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7)
절대회귀-177화(177/424)
제177회 임무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서대룡은 세워둔 마차 옆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내가 얼마나 잤지?”
“충분히 주무셨어요. 아니, 어떻게 무인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잘 수가 있습니까?”
“자면서도 다 경계하고 있었다.”
“코를 그렇게 골면서요?”
정말 한 번도 깨지 않고 곤히 잤다.
물론, 서대룡은 모를 것이다. 진짜 위험이 느껴지면 천마호신공이 나를 깨운다는 것을.
“배고프시죠? 이거 좀 드세요.”
서대룡이 미리 출발 전에 객잔에서 사둔 음식을 내놓았다. 꼼꼼하게도 내가 즐겨 먹는 요리들이다.
“이번 식사 이후엔 사냥해서 먹어야 할 겁니다.”
큰 싸움 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별것 아니라면 아니지만, 사람은 이런 작은 것에 감동하기 마련이다. 고맙다, 대룡아.
배불리 먹고 물까지 시원하게 마시니 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앉아서 모닥불을 쬐는데 서대룡이 금창약을 건넸다.
“그럼 이제 치료하셔야죠.”
피에 젖은 옷과 귀호의를 벗었다. 그리고 극품천잠사를 풀어서 다시 흑마검의 손잡이에 감았다. 점차 극품천잠사가 피에 젖어서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씻을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피 묻은 천으로 감긴 흑마검의 손잡이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가 난 곳들에 금창약을 발랐다. 치명상은 피했지만 여기저기 베이고 긁히고, 온통 시커멓게 멍든 곳이 많아서 몸은 엉망이었다.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몸에 그렇게 상처가 많으면 어쩝니까? 여자들이 보면 다 달아나겠네.”
“나중에 환골탈태해서 싹 갈아엎을 거다.”
“그런 기연이… 쉽게 오겠냐고 하려고 했는데. 각주님이라면 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약을 다 바르고 서대룡이 사둔 새 무복으로 입었다.
“딱 맞네. 마음에 든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첫 임무가 성공이었어.”
“우리 마지막 임무가 성공이었죠.”
어떤 사람을 보면 딱 기분이 좋아지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태사의에 앉아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날 내려볼 때라거나, 혈천도마가 그 큰 멸천대도를 땅바닥에 푹 박고는 그것에 기대있을 때라거나.
서대룡과는 이런 실없는 농담할 때다.
“정말 마차에서 기다리면서 열 번은 들어갈까 고민했습니다.”
“들어왔으면 나는 또 인질 구하느라 힘들었겠지.”
“그럼 더 성장하셨겠죠. 들어갈 걸 그랬나?”
그러면서 서대룡이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한차례 너스레를 떤 후에 서대룡이 이번 임무에서 느낀 바를 말했다.
“비무 꿈을 자꾸 꿉니다. 비무대 위에서 들었던 함성이 들리기도 하고요. 그 순간이 그립습니다. 그걸 보면 저는 숨은 고수 이런 것보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무인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어차피 그 길로 가야 하잖아.”
“네?”
“마존이 될 테니까.”
혈천도마가 자신의 무공을 전수한 이상, 현재는 후계자의 길이 정해진 상태.
그러자 서대룡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각주님. 제가 마존이 될 수 있을까요? 정말 마존이란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자네 사부가 쉽게 자기 자리를 내줄 사람처럼 보여?”
“아니죠.”
“한데 뭘 걱정해? 자신이 안 믿어지면, 사부의 판단을 믿어.”
“그래도…… 안 믿겨서요. 내가 마존이라니.”
하긴. 일개 황천각 조사관이 마존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쉽게 실감이 가는 게 이상하겠지.
“저, 정말 죽으라고 노력할 겁니다.”
불타오르는 서대룡에게 나는 차분히 말했다.
“노력이야 당연히 해야겠지만, 이건 명심해라. 오르막을 오르면 정상밖에 안 보이지만, 내리막을 걸으면 세상이 보이는 법이라고 했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면서 올라가.”
서대룡이 나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리면서 잘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모닥불 옆에 눕자 서대룡도 반대쪽에 누웠다.
