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9)
절대회귀-149화(149/424)
제149회 시험은 계속된다.
“어르신!”
혈천도마를 보자 나는 기뻐서 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를 만난 이후 이렇게 그가 반가웠던 적이 있었을까?
바닥으로 내려온 혈천도마가 반쯤 박힌 멸천대도를 뽑아 들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왜 후배들을 핍박하고 있나?”
혈천도마가 준엄하게 그를 꾸짖었다.
그러자 대답 대신 혈앙지가 날아들었다.
꽝!
혈천도마가 일장을 내질러 혈앙지를 해소했다. 혈천도마는 내공으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특히 근래 무공수련을 열심히 하였던 혈천도마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혈천도마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이 못생긴 늙은이가! 죽고 싶으냐?”
멸천대도가 크게 휘둘러졌다.
푸아아아앙!
도에서 발출된 도풍(刀風)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휘몰아쳐 날아갔다.
양처기는 피하지 않고 쌍장을 내질러 장력을 발출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뒷걸음질 친 숫자가 똑같았다. 혈천도마의 공력은 그야말로 심후해서 양처기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나도 곧장 싸움에 합류했다. 혹시라도 혼자 싸우다 혈천도마가 다치면 큰일이었으니까.
촤라라라락.
비천검법 제칠식 유천식을 발휘하자 흑마검이 분열하면서 열두 개의 검기로 허공에 떠올랐다. 비록 내공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일부러 내공을 과시하며 최대한 많이 분열시켰다.
나까지 싸움에 합류하려는 모습을 보자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양처기는 순식간에 몸을 박차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뒤쫓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혈천도마가 뒤쫓을까 걱정했는데,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래도 안 간다. 좀 전에 일장을 나누는데 팔 떨어지는 줄 알았다. 못생긴 만큼 강한 놈이로다.”
“그놈에 비하면 어르신은 절세미남자시죠!”
“아무렴.”
“어르신!”
나는 달려가서 와락 안으려 했지만 혈천도마가 보법을 밟아 피했다.
“징그럽다.”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럴 리가 있겠는가? 혈천도마는 내가 걱정돼서 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아니었으면 우린 여기서 죽었을 겁니다.”
공치사만은 아니었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정말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극악소마가 털썩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가면엔 온통 피가 묻어 있었고, 온몸에도 상처와 피투성이였다.
“어르신, 잠시 호법을 서주십시오.”
“그럼세.”
내가 극악소마의 등에 손을 대고 한줄기 내력을 주입했다. 천천히 그의 혈맥을 돌보며 진기를 북돋우며 내상을 치료했다. 정순한 내공이 그의 몸을 다독이자, 극악소마는 금방 눈을 떴다. 다행히 내상은 그리 깊지 않았다.
“다행입니다. 내상이 그리 깊지 않아서.”
극악소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앞서 최후를 예감했을 때 그가 보였던 눈빛을, 그 가득했던 아쉬움을.
우린 쉽게 잊는다. 나와 내 인생을 바꿀 계기가 될 그 강렬했던 순간을. 그때가 지나면 우린 그 순간처럼 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와의 관계에서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죽음을 예감했던 그 순간의 아쉬움을 잊지만 않으면 되리라.
극악소마, 당신은 어떻소?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오?
극악소마는 그저 웃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다 담아서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래. 취마와는 술을 마시고, 소마와는 웃고. 그럼 된 거다.
다음으로 극악소마가 혈천도마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말로 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혈천도마 역시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거로 인사를 받았다.
나는 기회를 틈타 혈천도마를 와락 안았다.
“어르신! 보고 싶었습니다.”
“징그럽다니까 왜 이러나.”
아이처럼 구는 나를 떨치며 혈천도마가 도망치듯 떨어졌다. 하지만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도 나를 구해서 기분이 정말 좋다는 것을.
나는 철쇄자의 시체 옆에 떨어져 있던 만년한철 비수를 회수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이번 싸움 꽤 힘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혈천도마가 내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자네가 무림을 깨우고 있다고.”
“어디 가서 자장가라도 배워와야 할까요?”
“그럼 그거 배우는 과정에서 안 깨도 될 자들까지 다 깨어나겠지.”
혈천도마의 농담에 내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다 깨어나라고 하십시오. 나중에 뒤늦게 깨서 잠꼬대하지 말고 다 깨어나라고 하십시오. 대신에…….”
