는 천마신교에 투신해서 마존이 되었다. 마존이 되는 것은 사부의 꿈이었다. 사부가 못 이룬 꿈을 극악소마가 대신 이뤄낸 것이다. 회귀 전 극악소마와 교류할 때 이런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사백 마음대로 저를 내칠 수는 없습니다.”
“닥쳐라!”
양처기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대를 겁주기 위해 내뿜는 살기가 아니라 진짜 상대를 죽이겠다는 결의가 담긴 살기였다.
“하긴, 검황까지 죽였으니 이 사백이 두려울 리 없겠지. 너희가 검황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아니면 검황에게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한데 이렇게 멀쩡하게 걸어 나온 것을 보니 검황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군.”
그런데도 그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분명 믿는 바가 있는 눈치였다.
“사백인데 왜 소마님을 죽이려는 겁니까?”
내 물음에 극악소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백의 꿈은 사도맹주였습니다. 저 때문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너 때문이다! 네놈 때문에 내 염원이 무너졌다. 한 문파에서 마존과 사도맹주가 양립할 수 없으니까!”
그는 자신이 사도맹주가 되지 못한 것을 극악소마 탓으로 돌렸다. 꽤 오래전 일이었지만, 그는 그 원망을 계속 키워 온 모양이다.
“사부가 살아계실 때는 꼼짝도 못 하다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러시는군요.”
“닥쳐라! 네가 금제에 걸려 마교에 처박혀 있어서 참았을 뿐이다. 사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양처기는 평생 패배자였다. 젊어서 그 역시 마존이 되려고 천마신교에 투신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고, 백면문주가 되고 싶었지만 그 자리는 극악소마 사부가 물려받았고, 마지막으로 사도맹주가 되려는 염원마저 이루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보다 큰 꿈만 꾸었던 인생이었다.
“참 못났다.”
내 말에 극악소마와 양처기가 나를 쳐다보았다.
“남 탓하고, 남 이용해서 죽이려 들고. 참 못났습니다. 당신이 불행해진 것이 어찌 소마님 잘못입니까? 남 탓만 하다 인생을 망친 당신 잘못이지.”
양처기에게서 차가운 살기가 쏟아져나왔지만 나는 할 말을 다 했다.
“과연 같은 문파에서 마존이 나왔기 때문에 당신이 사도맹주가 되지 못했을까요? 나는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자질과 능력을 보였다면, 분명 사도맹주가 되었겠지요. 당신이 만들어 붙인 변명 아닙니까?”
양처기는 반박하지 못했다.
“이런 옹졸한 마음이라면 설령 사도맹주가 되었다고 해도, 당신 때문에 사도맹은 엉망이 되었을 거요. 결국 당신은 사도맹 내부의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했겠지. 소마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해야지. 따라해 보시오. 나를 살려줘서 고맙다. 소마야, 고맙다!”
양처기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반드시 나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내가 했던 말 중에 정곡을 찌르는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애써 수치심을 감추고 있는 그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소마님을 죽이려는 이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죠?”
내 말에 양처기가 흠칫했다. 옆에 서 있던 극악소마가 내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런 옹졸한 위인은 언제나 자기 이익이 최우선입니다. 복수에 목숨까지 걸지 않죠. 누구와 손잡은 겁니까? 대가로 뭘 받기로 했습니까? 당신의 마지막 꿈이라도 이뤄준다고 했습니까?”
양처기는 내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어린놈의 주둥이가 아주 야무지구나. 마교의 앞날이 창창해!”
그의 수치심은 분노가 되어 극악소마를 향했다.
“마교에 가서 극악소마가 되었다지? 과연 네가 진짜 얼마나 극악한 인간인지 보자.”
양처기가 손가락을 튕겨 신호를 보내자 숨어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명에 이르는 그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모두 백면문의 문도들이었다.
“자, 어디 사문의 사형제들을 다 죽여봐라.”
나는 깜짝 놀랐다. 놈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건 우릴 죽이려 데려 나왔다기보다 극악소마를 괴롭히기 위해 데려온 이들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 나이대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기도로 볼 때 젊은 고수들도 다수 끼어있었다.
