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8)
절대회귀-148화(148/424)
제148회 내가 죽을 거 같으면.
나는 마음을 다스렸다.
강적을 앞에 두었기에 극악소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내 싸움에만 집중해야 한다. 극악소마를 믿자. 대신 양처기는 신경 써야 한다.
언제 난입해서 기습을 가할지 모를 놈이었으니까.
괴마가 양손에 손가락처럼 갈라진 칼날이 달린 장갑을 꼈다. 그의 독문병기 천강비조(天降飛爪)였다. 날을 타고 흐르는 시퍼런 서슬이 섬뜩했다.
“주둥이질만큼 칼질이 따라오는지 어디 한 번 볼까?”
괴마의 말이 끝나는 순간, 싸움이 시작되었다.
카악! 칵! 카아악!
괴이한 바람 소리를 내며 천강비조가 허공을 찢어발겼다. 스치기만 해도 살과 뼈가 뜯겨 나갈 공격이었다.
난 암영보로 보법을 밟으며 공격을 가했다.
챙! 챙! 채앵! 챙!
검과 천강비조가 수없이 부딪쳤다. 나는 거리를 벌리려 애썼고 그는 어떻게든 나에게 붙으려 했다. 아무래도 천강비조가 검보다 짧았기에 가까울수록 그가 유리했던 것이다.
살 떨리는 공방이 오가던 그때, 나는 그 순간을 맞이했다.
백망기와 싸웠던 그때처럼 괴마의 모습만 보였다.
주위가 고요해지고 오직 나와 괴마의 움직임과 소리만 들렸다. 시간조차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느리게 흐르지 않았다. 그만큼 내 집중력이 높아져 있을 뿐.
바로 그때 적막을 찢고 들려온 짤막한 비명!
“큭!”
비명의 주인공이 극악소마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번쩍.
본능적으로 점멸보를 발휘했고 난 어느새 철쇄자의 뒤에서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쉬이이익.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극악소마에게 향하던 쇠사슬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쉬이이이익!
태애앵!
내 검이 철쇄자의 쇠사슬에 맞고 튕겨 나가는 그 순간, 등 뒤에서 쇄도하는 기세를 느끼며 몸을 비틀어 피했다.
내가 있던 공간을 뒤따라온 괴마의 천강비조가 할퀴고 지나갔다.
내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극악소마는 날 향해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는 괴마에게 혈앙지를 날렸다.
쉬이이잉.
괴마 역시 몸을 비틀어 혈앙지를 피했다.
그 틈을 타서 나는 극악소마와 함께 훌쩍 몸을 날려서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극악소마가 다쳤을 상황이었다. 철쇄자의 무공이 생각보다 강했다.
잠시 싸움이 소강상태가 되자 양처기가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괴마와 철쇄자 역시 여유가 넘쳤다.
숨을 고르며 양처기에게 물었다.
“당신이 천명회주요?”
난 그가 의기양양 자만심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든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천명회주가 아니다.”
“그럼 악인곡주요?”
“악인곡주도 아니다.”
“저 두 사람은 악인곡에서도 최고수에 속한 사람들일 텐데, 대체 어떻게 저들을 나오게 할 수 있었단 말이오?”
양처기는 그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재빨리 넘겨짚었다.
“그럼 천명회주가 악인곡주와도 손을 잡은 것이겠군요. 당신을 포섭한 것처럼.”
양처기의 눈빛에 살짝 감탄이 스쳤다. 그 반응으로 내 추측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통천각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비밀이었다.
원래 천명회가 보통 조직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조직이었다.
예전에는 임무에 실패하고 끝이었다. 극악소마의 금제가 풀리지 않았으니 애초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일을 꾸미는 모습으로 볼 때, 그때에도 천명회는 암중에서 활약했을 것이다.
다시 싸우기 전에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이었다.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천강비조가 공간을 갈기갈기 찢어발겼고, 철쇄자의 쇠사슬이 살아 있는 뱀처럼 고개를 쳐들고 달려들었다.
천강비조가 극악소마의 팔과 옆구리를 스쳤고 혈앙지는 철쇄자의 이마를 스쳤다.
짧은 거리에서 검기가 날았고, 지풍이 발출되었으며 강기가 서린 쇠사슬도 날아들었으며, 천강비조가 수십 가닥의 손톱자국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온갖 비기가 속출했다.
싸움은 박빙이었다. 극악소마와 난 딱 한 번 함께 싸워봤지만, 평생 합격술을 연마한 사람처럼 합을 맞췄다. 이상하게 극악소마와 싸우면 마음이 편하고 합이 잘 맞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극악소마의 두 번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았고, 그를 향해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쇄도한 내가 등으로 쇠사슬을 막았다.