모닥불 옆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누우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이렇게 여행이나 다녀야겠다.”
“저도 꼭 데려가 주십시오.”
“자넨 박수받고 주목받으러 다녀야지.”
“주목 다 받고 와서 가면 되죠.”
“싫다. 이안이 데리고 다닐 거다.”
서대룡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놈아, 그게 쉬운 일이면 우리 아버지가 천마전에 갇혀 계시겠느냐?
그날 밤도 푹 잘 잤다. 오랫동안 쌓였던 긴장과 피로가 풀리고 있었다.
* * *
마차 여행은 몸이 회복될 때까지 했다.
회복이 되자마자 마차를 팔고 서대룡을 업고 쾌속보로 달려서 돌아왔다.
처음에는 나 죽겠다 하던 서대룡도 나중에는 완벽하게 적응해서 업혀서 농담까지 했다. 인간의 적응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서 본교에 도착했다.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마전이었다.
붉은 융단 너머 저 멀리 태사의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고 계신 아버지가 오늘따라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무뚝뚝하게 내려다보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혹여 너무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까 싶어 나는 얼른 절을 올렸다.
“천명회주를 처단하고 임무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고생했다. 그만 일어나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서 있던 총군사 사마명이 인사를 건네왔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천명회를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틈틈이 전서를 보내 소식을 알렸기 때문에, 아버지와 사마명은 지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전서에는 지금의 이런 엄살을 담을 수는 없었다.
“말도 마십시오.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모릅니다. 이건 너무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아니, 불가능한 임무였습니다!”
“인정합니다. 제 실책입니다. 천명회란 조직이 이렇게까지 몸집을 키운 곳이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사마명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임무를 배정한 것은 사마명이 이끄는 통천각이었으니까.
그때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자네가 우리 아들을 죽이려고 했군.”
나와 사마명이 깜짝 놀라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물론 우리 두 사람 다 이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한 아버지에게 놀란 것인데, 나는 다른 것 때문에 놀랐다.
우리 아들.
아버지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적에 들었을지 몰라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라 농담으로 받아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사마명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저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도 아는 것이다. 내가 ‘우리 아들’이란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는 것을. 그 때문에 감격하고 있다는 것을.
“또 보내주십시오. 이번에는 어딥니까? 천하회(天下會)입니까? 천지회(天地會)입니까?”
내 말에 사마명이 웃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딱 한 마디였지만, 내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말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사마명에게 물었다.
“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공자는 이미 맡은 일을 무사히 잘 처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역시 회귀 전처럼 형은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왔다. 바뀐 운명은 내 쪽이다. 무림에 천명회라는 암중 조직이 사라졌고, 난 시험을 통과했다.
“그럼 둘 다 시험에 통과했군요.”
“그렇습니다.”
“제 시험이 훨씬 더 어려웠으니, 제가 이긴 것으로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를 후계자로 삼아주십시오!”
나는 당당히 요구했다.
“충분히 요구하실만한 말씀입니다만, 대공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대공자가 어려운 쪽을 골랐을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두 분 다 예상하시겠지만, 형은 절대 해결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깊이 개입했으면 목숨을 잃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제가 이쪽을 선택한 것이 다행이고요.
차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제가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이번 시험 결과와는 별개로 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아버지와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혹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태사의에 있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상으로 저와 사냥 한 번 더 가시죠.”
아버지는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너는 상을 받을 때마다 나와 사냥을 가자고 하는구나.”
처음 회귀한 후 비무에서 이겼을 때 요구한 소원도 사냥이었으니까.
“그때 못 잡은 호랑이 잡아야지요.”
“좋다. 가자.”
아버지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다.”
* * *
천마전을 나선 후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이안의 연무장이었다.
무공수련한다고 땀을 흘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안은 책을 읽고 있었다.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가 책 읽는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세상의 모든 학사가 반할 모습이다.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하령에게 이안을 한 번 보여주긴 꼭 보여줘야겠다고.
어떤 무공서인가 싶어 신안술을 발휘해서 자세히 봤는데, 뜻밖에도 시화집이었다.
