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53)
절대회귀-153화(153/424)
제153회 너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는데.
검무극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극악소마가 말하길 동귀어진술은 내공이 적으면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마존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악인곡주 역시 천명회주에 대한 단서를 들어야 했기에 죽어선 안 되고.
하지만 검무극은 내공만큼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양처기의 내공이 아무리 심후하다고 해도, 원래도 마존들을 넘어서는 내공에 극락요희의 내공까지 흡수한 자신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하고 갑시다, 그 황천길. 내가 말이 많아서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을 거요.”
자신을 희롱하는 것으로 여긴 양처기의 두 눈이 더욱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천광즉살술이 발출된 것 같은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음에도 검무극은 더욱 그를 자극했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할 꿈만 꾸다 가는군요.”
그 말은 양처기의 역린과도 같은 말이었다. 마존도, 문주도, 맹주도, 그리고 곡주도. 그 무엇하나 이루지 못한 인생이 주는 상처는 너무나 깊었으니까.
양처기가 ‘그래, 너다’라고 마음을 먹던 그 순간.
후아아앙!
기회만 노리던 악인곡주의 일장이 양처기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악인곡주의 입장에서는 절대 검무극이 죽으면 안 되었다. 만약 검무극이 죽으면 마존들이 자신을 살려둘 리 없었으니까.
양처기가 벼락처럼 돌아서며 일장을 내질렀다.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악인곡주와 양처기 모두 뒤로 주르륵 밀렸다. 양처기가 더 많이 밀렸다. 내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천광즉살술을 사용하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린 상황이라 평소 그의 실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분노한 양처기가 혈앙지를 날렸다.
피잉!
그리고 들려온 소리는 혈앙지에 몸이 뚫리는 소리가 아니라, 검이 몸을 관통하는 소리였다.
푸욱!
혈앙지는 목표한 악인곡주의 얼굴에서 멀리 빗나갔다. 앞으로 내민 양처기의 손가락 끝에 피가 튀어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시퍼렇게 날 선 검날이 등에서부터 가슴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검이 꽂힌 채로 양처기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검무극이나 마존 중 하나가 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원래 자리에 서 있었다.
기습을 가한 낯선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악인곡주의 마지막 수족이자 은신술과 검술의 고수였다. 악인곡주의 마지막 한 수는 석노가 아니라 바로 그였다. 양처기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겨둔 비장의 한 수가 제대로 통했다.
양처기의 무릎이 천천히 접혔다. 고개를 돌려 다른 누군가를 선택할 힘도, 기회도 없었다.
“젠장…… 너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는데.”
그 순간, 양처기의 눈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퍼억! 퍽!
기습을 가했던 남자의 두 눈이 터지면서 뒤로 쓰러졌다. 동시에 빛을 쏟아낸 양처기 역시 두 눈이 터지면서 절명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천광즉살술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기습을 가한 남자와 동귀어진한 것이다. 이름조차 모르는 상대와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비기까지 원하는 사람에게 쓰지 못하고 죽었다. 검무극의 말처럼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루지 못하는 꿈만 꾸다가 가버렸다.
그의 시체를 극악소마는 무덤덤하게 쳐다보았다. 사백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끌어온 은원이 끝나는 순간이지만 그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속 시원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반면 악인곡주는 웃고 있었다.
끝내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비록 비장의 한 수였던 수하마저 죽고 말았지만, 어쨌든 이 순간 살아남은 것이 중요했다.
“약속대로 나는 살려주시오!”
양처기의 죽음도, 수하의 죽음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검무극이 차갑게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사느냐 죽느냐는 당신에게 달렸소.”
악인곡주가 천명회주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명회주는 결코 정체를 밝히지 않았소. 우릴 만날 때도 면사가 달린 죽립을 쓰고 나타났었지. 우리가 연락하면 만나주지 않았고, 항상 그가 연락해서 시간과 약속 장소를 잡았소.”
“천명회주는 어떻게 당신을 끌어들인 거요?”
“뭐겠소? 돈이지.”
그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거금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날 우습게 보지 마시오. 돈이 곧 이 자리요. 당신들은 모를 거요. 이 자리가 얼마나 불안한 자리인지.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번만 앉아보자는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 돈이었다.
