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0)
절대회귀-160화(160/424)
제160회 사위, 이리 와서 내 술 한잔 받게.
맹주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하면서 시끄럽던 장내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손녀를 거쳐 옆에 서 있는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보지 않아도 그의 시선이 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고, 나는 이 긴장감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평범한 시종이 이런 자리에서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들킬 때 들키더라도, 난 최대한 나를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무림맹주 진패천이 내게 물었다.
“소협은 누구신가?”
바로 이때 진하령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귀는 사람이에요.”
나를 살리기 위한 그녀의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도 정면돌파였지만, 그녀의 선택도 정면돌파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그녀의 용기와 배려가 고마웠다. 무림맹주 손녀라는 신분으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저 말을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녀의 말에 주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조신과 그의 부친인 진룡장주도 있었다.
진룡장주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들의 혼사를 진행 중인데, 며느리 될 사람이 다른 남자를 데려온 것이다.
반면 옆에 있던 조신은 우릴 보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큰 모욕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진패천이 손을 들자 주위는 일시에 조용해졌다.
“네게 묻지 않았다.”
진하령에게 말한 후 진패천은 다시 내게 물었다.
“소협은 누구시오?”
“검연이라고 합니다.”
“어느 사문에서 오신 분인가?”
“감숙 서도파의 서룡 도련님을 모시고 온 시종입니다.”
시종이란 말에 다시 주위가 웅성거렸다. 앞서보다 더 큰 웅성거림이었다.
군웅들 앞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진패천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패천이 진하령을 쳐다보았다. 그가 표정으로 말했다. 너 정말 이럴 거냐? 진하령의 표정은 단호히, 네.
진패천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그녀의 폭탄선언과 별개로 맹주는 나를 어디까지 파악했을까?
“검 소협.”
시종이라 말했음에도 그는 나를 소협이라 칭했다.
“령이가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했네. 특히 사람들 놀라게 하는 것이 특기였지. 한 번은 검술 구결을 거꾸로 운용해서 주화입마에 빠질 뻔하기도 했다네. 오늘은 자네를 데려와서 놀라게 하는군.”
진패천은 마치 오늘의 일도 그녀의 장난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모두가 충분히 놀랐으니 자네 역할은 충분히 다한 것 같네. 녀석 등쌀에 끌려와서 고생 많았네. 다음에 따로 대접할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게.”
맹주는 이렇게 상황을 정리했다. 진하령이 장난을 쳤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거고, 그녀의 반항을 맹주가 이런 식으로 넘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도 나를 진짜 그녀가 사귀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진하령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때 많이 놀라셨죠? 할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저는 지금껏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젠 장난 안 치려고요. 이 사람은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 맞아요.”
모두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내 몰골에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었다.
표정들이 다 이랬다. ‘그래, 품 안의 자식이지’에서부터 ‘맹주님도 예외는 아니구나’까지. 차마 맹주 앞에서 말을 못 할 뿐이었다.
“저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느냐?”
“네.”
할아버지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는 그녀의 대답.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무대 위에서의 그것보다 더 팽팽했다. 조신과 진룡장주를 제외하고는 다들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럼 저 남자와 혼인할 수도 있겠구나.”
혼인이 언급되자 진하령은 흠칫했다.
“그래도 혼인은 인륜지대사인데 좀 더 사귀어 봐야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까지 했는데 뭘 망설이는 거냐? 좋다. 네가 원하는 사람이라니 혼인시켜주마.”
“할아버지!”
“당장 이 자리에서 혼인시켜줄 테니 하거라. 네가 바라는 것이 이거 아니더냐? 정략혼인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혼인하고 싶다. 좋다, 네 뜻대로 해주마!”
진패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당장 혼인 준비를 해라.”
맹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정말 수하들이 와서 혼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진하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아버지 성격도 보통 성격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이 자리에서 혼인을 밀어붙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저 사람 가족들에게 인사도 아직 안 했어요.”
“무림인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이니, 다 이해해 줄 거다. 나중에 가서 정중히 인사해라.”
진하령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이 상황은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 예비 사위, 이리 와서 내 술 한잔 받게.”
