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3)
절대회귀-163화(163/424)
제163회 콩깍지는 한 겹 더.
검무극이 대청 안으로 들어섰다.
수염을 깨끗하게 깎고 머리를 단정히 정리한 그는 멋진 새 무복과 장삼을 입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단지 잘생겨서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무의 극의에 근접한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여유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하면서도 고고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진하령은 검무극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를 보는 순간 떠오른 순수한 감탄.
‘멋있다!’
정말 멋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어떻게 생긴 사람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았다. 바로 저 사람요.
그런 생각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여인들이 넋을 놓고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여인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시선을 빼앗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야?”
“나도 몰라. 누구지?”
“못 보던 소협인데?”
“잘생겼다!”
대놓고 이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며 검무극이 진하령과 조신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왜 우리에게 오지? 아, 조신이 아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검무극이 그녀에게 먼저 인사했다.
“진 소저도 오셨군요.”
진하령이 흠칫 놀랐다.
‘날 알아? 누군데 아는 척을 하는 거지?’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하지만 그녀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도 상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지금까지 봤던 검무극과 지금의 검무극은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설마 저 몰라보는 겁니까?”
정말 지금 이 순간에도 몰라봤다.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이라면 사람이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누구시죠?”
“누가 괴롭히면 말하라면서요? 이래서 절 도와주기나 하겠습니까? 몰라보고 같이 괴롭히겠는데요?”
순간 진하령이 두 눈을 부릅떴다. 바로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누가 괴롭히면 말해요, 무림맹주 손녀가 친구라고.
“설마? 당신!”
“맞습니다. 접니다.”
진하령이 자신도 모르게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게 비명까지 지를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검연 맞습니다.”
시종답지 않은 그 맑고 깊은 눈빛, 다시 보니 검연이 맞았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이렇게 멋지게 생긴 남자가 가까이 있는 것도 떨리는 일인데, 이 사람이 시종이었던 그 검연이라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수염도 깎고 머리 정리도 했습니다. 옷도 새로 사 입고요.”
당황하기는 옆에 있던 조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끔벅거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처음에 그도 검무극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의 외모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그였기에 자기보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그랬기에 검무극이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기분이 나빴었다.
자기보다 잘생긴 놈이 연회에 참석한 것도 기분 나쁜데, 그가 진하령과 함께 있는 자신 쪽으로 걸어올 때는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뭐야, 이 새끼. 왜 이쪽으로 와?
‘한데 뭐? 이놈이 그놈이라고? 그 지저분한 시종 놈이 이놈이라고? 그럴 리가? 정말 그럴 리가!’
조신은 정말이지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그 새끼가 이렇게 잘생긴 놈이었어?’
이러면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어긋난다. 신비감을 지우고 평범함을 꺼낼 계획이었는데, 진짜 신비감이 튀어나온 셈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걸 자신이 돈까지 주면서 꺼내줬다는 사실이었다.
검무극이 뒤에 서 있던 조신에게 인사했다.
“저기 조 공자께서 옷을 사 입으라고 돈을 주셨습니다.”
진하령이 놀란 얼굴로 조신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에요?”
“아, 네. 그렇소.”
진하령이 상황을 오해했다.
“오, 정말 사과하려고 마음먹었군요. 나 솔직히 당신 말 믿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아니오.”
정말이지 조신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그가 곧장 검무극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 새끼야! 꺼져! 여기서 어서 꺼지라고!
연회장에서 꺼지란 말이었는데, 검무극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들은 것처럼 후기지수들에게 걸어갔다.
“오! 비싸고 귀한 요리가 많네요. 마음껏 먹어도 됩니까? 아, 여기 술도 있네. 향이 아주 좋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가 지켜보았다. 검무극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전혀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술도 마셨다. 마치 이곳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듯,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진하령이 홀린 듯 그에게 다가갔다. 젠장, 하면서 조신이 뒤따랐다.
“당신, 정말 다른 사람 같아요.”
“평소에 워낙 지저분하게 다녀서 그렇죠.”
“왜 이렇게 다니지 않았어요?”
“시종이 꾸미고 다닐 일이 뭐 있겠습니까?”
검무극을 향한 진하령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자 조신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야!’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꿔야 했다. 콩깍지를 벗겨내려다 더 강력한 콩깍지가 씌워질 판이었다.
조신이 검무극에게 신경질적인 전음을 보냈다.
―너 이 새끼! 왜 이렇게 멋있게 꾸미고 온 거야!