과연 극악소마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들이 우릴 죽이려 달려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손을 쓸 수밖에 없다. 사파 계열의 문파라고는 하지만 극악소마의 사문인데 마음껏 죽일 수 있을까? 또 극악소마는 어떻게 대응할까?
나는 양처기를 노려보았다. 내가 말하는 절대악은 바로 저런 자들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뜨리려는 악심을 지닌 자, 아무런 가책 없이 문파의 제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자.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극악소마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사형, 사제, 사저, 사매, 사질(師姪)들은 들어라. 비록 내가 본문을 떠나 신교에 몸을 의탁했어도 나는 돌아가신 전대 문주님의 수제자다. 생전에 문주께선 나를 파문하지 않았으니, 백면문의 적통 제자로서 명령한다. 모두 물러가라!”
백면문의 제자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양처기가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죽여라!”
극악소마가 더 크게 소리쳤다.
“개인의 욕망을 위해 사문의 문도들을 함부로 움직인 대역죄인 양처기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러니 물러가라!”
“죽이라니까!”
그 순간 누군가 지풍을 발출했다.
피잉.
극악소마가 몸을 틀어서 지풍을 피했다. 죽이려고 발출한 것이 아니라 경고용으로 쏜 지풍이었다.
“사형!”
극악소마는 지풍을 쏜 남자가 자신의 사형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를 알아보았나?”
“어찌 모르겠소.”
허공에서 얽힌 두 사람의 시선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사형은 이만 문도들을 데리고 돌아가시오.”
“사백의 명을 거역할 수 없네.”
“사백은 이미 사문을 저버렸소. 악인곡과 손을 잡고 사형과 제자들을 칼받이처럼 이용하려는 것을 보면 모르겠소?”
앞서 내가 양처기에게 했던 말을 다 들었기에 그들은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오직 두 가지뿐이오. 나와 싸우다 죽거나, 우릴 죽여서 천마신교의 손에 멸문을 당하거나. 사형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오?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
양처기가 어서 죽이라고 소리쳤지만, 극악소마와 사형이라 불린 남자는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배분을 무기로 삼아 본문을 망치려는 저 늙은이는 내 손에 죽을 거요. 그러니 걱정 말고 돌아가시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않소?”
“알지. 사제는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지.”
“다음에 또 봅시다, 사형.”
극악소마의 사형이 문도들에게 소리쳤다.
“돌아간다!”
백면문의 문도들이 그를 따라 몸을 날렸다.
나는 극악소마의 침착한 대처에 진심으로 극악소마에게 감탄했다.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순간이었다.
―아무 희생 없이 마무리를 짓다니. 소마님을 만난 이래 가장 멋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극악소마가 피를 보지 않은 것이 멋있었다니? 뭔가 어색하군요.
어쩌면 나와 만나면서 그도 변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
분통을 터뜨리는 양처기에게 극악소마가 놀리듯 말했다.
“우리 사부님보다 내가 사형 복은 더 많은 것 같소.”
“닥쳐라!”
양처기의 짜증 섞인 반응에 나도 한마디 보탰다.
“저들은 당신이 싫어서 간 거요. 여기 온 것도 억지 명령을 따른 거겠지. 오죽 싫었으면 오래전에 사문을 떠난 소마님 말을 들었겠소. 사문의 어른이란 이유로 제자들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을 어찌 저들이 모르겠소? 그냥 당신은 오늘 여기서 죽는 게 좋겠소.”
양처기가 조소를 지었다.
“검황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나 혼자 너희를 상대할 줄 알았느냐? 오래 기다리셨소. 괴마(怪魔)께서는 이만 나와주시지요.”
그러자 길 건너편 건물 안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곱게 늙지 않은 노인이었다. 쭈글쭈글한 주름 사이로 고약함이 가득했고, 눈빛에는 온통 살기만이 가득했다.
괴마란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마공을 익혔지만, 본교에 속하지 않은 마인이었다.
마공을 이용해 살육을 저지르고 다녀서 결국 본교와 무림맹이 함께 공조해서 그를 죽이기 위한 척살대를 형성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 뒤 자취를 감췄는데 오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양처기에게 물었다.
