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6)
절대회귀-166화(166/424)
제166회 한마디면 되는데.
충의의 손에 들린 독충의 날갯짓 소리가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독충은 금방이라도 날아와서 물어뜯을 것만 같았지만 나는 차분히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제가 심장처럼 아끼는 수하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았지요. 그럼에도 너무나 밝고 씩씩하게 잘 컸습니다.”
충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는지 독충의 날갯짓이 더욱 빨라졌다.
“아마 그녀에게도 분기점이 있었을 겁니다. 그때 다른 길을 걸었다면 부모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갔겠지요.”
“그 이야기를 왜 내게 하는 건가?”
“의원님께서는 그 분기점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고 계시니까요.”
“!”
충의는 깜짝 놀랐다.
“알고 있었나?”
“네, 의원님께서 남몰래 베푸시는 일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왜 이렇게 돈을 밝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버려진 수많은 아이를 후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학당에 보내고, 무관에 보내고. 그렇게 살아갈 길을 마련해서 세상에 내보냈다. 그녀는 ‘돈벌레’라는 멸칭으로 불리면서도 평생을 아이들을 위해 살아온 고아들의 대모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그녀가 죽고 나서 밝혀진다. 내가 오십만 냥을 주겠다고 한 것은 치료비를 제외한 나머지 액수를 그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 것이다.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더니 독충의 날개를 떼어내 버린 후 다리를 하나씩 톡톡 뜯어서 먹었다.
“독에 내성이 생겨 일반 약으로는 내 중독을 다스릴 수 없다네. 이독제독(以毒制毒)으로 간신히 버티는 중이지.”
그로 인한 통증이 심한지 그녀가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물렀다.
“내 일에 관해서는 어떻게 알았나?”
나는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저는 천마신교 교주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 아들이라서 좋은 점이 있다. 천마신교의 후계자쯤 되면 어지간한 비밀을 알고 있어도 그러려니 한다는 점이다.
“그럼 돈을 더 준 이유는 뭔가?”
그녀는 내가 신분을 밝혔음에도 놀라지 않았고 굳이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성정이기에 평생 욕을 들어가며 꿋꿋하게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올 수 있었으리라.
“네, 저도 어르신의 선행에 제 마음을 보탠 겁니다. 제게 어르신은 충의가 아니라 대신의(大神醫)십니다.”
대신의란 말에 충의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대신의는 의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였다.
“이런 치사(致謝)를 받지 않으려고 숨긴 거네.”
충의가 들고 있던 독충을 몸통째 씹어먹었다. 너무 쓴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억지로 삼켰다.
그녀는 칭송을 바라지 않지만 나는 그 속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 번쯤은 누군가 자신의 선행을 알아봐 주길 바라지 않을까? 한 번쯤은 이런 진심 어린 존경과 칭송을 받아보고 싶지 않을까? 한 번 정도는 말이다.
회귀 전 인생에서 배운 것이 있다. 한마디 말에 아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깊은 상처와 감정이 풀어질 때가 있음을.
누군가 그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데, 딱 한 번만 말해주면 되는데. 우리는 그 한마디를 쉽게 듣지 못한다.
고맙다, 고생했다, 미안하다, 네 덕분이다…… 딱 한 마디면 되는데.
나올 듯 나오지 않는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해 마음의 병이 생긴다. 한마디 말이면 풀 수 있는 상처를 평생 가지고 산다.
나는 방금 그녀에게 한 말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고달팠던 그녀 인생을 풀어주는 한마디가 되기를. 훌륭합니다, 당신의 인생.
충의가 옆에 앉아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 역시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지금 제 손목 잡고 계십니다.”
어느새 그녀가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물론 피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 미안하네. 사람만 보면 진맥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나에 대해서 살피고 있었다. 내 말이 진짜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내 말이 아니라 내 몸의 반응을 통해서 판단하려는 것이다. 내 몸의 작은 변화를 통해서, 그녀는 맥을 짚어서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무인은 자신의 맥을 함부로 내주지 않는 법이다. 지금 그녀가 나를 진맥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은 ‘당신을 진심으로 믿습니다’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그때 내 몸을 살피던 충의가 깜짝 놀라 물었다.
“설마? 자네 천맥강화술의 대성을 이뤘나?”
과연 신의는 신의였다. 이 짧은 순간의 진맥으로 내가 천맥강화술 대성을 이룬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예전에 혈천도마의 수하들인 도귀들 덕분에 천맥강화술의 대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만난 이래 처음으로 그녀의 눈빛이 진심으로 떨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안다. 그녀의 놀람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 * *
서대룡은 꿈을 꾸었다.
