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2)
절대회귀-162화(162/424)
제162회 콩깍지를 벗겨낼 때가.
두 번째 본선이 시작되었다.
서른두 명에서 열여섯 명이 남게 되면서 소룡전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제 자기 고을은 물론이고 인근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후기지수들만 남았다.
“자, 그럼 무림맹주님을 위해 우승하겠습니다!”
서대룡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각오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 상대는 산동이가(山東李家)에서 온 이휴(李烋).
도법 대 도법의 대결.
오히려 서대룡은 앞의 비무보다 이번 비무를 더 자신있어했다.
“이상하게 다른 무공보다 도법을 상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네요. 왜 그런 거죠?”
혈천도마의 도법을 전수받는 중이니, 아무래도 도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도법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도련님이 방심하시는 거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서대룡은 손사래를 쳤다. 방심이란 말은 억울할 만하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노력 중이었으니까.
“이휴 싸우는 것을 봤지? 만만한 상대 아니다. 방심하지 마.”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이번 대결에서 서대룡이 이기리라 예상했다. 상대의 도법이 서대룡이 익힌 도법에 비해 상성상 불리했기 때문이다.
과연 내 예상대로 서대룡은 어렵지 않게 이겼다.
환호하는 군웅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서대룡이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드디어 여덟 명에 들었어요!”
이제 서대룡은 무림맹의 정예조직에 뽑히게 될 것이다.
“아쉽군요. 이제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생겼는데.”
“계속 있을래? 네가 세작으로 남겠다면 통천각에서는 두 손 들고 환영할걸.”
“세작요?”
“적진 속에서 신분을 감추고 활약하는 거지. 황천각 수석 입학의 천재적 두뇌! 게다가 무공까지 겸비한 최고의 세작! 어때?”
“무림맹주가 각주님과 제 정체, 이미 알고 있다면서요?”
“기억하고 있었어?”
“저 버려두고 가실 생각 꿈도 꾸지 마십시오! 우승보다 더 좋은 게 각주님 오른팔 자립니다. 소룡전이 아니라 천하제일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오른팔 자리가 좋습니다.”
“정말 그럴까?”
“그럼요.”
“자, 그럼 상상해 봐! 네가 천하제일인이 됐어. 온 무림인들이 다 너를 존경해. 이래도 내 오른팔이 좋아?”
“네.”
“네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마존들도 널 보며 미소를 지어. 네가 실수로 극악소마의 발을 밟았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 이쪽 발도 밟으시겠소? 라고 해. 자, 이래도?”
“네! 그래도 오른팔이 더 좋습니다.”
“강호의 미녀들이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줄을 서. 이래도?”
“각주님은 외팔이 무인이라도 멋지실 겁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서대룡이 따라 웃었다. 요즘 여인보다는 무공에 푹 빠진 그였기에 이 농담은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서대룡을 어디에 보내겠는가?
“가기만 해! 네가 없으면 당장에 그 오른팔 자리는 장 군주를 앉힐 거다.”
“아! 남 주려니까 또 고민되는군요.”
서대룡 팔 강 진출이라는 쾌거와 함께 우린 비무장을 떠났다.
* * *
다음 날 비무대에 오르려는 진하령에게 호위인 추호가 물었다.
“혹시 편찮은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그의 걱정에 진하령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걱정 마. 별일 없어.”
사실 그녀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개최한 연회 이후 검연과도, 조신과도 만나지 않았다.
조신 같은 자가 앙심을 품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죽여버리면, 심증이 가더라도 놈의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세상은 시종의 죽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테고.
정말 마음 같아선 살려달란 말이 나올 때까지 조신을 박살 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은 할아버지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맹주로 계시는 한, 자신이 사고를 치면 그 수습은 고스란히 할아버지가 떠안아야 한다. 그래, 참자, 참아.
조신은 참아지는데, 잘 안 참아지는 것이 있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한 것이 편하게 볼 때는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막상 못 만나는 상황이 되니까 괜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건방진 시종이 뭐가 좋다고.
그녀가 비무대에 올라서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호북일미! 진하령! 호북일미! 진하령!”
“힘내세요, 진 소저!”
“사모합니다, 진 소저!”
“꼭 이깁시다!”
“국수 먹읍시다!”
“우승하십시오, 진 소저!”
그녀는 분명히 들었다. 응원 속에 섞여 있는 이상하고도 반가운 말을.