예비 사위라니? 정말이지 회귀 전 인생까지 통틀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무림맹주에게 듣는다고? 아버지, 저 무림맹주에게 사위 소리 들으며 술 받고 있어요!
난 맹주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그에게 받는 첫술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손녀 잘 부탁하네.”
나를 바라보는 깊고도 차가운 눈빛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미 내 진면목을 파악했다는 것을. 일단은 군웅들 앞에서 손녀 문제부터 해결한 후에 나를 상대하려 한다는 것을.
날 보며 그가 옅게 웃었다. 이건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넌 좀 있다 보자는 경고였다.
그러는 사이 일사천리로 혼례 준비가 되었다. 무림맹에서 무인들이 종종 혼례를 올리곤 했으니, 혼례 준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결국 진하령이 백기를 들었다.
“그만 하세요! 제가 졌어요. 우린 혼인할 사이 아니에요.”
그제야 진패천이 미소를 지었다.
어디서 이 할아비에게 까부느냐?
패배 인정합니다, 할아버지. 대신 이건 설명해야겠어요.
이런 표정이 오간 후, 진하령이 모두에게 오늘 일에 관해 설명했다.
“어르신들, 선배님들 이 귀한 자리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소동을 벌인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저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질투심으로 저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저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서 일을 꾸몄습니다.”
그러자 참석한 사람 중 누군가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멋지십니다.”
그는 바로 조신이었다.
“저 추레하고 못생긴 시종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가 박수 치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박수를 쳤다.
나는 조신이 바짝 독이 올랐음을 느꼈다. 오히려 좋다. 감정이 격할 때 실수하는 법이니까. 어디 더 미쳐 날뛰어 봐라.
진하령이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누구든 이 사람을 건들면 나는 반드시 내 이름을 걸고 복수할 거예요. 약자를 괴롭히는 일은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삼가라고 가르침을 주신 일이니 명심하길 바랍니다.”
맹주를 언급한 것은 아주 똑똑한 선택이었다.
말을 마친 진하령이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자, 이만 돌아가요. 할아버지, 오늘 일은 제가 죄송했어요. 다시 찾아뵙고 사죄드릴게요.”
그녀와 나는 맹주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후 진하령을 따라 그곳을 나갔다.
연회장을 나온 우린 무림맹 내전을 말없이 걸었다.
그러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미리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때 제게 말했죠? 제 이기심 때문에 상대가 상처받는다고요.”
“그런 말을 직접 하진 않았죠.”
“그 말이 결국 그 말이었죠. 맞아요, 저는 이번 일을 푸는 방식도 이렇게 제멋대로였어요. 한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을 보호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어요.”
방법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지켜주려 했다.
“할아버지 앞에서 한 말이니 감히 당신을 해치려는 수작은 부리지 못할 거예요.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수작을 부리면 저는 좋아지겠네요. 그 핑계로 정략혼인 따윈 영원히 안 할 수 있는 핑계가 생길 테니까요. 봐라,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아니지 않느냐, 하면서요.”
“그럼 소저를 위해서 기꺼이 죽겠습니다.”
진하령이 살짝 화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농담인 것 아는데, 그런 농담은 마세요. 제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수없이 들은 말이 그거에요. 악인으로부터 선한 사람을 지키는 것, 우리 정파는 오직 그 일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저 때문에 남이 불행해지는 것을 두고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훌륭하십니다.”
“칭찬 듣자고 한 말은 아니고요.”
“한데 괜찮습니까? 내일 되면 오늘 있었던 일이 소문 날 겁니다.”
“나쁜 소문은 안 퍼질 거예요. 오히려 무림맹주 손녀가 시종을 구하기 위해 소동을 벌였다! 좋은 쪽으로 소문이 나겠죠. 맹에서 이런 것도 관리한답니다. 몰랐죠?”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적어도 소룡전이 끝날 때까진 당신을 어쩌지 못할 거예요. 기회를 봐서 멀리 떠나세요. 고향으로 가지 말고 멀리 다른 곳으로 가세요.”
