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
절대회귀-18화(18/424)
제18회 모두가 복수하는 삶을 살진 않는다.
의자에 잠들어 있던 양구를 깨웠다.
잠결에 주위를 둘러보던 양구는 뒤늦게 자신이 붙잡혀 왔음을 깨달았다.
“맞은 곳은 괜찮나?”
“네? 아, 네.”
내가 부드럽게 대하자 양구는 당황했다.
“솔직히 난 자네처럼 머리 좋은 사람 좋아해. 단순 무식해서 말도 안 통하고 고집불통을 무슨 신념인 양 밀어붙이는 인간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거든. 자넨 안 그러잖아?”
“왜 저를 잡아 오신 겁니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 거로 생각하는데? 솔직히 자넬 고문하고 싶진 않아.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쪽 고문이 좀 심한가? 멀쩡한 사람 폐인 만들어서 내다 버리잖아?”
“협박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아. 자네가 뭘 알 거라 생각 안 해. 그냥 명령받은 대로 했겠지. 그냥 그것만 솔직히 말하면 돼.”
“모릅니다. 명령받은 것 없습니다.”
“그럼 자네 말고 또 다른 자네와 대화를 나눠야겠군.”
“또 다른 저라니요?”
“자네보다 자네를 더 아끼는 자네 말이야.”
내가 신호하자 밖에서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평생을 고문만 하고 살아온 분이시다. 자백 성공률이 얼마라고?”
작달막한 노인이었지만, 그가 풍겨내는 기운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구 할입죠.”
“이 정도면 심문 장인이시지.”
“그렇지도 않습니다요. 그 구할 중 오 할이 자백한 후 죽어버렸으니까요.”
“나머지 오 할은?”
“폐인이 된 채 구걸로 연명하고 있습죠.”
노인이 지닌 원색적인 살기가 워낙 짙어, 양구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내가 양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자넨 이만 들어가게. 자네보단 덜 용감하고, 불필요한 고통은 피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자네를 불러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 그 사람이 충성심이나 신념은 자네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적어도 자넬 더 사랑할 거야. 그러니 자넨 그만 물러가게.”
그 사이 노인은 화로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갖가지 굵기의 쇠꼬챙이를 달구기 시작했다. 콧노래조차 흥얼거리지 않는 사무적인 모습이 공포감을 더욱 조성했다.
기겁한 양구가 애원하듯 말했다.
“말했다간 저 죽습니다.”
“말 안 해도 마군주에게 죽어. 생각해 봐. 자네가 내게 잡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군주가 어떻게 나올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넬 제거하려 들 거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보다 더 잘 알잖아?”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양구의 동요와 공포심이 요동쳤다.
“알잖아? 자넬 어디에 숨겨놔도 결국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라는 것을. 자네가 살길은 하나야.”
“뭡니까?”
양구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공포에 질린 그의 눈을 응시하며 악마처럼 속삭였다.
“당하기 전에 먼저 쳐. 물론 자넨 본교를 떠나야 할 거야. 그래도 자네 정도의 무공이라면 어디서든 잘 살 수 있겠지.”
이 순간 나는 진짜 악마였다. 그를 유혹하면서 동시에 거짓말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고민할 시간 없어. 지금쯤이면 자네가 우리 손에 넘어왔다는 것이 알려졌을 테니까.”
사실 아직 마군주는 그의 실종을 알지 못했다. 잠들었다 깨어난 양구는 시간개념이 없었지만, 그가 붙잡힌 지 고작 한 시진이 지난 상태였다.
“아니면 자네의 의지력을 시험해 보든지.”
난 놈이 머리 굴릴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바로 돌아섰다.
그때 뒤에서 양구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황천각 조사관들이 들어오면 있었던 모든 사실을 진술하면 돼.”
“그러고 나서는요?”
“우린 마군주를 잡아들일 거고. 자네는 새로운 신분으로 본교를 떠나게 될 거다.”
양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나는 곧장 방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천각 조사관들을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고문을 하러 온 노인에게 옆에서 계속 쇠꼬챙이를 달구라고 시켰다.
잠시 후, 서대룡이 와서 양구가 자백한 내용을 보고했다.
과연 장호의 추측대로 황천각 조사관과 장호의 동기를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 마군주였다. 그것을 실행한 인물은 이미 죽은 고당이었고.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악행이 있었다.
“이래저래 정말 많이 죽였습니다.”
그랬기에 서대룡은 걱정했다.
“마군주는 순순히 체포당하지 않을 겁니다. 붙잡히면 참형 당한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체포 안 할 거야.”
“네?”
“죽일 거다.”
서대룡은 너무 놀라서 헉, 하고 소리를 냈다. 그의 열린 입이 닫히지 않았다.
“마군주가 체포되면 반드시 혈천도마가 움직일 거야. 친동생이 참형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상황은 골치 아파진다.”
모든 사람 앞에서 죄를 까발리고 정식 재판을 통해 놈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그건 이상에 불과하다. 놈이 배후에 없다는 조작된 증거가 쏟아져 나올 테고, 그의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에, 나에 대한 음해와 온갖 음모론까지 나돌 것이다.
