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0)
절대회귀-170화(170/424)
제170회 몸이 먼저 안다.
“소저가 어떻게 여길 온 거요?”
질문하는 서대룡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곳에서 그녀를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저도 초대받았어요.”
“어떻게 말이오?”
오늘 연회는 소룡전과 관련 있는 사람만 초대받았다.
그러자 여인의 입에서 놀라운 사실이 흘러나왔다.
“저는 삼 년 전에 열렸던 소룡전에서 팔 강에 진출했었어요.”
서대룡은 물론이고 주위에 있던 후기지수들도 깜짝 놀랐다.
소룡전은 삼 년에 한 번씩 열렸으니 여인은 지난 대회의 팔 강 진출자였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룡전 축하연회에는 과거 본선 진출자 중 무림맹에 속해 있는 이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전 백룡단(白龍團) 제삼대 일 조장 소옥(邵玉)이에요.”
“아, 무림맹 소속 무인이셨군요.”
그것도 백룡단 조장이었다. 수줍게 다가와서 응원하고 갈 때만 해도, 무림맹 복식이 아니어서 그녀가 무림맹 무인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저는 몰랐습니다.”
“당연히 모르셨겠죠. 제가 말씀을 안 드렸으니까요.”
“왜 저를 응원하신 겁니까?”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서대룡의 흥분된 감정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 같은 설렘이.
반면 소옥은 그에 비해 차분했다.
“서 무인을 보니까 예전에 소룡전에 참가하던 제 예전 모습이 생각났어요. 저도 촌에서 올라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저를 아는 사람도 없었죠. 심지어 객잔에서 묵을 돈이 부족해서 나중에는 산에서 야영하다가 내려와서 대회에 참가했었어요.”
소옥은 그런 일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모습이 서대룡에게 더욱 좋게 다가왔다. 그녀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전 서 소협의 비무를 빠짐없이 다 봤어요. 정말 훌륭한 도법이었어요. 특히 결승 비무 때는 너무 멋졌어요. 심장이 너무 뛰어서 비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고 싶었죠.”
다른 사람들은 멋진 비무에 감동해서 다시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다는 의미로 들렸지만, 서대룡에게는 자신이 좋아서 올라오고 싶었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진 소저를 이기다니. 정말 역대 소룡전 중에 최고의 비무였어요.”
서대룡은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우승하고 나서 여러 칭찬과 찬사를 받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받는 이 순간이 제일 좋았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멸마대(滅魔隊)로 가시겠네요?”
멸마대는 젊은 고수들로 이뤄진 무림맹의 최정예조직이었다. 대대로 소룡전 우승자들은 멸마대로 들어갔다.
“소저가 계신 백룡단에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소옥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멸마대에서 시작하는 것이 무림맹에서 출세를 위한 왕도니까요.”
“응원해주신 덕분에 우승까지 했습니다. 해서 제가 따로 식사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정말 큰 용기를 낸 제안이었다.
여자에게 승낙보단 거절을 많이 당한 인생이었기에, 서대룡은 내심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런 떨림이 무색하게도, 소옥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야 영광이죠. 소룡전 우승자께서 밥을 사주시는 거니까요.”
서대룡은 정말 날아갈 듯 기뻤다.
그 모습을 검무극과 진하령이 창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삼 년 전 소룡전에서 천명회에게 포섭되었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삼 년 전에도 천명회는 무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이 자들은 생각보다 무림맹에 뿌리 깊게 들어와 있구나.’
여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뜻밖의 사실까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진하령에게 물었다.
“저 여인 알고 있어?”
“소 조장?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지.”
“어떤 사람인데?”
“털털하고 성격도 좋고,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고. 한데 의외네. 당신 도련님을 저렇게 응원하고 있었을 줄은. 왜? 도련님 걱정돼? 여우에게 홀려서 상금이라도 홀랑 갖다 바칠까 봐?”
“당연히 걱정해야지. 시종인데.”
그때 불쑥 진하령의 본심이 튀어나왔다.
“그 시종 그만두면 안 돼?”
그녀는 말을 하고 나서 아차, 했다. 자고로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심지어 말하지 말아야지 했던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내친걸음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하고 싶었던 말을 해버렸다.
“그냥 일반 무인으로 살아가면 안 돼? 무공을 배웠으니 입맹 시험을 쳐봐도 되잖아?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줄게.”
검무극이 아무 말이 없자 진하령이 황급히 말했다.
