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
절대회귀-16화(16/424)
제16회 대답은 이미 들었다.
오후에는 서대룡이 황천각 조사관들을 십여 명이나 데려왔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자 마군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장호를 필두로 모든 마군을 샅샅이 턴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사고가 터졌다.
방에서 쉬고 있는데 황천각 조사관 하나가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어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서 보니 조사실 앞 복도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마군과 조사관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동작 그만!”
나는 대치 중인 마군과 조사관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서 싸움을 말렸다.
조사관 하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냥 얻어터진 정도가 아니었다. 찢어진 얼굴에선 피가 철철 흘러내렸고, 늑골까지 부러진 상태였다.
화가 난 서대룡이 나섰지만, 마군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 역시 얻어맞은 상태였다.
“많이 다쳤나?”
“저는 괜찮습니다만 동료가 크게 다쳤습니다.”
“어서 의방으로 데려가도록.”
다른 조사관들이 쓰러진 그를 데리고 나갔다.
이 일의 주동자인 일 대주 고당은 뻔뻔하게도 그곳에 있었다.
“그대가 이랬소?”
“그렇소.”
주위에 서 있는 마인들은 모두 마군 일대의 마군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고당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고, 주위의 수하들 역시 금방이라도 킥킥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왠지 예언이 이뤄질 것 같은 날이군.”
내 말에 그 예언이 무엇인지 아는 서대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무슨 예언 타령이오?”
고당의 물음에 서대룡이 그의 머리통을 빤히 쳐다보며 대신 대답했다.
“고 대주, 당신은 절대 알고 싶지 않은 예언일 거요.”
“그럼 나도 이 공자 그대에게 예언 하나 하겠소. 우리 이 공자께서는 후계자 다툼에서 밀려난 후 본교에서 쫓겨나 무림맹 정파 놈들에게 빌붙어 먹으며 살게 될 거요.”
듣고 있던 일대의 마군들이 껄껄대며 웃었다.
나는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기뻐했다.
“오, 멋진 예언이오!”
“멋지다니?”
“후계자 다툼에서 밀려났는데도 살아남았잖소? 게다 평생 일 안 하고 빌붙어 살 수 있다니! 무위도식(無爲徒食)은 우리 모두의 꿈 아니겠소? 예언 정말 고맙소! 내 거기서 제이의 인생을 살아보리다.”
역으로 조롱을 당한 고당은 한껏 인상을 굳혔다.
“황천각 무인은 왜 다치게 했소?”
“복도에서 나와 어깨가 부딪쳤소. 사과 없이 가길래, 손을 봐줬을 뿐이오.”
“어깨야 그대가 부딪쳤을 테고. 그이가 사과했어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겠지.”
고당은 부정하지 않은 채 웃고 있었다. 주위의 마군들도 함께 웃었다.
“독이야.”
내 말에 고당이 의아하게 물었다.
“독이라니?”
“그대의 수하들, 당신에게는 독이라고.”
“무슨 헛소리요?”
수하들이 보고 있는 한, 그는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결국 내가 계획한 파멸로 치닫게 될 것이다.
“고당, 그대는 작년에도 이런 식으로 본교 무인을 죽이지 않았소? 재작년에는 주점에서 시비가 붙어 셋이나 죽였고.”
상대들은 모두 하급 무인들이었고, 사건화되기 전에 마군 쪽에서 덮어버렸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병신들은 천지에 널려 있으니까.”
‘바로 너 같은 놈’이라는 눈빛이 날 향해 날아들었다.
“당신 그건 알고 있소? 내가 내려오면서 뭘 하나 받아왔는데.”
“그게 뭐요?”
“즉결처분권.”
즉결처분권이라는 말에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고당은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권한이 있으면 뭐 하겠소? 처분할 능력이 없는데?”
그 말에 다시 수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한 독이 이것이다. 어리석은 자가 주위 시선을 의식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원래라면 바짝 긴장할 상황이지만, 수하들 앞에서 허세를 떨고 있다. 자신이 서 있는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저만 모른다.
내가 한 걸음 다가서자 고당 주위에 있던 일대 마인들이 우르르 앞으로 튀어나왔다.
“우릴 건드는 것은 마군 전체를 건드는 것인데. 과연 이 공자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소.”
“적어도 난 수하 뒤에 숨지는 않지.”
그가 붕대 감은 오른손을 들었다.
“난 어떤 비겁한 인간 때문에 다친 상태요.”
그때 내가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도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겠소.”
“!”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고당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이 무대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치면 교주님께 가서 이를 거요?”
그의 수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웃을 때마다 무대는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
“다치는 것은 물론이고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소.”