그러자 검무극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꾸미고 오라고 한 사람이 당신이잖아, 하는 눈빛에 조신은 반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딱히 꾸민 것도 없었다. 수염을 깎고 머리를 정리하고, 새 옷을 사 입은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검무극은 빛이 났다.
조신은 어떻게든 검무극을 끌어내려야 했다.
“우리 진 소저에게 잘 보이려고 한껏 꾸몄네.”
“네, 일부러 멋 좀 부렸습니다.”
마치 자신을 위해서 멋을 부렸다는 말처럼 들렸는지 진하령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그 모습에 조신의 애가 탔다.
‘젠장! 이것도 아닌데.’
억지로 꾸민 것처럼 어색해야 하는데. 저 시종 놈은 원래 이런 고급스러운 옷이 잘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행동은 ‘저 연회 온다고 꾸몄어요’라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냈다. 그게 오히려 그를 더 자신감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우연인지 진 소저와 무복 색도 맞춘 것처럼 같은 색이네요.”
“그렇네요.”
그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조신이 자기 사람 중 한 명에게 전음을 보내 진하령에게 말을 걸게 했다.
잠시 진하령이 그의 인사를 받는 사이, 조신이 검무극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이 미친놈아! 죽고 싶으냐?”
“왜 그러십니까?”
“오늘 진 소저 눈에 콩깍지 벗기고 십만 냥 받을래? 아님 십만 냥 날리고 내 손에 죽을래? 네게 달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자가 정이 뚝 떨어질 짓을 해야지. 허세를 부리고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주사도 부려! 알았어?”
조신은 자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정말 몰랐다. 누군가를 이렇게 추잡스럽게 깎아내리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그냥 죽여버렸으면 죽여버렸지.
하지만 지금 그는 마음이 급했다. 새로운 콩깍지가 눈에 달라붙기 전에 어떻게든 망신을 줘야 한다. 정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그럼 돈부터 먼저 주십시오.”
“뭐?”
“오만 냥 주시면 하겠습니다. 마치고 나서 또 오만 냥 주시고요.”
“이 새끼가! 죽고 싶으냐?”
조신이 손을 번쩍 들어서 때리려 했지만 검무극은 겁내지 않았다.
“거래가 원래 그런 겁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죠.”
“이 닳고 닳은 쓰레기 새끼가!”
그때 저쪽에서 진하령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조신이 들었던 손을 내려서 검무극의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우리 시종 소협이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그러자 검무극이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 다 공자님이 덕분입니다.”
“솔직히 우리 진 소저를 위해서 준 돈이었네.”
“정말 마음도 넓으시고 멋지십니다.”
검무극이 조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신은 뭔가 열어서는 안 될 것을 열어버린 그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조신이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본장에서 무림맹에 큰 투자를 할 작정입니다.”
조신이 일 이야기를 꺼내자 검무극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조신이 가문 자랑, 돈 자랑을 열심히 했지만, 진하령의 시선은 자꾸만 다른 후기지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검무극을 향했다. 특히 검무극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협이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 웃자, 진하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찌 조신이 그녀 마음을 모르겠는가?
자신이 말을 멈췄음에도 진하령은 검무극 쪽만 쳐다보고 있었다.
조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하령은 문득 한기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조신이 말없이 검무극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녀의 마음에 사라졌던 뱀이 다시 떠올랐다.
“저런 사람이 시종인 것이 참 아깝소. 그렇지 않소?”
“타고난 운명을 어쩌겠어요?”
그녀의 대답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조신은 정말 화가 났다.
‘망할 년!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해?’
괜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앞서 진하령에게 말을 걸라고 시켰던 후기지수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비무를 유도해서 저 새끼랑 한판 붙어. 팰 때는 사정없이 패버려라.
전음을 받은 후기지수는 호영(胡英)이었다.
호영은 어떻게든 조신에게 잘 보여서 가문을 키우려는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망설이지 않고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호영이 검무극에게 물었다.
“검을 차고 다니는 걸 보니, 무공을 배운 거요?”
“그렇습니다.”
“시종이 어떻게 무공을 배운 거요?”
“주인이 훌륭한 분이라서 그렇지요.”
“어디 그 훌륭한 분이 전수한 무공 한 수 배워봐도 되겠소?”
다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하령이 말리려 하자, 조신이 그녀에게 말했다.
“진 소저는 궁금하지 않소? 저 시종이 어떤 무공을 얼마나 배웠는지?”
물론 진하령도 궁금했지만, 그보단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후기지수들과 겨룰 정도는 아니겠지요.”
