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7)
절대회귀-167화(167/424)
제167회 일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늙는다.
‘만독불침지체’란 말에 서대룡은 깜짝 놀랐다.
만독불침이 되면 세상의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다. 독으로는 그를 죽일 수 없다는 의미다. 무림에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이 독이었으니, 가장 큰 약점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걸 이렇게 쉽게 이룬다고요?”
“자네 주인은 쉽게 이루겠지. 그 일을 해주는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멀고도 험난했지.”
서대룡은 검무극에게도 새삼 감탄했다. 자신을 치료해 주러 데려와서 만독불침지체가 되는 운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럽지?”
“전혀요.”
“어째서? 욕심쟁이처럼 생겨서는.”
“그 욕심쟁이가 분수를 아는 욕심쟁이거든요.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을 담는 그릇 크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운명 그릇은 소룡전에 우승하기 위해 아등바등 제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크기죠. 그것도 각주님을 만나서 엄청나게 커진 겁니다. 예전에는 정말 간장 종지만 했었죠.”
어둡고 우울한 성격으로 황천각 선배에 대한 복수심과 천마신교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간장 종지도 크게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주님 운명 그릇이 얼마나 큰지는 여러 번 봐왔습니다. 지금도 보고 있고요. 질투보다는 오히려 고맙죠. 나중에 손자들 무릎에 앉히고 해줄 말이 또 하나 늘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한 표정인가?”
“대체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낼 운명이기에 이런 길을 가시나 해서요. 본의 아니게 제가 오른팔이어서, 저도 그 운명을 피할 수가 없거든요.”
“네 그릇이 깨지겠다 싶으면 도망가면 되지.”
“다 도망가도 저는 못 가죠. 저를 업고 이곳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와서 오십만 냥을 내놓는 걸 제게 보여주셨는데요. 덕분에 전 완전히 망했습니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하면 저분을 더 강하게 해줄 다른 대법 없습니까?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아끼고 아껴둔 재료 저기 다 들어가고 있다. 해주고 싶어도 이젠 못 해줘.”
충의가 또 고통이 밀려오는지 자기 어깨를 주물렀다.
서대룡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아니. 딴 사람 만독불침지체는 만들어 주시면서 자기 어깨 아픈 것은 못 고칩니까?”
충의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 이놈아, 너는 다를 것 같냐? 아, 옆으로. 좀 더 오른쪽으로. 그래, 거기. 아, 시원하다.”
검무극은 그날부터 이틀을 더 통속에 잠겨 있었다.
충의는 여러 재료를 계속 통에 추가했고, 냄새는 갈수록 지독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재료를 넣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독한 냄새가 가득하던 통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배합한 재료가 악취를 모두 잡아먹을 향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독한 냄새들이 합쳐지고 또 합쳐지다가 마지막 것이 합쳐지면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으로 바뀐 그런 느낌이었다.
서대룡은 통에 손을 대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각주님, 힘내십시오!’
* * *
처음에는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냄새가 지독하고 더러운 곳에 빠지면 빠졌지, 이 통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아, 안 되는구나.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가 나는 곳이 이 통일 테니까.
“이 약을 먹고 들어가.”
“무슨 약입니까?”
“자넬 이틀간 죽이는 약이야. 겁나면 지금이라도 포기해도 돼.”
“포기는요. 반가운 약입니다. 살아서는 절대 못 들어갈 곳입니다.”
나는 충의가 준 약을 망설이지 않고 먹었다.
약을 삼키고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을 때, 나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새 이틀이 지났음을. 꿈도 꾸지 않았고,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이틀간 나는 정말 죽었다가 깨어난 모양이다.
그렇게 눈을 떴을 때, 이번에는 서대룡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숙고한 끝에 오십만 냥은 안 갚기로 했습니다.”
눈 뜨자마자 나를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서대룡밖에 없을 것이다.
“난 자네에게 오십만 냥 빌려준 적이 없는데?”
그때 방으로 충의가 들어오며 말했다.
“저 엄살쟁이에 생각 많은 놈은 여기 두고 가게. 내가 제자로 삼아야겠네.”
그러자 서대룡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도 그러면 좋겠지만, 제가 큰일을 앞두고 있어서요.”
“일 마치고 오면 되지. 어떤가?”