그녀가 품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세 번 국수와 술 사주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국수와 술값보다 많은 돈이었다. 도피할 때 쓰라고 주는 돈인 모양이다.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서 아쉬움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 여기고 있었다. 내가 당장 떠나지 않더라도, 그녀는 내게 다가올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가 다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럼 행복하시길.”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손에 쥐어진 돈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꿈꾸시는 무림일통은 이런 사람들을 전부 다 죽여야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내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새 무림맹주 진패천은 소리 없이 내 뒤에 와있었다. 그녀와 나의 대화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말해야지. 그리고 말을 잘해야 할 거네. 그 한마디 한마디에 자네 목숨이 달려 있으니.”
기도를 개방한 진패천은 앞서 연회장에서 봤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기도가 바다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고래 울음처럼 깊은 울림이 들려왔고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 냄새가 났다. 나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착각에 빠졌다.
다음 순간.
착! 착! 착! 착! 착! 착! 착! 착!
사방으로 수십 명의 무인이 벼락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하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얀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맹주가 가는 곳이라면 지옥까지 함께 한다는 천룡수호대(天龍守護隊)의 고수들이었다.
채앵!
수십 명이 동시에 검을 뽑았는데, 한 사람이 검을 뽑은 것처럼 들렸다. 발검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잘 훈련된 무인들인지, 또 얼마나 실력자들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검에서 내뿜어진 기세가 거미줄처럼 나를 옥죄었다.
“맹주님과 오직 단둘이 있고 싶습니다.”
“내가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제가 지금부터 드리려는 말씀은 오직 맹주님만 아셔야 하는 내용이라서 그렇습니다.”
맹주는 주위를 물리지 않았다. 또한 낯선 고수를 두고 호위들이 쉽게 물러갈 리 없다.
“만약 제가 맹주님을 암습하기 위해서 오늘 온 거였다면, 다른 기회나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적어도 이런 긴장한 상태에서 시도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자 맹주가 그들에게 말했다.
“모두 물러가게.”
그러자 순식간에 그들이 몸을 날려서 모습을 감췄다. 눈에서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완전히 물러나게 할 수 없음도 안다.
그들은 맹주의 명령을 받는 이들이 아니라, 맹주를 지키는 자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맹주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명령은 다 수행하지만, 나를 지키지 말라는 명령만큼은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맹주를 죽이려면 그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나는 진패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부터는 전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네 정체부터 밝히게.
나는 그에게 내 신분을 밝혔다.
―저는 천마신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푸아아앙!
진패천의 손에서 발출된 한 줄기 장력이 벼락처럼 날아와 내게 꽂혔다.
콰아앙!
내 몸 주위로 폭음이 들렸고 주위의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앞으로 두 손을 교차해 막은 채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장력을 막은 것이다.
교차한 두 팔 너머로 나는 진패천을 바라보며 앞서 했던 말을 계속했다.
―……교주의 둘째 아들.
쇄애애애애애앵!
콰아아아앙!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장력이 날아들어 내게 꽂혔다.
나는 밀리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두 팔을 교차해서 막은 채 서 있었다. 호신강기가 극한으로 발휘되었음에도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검무극입니다.
이 두 번의 장력을 막아내는 것으로 나는 내 신분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호랑이 같은 맹주의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소협은 누구신가 할 때의 그와, 지금 맹렬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불타오르는 지금이 그의 본모습임을.
―마교주의 자식이 왜 내 손녀에게 접근한 것이냐?
난 교차한 팔을 풀며 낮췄던 몸을 세웠다.
―손녀분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진패천의 기도가 사나워졌다. 내 주위를 휘몰아치는 압도적인 기세에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기세만으로 사람을 찢어버릴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당대 무림맹주의 기도다.
다음으로 날아들 장력은 앞선 장력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것이 될 것이다. 그가 검을 뽑는다면 한 수 한 수가 생사를 가르는 수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를 설득해 내느냐 마느냐의 싸움이.
―오직 저만이 손녀분을 구할 수 있습니다.
진패천의 기도가 사나움에서 무서움으로 바뀌었다. 먹구름이 몰려오며 세상은 어두워졌고 바다가 뒤집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