“대체 당신은 누구와 손을 잡은 것이오? 누구와 손을 잡았기에 괴마까지 튀어나오는 거요?”
하지만 대답을 듣기 전에 괴마가 싸늘한 눈빛으로 나섰다.
“튀어나와? 고놈 말버릇 한번 고약하구나. 네 아비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이 상황에서 부모를 언급해? 그것도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늙은이들이 몰염치하게 구니까 무림에 노강호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거요. 우릴 죽이러 나왔으면서 예의까지 바라는 거요? 좋소, 지금부터 모든 예의를 다 차려주겠소. 선배님을 뵙습니다. 부디 같은 마인이라는 인연을 귀하게 여겨 이 말학 후배를 살려주십시오! 자, 그럼 살려줄 거요?”
괴마는 대답하지 못하고 한쪽 눈가를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예의가 어쩌고 하는 헛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랄이십니까?”
일부러 그를 강하게 자극했다. 어차피 우릴 죽이려고 온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자극하면 할수록 싸움에는 유리하다. 고수 간의 싸움일수록 감정이 개입되면 무조건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버지를 언급해서 발끈하게 만든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일 것이다.
양처기가 괴마에게 말했다.
“뼈마디를 다 분질러 버리십시오. 그래도 저렇게 건방을 떠나 보시죠.”
“귀찮소. 미리 잘 봐두시오. 조금 있으면 형체도 없이 사라질 테니.”
아무리 형편없는 성품이라도 무공만큼은 두 사람 모두 검황 백망기에 육박하는 자들이었다. 둘이서 한 사람을 상대한다면 모를까, 둘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철그렁, 철그렁.
어디선가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핏빛 쇠사슬을 팔목에 감고 아래로 늘어뜨려 질질 끌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철쇄자(鐵鎖者)!”
그는 철쇄자라 불리는 악인으로 한때 무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인물이었다. 그의 저 붉은 쇠사슬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몸이 터져나가며 목숨을 잃었는지 모른다. 그의 기세 역시 앞서 등장했던 괴마에 못지않았다.
그의 등장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서 둘을 상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데 철쇄자까지 등장했으니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나는 극악소마에게 탄식하며 말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혈천도마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풍파를 일으켜서 온갖 은거 고수들을 다 깨울 거라고요. 정말 여기서 괴마와 철쇄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에는 이공자가 아니라 내가 깨운 것 같습니다.”
“그럼 소마님이 더 강한 쪽을 맡아주십시오.”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잊지 않는 나를 보며 가면 속 두 눈이 웃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극악소마와 함께라는 생각에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했다.
“참, 그 전에 이것부터 물어봐야겠군요.”
나는 양처기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어느 쪽에 붙어서 합공할 거요?”
물론 그가 합공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던진 말이었다.
양처기가 여유롭게 웃었다.
“그렇게 내 자존심을 건들지 않아도 나는 나서지 않을 거네. 자, 우리 이공자 얼굴이며 몸이며 잘 봐둬야지. 곧 피떡이 돼서 사라질 테니.”
괴마가 나를 상대하려 했기에, 자연스럽게 극악소마의 상대는 철쇄자가 되었다.
잘됐다고 생각했다. 괴마와 철쇄자 모두 강적이었지만, 그래도 괴마 쪽이 좀 더 강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자신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건 극악소마를 무시하는 말이었으니까. 마지막까지 나는 여유를 발휘했다.
“누가 먼저 죽이나 내기하시죠.”
내 말에 괴마가 웃었다. 철쇄자가 웃었고, 양처기도 웃었다.
“소마님도 그냥 있는데 왜 저것들이 처웃나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극악소마도 웃었고 마지막으로 나도 웃었다.
내가 검을 뽑아 늘어뜨리자 극악소마가 손가락으로 흑마검의 검날을 가볍게 튕겼다.
티잉!
잘 싸워보자는 극악소마의 마음이 담긴 맑은 쇳소리를 들으며, 회귀 후 가장 어려운 싸움을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