텅!
호신강기로 버텼지만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터엉! 텅!
연속해서 쇠사슬이 떨어졌다.
쇠사슬이 내 몸을 내리쳤지만, 몸을 둘러싼 호신강기가 그것을 튕겨냈다. 엄청난 내공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지켜보던 양처기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감탄했다.
“저 나이에 호신강기를 일으키다니,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놈이구나.”
하지만 이 상황은 우리가 의도한 상황이었다. 난 조금 전 극악소마에게 한 번 더 당하는 척하라고 전음을 보냈다.
그들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내 앞에서 검이 분열하고 있었다.
비천검법 제칠식 유천식이 발휘된 것이다.
촤락!
많이 분열시키지 않았다. 그들이 볼 수 없게 가슴 앞에서 딱 두 개만.
검 모양을 한 검기가 완성되던 그 순간!
쉬이잉! 쉬잉!
두 개의 검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내 뒤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푸아악!
한 자루는 방심한 괴마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고, 다른 한 자루는 쇠사슬을 반으로 자르며 날아갔다.
“빌어먹을!”
괴마가 어깨의 혈도를 누르며 인상을 썼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피하지 못했으면 목이 꿰뚫린 뻔한 것이다.
철쇄자가 잘린 쇠사슬을 버리고, 나머지 부분을 짧게 잡았다.
“젠장!”
탄식은 우리도 했다. 회심의 공격이 저들을 죽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으로 괴마의 어깨를 뚫었고 철쇄자의 병장기를 손상시켰다.
내가 앉아 있던 극악소마에게 손을 내밀었고, 극악소마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극악소마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져 있었다. 그도 나도 이 싸움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괴마와 철쇄자는 장기전을 택했다. 내공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우리 내공을 말려 죽일 작정인 것이다. 어깨를 다친 데다 병장기에 손상을 입었기에 신중하게 싸우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자 아무래도 지풍과 장력을 사용하는 극악소마의 내공이 가장 먼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내공이 떨어지고 움직임이 현격히 둔해지던 바로 그 위기의 순간.
스슷.
극악소마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린 시공이환술의 세상 속에 와 있었다.
“시공이환술 속 공간입니다.”
“시공이환술까지!”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속공단이니 이걸 드시고 내공부터 회복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혈천도마에게 받아온 속공단을 주었다.
“이공자가 복용하십시오.”
“저는 아직 내공이 남았습니다. 시간 없습니다. 어서 드시고 회복하십시오. 이 순간에도 제 내력은 소모되고 있습니다.”
극악소마가 곧장 속공단을 복용하고는 진기를 일주천했다.
바깥에서 저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환술이오.”
“어린놈이 환술까지 쓰다니? 정말 계속 놀라게 하는군.”
“이런 극상의 환술이라면 내력 소모가 심해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낼 거요. 한마디로 자살행위지.”
정말 극락요희의 내공을 역으로 흡수하지 않았다면, 이 순간 시공이환술을 펼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잠시 후 속공단으로 빠르게 내공을 회복한 극악소마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 수 안에 끝장을 봐야 합니다.”
“네! 가시죠!”
내가 검을 내밀었고, 극악소마가 다시 한번 검을 튕겼다.
티잉!
맑은 쇳소리와 함께 시공이환술이 풀어졌다.
튀어나오자마자 나는 철쇄자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챙챙챙챙챙챙챙!
나는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주위가 사라졌고, 내 눈에는 철쇄자와 쇠사슬만 보였다.
그리고 이내 철쇄자도 사라졌다. 오직 쇠사슬만이 화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검과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힘들면 너도 힘들 거다. 내가 죽을 거 같으면 너도 죽을 거 같을 거다. 나는 믿지 않는다. 네가 나보다 더 노력했다는 것을. 나는 나를 믿었고 내 모든 노력을 믿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극한의 속도로 싸우고 있었는데 내 검의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극악소마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나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쇠사슬의 움직임이 다급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떠밀리듯 숨겨둔 비기를 발휘했다. 그가 내 검을 쇠사슬 사이에 끼었다. 마치 똬리를 튼 뱀이 검을 휘어 감는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 흑마검을 빼앗겼다.
철쇄자의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쉭! 푸욱!
다음 순간 철쇄자의 목에 비수가 박혔다.
그도 비장의 한 수를 발휘했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검을 빼앗기고 그가 방심하던 그 찰나의 순간, 비수를 날렸던 것이다.
“끄윽.”
철쇄자의 목에 박힌 비수는 만년한철 비수였다. 싸움이 시작되고 단 한 번도 비도술을 쓰지 않았기에 그는 이 돌발적인 공격을 막지 못했다.