결승은 고사하고 사 강 비무에서 검에 찔려 죽는 꿈이었다.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검무극이 말했다.
“오십만 냥이나 들였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너무하잖아?”
차가운 반응에 서대룡은 섭섭함이 솟구쳤다.
“너무하신 건 각주님이십니다. 저 죽어요. 죽는다고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 오십만 냥짜리 치료받자마자 죽는 경우는 없지만.”
야속한 마음에 서대룡이 소리쳤다.
“그래서 제가 안 한다고 했잖아요!”
고함을 지르면서 서대룡은 잠에서 깼다. 눈앞의 광경에 그가 흠칫 놀랐다. 꿈속에서처럼 검무극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꿈속과 달리 부드러운 검무극의 눈빛에 서대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강에서 죽는 꿈꿨어요.”
“꿈은 반대니 괜찮아.”
“각주님이 죽어가는 절 보며 오십만 냥 아깝다고 하셨다고요!”
“그럼 반대 아닌데? 사 강에서 지려나 보다.”
“제발 재수 없는 말씀 마세요.”
서대룡이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 저 몸이 안 움직여요.”
서대룡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보았다. 그는 깜짝 놀랐다. 온몸에 침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던 것이다.
“침을 잘못 놔서 몸이 마비됐나 봐요. 꼼짝도 안 해요!”
“중요한 침이라고, 충의가 마혈을 제압했다.”
서대룡이 그제야 안도했다.
“죄송해요. 괜히 다쳐서. 이렇게 큰돈 쓰게 하고.”
“이봐, 서 조사관.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거다. 아니 각주님. 괜히 비무대회에 나가라고 해서 이렇게 다치게 하고. 너무하십니다. 오십만 냥이 아니라 오백만 냥이 들어도 저 고쳐주십시오!”
“어휴, 괜히 더 미안하게 만들지 마시고 나가주십시오.”
검무극이 돌아서 나오려는데 서대룡이 뒤에서 말했다.
“솔직히 저 치료받고 싶었습니다. 말로는 너무 큰 돈이라서 안 된다고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치료받고 비무대에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치료받은 거고요. 만약 제 돈이었다면 치료받았을까요?”
“받았을 거다.”
“왜 그리 장담하십니까?”
“남의 돈이라고 쓰고 자기 돈이라고 안 쓰는 사람은 애초에 이런 고민도 안 할 테니까.”
“위장 전술일 수 있잖아요? 끝까지 착한 척하려는.”
“내게 착한 척해서 뭐 하게? 이유 하나만 대 봐.”
“…….”
“거봐, 아니잖아.”
“그런 것 같네요.”
그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방금 나온 방의 창문 아래에서 충의가 햇살을 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방에서 나눈 대화를 들었는지 충의가 내게 물었다.
“그럼 자넨 왜 내게 착한 척하는 건가? 마교의 후계자가 중원의 고아들을 걱정이라도 한다는 건가?”
질문을 하면서 충의는 내 손목의 맥을 다시 잡았다.
내 인생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되는 순감에 나는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말씀하신 대로 마교의 후계자다 보니 언제 죽을지 모를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의술을 지닌 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뿐인가?”
“달리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녀가 내 손목을 놓았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불쑥 뭔가를 내밀었다. 앞서 그녀가 먹었던 독충이었다.
“자네도 먹어볼 텐가? 맛있는데.”
“먹고 죽지만 않으면 저도 먹겠습니다만.”
“안 죽게 해줄까?”
이 순간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분기점 앞에 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원으로서 평생 해내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네. 한데 그 일은 자네처럼 혈맥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성공하면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시험이야.”
잠시 고민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무슨 시험인지 왜 묻지 않나?”
무슨 시험인지도 알고, 그 결과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서대룡을 데리고 오면서 이 기연이 과연 나에게 닿을지 궁금했다. 억지로 얻어낼 수 없는 기연이었다. 그래서 얻으면 얻고, 얻지 못하면 그냥 흘려보내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기연이 지금 내게 닿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연으로 나를 이끈 것은 서대룡이다.
“평생 고아들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해주는 시험이라면, 적어도 제게 해가 될 시험은 아니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자네 바보인가? 마교의 후계자를 죽이기 위한 계략일 수도 있지.”
“괜찮습니다. 자리 물려받을 사람 저 말고도 또 있습니다. 그 뒤에도 줄을 섰습니다.”
충의가 들고 있던 독충을 씹어먹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아파 죽겠군. 좀 주물러 주게.”
나는 충의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일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제자라도 거두시지요? 어깨도 좀 주무르라고 하고.”
“요즘 젊은 애들이 누가 독충을 좋아하겠나? 한두 달 버티다 다들 달아나 버리지.”