나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친 후 말했다.
“앞으로 저와 같이 싸워주십시오.”
잠시 날 응시하던 혈천도마가 홱 하고 돌아서 걸어갔고, 극악소마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또 이러신다, 또 이러셔.”
내가 그들 뒤를 따라 걸으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긴급 전서를 손에 든 사마명이 천마전으로 들었다. 다른 때보다 빠른 걸음이 그가 들고 온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다급함을 보면서도 천마 검우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붉은 융단 끝에 도착한 사마명이 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 이공자가 임무 과정에서 악인곡의 악인들과 충돌했습니다.”
“악인곡?”
“극락요희와 혈로삼군, 염라신군과 혈랑도입니다.”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이 나왔군.”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괴마와 철쇄자까지 등장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자 검우진이 흠칫 놀랐다. 앞의 넷도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는데, 뒤에 언급된 두 사람은 절대 쉽게 여길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공자와 극악소마와 충돌했습니다.”
“극악소마도 있었나?”
“네. 이번 일에 극악소마도 얽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잠시 사이를 두고 사마명이 보고했다.
“이공자와 극악소마가 그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앞의 넷은 그렇다 치더라도, 뒤의 둘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과정에서 극악소마가 내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깊은 내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무극이는?”
“괜찮습니다.”
“둘이서 괴마와 철쇄자를 죽였다?”
차분한 검우진과는 달리 오히려 대군사 사마명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사실 전서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일전에 이공자와 극악소마가 검황을 합공해서 죽이긴 했지만 그때는 상대가 한 명이었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적들의 숫자가 많아 절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만약 일전에 풍류주점에서 검무극과의 비무가 없었다면 검우진도 똑같이 놀랐을 것이다. 검우진은 이미 그날 미리 놀랐다.
“이번 일의 배후는 누군가?”
“실질적인 배후는 천명회주고, 앞장서서 일을 실행한 자는 양처기와 악인곡주입니다.”
“양처기? 백면문의 그 양처기?”
검우진은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네. 극악소마와의 은원 때문에 일을 저지른 듯 보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자들을 동원했는데?”
“이공자의 보고에 따르면, 천명회주가 악인곡주와 양처기를 포섭했다고 합니다. 한데 양처기를 포섭하면서 그에게 악인곡주 자리를 은밀히 제안한 모양입니다.”
“왜 그랬을까? 천명회주 입장에서는 양처기보다는 여러모로 악인곡주가 더 유용할 텐데.”
“분명 속셈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알아보시게.”
“네! 천명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골치 아픈 자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천명회를 천마신교를 사칭해서 부당한 이익을 꾀하는 자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한데 이제 보니 그보다 훨씬 크고 강한 조직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공자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이만 불러들이시죠?”
하지만 검우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임무는 그 아이가 직접 고른 것이지 않나? 그럼 감수해야지. 대신 이번에 마존들이 개입한 것을 눈감아 주고. 그리고 한 번인 본교 지원을 세 번으로 늘려주게.”
“알겠습니다.”
원래 혼자 해야 하는 임무였기에 마존들이 이렇게 개입하면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시험을 넘어서는 특별한 상황이 펼쳐졌으니, 그에 걸맞게 난이도를 맞춰주는 것이다.
“본각의 정보망을 집중해서 천명회 쪽을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둘째에게 시험은 계속된다고 전하게.”
* * *
우린 싸움을 벌였던 황하객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본교의 안가에 머물렀다.
며칠간 쉬면서 내공을 회복했고, 상처를 치료했다. 제대로 밥을 차려 먹고, 운기조식하며 우린 충분히 쉬었다.
그리고 오늘 천마전에서 임무를 계속 진행하라는 전서가 날아왔다.
역시 아버지란 생각이 들었다. 무림맹과 일전을 벌인다는 전서를 보내도, 잘 싸우라는 답을 보낼 분이셨으니까.
그날 밤, 고적한 달빛을 즐기며 안가의 정원을 거니는데 구석에 있는 마당에서 혈천도마가 무공수련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수련하십니까?”
“수련이 장난인가? 장소를 가리게.”
“요즘 어르신을 뵈면 마존이 된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거짓말 말게. 우릴 우습게 보면서.”
“오해십니다!”
