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
절대회귀-17화(17/424)
제17회 악인은 흥분하지 않는다.
마군주와 헤어지고 의방으로 갔다.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서대룡이 깜짝 놀랐다.
“어? 이 공자님이 여길 어떻게?”
내가 그곳에 온 것이 의외인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나?”
“아닙니다. 이 공자님이 의방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자네가 와 있는 것이 더 놀라운데?”
“네?”
“동료들에게 미움받는다면서?”
“그래서 만회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말과는 달리 함께 있던 동료들과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친 친구 상태는?”
“지금 마의(魔醫)께서 치료 중이십니다. 마의 어르신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불러야지. 임시로 맡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 일하는 동료인데.”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서대룡도, 그 옆에 있던 황천각 조사관들도 살짝 감격한 기색이었다.
잠시 후 마의가 치료실을 나왔다.
본교에서 의술이 가장 뛰어난 신의(神醫)인 그를 정파에서는 마의라 불렀다. 신의는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해서 우린 그를 마의라 불렀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네. 대신 한동안은 요양해야만 복귀할 수 있을 거네.”
“최고로 좋은 약을 써주십시오.”
“그러지.”
우리의 대화를 들은 황천각 조사관들이 내게 와서 고마움을 전했다. 임무 중에 다치더라도 이렇게 마의에게 직접 치료를 받을 기회는 없었으니까.
거처로 돌아오면서 서대룡이 물었다.
“마군주가 뭐라던가요?”
“이쯤하고 돌아가 주기를 바라더군.”
“일 대주가 죽은 것에 대해서는요?”
“이번 일의 배후를 그놈으로 하자네.”
서대룡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수하가 죽었는데요?”
“가장 아끼는 수하가 아니라 제일 잘 이용하던 수하겠지. 곧 다른 이가 그 공백을 채울 거고. 대체 마군주에게 뭘 기대한 거야?”
“전 그가 수하의 복수를 위해 미쳐 날뛸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다. 악인들이 더 잘 흥분할 것 같지?”
“아닙니까?”
“그건 파락호 놈들이나 그렇고. 진짜 악인들은 쉽게 흥분하지 않아. 오히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쉽게 흥분하지. 금세 감정이 북받치고.”
물론 마군주는 내게 큰 악의를 품었을 것이다.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내 심장에 검을 박아넣으며 오늘의 치욕을 되새기려 하겠지.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미끼를 던져놨으니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보자고.”
“미끼요?”
“물면 말해줄게.”
사건을 덮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마군주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 할 때다.
“그럼 저는 이제 뭘 하면 됩니까?”
“나랑 술이나 마시자.”
그러자 서대룡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디가?”
“술 사러요. 좋아하시는 술 있습니까?”
“자네 마시고 싶은 거로 사. 자, 여기 돈.”
내가 돈을 꺼내주려 하자 서대룡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대낮부터 서대룡과 술을 마셨다.
그가 사 온 술은 달아서 마시기는 좋았는데, 과음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제가 단 술을 좋아해서요.”
“먹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가끔 술은 마십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서대룡이 속마음을 드러냈다.
“일전에 절 보고 권력지향형 인간이라고 하셨지요?”
“끝에 인간이란 말을 붙이니까 너무 매정해 보인다. 그냥 권력지향 성향이 있다고 하자.”
“그게 그거죠.”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무기력한 것보단 낫잖아?”
침울해 보이는 것과 별개로 서대룡은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꿈이 없는 사람이 ‘변화’를 이야기하진 않을 테니까.
“솔직히 저 출세하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본교의 부정부패를 막아서 정의를 구현하고 싶은 마음, 요만큼도 없습니다. 저 하나 먹고 살기도 벅찬걸요.”
이 자리에 이안을 데려왔어야 했다. 이안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마음이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왜 주눅이 들어? 고개 들어!”
서대룡이 고개를 들었다.
“몇 살이지?”
“서른둘입니다.”
“와! 보기보다 나이 많네.”
나는 깜짝 놀랐다. 스물서너 살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하긴, 아무리 똑똑해도 특별조사관이 되려면 입각하고 십 년 이상은 경험을 쌓아야 했겠지.
“왜 조사관이 된 거야?”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공으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절정 고수가 될 수 있는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고, 키가 작아서 무공에 적합한 체형도 아니고…….”
황천각은 조직 성격상 전투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권위로, 교내의 규율을 지키는 곳.
따라서 황천각 조사관은 무공이 강한 사람보다는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며 조사 대상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한심하게 들리시겠지만, 무공으론 자신이 없어서 조사관을 선택했죠.”
“자꾸 그걸 강조하는 걸 보니, 무공에 미련이 남는가 보네.”
“누군들 아니겠어요? 무림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지금도 안 늦었어.”