“오해는 마! 당신이 시종이라고 부끄러워서 이러는 것 아니니까. 새로운 인생도 있다는 말이었을 뿐이니까.”
그녀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혹여라도 검무극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까 걱정했다.
이윽고 검무극이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자주 하던 말이야. 새로운 인생 좀 살아보라고.”
“누구에게?”
“있어. 변화 싫어하는 고집쟁이가.”
“당신처럼?”
검무극이 웃으며 다시 서대룡 쪽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인기를 독차지하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서대룡의 시선은 자꾸 한곳으로 쏠렸다.
* * *
다음 날 서대룡은 소옥을 만나러 나갔다.
식전 댓바람부터 일어나서, 목욕하고 머리 빗고, 이 옷 저 옷 갈아입느라 한바탕 난리를 쳐놓고선 말은 또 이렇게 했다.
“그녀가 좋다기보단, 저를 응원해주던 사람과의 만남이죠. 순수한 마음입니다.”
“두 번만 순수했다간 입이 찢어지겠다. 그만 좀 웃으시지.”
서대룡이 그녀를 너무 좋아해서 걱정되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상심이 클 텐데.
그렇게 출전하듯 기세 좋게 나갔던 서대룡이었는데, 돌아왔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풀이 죽어 있었다.
“왜? 잘 안 풀렸어?”
“아뇨. 잘 놀다 왔습니다. 술보다는 차 좋아하고, 산책하는 것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산책하다 왔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잠시 사이를 두고 서대룡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게 분위기 좋게 앉아 있는데,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거 아닌데? 내 인생이 이렇게 잘 풀릴 리가 없는데. 마치 누군가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어요. 이렇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을 대비해야지?”
지금껏 잠들어 있던 본능이 깨어난 모양이다. 운명이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람을 이렇게 흔들어 깨우는 법이니까.
“그 여인에게 말했어?”
“안 했죠. 최대한 표 안 내고 웃으면서 헤어졌습니다.”
“서 조사관. 내가 말했지. 자네가 선택한 그 길은 다친 팔을 동여매고 비무대에 오르는 길이라고.”
“온몸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도 걸어가게 되는 그런 길이라고 하셨죠.”
“그래. 사람을 만나도 의심부터 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는 일도,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기도 쉽지 않은 길이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서대룡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여자, 수상합니다. 의도적으로 제게 접근한 것 같아요. 혹시 천명회에서 보낸 사람 아닐까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가 흠칫 놀랐다.
“맞아요?”
“…….”
“정말 맞아요?”
서대룡의 목소리가 떨렸다.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다.
“맞다. 그녀는 천명회 사람이다.”
“!”
서대룡이 눈을 크게 떴다. 하늘이 무너지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서대룡은 차분했다.
“역시 제 예감이 맞았군요.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처음부터 이상했어요. 잘생긴 후기지수들 천지인데, 굳이 내게 와서 응원할 때부터 알아봤어요. 속으로 절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을까?”
“우리 그런 자학보다는 자네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맞힌 것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쪽으로 가는 게 어떨까?”
“각주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결승 비무 때.”
“그럼 왜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괜히 어색한 연기하다가 표가 날까 봐.”
“그럼 지금은 왜 알려주시는 거죠? 그냥 모른 척 넘어가면 될 것을.”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으니까.”
“그게 뭐죠?”
“자네 생존본능이 본격적으로 깨어난 것 같다.”
내 말에 서대룡은 깜짝 놀랐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무인의 생존본능은 다르다. 고수가 될수록 또 다르고. 몸이 먼저 안다. 상대가 아무리 웃으며 좋은 말을 해도, 몸이 거부하는 거지. 온몸의 솜털이 서고, 심장이 뛰고. 반대로 오늘 자네처럼 기분이 가라앉을 수도 있고.”
“제 생존본능이 발휘된 것이군요.”
“그래. 이 생존본능이 어떻게 발휘되었고, 또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해라.”
서대룡은 감동했다. 천명회주를 잡는 일보다 자신의 생존본능을 더 중요하게 여겨주고 있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각주님.”
“이제부터 연기 잘해야 한다.”
“괜한 걱정이셨습니다. 저 생각보다 연기 잘합니다. 저 음흉한 놈이라고요.”
“두고 보면 알겠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자네가 해야지. 그녀가 자넬 천명회로 이끌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시간이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친해지려고 마음먹는다면, 몇 달 혹은 일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빨리 해결하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잠시 고민하던 서대룡이 한 가지를 방법을 떠올렸다.