“죄송하지만 저는 이미 사부가 계십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분으로요.”
“벌레가 무서운 게 아니고?”
“물론 벌레도 무섭지만요.”
나는 충의의 장난 속에 진담이 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대룡이 내게 눈짓했다. 뭐하냐고. 어서 말려달라고.
물론 나는 말리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눈 뜨시자마자 오른팔부터 잘라내려 하시네요. 그 오른팔 못 자릅니다. 오십만 냥 내실 때, 제 팔은 만년한철로 바뀌었어요.”
내가 웃으며 충의에게 말했다.
“저 만년한철이 녹슬고 낡아서 떨어질 때쯤 연락드리겠습니다.”
서대룡은 안 되겠지만,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찾게 되면 꼭 충의의 제자로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넨 잠시 나가 있게.”
“네.”
충의가 서대룡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일어나도 되네.”
나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틀이나 정신을 잃었음에도 몸이 가뿐했다. 정말이지 이 심오한 의술의 힘이란.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납니다.”
“며칠 동안 계속 날 거야.”
“이 향기가 계속 나면 좋겠습니다.”
“그랬다간 평생 어디 잠입은 못 하겠지.”
“잠입 같은 것 안 하고 사는 인생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긴. 천마가 된다면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겠지.”
충의가 술을 가져와서 부어주었다.
“자, 내 술 한잔 받게.”
나는 그녀가 부어준 술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녀는 자신은 마시지 않고 내 잔만 채워주었다. 연거푸 석 잔의 술을 마시고 난 다음에야 더는 잔을 채우지 않았다. 술은 내가 마셨는데 속마음을 드러낸 것은 그녀였다.
“사실 난 많이 지쳐 있었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중이었지. 어쩌면 고아들을 돕는 것은 나를 지켜내기 위한 발버둥 같은 것이었을 수 있네. 내가 지쳐 쓰러지지 않게, 내가 폭주하지 않게 막아주는 지지대 같은 역할이었지.”
그 말을 이해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바였다. 낭인 시절에는 서진이 나를 지켜주었고, 대법 재료를 구하던 시절에는 복수를 향한 염원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충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자넬 봤을 때,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꼈네. 평생 느껴보지 않은 감정이었지. 아,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가 천맥강화술을 대성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지.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무심한 하늘이 드디어 내게도 기회를 주는구나.”
그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 밖을 향했다.
“저놈의 하늘은, 적어도 내 연구와 관련해서는 참 빌어먹을 하늘이었거든.”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자네가 방금 마신 술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아나?”
“저는 아무것도 못 느꼈습니다만.”
“무형지독(無形之毒)이 들어 있었네.”
나는 깜짝 놀랐다.
무형지독은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독으로 그 위력 또한 강력해서 독중지왕(毒中之王)이라 불린다. 독 세상의 천마고 독 세상에 천하제일인이다. 당연히 제조도 어렵고 해독은 더 어려운 독이다.
“저는 멀쩡합니다.”
“축하하네. 이제 세상의 어떤 독도 자넬 죽이지 못할 것이네.”
그녀의 말은 시험이 성공했다는 뜻이고, 내가 만독불침지체가 되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무형지독이라니? 확인을 너무 강한 거로 하신 것 아닙니까?”
“이러면 두 번 확인 안 해도 되니까.”
자신의 손으로 만독불침지체를 만든 후 무형지독으로 최종 시험을 하는 것은, 그녀가 꿈꿔온 인생의 화룡점정이었다.
난 지금 한 사람의 장인이 평생의 숙원을 이루는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 그녀가 느끼는 기쁨과 후련함, 시원섭섭함, 아쉬움. 이 모든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언젠가 내가 화무기를 죽이는 그 순간, 내가 느낄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에게 큰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나도 고맙네. 이 일은 내 평생의 숙원이었다네. 이제 더는 독충을 찾으러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군.”
그녀의 몸이 이렇게 아픈 것도 독충을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어이구, 시원하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 어깨도 아직 주물러 드린 적이 없네요.”
“불효자식이구먼.”
“잘 모르시겠지만, 어깨 한 번 주무르기 위해서 제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분이라서요.”
충의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보다 기운이 빠진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절정을 터뜨리고 이제 내려가기 시작한 느낌.
“이제부터는 어떤 목표로 사실 겁니까?”