연무장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무인은 그만두고, 시인이 될 생각이냐?”
내 말에 이안이 힐끗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책을 보면서 말했다.
“오셨어요?”
마치 어제도 본 사람처럼 굴었다. 아니, 어제 봤더라도 이보다는 반갑게 대할 것이다. 대번에 그녀가 장난을 치고 있음을 느꼈다.
모른 척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축하드려요.”
“무슨 축하?”
“국수 먹을 일이 생겼다던데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우리 입 싼 서대룡이 와서 진하령에 대해 싹 다 말하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운명적 사랑의 상대가 무림맹주 따님이라죠?”
“사랑 아니고 만남, 딸 아니고 손녀.”
“호북일미라니 엄청 예쁠 테고.”
“너보단 안 예쁘고.”
“성격은요? 좋아요?”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버릇없이 크진 않았어.”
“완벽한 배필이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질투 다 했어?”
“질투 아니고 축하라니까요.”
“그럼 날 보면서 해줘야지.”
“싫어요.”
이안이 질투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녀에게 말했지. 돌아가면 너보다 훨씬 더 예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고개를 숙인 이안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까 뭐래요?”
“안 믿더라고. 그래서 다음에 꼭 한 번 보여주려고. 나 간다.”
내가 일어서서 걸어가자 이안이 벌떡 일어났다.
“가긴 어딜 가세요!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놓고.”
이안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왔다. 그녀가 와락 안겼다.
어깨 뒤로 그녀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다리면서 얼마나 내 걱정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만요.”
나는 잠시 그녀를 안고 서 있었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잠시 후, 그녀가 내게서 떨어졌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과감하게 달려와 안겼다는 생각이 드는지, 이안의 볼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 시화집 혈천도마님께서 빌려주셨어요.”
“어르신이? 왜?”
“제가 찾아갔었어요. 도련님 임무에 마존분들이 나섰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도마님께 도련님 괜찮으시냐고 여쭤봤죠.”
혈천도마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지 상상이 갔다.
“안 괜찮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럼 도련님 찾아갔겠죠. 무조건 갔을 거예요. 제가 가지 않아서 도련님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오지 않을 테니까요. 절 위해서라도 가야죠.”
“걱정쟁이 같으니라고. 왔으면 무림맹에 두고 왔을 거다.”
“그럼 무림맹 근처에서 국밥집이나 하면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 텐데요.”
“네가 국밥집을 했다간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을 거다.”
그녀가 깔깔 웃었다. 언제나 밝은 성격은 살이 쪘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어떤 외부 요인이나 변화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었다.
“그때 혈천도마 어르신께서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가서 읽으라고 책을 빌려주셨어요. 그때 빌린 책이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이었어요. 아니,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을 빌려주시면서 걱정하지 말라니요! 암튼 그때부터 한 권씩 빌려 읽고 있어요. 한데 이상한 것 있죠? 책을 읽으니까 무공수련도 더 잘되는 것 같아요.”
“드디어 네 무공이 네 삶과 연결이 되어서다.”
“제 삶과 무공이 연결되었다고요?”
“처음에는 재능과 노력으로 무공이 는다. 그러다 어느 경지를 이르면 무공은 그 사람의 삶을 반영하게 되지. 보통 무공이 벽에 막혀서 못 넘어가는 경우가 있잖아?”
“대부분이 그렇죠.”
“그 이유가 삶을 바꾸지 못해서다. 사람이 바뀌어야 무공을 보는 견해도 바뀌는데, 사람이 그대로니 막아선 벽을 넘어설 수 없지.”
“아!”
이안은 뭔가 답을 얻은 모양이다. 왜 시를 읽고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무공에 도움이 되는 느낌을 받을까 하는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또 얘기하자. 지금은 삶과 죽음의 주인 좀 만나러 가야 해서.”
돌아서려는데 이안이 씩씩하게 말했다.
“도련님, 무사히 돌아오셔서 너무 기뻐요.”
“너 보니까 좋다.”
그렇게 이안의 거처를 나와서 이번에는 혈천도마의 거처가 있는 남도종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