그녀의 시선이 군웅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호북일미가 자신을 쳐다봐 주는 것에 감동한 이들이 목청이 터져라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녀는 그들 속에서 검무극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같이 국수 먹자는 신호였다.
그날 그녀는 추호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그 어느 때보다 멋진 실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보법은 더없이 우아했다.
보는 사람을 열광시키는 화려한 승리를 거두며 그녀도 팔 강에 진출했다.
* * *
객잔에는 검무극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승리 축하합니다.”
진하령은 축하 인사를 받는 대신 단호히 말했다.
“우리 만나면 안 돼요.”
“왜 안 되죠?”
“그걸 몰라서 물어요? 당신이 위험해지니까 안 되죠.”
“그런데 왜 오셨습니까?”
“그건…….”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약속 때문에요.”
“무슨 약속요?”
“가보면 알아요.”
그녀가 검무극을 데리고 객잔을 나섰다.
“혹시 경공 할 줄 알아요?”
경공할 줄 아느냐고? 검무극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죠.”
“아니에요. 말을 구해서 가죠.”
괜한 걸 물었다는 듯 그녀가 말을 구했다. 검무극은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말은 탈 줄 알죠?”
“보통 시종은 말을 끄는 사람이지만, 보고 계신 시종은 특별하잖아요? 잘 탑니다.”
그렇게 두 마리의 말을 빌려서 달렸다.
그녀가 검무극을 데려간 곳은 무림맹 동쪽에 있는 동호였다.
“전에 여기 구경시켜 달라고 했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뭐 그리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그걸 잊어버려요?”
자기가 말하고선 진하령은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뭔 대화를 그리 나눴다고 이 난리를 치는 걸까? 할아버지 앞에서 난리, 조신 앞에서 난리. 동호까지 오고.’
그녀가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헝클어진 채로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얼굴을 덮은 수염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옷은 낡고 더러웠다. 대체 이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때 검무극이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저기로 가볼까요?”
“네? 왜요?”
“저기 저 언덕에서 보면 더 경치가 좋아 보일 것 같아서요.”
검무극이 데려간 곳에서 진하령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말 아름다워요!”
동호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자리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이 자리?”
“원래 시종들이 자리는 잘 잡거든요.”
진하령은 정말 이 사람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서 동호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침묵을 깬 사람은 진하령이었다.
“당신 도련님, 무림맹에 입맹하게 될 거예요. 원래라면 당신도 남았겠지요?”
“왜 자꾸 절 보내려는 겁니까? 저는 도련님과 함께 남을 겁니다.”
진하령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검무극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듯 말했다.
“그날 사람들 앞에서 나와 사귀는 사람이다, 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진 소저가 할 일은 다 했어요. 남은 일은 제 선택입니다.”
“위험할 거예요.”
“할아버지가 강제로 혼인을 시키려 할 때 마음이 어땠습니까?”
“싫었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제 인생에 간섭하는 것, 싫거든요.”
“전 싫지만 죽지는 않아요.”
“싫은 혼인 생활이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
잠시 사이를 두고 진하령이 말했다.
“혼인도 안 해봤으면서요.”
“정말 괴로워하는 사람을 옆에서 봤었거든요. 제 걱정은 마세요.”
“당신이 왜 시종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럼 제가 뭐 같습니까?”
잠시 사이를 두고 그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맹주 손녀 친구요. 우리 친구 해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왜 한낱 시종과 이런 깊은 관계까지 맺게 되는 건지.
“소저가 너무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친구 사이에 이득이나 손해를 왜 따져요? 그럼 친구 아니죠.”
검무극이 그녀가 내민 손을 꼭 잡았다.
“맹주 손녀와 친구라니!”
“시종과 친구라니!”
힘차게 악수한 후 그녀가 말했다.
“어디 가서 누가 괴롭히면 말해요, 내 친구가 무림맹주 손녀라고! 알았죠?”
“그러죠.”
“저도 어디 가서 자랑할게요.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시종이 내 친구라고.”
“다음에 언젠가 그 시종 친구가 필요할 때 불러주세요. 어쩌면 그 특별한 친구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줄지도 모르니까요.”
진하령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이상해요. 당신은.”
이 남자는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남자는 곤경에 처하지 않을 것 같았다. 괜히 이러다가 나중에 이 남자가 조신에게 죽고 얼마나 후회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때 가서 어쩌려고…….
동호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이목을 피해 무한 입구에서 헤어졌다.
검무극은 혼자 돌아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
한 마리의 독 오른 뱀, 바로 조신이었다.
“나들이는 즐거웠나?”