“호 무인은 명문의 자제인데 저 시종을 다치게 하진 않을 겁니다.”
그때 검무극이 호영에게 말했다.
“검을 쓰면 다칠 테니, 권각술로 겨루죠.”
“좋습니다.”
호영은 내심 어이없었다. 정말 이렇게 흔쾌히 싸우려 들 줄 몰랐던 것이다.
‘어디 한 군데 확실히 부러뜨려주마.’
실수인 척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리는 정도면 조신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그럼 살살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내 평생에 시종하고 비무도 다해보고. 정말 멋진 날입니다.”
호영은 방심하고 있었다.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으니까.
호영의 주먹을 검무극이 피했다. 가볍게 피한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넘어질 뻔하면서 피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시 호영의 주먹이 날아들었고 이번에도 검무극은 바닥을 구르며 피했다. 사냥하듯 검무극을 몰아붙이던 호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웃었다.
“이거야 원 싱거워서…….”
“조심해!”
누군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퍽!
검무극의 주먹에 호영이 나가떨어졌다. 방심하다가 한 방 제대로 허용한 것이다. 게다가 쓰러지던 그가 탁자를 부수며 쓰러졌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있던 음식이 튀면서 조신의 옷이 더럽혀졌다.
그러잖아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조신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이런 썅!”
반면 검무극은 달려가서 쓰러진 호영을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상대의 상처부터 살핀 검무극과 옷에 음식이 묻었다고 욕설을 내지른 자신의 행동이 대비되면서 조신은 머쓱해졌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을 보는 시선에 경멸이 담겼다.
하지만 더 화가 나는 것은 진하령은 자신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검무극만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한 나머지 그만.”
검무극이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에게 사과했다.
그들을 대신해서 진하령이 나서서 말했다.
“사과할 일 아니에요. 비무에 집중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한 거죠.”
진하령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번 비무에서만큼은 호영이 방심하다 당했으니, 검무극의 기습을 탓할 수는 없었다.
진하령이 조신에게 작별을 고했다.
“자, 오늘은 이만 갈게요. 자, 당신도 가요.”
진하령이 검무극을 데리고 연회장을 나왔다. 뒤에서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부서졌는지는 몰라도 누가 부순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검무극은 진하령과 함께 달빛이 비치는 길을 걸어 돌아왔다.
그녀는 다시 검무극이 걱정스러웠다.
“이번 일로 당신 더 위험해졌어요.”
그러자 검무극이 불쑥 말했다.
“친구야.”
순간 진하령이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 우리 친구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
“아냐, 맞아.”
“친구야. 너는 무림맹주 손녀이자 호북일미이고 소룡전의 우승 후보다. 너는 도도하고 우아할 때가 제일 너답고 멋있어. 이렇게 매번 누군가를 걱정하는 모습은 너랑 안 어울려.”
잠시 사이를 두고 진하령이 말했다.
“그럼 너 믿어도 돼? 괜히 저런 놈에게 당해서 비참하게 죽고, 나 평생 죄책감 들지 않게 할 자신 있냐고?”
“있어.”
“정말? 그걸 어떻게 믿어?”
“친구니까. 친구 말을 믿어 봐.”
“넌 내가 도도하고 우아한 모습이 어울린다고 했지만, 나 그런 여자 아니야. 나 생각 많고, 걱정 많고, 후회 많은 소심한 성격이야. 사람 만나는 것 안 좋아하고, 그래서 어떻게 상처를 털어야 하는지도 잘 몰라. 그러니까 너, 나중에 나 놀라게 하면 안 돼.”
“그래, 그러지 않을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녀는 검무극의 말에 믿음이 갔다. 믿음의 근거가 없었지만 믿음이 갔다.
이번에는 검무극이 말했다.
“대신 너도 약속 하나만 해줘.”
“무슨 약속?”
“앞으로 살면서 뭔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를 찾아와서 말해주겠다고.”
비단 이번 천명회 일을 두고서 한 말은 아니었다. 언젠가 무림맹에도 닥쳐올 그 일의 징후가 느껴졌을 때를 두고 한 말이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그런 순간은…….”
그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인데?”
그러자 검무극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지금처럼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꼭. 자, 이만 돌아가자.”
진하령은 앞장서 걸어가는 검무극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괜한 걱정보다는 도도하고 우아한 호북일미의 모습을 보여도 좋겠다는.
저 앞에서 안 오냐며 기다려주는 검무극을 향해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