철쇄자는 마치 간지러운 것은 절대 참지 못하고 긁어버리는 사람처럼, 목에 박힌 비수를 뽑아버렸다.
비수를 뽑는 순간 폭포수처럼 피를 뿜어내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허공섭물로 검을 회수하는 내공조차 아까워 달려가서 쇠사슬에 감긴 흑마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괴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극악소마는 극한의 집중력으로 자신보다 강한 괴마를 상대하고 있었다.
우린 이제 백망기를 상대할 때처럼 싸웠다.
둘이서 미친 듯이 그를 몰아붙였다. 양처기가 끼어들 것을 경계했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는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 몰아붙이자 순식간에 싸움이 기울어졌다. 이들이 강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검황 백망기만큼은 강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의 합공은 그때보다 더욱 합이 잘 맞았다.
괴마가 양처기를 향해 도와달라는 말을 내뱉던 바로 그 순간.
미세하게 흐트러진 천강비조의 칼날 사이로 내 검이 지나가면서.
푸욱!
내 검이 괴마의 어깨에 박혔고.
피잉! 퍼억!
동시에 극악소마가 날린 혈앙지가 괴마의 이마를 꿰뚫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담긴 눈을 치켜뜬 채 괴마가 뒤로 넘어갔다.
“하아, 하아,”
극악소마와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극악소마는 내공이 다 소진되었고, 나 역시 내공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지독한 놈들이구나!”
양처기의 감탄에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더 지독한 놈이오. 이들을 돕지 않고 지켜만 보다니?”
“너희들 내공이 다 소모되면 더 안전하고 쉽게 죽일 수 있는데, 괜히 왜 끼어드느냐?”
그런 이유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혼자 남아서 둘을 상대하는 변수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저 두 고수가 죽는 것을 막지 않았다? 마치 죽기를 바란 사람처럼. 왜지?’
그때 벼락처럼 스치는 한 가지 생각.
“당신, 혹시 천명회주에게 약속받은 것이 악인곡주였소?”
“!”
마존을 원하고, 문주를 원하고, 맹주를 원하던 그였으니 설마 곡주를 원한 것인가 했었는데.
어떻게 알았느냐는 양처기의 눈빛과 반응에 내 예상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악인곡주의 수족을 잘라내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악인곡을 더 편하게 접수하기 위해서. 악인들끼리 모여 서로 뒤통수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정말 평생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는 사람이군요.”
“너는 그 입이 화근이다.”
“당신은 쓰레기요.”
“그래, 지옥에 가서 실컷 욕해라.”
극악소마가 내 앞을 막았다.
―이공자, 이제 달리기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됐습니다. 내가 몇 수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우리가 양처기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내공은 바닥이 났으니까. 조금 남은 내 내공으로 그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달리기 실력은 소마님과 재대결할 때 써야지요.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가십시오!
―제 마도는 탁자를 부수지도 않지만, 친구를 위험에 버려두고 가지도 않습니다.
―!
친구란 말에 극악소마가 격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극악소마가 이렇게 정이 많답니까?
날 향했던 극악소마의 시선이 양처기를 향했다.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공자는 보내 주십시오, 사백.”
나를 살리기 위해서 결단코 하기 싫은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양처기가 조롱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가면을 벗고 무릎을 꿇으면 살려주겠네.”
극악소마의 갈등하는 등이 보였다.
아! 세상이 다 그를 악하다고 손가락질해도 나만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가서 팔을 잡았다.
“그런다고 살려주지 않을 겁니다.”
극악소마가 붙잡은 내 손을 떼 내면서 말했다.
“무릎 꿇을 생각 없었습니다. 제가 더 잘 알죠. 사백이 어떤 사람인지는.”
“한데 왜?”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어보려고 했습니다. 이공자는 똑똑하니까 뭔가 수를 찾아낼까 해서요.”
극악소마가 소리 없이 웃었다. 가면 속 그의 눈동자에 깊은 아쉬움이 스쳤다.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그는 최후를 예감하고 있었다.
양처기가 한 손 가득 내력을 끌어올렸다. 나도 흑마검에 내력을 주입했다. 과연 몇 수나 버틸 수 있을까? 이 내공으로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사이좋게 잘 가라!”
그가 장력을 내질렀다. 온전한 내공이 실린 마극광폭장이었다.
검기를 발출해 그것을 막으려던 바로 그 순간.
콰앙!
날아들던 마극광폭장이 파훼 되며 사라졌다.
내가 막은 것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것이 양처기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그것은 한 자루의 도였다. 강기를 머금은 대도가 방패처럼 우리 앞을 막은 채 박혀 있었다.
놀랍게도 혈천도마의 멸천대도였다.
고개를 들자 허공에서 혈천도마가 바람을 타고 내려오면서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