검무극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그를 대했다. 그가 단지 혼사를 위해서만 온 것인지, 아니면 천명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일단 놈이 어떻게 구는지 지켜볼 작정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혼자 있으니까 왜 떨어?”
“날 건드리면 진 소저가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검무극이 겁을 먹은 것처럼 굴자, 조신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고작 여자 뒤에 숨는 주제에.”
조신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뒷걸음질 치는 검무극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너같이 하찮은 놈 때문에 진 소저가 더럽혀졌다.”
조신이 일장을 내리치려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검무극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일부러 두려운 모습을 보였다.
“맹주 앞에서 그랬다고 널 못 죽일 거라 생각했다면 날 크게 잘못 본 거지.”
“살려주십시오!”
조신이 들었던 손을 내렸다.
“안 죽여. 그냥 죽이면 재미없지. 진 소저가 후회하는 모습을 봐야겠다. 눈에서 콩깍지를 벗겨내 네게 실망하는 모습을 봐야겠다. 뒤늦게 내게 매달리게 할 거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님을 검무극은 알고 있다. 만약 자신이 죽거나 실종되면 진하령은 절대 그와 혼사를 맺지 않을 것이다.
더럽혀졌다는 표현을 쓰면서 혼인은 하려고 하니, 그 혼인 생활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내 말대로 안 하면 피부를 모두 벗겨서 소금통에 처넣을 거다. 알겠나?”
“네!”
“오늘 저녁에 후기지수들을 초대해서 연회를 열 거다. 진 소저도 초대했으니 너도 거기로 와. 그리고 머리 깨끗이 정리하고 수염 깎고 와. 이 돈으로 최대한 비싼 옷을 사 입고 와야 한다.”
조신은 진하령이 이 시종 놈을 좋아한 데에는 저 꾸미지 않은 모습이 한몫했다고 여겼다. 어린 여자들의 환상 같은 거다. 꾸미지 않은 남자가 더 자신감 있어 보이는 것. 막상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오늘 그것부터 깨버릴 작정이었다.
이 시종 놈이 어울리지 않는 비싼 옷을 입고, 제 딴에는 치장한답시고 꾸미고 오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결국 이 사람도 내게 잘 보이려는 다른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하고. 오늘 소녀의 환상을 완전히 깨버릴 것이다.
“내 말대로 협조만 하면 너는 살려줄 거다. 나중에 큰돈도 줄 테고.”
“얼마나 주실 겁니까?”
“십만 냥.”
생각지도 못한 액수에 검무극은 탐욕스럽게 눈을 크게 떴다.
“꼭 주셔야 합니다.”
“약속은 꼭 지킨다. 그러니 너도 시키는 대로 잘해.”
조신이 내심 기분이 좋았다.
‘쓰레기 같은 놈!’
그렇기에 이용하기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조신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자 겁쟁이 흉내를 내던 검무극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십만 냥이나 준다는 걸 보니, 일이 끝나면 죽일 작정이군.”
혼잣말처럼 했지만 은신하고 있는 무인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이 만남에서 있었던 대화를 한 마디도 빠짐없이 그대로 맹주님께 보고하십시오. 진 소저나 맹주님에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 보고만 들어도 무림맹주는 조신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도 전해주십시오. 이번 일 마무리 지을 때, 제가 조신도 처리해드릴 용의가 있다고요. 두고두고 진 소저에게 해가 될 놈입니다. 그렇다고 무림맹에서 명문정파의 후계자를 함부로 처리할 수도 없을 테고. 결국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봐주게 될 겁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제게 맡기시라고요.”
은신한 무인은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 * *
그날 밤 진하령이 장원으로 들어섰다.
장원에는 이미 초대받은 후기지수들이 다 모인 상황이었다. 그녀는 절대 오고 싶지 않았지만, 조신이 자신을 초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시종도 초대했으니 진 소저도 꼭 오시오.”
검연이 오면 자신도 와야 했다. 이제 시종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였으니까. 독사굴에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조신이 좋은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오늘 두 사람을 부른 것은 내가 사과를 하기 위해서요.”
“사과한다고요?”
“그렇소. 그날 괜한 자존심이 발동해서 두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실수했소. 미안하오.”
진하령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지만, 조신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다. 오늘은 뱀이 연상되지 않았다.
‘그래, 기왕이면 좋게 푸는 것이 낫겠지.’
검연을 위해서도 굳이 이 사람의 심기를 건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입구 쪽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진하령과 조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