“늦었습니다.”
“이건 좀 한심하게 들리네.”
서대룡이 내려다보던 술잔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늦어서 안 된다고? 네가 익힌 무공이 약해서 못 한다고? 키가 작아서라고 했나? 정말 그래서라고 생각해?”
아무런 변명도 못 하고 서대룡은 들고 있던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진실로 두들겨 맞으니 뼈가 아픕니다.”
“나중에는 가만있어도 뼈가 쑤실 거다. 늙기 전에 움직여야지.”
“저보다도 어리시면서 잘도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난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때 황천각 조사관이 와서 뭔가를 전해주었다.
“마군 측에서 이걸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자와 수천 냥에 달하는 전표들이었다.
“미끼를 물었네.”
책자는 살인청부록(殺人請負錄)이었다. 일대의 마군들을 동원해서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은 청부 장부.
“이것을 일 대주 고당의 집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장부에는 일대 무인 중 누가 청부에 동원되었는지, 얼마를 받고 누굴 죽였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청부록에 적힌 마군들은 아까 내 손에 죽은 자들이었다.
청부록에서 그들이 활동한 부분만 뽑아서 새 청부록을 만든 모양이다. 이미 죽은 자들을 이용해서 이번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도. 게다가 건수도 서너 건 정도로 축소해서, 고당과 몇몇 마군들의 일탈 정도로 처리했다. 마군주 자신의 책임은 최소화한 것이다.
내가 책자를 서대룡에게 건넸다.
“찬물에 얼굴 담그고 술 깨!”
“네. 전표부터 조사하겠습니다.”
“소용없어. 추적 불가능한 전표일 테니까. 그보단 다른 것을 조사해줘.”
“말씀하십시오.”
“일 대 마군 중에 제일 똑똑한 놈이 누군지 알아봐. 분명 어울리지 않게 학식도 높고 똑똑한 놈이 하나 박혀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나는 마군주를 다시 만나고 와야겠다.”
“그는 왜요?”
“시간을 좀 벌어야 하거든.”
서둘러 방을 나선 우린 각자의 일을 위해 움직였다.
다시 만난 마군주는 한결 마음이 편한 표정이었다.
“일대주 고당의 집에서 증거가 나왔습니다.”
“오, 잘 되었구먼.”
“이로써 한숨 돌렸습니다.”
“하하, 이거 축하주 마셔야겠구먼. 예약해 둘 테니 이따가 어제 그곳에서 보세.”
“한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또? 이번에는 뭔가?”
“이걸 마군 측에서 가져왔습니다. 저희 쪽에서 찾아냈어야 했는데.”
그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뭘 그리 시시콜콜 따지냐는 거다.
“출처가 그리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총군사가 어디 보통 사람입니까? 마군 측에서 받은 정보라고 밝혀지면, 대번에 이번 조사과정과 결과를 의심할 겁니다. 나중에 밝혀지면 저까지 위험합니다.”
“하면 어쩌자고?”
“잠깐 조사하는 척이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딱 하루만 대대적인 조사를 할 테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저라고 계속 있고 싶겠습니까?”
그를 설득할 결정적인 한 가지.
“기밀 서류는 뒤지지 않겠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문건으로 충분합니다. 어차피 형식적인 조사니까요.”
그 말에야 비로소 마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좋네. 수하들에게 협조하라고 말해두겠네.”
마군주의 허락하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시작되었다.
마군의 장부들과 문건들이 조사실로 옮겨졌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마군주가 난처해할 기밀 서류는 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필요 없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찾은 것은 그들이 처음 마군을 지원했을 때 써냈던 지원서와 위험한 임무를 가기 전에 남긴 유서들이었다.
나는 은밀히 교내에서 제일 실력 좋은 필적 전문가를 불러왔다.
그리고 가져온 자료를 통해 청부록을 기록한 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도록 했다.
조사를 끝낸 서대룡이 돌아왔을 때, 난 점쟁이 흉내를 냈다.
“일대 무인 중에서 누가 제일 똑똑한 자인지 맞혀볼까?”
설마 하는 그에게 한 사람의 이름을 댔다.
“양구(梁九)지?”
“헛, 어떻게 아셨습니까?”
필적 대조 결과 청부록을 작성한 자가 바로 양구였던 것이다.
이제 누가 마군주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었는지 알아냈다. 거기에 필체 대조를 통해 확실한 증거까지 확보했고.
“이제 어쩌죠?”
“어쩌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지. 딴 사람들 모르게 양구를 마가촌 주점으로 데려와. 할 수 있겠어?”
“한 번 머리를 써보겠습니다.”
“믿어, 수석입각!”
한 시진 후, 서대룡은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양구를 약속 장소로 정한 마가촌의 한 주점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를 데려온 것은 황천각 소속의 미녀 조사관 조향(曺響)이었다.