“맹세한 거요?”
내가 검을 두 번 두드리며 맹세했다.
그제야 놈이 내 승부를 받아들였다.
“좋소. 어디 붙어봅시다.”
고당이 검을 뽑아서 왼손에 들었다. 그가 자신 있게 나선 것은 왼손 역시 오른손만큼이나 능숙하게 검을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오른손잡이였고.
나는 뒷짐을 지듯 오른손을 허리 뒤로한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급하다고 그 손 사용하면?”
고당은 내가 오른손을 사용할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수하들에게 합공해서 나를 죽이라고 하시오.”
“흥! 자신만만하군. 최근에 남도종의 철부지들과 재롱잔치를 열었다는 것은 들었소.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나 본데.”
“사실 재롱은 그대 재롱이 더 재밌는데.”
“닥쳐라!”
고당이 검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이번 대결 역시 수련의 일부라 생각했다. 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나 실전 수련, 마군 대주와의 실전은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이다.
고당은 적당히가 없었다. 어떻게든 내게 상처를 입히려고 온 힘을 다했다.
검이 빗나갈 때마다 아깝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이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검에 찔릴 것같이 아슬아슬하겠지만 내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와 싸워보니 확실히 알겠다. 지금 나의 경지는 고당쯤은 왼손으로도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음을.
이 싸움의 결과에 대해 모두의 관심은 ‘몇 수만에?’가 될 것이다.
내가 정한 수는 사십 수였다. 이 싸움이 끝나면 이렇게 소문이 날 것이다.
이 공자, 사십 수만에 마군 일 대주 격살.
혈천도마의 제자인 양포를 이십 여수만에 이겼으니, 고당을 사십 수만에 이기면 그럭저럭 균형이 맞다고 볼 수 있으리라.
사십 수가 되었을 때, 보법에 변화를 주며 놈에게 파고들었다.
내가 검을 든 팔목을 붙잡는 순간, 고당이 거칠게 뿌리치며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팔을 붙잡히지도 않았으리라.
팔을 잡은 채 내 몸이 한 바퀴 홱 돌자.
으드드드득!
고당의 팔이 빨랫감처럼 비틀리며 팔목에서 뼈가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놈의 얼굴에 다시 주먹이 날아가 박혔다.
퍽, 하는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고당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난 쓰러진 놈의 몸에 올라타서 주먹을 내리꽂았다. 내공을 실었으면 즉사했겠지만, 내공을 싣지 않고 충격을 가했다.
퍽! 퍼억! 퍽!
지켜보던 일대의 마인 하나가 달려들었다.
난 고당의 배 위에 앉은 채로 검을 휘둘렀다.
달려들던 놈의 아랫배가 갈라지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내가 단칼에 놈을 베어버릴 줄 몰랐기에 마군들은 물론이고 서대룡과 황천각 조사관들도 크게 놀랐다.
“미친!”
“죽여!”
고당의 수족 둘이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휘두른 공격은 그들의 살아생전 마지막 한 수가 되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서 연속해서 검을 내지른 것이다. 그들의 검은 내 몸을 스쳤지만 내 검은 정확히 목표한 곳에 박혔다.
푹! 푸욱!
목을 관통당한 둘은 사방으로 피분수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그곳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동료 셋이 시체가 되자 마군들은 달려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망설였다.
내가 박력 있게 소리쳤다.
“방금 죽은 놈들의 죄명은 반역죄다.”
반역이란 말에 그들이 얼어붙었다.
그렇게 놈들을 꼼짝 못 하게 해둔 후 나는 쓰러져 있던 고당에게 걸어갔다.
“너희 대주도 마찬가지다. 교주령으로 온 사람을 때려서 중상을 입혔으니 명백한 반역죄다.”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작년에 주점에서 시비를 걸어 죽인 사람들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모르지? 신경도 안 썼을 테니. 아버지를 잃고,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그 사람들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네까짓 게 뭔데 사람을 때려? 네까짓 게 뭔데 우리 교도들을 죽이냐고?”
“……살려주시오.”
피떡이 된 얼굴이었지만,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다.
“내가 왜?”
“……회개하겠소.”
놈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흘러나왔다.
“거짓말. 앞으로도 그럴 거잖아?”
“아니오. 절대 아니오.”
“네가 말했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 내가 언제?”
“네 지난 삶이 다 말했다.”
나는 발을 번쩍 치켜들어서 그대로 고당의 머리통을 진각으로 내리찍었다.
슈욱!
꽈직.
놈의 머리통이 수박 깨지듯 터지며 즉사했다.