괴마도, 철쇄자도 언제라도 곡주 자리를 노릴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의 야망을 묶어둘 수 있는 것도 그들이 향락을 즐길 수 있게 해준 돈이었다.
“그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맞소. 대신 이 자리에서 약속하시오. 나를 살려주겠다고. 그대 신교를 두고 맹세하시오.”
“본교를 두고 맹세하겠소. 천명회주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준다면, 그대를 살려주겠소.”
그제야 악인곡주는 단서를 말해주었다.
“나라고 천명회주란 자를 무작정 믿었겠소? 놈의 뒤를 은밀히 조사했소. 하지만 쉽지 않았지. 조사하라고 보낸 자들은 실종되거나 시체로 발견되었소. 그래도 또 보내고 또 보냈지. 그리고 결국 한 가지를 알아냈소.”
악인곡주 입에서 뜻밖의 한마디가 나왔다.
“소룡전(小龍戰).”
소룡전은 무림맹에서 개최하는 무림대회로 정파의 후기지수 중에 인재를 뽑아 무림맹 정예로 들였다.
“세작들이 목숨을 바쳐 얻어온 정보요. 분명 천명회주는 이번 소룡전과 관련해서 모종의 일을 꾸밀 거요!”
이걸로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까 봐 악인곡주는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검무극은 소룡전과 관련해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올해가 그 해였구나!’
검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소. 유용한 정보로 인정하겠소.”
“그럼 나를 살려주시는 거요?”
“약속은 지키겠소. 부디 잘 살아남길 바라겠소.”
“?”
검무극과 마존들이 등을 돌려서 대청을 나오자 바깥에 악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창을 든 귀력거창과 그 수하들은 물론이고 은월과 그의 살수들, 약에 취한 자들과 여인들로만 이뤄진 무리들, 사냥꾼들과 거지들. 앞서 우릴 공격하지 않았던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살기와 욕심 가득한 눈빛으로 하나둘씩 대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안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고 곧이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사람의 비명과 함께 악인곡주의 비명도 들려왔다.
왜 악인곡이 하나의 조직이 되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지 이 모습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 * *
악인곡 입구에서 마존들에게 정식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혈천도마가 말했다.
“우리가 한 게 있나? 저희끼리 싸우다 죽었는데.”
“다들 계셨으니 그렇게 된 거죠. 저 혼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피를 뒤집어쓴 채 난리를 치고 있었을 겁니다.”
나는 마존들과 하나하나 눈이 마주쳤다.
극악소마의 눈구멍 속 눈이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개입하면서 그는 묵은 은원을 끝낼 수 있었다.
일화검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바람도 쐬고 좋았네.”
날개가 되지 않겠다던 일화검존은 이번에 훌륭한 날개 역할을 해주었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그 어딘가에 더 잘 빠져들 때가 있다. 자신이 누구보다 깊이 빠진다는 것을 알기에 미리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옆에서 취마가 술을 마셨다. 혈천도마와 일화검존을 화해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그였다. 비록 젊은 시절 실수를 했지만, 이제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마음에 든다, 형.
마지막으로 혈천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앞서 황하객잔에 그가 오지 않았다면 난 죽었을 수도 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눈빛에 담겨서 내 마음이 전해졌을 테니까.
이 사람들과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좋다가 또 어떤 일로 사이가 나빠질지. 아니면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더 깊은 관계가 될지.
소룡전에서 일어날 일은 알아도, 새롭게 만들어진 이들과의 관계는 예전에는 없던 일이었으니까. 그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혈천도마의 물음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무림맹으로 가야죠.”
소룡전은 두 달쯤 후에 무림맹 본단에서 열린다.
“위험할 텐데.”
“이번 후계자 시험은 천명회주를 잡는 일입니다. 시험을 망치는 것이 제겐 더 위험하죠.”
“그래서? 자네가 직접 소룡전에 참석하겠다고?”
“아뇨, 제가 출전했다간 결국 들통이 날 테니, 저는 주위에 있어야지요. 저 말고 참석시킬 사람이 있습니다.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요.”
“그게 누군가?”
그러자 검무극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사람이 나왔다.
“어르신 제자요.”
깜짝 놀라는 혈천도마를 보며 검무극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대회에 서 조사관을 참석시킬 겁니다.”