“여기 음식이 제 입맛에 맞더라고요.”
“나도 이곳 요리 좋아하오.”
양구는 어쩌면 오늘 이 여인과 황홀한 잠자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빠져 있었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평소에 손님이 많은 곳인데.”
양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붓하고 좋잖아요?”
“하늘도 우리의 첫 식사를 환영해주는가 보오.”
거창하게 하늘까지 들먹이는 그를 조향은 웃으면서 맞춰주었다.
“첫눈에 반하는 인연도 있다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어요.”
“분위기도 좋은데 우리 한잔합시다.”
“좋아요.”
양구가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제일 좋은 술과 요리를 내와라.”
그러자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와 서대룡이 밖으로 나왔다.
“아쉽지만 술은 다음에 마셔야 할 것 같다.”
나의 등장에 양구는 깜짝 놀랐다.
“이 공자?”
대체 무슨 상황인가 눈알을 굴리던 그가 무섭게 조향을 노려보았다.
“망할 년! 나를 속였구나!”
빡.
다음 순간 양구의 턱이 돌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서대룡이 벼락처럼 그에게 쇄도해 한 방 날린 것이다.
“너 따위에게 욕 들을 사람이 아니다.”
서대룡이 내 흉내를 냈다. 그는 놈의 얼굴에 발바닥을 보이며 무섭게 말했다.
“너도 너희 대주처럼 대갈통을 터뜨려 주랴?”
양구가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서대룡은 자기 덩치의 두 배는 되는 양구를 전혀 겁내지 않았다. 나를 믿어서라기보단,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조사관들이 와서 양구를 제압해 뒷문으로 데리고 나가는 사이, 서대룡은 조향에게 다가갔다.
“고생했어.”
“저야 조언해 주신대로만 했어요. 마군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소문나신 분이라서 같이 식사하고 싶다고 했죠. 이렇게 쉽게 따라나설 줄은 몰랐지만요.”
“너라면 째려보면서 밥 먹자 했어도 왔을 거야.”
순간 조향이 야릇하게 웃었다.
“칭찬이시죠?”
서대룡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향이 나와 서대룡에게 인사를 한 후, 그곳을 나갔다.
둘만 남자 내가 서대룡에게 말했다.
“남자네, 아주 상남자여.”
“네?”
“아까 그 친구 좋아하지?”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박력 넘쳤는데?”
내 앞에선 칙칙하던 녀석이 조향 앞에서는 빛이 났다.
“그냥 후뱁니다.”
서대룡이 붉어진 얼굴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슬슬 마무리 지어야지. 그러니 조사관이랑 집행무인들, 동원할 수 있는 만큼 모두 동원해.”
“네!”
“아까 그 좋아하는 후배도 불러!”
“아니라고 했습니다!”
괜히 목청을 높이며 서대룡이 후다닥 그곳을 나갔다.
“이렇게 표가 나서야…….”
나는 주방으로 가서 술을 한 병 가져와서 주점 난간에 걸터앉았다.
“이리 나와!”
그러자 건물 옆에서 이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나왔다.
“미련곰탱아, 혼자 노는 것이 그렇게 안 돼?”
“그냥 잘 계시나 궁금해서요.”
“이리 와. 기왕 왔으니 한잔하자.”
“제가 잔 가져오겠습니다.”
“됐어.”
내가 병 채로 술을 마신 후, 술병을 그녀에게 건넸다.
“마시고 줘.”
“감히 어떻게요?”
“왜? 내가 마신 거라 더러워?”
“아뇨, 그럴 리가요. 감히 제 입을 대기가 송구해서 그렇죠. 마십니다, 마셔요.”
그녀가 술을 마셨다. 최대한 입을 대지 않고 마시려다 왈칵 쏟아서 옷을 버렸다.
“죄송해요, 도련님.”
“이안아.”
“네.”
“안 그래도 된다.”
“……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래도 넌 안 그래도 돼.”
다시 그녀에게 술병을 받아서 술을 마셨다.
“그래도 며칠 못 봤다고 반갑고 좋네.”
이안이 배시시 웃었고 그녀의 눈은 살에 파묻혔다. 정말 기뻐서 웃을 때는 표가 난다.
“무공수련은 잘하고 있어?”
“네,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그 이상이 필요해. 최선은 악인들도 다하니까.”
“이렇게 말씀해주시면 저도 모르게 힘이 나요. 도련님 충고는 중독성이 있어요.”
“자꾸 들으면 싫을걸?”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녀에게 술병을 건넸다.
“내 걱정은 그 술이랑 마셔버리고, 돌아가서 기다려.”
그리고 이안에게 끝내주는 안주를 덧붙여주었다.
“이쪽 일은 오늘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