솔직히 처음 마존들을 휘어잡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우습게 봤었다. 하지만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그런 생각은 예전에 접었다. 이 사람들 절대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양처기가 마존이 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무공실력과는 별개로 그는 마존이 될 수 있는 어떤 결정적인 것이 없다. 매력이 없다고 해야 하나?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하나? 급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그에게는 뭔가가 없다.
“요즘 만날 술 마시는 취마만 봐서 마존 무서운지 몰랐나 봅니다.”
“그 주정뱅이도 우습게 보면 안 돼.”
“요즘 제 걱정을 왜 이리하십니까?”
“걱정 안 하게 생겼나? 틈만 나면 이렇게 위험에 빠지는데. 쌈짓돈 빼서 다른 보의라도 사다 줘야 할 판이니. 참, 속공단은?”
“복용했습니다.”
극악소마를 먹였다고 하진 않았다. 괜히 그랬다간 우리 늙은이 밤새 씩씩대며 잠을 못 이룰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그건 제가 먹었습니다.”
돌아보니 극악소마가 정원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정중한 태도에 혈천도마는 내게 눈을 한 번 흘겼을 뿐, 괜히 극악소마의 속을 긁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무사했으면 됐네.”
얼마나 급박했으면 그걸 다 먹어가며 싸웠겠는가? 혈천도마가 그걸 왜 모르겠는가? 뒤에서는 음흉한 놈이라고 만날 욕하지만, 그래도 극악소마의 실력만은 인정하는 그였다.
“다음에 신세 갚겠습니다.”
“그 전에 그 가면에 묻은 피나 좀 닦아야겠네.”
“이번 일을 끝내기 전까진 그대로 쓸 작정입니다.”
극악소마가 살짝 상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비단 분노의 감정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싸움을 하면서 느끼는 흥분에 가까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싸움에서 나는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경험을 했다. 극악소마를 살리겠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어쨌든 내가 낼 수 있는 한계선을 넘었다. 그게 중요하다. 한계를 뚫었다는 것. 비천검법은 이미 십이성 대성을 이뤘으니, 이 향상은 내 무학 경지 전반과 관련이 있으리라.
“고비를 몇 번이나 느꼈지만, 솔직히 기분은 끝내줬습니다.”
내 말에 가면 속 극악소마도 동의한다는 눈빛을 지었다.
혈천도마조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맛에 취해 다들 미치는 거지.”
혈천도마 역시 양처기와 일장을 교환하면서 피가 끓기 시작한 모양이다.
“우선 양처기부터 잡아야 합니다.”
양처기는 우릴 죽이려 했을 뿐 아니라, 극악소마 사문인 백면문의 문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극악소마나 나를 노릴 것이기에,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그는 천명회주를 직접 만났을 테니, 천명회주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자 혈천도마가 물었다.
“양처기란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악인곡에 숨었을 겁니다. 그곳에서 데리고 나온 자들이 죽었으니 보고도 해야 할 테고,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하니까요. 또 양처기는 악인곡주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 틀림없이 그곳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내가 도와주겠네.”
혈천도마가 돕겠다고 하자 극악소마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악인곡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잠시 사이를 두고 그가 덧붙여 말했다.
“저도 한때 거기 있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언제 있었습니까?”
“어려서요. 사부가 악심을 키우라면서 저를 그곳에 들였습니다. 삼 년 후에 저를 데리러 왔지요.”
“거기서 죽었다면요?”
“그럼 다른 제자를 찾았겠지요.”
“소마님은 그 어린 나이에 악인곡에서 살아남은 겁니까?”
극악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인곡도 결국 사람 사는 곳입니다. 괴마같은 고수가 있다면 무공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악인곡 사람이 아닌데 물건을 떼가서 거기서 장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문이 많이 남으니까요.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가면 악인곡만큼 무서운 곳도 없습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본교에서 날아온 전서 내용을 전했다.
“본교에서 오늘 연락이 왔습니다. 천명회주를 제거하는 임무는 여전히 유효하고, 대신 본교의 도움을 세 번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그중 한 번을 이번에 쓸까 합니다. 우리 셋이서 처리해도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악인곡주가 나설 수도 있습니다. 굳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요. 어차피 기회 한 번을 사용하는 셈이니까.”
여차하면 악인곡을 싹 밀어버리겠다는 기백으로 힘차게 말했다.
“일화검존과 대취마까지 불러서 양처기 잡으러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