통천각에 부탁하면 완벽한 위장 문파를 하나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문파 소속으로 서대룡이 출전하는 거다.
“자네는 무슨 역할을 하려고?”
“시종이나 호위무인쯤 하면 눈에 띄지 않겠지요.”
마존들이 과연 그런다고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눈빛을 보냈다.
혈천도마가 걱정되는지 따라붙으려 했다.
“나도 가겠네.”
그러자 검무극의 시선이 멸천대도를 향했다.
“다들 그 칼 가짜라고 생각하겠죠? 설마 무림맹까지 혈천도마가 멸천대도까지 들고 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렇죠?”
너무 표가 나서 안 된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극악소마의 가면도, 붉은 동백꽃이 새겨진 일화검존의 백화검도 무림에 너무 알려져 있었다.
이안이 갔다가는 모든 시선을 다 잡아끌 테고, 덩치 큰 장호의 얼굴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은 서대룡이 제격이었다.
“재미있겠는데? 아우님, 나도 가고 싶어.”
취마라고 어디 눈에 안 띄겠는가?
“나중에 술 마시면서 일어났던 일, 다 말씀드리죠. 아, 그리고 천명회주 건으로 제가 또 어르신들께 도움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요청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 중에 아직 두 번 남았으니까요. 그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무극은 든든했다. 이들이 돕는다면, 정말이지 무림맹과도 한 판 뜰 자신도 있었으니까.
‘자, 오른팔. 무림맹에서 이름 한 번 날려보자.’
* * *
마존들과 헤어진 후 나는 곧장 무림맹이 있는 호북성(湖北省) 무한(武漢)으로 향했다.
쾌속보로 극한의 속력을 만끽하며 내달렸다. 나무 사이로, 사람들 사이로, 바위를 뛰어넘으며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뒤쫓던 맹수도 나를 따라잡지 못하고 포기했다. 번쩍하는 순간 나는 저 멀리 사라졌다.
일찍 도착하면 할수록 무공수련할 시간을 버는 셈이라,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극한의 쾌속보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무림맹 본단 인근에 도착한 후에는 저잣거리에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산속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산으로 들어갔다.
전서를 받은 서대룡이 이곳까지 오려면 한참 남았고, 소룡전은 그보다도 더 많이 남았다.
그때까지 조용히 산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할 생각이었다.
그날부터 난 수련에 돌입했다.
사람도 잊고, 임무도 잊고, 복수도 잊었다.
오직 무공수련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수련했다. 잠은 죽어서 잔다는 마음으로 수련했다. 먹고 수련하고, 운기하고 수련하고, 수련하고 수련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난 털보가 된 채 저잣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간 기른 수염은 일부러 자르지 않았다. 수련할 때 입었던 무복은 버렸고 눈에 띄지 않는 허름한 싸구려 옷을 한 벌 사서 입었다.
약속한 객잔에 가니 서대룡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림맹 영역에 들어온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그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나와 눈이 슬쩍 마주쳤음에도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그의 앞자리에 앉자 뒤늦게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각……!”
각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서대룡의 입을 막았다.
“내가 왔다는 것 소문내고 싶어서?”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놀라서 그랬습니다.”
정리가 안 된 머리며, 산도적 같은 수염까지. 서대룡이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으니,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데 몰골이 왜 이 모양입니까?”
“위장이지.”
“아! 수염이 웬 말입니까? 이 하수 같은 위장술이라니? 오히려 더 쳐다보겠네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튀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바를 정(正)자가 새겨진 하얀 무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절 보세요.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정파인으로 보겠죠?”
“주위를 둘러봐라. 그런 옷 입은 사람이 누가 있는지. 무림맹 입맹한 신출내기가 한 며칠 신나게 입다가 구석에 처박아 두는 딱 그런 옷이다.”
“그래도 그 더러운 수염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저분도 아니고 더럽다니!”
우린 서로를 보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서로의 외모를 공격하는 반가운 재회를 한 후, 서대룡이 진지하게 물었다.
“한데 왜 절 이곳까지 부르신 겁니까?”
서대룡은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이곳으로 왔다. 난 바짝 긴장한 서대룡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나하고 일 하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