“목표는 무슨? 그냥 편히 지내야지.”
“안 됩니다.”
“안 돼?”
이렇게 정열적으로 뭔가에 매진하던 사람이 일을 그만두는 순간, 그때부터 무섭게 늙기 시작할 테니까. 더 아프기 시작할 테니까.
“무림을 위해서 또 새로운 걸 연구하시고 개발하셔야죠. 그래서 또 저 주십시오.”
“진짜 욕심쟁이는 여기 있었구먼.”
어깨를 주무르던 내가 앞으로 가서 충의의 팔목을 잡았다. 마치 진맥하듯 손목을 잡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짐짓 진맥하는 시늉을 한 뒤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오십 년은 편히 사실 몸입니다. 일하십시오!”
그녀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다 이해하고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끼, 이 사람아.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오십 년을 더 살라고? 악담하지 말게.”
“제가 다시 찾아뵙고 꼭 낫게 해드리겠습니다.”
“빈말이라도 고맙군.”
“감사하다는 말씀은 평생 제가 드려야 할 말씀입니다. 어르신 덕분에 평생 중독 걱정은 하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었네. 한데 자넨 용감하게 목숨을 걸었지. 그 용기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게.”
“이 은혜는 앞으로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중원의 서호객잔에 기별을 주시면 제가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지.”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서대룡이 기쁜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두 분 모두에게 감축드립니다.”
그렇게 우리가 작별 인사를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충의가 독충을 내밀었다.
“이거 하나 먹고 가! 맛있어.”
“죄송하지만 저도 벌레는 싫습니다.”
내가 먼저 달렸고, 서대룡이 내 뒤를 따라 내달렸다.
두 사람이 멀리 떠나는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충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의원으로서 사명은 다했습니다.”
잠시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습관적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구, 팔이야.”
* * *
나는 서대룡을 업고 쾌속보로 내달렸다.
서대룡은 올 때보다는 덜 힘들어했다. 이미 한 번 경험도 했고, 내공이 늘어난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업혀서 온갖 걱정을 다 했다.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상대는 누가 되었을까요? 도착했는데 늦어서 탈락하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꿈에서처럼 사 강 전에서 죽게 되는 것 아닐까요?”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해!”
“제 나름의 요령입니다. 최악의 상황까지 자꾸 떠올려서 김이 빠지게 한 다음에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거죠.”
“효과는 있었고?”
“모르죠. 아직 그런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서요.”
“그래서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거다!”
그렇게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돌아왔을 때,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어?”
서대룡이 놀란 얼굴로 무림맹의 벽보를 쳐다보았다. 이번 소룡전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는 벽보였다.
“저 결승전에 진출했는데요?”
서대룡 다음 조 팔 강 비무에서 사고가 터졌다.
그 비무에서 한쪽이 치명상을 입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상대의 고의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서대룡과 사 강에서 붙을 상대가 탈락했고, 자동으로 결승에 올라간 것이다.
“내가 꿈은 반대라고 했잖아? 온갖 걱정 다 쓸데없다고 했지?”
내 말에 서대룡은 여전히 벽에 붙은 공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 이렇게 결승에 가도 되는 건가요?”
“꼼수를 쓴 것도 아니고, 반칙을 쓴 것도 아니고. 못 갈 게 뭐 있어? 자고로 재능파도, 노력파도 운 좋은 놈은 못 이긴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는데요.”
“살다 보면 운도 바뀌는 법이다.”
서대룡이 나를 돌아보았다. 눈빛에 그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운, 전부 각주님 덕분입니다.
“소룡전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꼭 우승해서 각주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 한 단계 남았네요.”
“그 마지막이 문제지.”
운이 통하지 않을 상대가 결승에 진출했다. 아무런 이변도 허용하지 않은 채 무림맹주의 손녀 진하령이 결승전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이번 결승전은 이변의 화신인 서대룡과 불변의 우승 후보 진하령의 대결이 되었다.
“저 어떡하죠? 떨려서 도를 뽑지도 못할 것 같아요.”
“도는 못 뽑아도 글은 읽을 수 있겠지?”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품에서 복주머니를 꺼냈다. 바로 혈천도마가 서대룡을 위해 줬던 계략 주머니였다.
“드디어 이걸 쓸 때가 되었다는 의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