“연회장에서 그녀가 했던 말 기억 나십니까? 삼 년 전 소룡전에 참여하러 왔을 때 저와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말요. 저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을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동질감을 이용하겠다? 자기도 경험했던 감정이니까?”
“네.”
“한 가지 더. 배후를 소개하는 자리에 반드시 나도 동행하게 해야 한다.”
서대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 * *
이틀 후, 서대룡과 소옥은 무림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와 있었다.
“여기 경치가 좋습니다.”
“제가 답답할 때면 찾는 곳이에요.”
“멋진 곳이네요.”
서대룡은 끝도 없이 펼쳐진 무림맹의 광활함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천마신교보다 더 큰 곳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무림맹의 규모도 못지않았다.
“사실 그날 소 조장님 말씀에 감동했었습니다. 대회에 참가하셨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돈도 없어서 산에서 주무셨다는 말씀요. 저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저도 이곳 무림맹에서 꼭 성공할 겁니다.”
“쉽지 않을 거예요.”
“네?”
“아직 정식으로 입맹도 안 한 분에게 이런 말씀 드리려니 망설여지지만, 서 무인을 생각해서 말씀드릴게요. 무림맹에서는 후원해주는 뒷배가 없으면 출세할 수 없어요. 조장까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주가 될 수는 없어요. 정말 어떻게 미친 듯이 노력해서 대주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단주는 절대 될 수 없어요. 한계가 명확하죠.”
서대룡의 연기만큼이나 그녀의 연기도 대단했다. 진실을 몰랐다면 정말 걱정해서 해주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아마 서 무인은 더 상심하게 될 거예요. 우승자 출신이니까요. 조장으로 시작해서 만년 조장으로 끝날지도 모르죠. 실력으로 극복한다? 어떻게요? 요즘 같은 평화 시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성공 신화는 이야기책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서대룡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서대룡은 전혀 위화감 없이 지금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줄을 만드세요. 자존심 따윈 버리고 자기를 밀어주려는 사람에게 충성하세요. 저는 그렇게 했어요.”
“소 대주가 잡았던 그 줄, 저도 잡게 해주십시오. 저 무인의 자존심, 그딴 것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그녀를 서대룡이 졸랐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이렇게 서 무인과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가 한 번 말씀드려 볼게요.”
“고맙습니다.”
“기대하진 마세요. 어르신이 안 된다고 하실 수도 있어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뭐죠?”
“제 시종도 함께 소개해 주십시오.”
“시종을요?”
“만약 무림맹이 그런 곳이라면 저도 제 나름대로 힘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시종을 입맹시켜서 제 오른팔로 키울 작정입니다. 아무도 없는 무림맹에서 한 사람이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그놈 충성심 하나만은 믿을 수 있습니다.”
서대룡은 촌놈이 뚝심을 발휘하는 것처럼 밀어붙였다.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서대룡이 간곡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꼭 부탁드립니다.”
* * *
소옥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그녀는 서대룡과 나를 데리고 무림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장원에 도착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주위를 지키는 복면인들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가 소개해 주려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
“어르신, 옥입니다.”
“들어오너라.”
우린 소옥을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큰 방의 중간에는 휘장이 내려와 있어서 상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난 신안술을 발휘했다. 눈에 힘을 주고 휘장 너머에 누가 있는지를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군지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진룡장주 조이백(曺梨伯).
바로 조신의 아버지였다.
조신을 포섭한 사람이 이 조이백이었거나, 아니면 천명회가 이들 부자를 각자 포섭했거나. 만약 그런 경우면 서로가 포섭당한 것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놀라운 일이었다.
조이백이 휘장 너머에서 나직이 말했다.
“무림맹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그의 기도는 무림맹주 옆에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어떻게든 무림맹주와 사돈을 맺으려는 아버지 조이백과 지금 휘장 뒤의 위압감은 완전히 달랐다. 이 모습이 그의 진면목이리라.
서대룡이 머리를 조아리며 정중히 말했다.
“네!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화무기가 휩쓸고 간 후, 신룡가가 정파 무림의 기둥이 되었는지를. 이때부터 이렇게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조이백이 천명회주인가? 아니면 천명회주는 따로 있는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점차 몸통을 드러내고 있는 천명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괴물이라는 점이다.
“내가 돕는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것이네. 하면 자네는…….”
조이백이 나직하게 덧붙여 물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