실제로도 그렇게 달아나 버린 제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제가 제자가 되어 드릴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게.”
“의선께선 괜찮으십니까?”
“뭐가?”
“시험에 성공하면 마교 후계자가 될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평생 욕 듣고 산 인생인데, 뭐가 걱정인가? 더 세게. 거기 옆으로. 아, 시원하다.”
* * *
서대룡이 다시 깨어났을 때, 몸에 꽂혀 있던 침은 다 제거된 상태였다. 잘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몸을 일으켜 세운 서대룡이 팔을 움직여 봤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애초에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다치기 전보다 몸이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서대룡이 밖으로 나왔을 때 충의는 마당에 앉아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쭈뼛쭈뼛 걸어간 후 그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았다.
“치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 하냐?”
“오십만 냥이나 받으셨잖아요.”
“고얀 놈. 돈 주면 감사 인사 안 해도 되냐?”
“조금만 있다 할게요.”
“착하게 생긴 놈이 왜 심술이냐?”
“엄살쟁이처럼 생겼다면서요?”
“엄살에 심술에 속까지 좁아서 쓰냐?”
그러면서 그녀가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몸은 왜 다치신 겁니까?”
“벌레 잡다 다쳤다.”
“왜 치료하지 않으셨습니까?”
“치료한 게 지금이야.”
“뭔 벌레를 어떻게 잡다가 이렇게 다치셨대요.”
“구시렁대지 말고 와서 어깨나 좀 주물러라.”
“돈을 오십만 냥이나 줬는데 뭔 어깨까지 주무릅니까?”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서대룡은 그녀에게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아! 시원하다. 네 주인 놈 보다 네가 낫다.”
“제가 어려서부터 손매가 맵다는 소릴 많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어깨도 많이 주물러 드렸었지요.”
“네 어깨는 괜찮냐?”
“정말 어떻게 그 상처가 이렇게 감쪽같이 낫습니까? 대단하십니다.”
“내공도 좀 늘었을 거다.”
“네?”
깜짝 놀란 서대룡이 내공을 살폈다. 내공이 상당히 늘어나 있었다. 같은 후기지수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내공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 못지않은 내공을 가지면서 가장 큰 약점이 사라졌다.
감격한 서대룡이 넙죽 엎드렸다.
“제 은인이십니다!”
“돌팔이 아니고?”
“그럴 리가요? 신의이십니다!”
“감사는 돈 내준 네 주인에게나 해라.”
“돈 얘기 나온 김에 좀 깎아주십시오.”
“네 주인장 거지 될까 봐 걱정되냐?”
“우리 주인은 돈 많아서 걱정 안 합니다.”
“그럼?”
“제가 다 갚으려니 너무 큰 돈이라서 그렇죠.”
“이 돈을 다 갚으려고?”
“갚아야죠.”
서대룡을 쳐다보는 충의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어깨 잘 주무르면 만 냥 까줄 수도 있다.”
“네. 신의님! 팔까지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다시 서대룡이 그녀의 어깨와 팔을 열심히 주물렀다.
“한데 각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저기 통 안에 있다.”
서대룡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마당 가운데 있는 괴이한 액체가 가득 담긴 통이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저 통에서 나는 냄새가 역해서 간신히 참고 있었다.
“걱정 안 되는 눈치다?”
“누가 누굴 걱정합니까? 세상 사람 다 걱정해도, 우리 각주님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괜히 걱정하면 저만 이상한 사람 됩니다. 들어갈 만하니까 들어가셨겠지요.”
“네게 오십만 냥이나 들이려 한 이유가 있었구나.”
자신에 대한 칭찬이었기에 서대룡은 기분이 좋았다.
“저기 가서 저 자색 통 가져와라.”
“네.”
서대룡이 인상을 찌푸리며 통을 들고 왔다. 그 통에도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놈아, 그게 얼마나 귀한 것인데 코를 막냐?”
“이게 다 뭡니까?”
“그놈들 잡느라 이 몸이 걸레짝이 된 거다.”
충의가 그것을 가져가서 검무극이 잠겨 있는 통에 부었다. 액체가 섞이면서 부글부글 거품이 일었다.
“저 안에서 숨은 어찌 쉽니까?”
“그리 걱정되면 대신 들어가든지.”
“사양하겠습니다.”
서대룡이 저만치 뒷걸음질을 쳤다.
“한데 무슨 실험입니까?”
“독충들을 평생 연구하면서 꼭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다. 네 주인이 기꺼이 그 연구의 실험 대상이 되어 주었지. 죽어서 나오거나, 변신해서 나오겠지.”
서대룡에게 검무극의 죽음은 가정에 없었다.
“뭐로 변신합니까?”
그러자 충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