순간 그곳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마군주가 총애하는 고당을 머리통을 깨뜨려 죽여버릴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고당을 격살한 후 난 일대 마인들에게 소리쳤다.
“반역죄는 즉결처분이다. 뒈지고 싶어? 아직도 검을 쳐들고 있게.”
그러자 일대의 마인들이 일제히 검을 내려놓았다. 이미 대주는 죽었고, 괜히 나섰다간 목이 날아갈 상황. 그들은 단칼에 자신들을 베는 내 무공에 압도당한 상황이었다.
“마군 일대는 특별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물러나서 근신한다! 이 시간 이후 각자 방에서 나오면 반역죄로 처벌할 테니 그리 알도록!”
내가 다 나가라고 손짓하자 그들은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지켜보던 황천각 조사관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놀람에 섞인 감정은 분명 기쁨과 감격이었다.
서대룡이 내게 말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셨군요.”
“어떻게 생각했는데?”
“그게…… 마군 일대주를 이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에겐 예언이 있었잖아.”
웃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서대룡은 웃지 않았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에 널린 시체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이 공자님이시라 해도…… 이래도 될까요?”
겁먹은 그에게 단호히 말했다.
“겨우 서너 명 죽은 것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마라. 나는 마군 절반을 벨 각오로 왔으니까.”
“!”
평소 서대룡이 얼마나 눈을 작게 뜨고 다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마군주가 나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이 아닌 마가촌의 기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가촌에는 대략 십여 개의 기루가 있었는데 누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직위에 따라가는 곳이 정해졌다. 마군주가 기다리고 있던 기루는 최고급 기루였다.
“자네와 오랜만에 한잔하려고 이곳으로 불렀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대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은근하고 부드러웠다.
“여기 와 본 적 있나?”
“처음입니다.”
“여기 좋아.”
과연 차려진 요리나 술도 최고급이었고, 기녀들 역시 대단한 미인들이었다. 악사들의 연주실력 또한 일품이었다.
“비싸 보이네요.”
“마가촌에서 제일 비싼 곳이라네. 오늘 자네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지.”
그는 이런 사치와 유흥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인생, 실컷 즐기다가 가야지. 안 그런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자, 마시세.”
그와 함께 술을 마셨다. 얼마나 자주 왔는지 마군주는 제집처럼 놀았다. 술을 마시다 노래도 부르고, 벌떡 일어나 기녀와 춤도 추기도 했다. 분명 고당이 죽은 일로 나를 불렀음에도, 그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난 지난 삶에서 유흥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적당히 흥만 맞춰주었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비로소 마군주는 기녀들을 물렸다.
“우리 애들과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작은 사고’란 말에는 그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었다.
“네. 뜻하지 않게 충돌이 있었습니다.”
마군의 대주가 죽은 사건이었다. 본교를 발칵 뒤집을 사건이었지만 마군주는 이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 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쯤 해서 정리하는 것은 어떤가? 어쩔 수 없이 쓰기는 했지만 일 대주 그 인간 여러모로 구린 구석이 많은 친구였거든.”
모든 것을 죽은 일 대주에게 뒤집어씌우고 끝내자는 의미였다.
‘이야, 너도 참 대단한 쓰레기다.’
아무리 그래도 심복이던 수하였는데. 복수는 고사하고 죄인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이래서 죽은 놈만 불쌍한 법이다.
“아무리 사건조사 때문이라지만, 자네가 마군 대주를 죽인 것도 문제 삼으면 큰 문제가 될 일 아닌가?”
“그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떤가? 이쯤 해서 마무리 짓는 것은? 대주 하나에 수하 셋이면 충분하지 않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좋게 처리하고 싶습니다만, 한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
“증거가 없습니다. 공식적인 조사를 나왔는데 상부에 보고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증거야 적당히 가져다 붙이면 되지.”
“그게 곤란합니다. 이번에 날아든 투서에 일대에서 사적으로 외부 청부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거든요. 은근슬쩍 뭉개고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장호에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투서에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그 사실까지 알고 있을 줄 몰랐기에, 마군주는 놀란 마음을 감추느라 애썼다.
“이번 사건을 끝내려면 증거가 꼭 필요합니다.”
그에게 증거를 내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알아들었을 것이다.
―당신이 증거를 내어놓아야 이번 일이 끝난다.
짧은 밀담이 끝나고 마군주는 다시 기녀들을 들여서 술을 마시고 놀았다.
마군주는 아까보다 더 신나게 즐기려 했지만, 술자리 내내 그의 고민이 느껴졌다. 춤사위가 아까처럼 날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