“한데 체포 과정에서 마군주가 죽어버리면 사정은 달라지지. 남는 것은 죄를 증명할 증거뿐이니까.”
“혈천도마가 복수하려 들 겁니다.”
“가족이 죽었다고 모두가 복수하는 삶을 살지 않아. 특히 혈천도마는 복수에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거야.”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확신은 못 하지. 다만 복수하더라도 당장 움직이지는 못할 거야. 내가 다치거나 죽으면 누가 봐도 자신이 한 짓이 될 테니까. 오히려 오해받지 않으려면 날 지켜야 할걸?”
“나중에는요?”
“그땐 내가 더 강해져 있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고.”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뭐라 해야 하나, 그런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는 서대룡을 두고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뒤늦게 서대룡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어디 가십니까? 설마…… 아니죠?”
“맞으면? 같이 갈래?”
서대룡이 움찔했다.
“술 사러 간다. 걱정 말고 기다려.”
* * *
그 설마가 맞았다. 술을 산 것도 맞고.
나를 반긴 마군주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조사가 다 끝났다고?”
“네,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이공자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섭섭하군.”
마음에도 없는 소리에 나도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다.
“나중에 제가 후계자가 되면 반드시 이번에 베풀어 주신 호의에 답하겠습니다.”
“내가 할 소리네. 이번에 좋게 넘어가 준 호의는 반드시 잊지 않을 거야.”
그래, 그는 절대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탐욕스러운 그는 막대한 손해를 봤다. 수족인 일대주 고당을 잃었고, 제 손으로 증거를 갖다 바쳤다. 아마도 조사관이 내가 아니었다면,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시죠?”
내가 사 들고 온 술을 구석 탁자에 준비되어 있던 잔에 따랐다.
“자, 마시세.”
그와 건배한 후 술을 마셨다. 그는 축하주였고, 난 이별주였다.
“왜 그러셨습니까?”
“뭐가?”
“늙어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돈이 있을 텐데.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 마군을 청부업자로 쓰셨냐는 말씀입니다.”
순간 마군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죽은 일대주에게 물었어야지.”
“꼭두각시가 뭘 알겠습니까?”
“뭔 소릴 하는 건가?”
“우리 군주님 심보가 궁금해서요.”
“심보? 방금 심보라고 했나?”
“하긴. 그 시커먼 속에 뭐가 있겠습니까? 더 갖고 싶은 욕심만 가득하겠지요.”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흥분한 마군주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던 바로 그 순간, 기회를 노리던 내 검이 뽑혔다.
쉬이이익!
푸욱!
번쩍 한 줄기 검광이 뿌려지며 내 검은 마군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의 호흡을 잡아먹고 들어간 데다, 출수가 너무나 빨라 마군주는 피할 수 없었다.
비천검법 제오식(第五式) 창천식(蒼天式).
비천검법의 여덟 검식 중 쾌검식이 펼쳐진 것이다.
심장을 찔렸는데도 그는 즉사하지 않았다.
그는 검이 관통된 채로 천천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생기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심장에 박힌 저 검을 뽑으면 그는 죽게 될 것이다.
나는 담담한 어조로 나직하게 말했다.
“마군주 구천양, 그대를 마군의 사적 유용 및 이십여 차례에 걸친 살인과 살인 교사 혐의로 체포한다.”
그제야 마군주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향했다.
“…이건 체포가… 아니잖아?”
“어차피 참형인데, 남은 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가주시오. 기습은 미안했소.”
나는 검을 뽑았고, 마군주는 그대로 절명했다.
격렬한 싸움 끝에 죽인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차라리 행운으로 일 수에 죽였으리라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나는 마군들과 황천각 조사관들을 모두 그곳으로 불렀다. 근신 중이던 마군 일대를 제외하고 모두가 모였다.
“대죄를 지은 마군주는 체포 과정에서 불응하다 죽었다.”
쩌렁쩌렁한 내 말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모두 경악한 얼굴로 나와 마군주의 시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내게 마군주가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놀란 이들 중에는 삼대주 장호도 있었다. 마군주의 시체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희열이 스쳤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서대룡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배의 복수를 위해, 마군들의 신상을 모두 외웠던 그 노력이 드디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나는 즉시 서대룡에게 명령했다.
“그대는 마군 일대 전원을 체포해 뇌옥에 가두고, 이번 사건을 정식으로 조사한다.”
“네!”
다음으론 장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삼대주 장호, 그대의 지휘하에 일대를 제외한 모든 마군은 황천각 조사관들을 도와 마군 일대의 체포를 돕는다! 즉결처분권을 받아왔기에 이 명령은 교주령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즉각 시행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장호가 마군을 이끌고 서대룡을 따라나섰다.
마군주가 살아서 이놈 잡아 와라, 저놈 죽여라, 열을 올릴 때가 문제지 이미 그는 차갑게 식은 후였다. 공포로 유지되던 충성심은 수장의 죽음과 함께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법.
돌아서 나가던 장호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린 옅은 미소로 이 순간의 감정을 나눴다.
‘감사합니다.’
‘자네 덕분이네.’
마군 일대의 체포까지 끝나고 서대룡이 우리가 묵었던 거처로 돌아왔다.
“마군 일대 전원을 체포한 후, 내공을 제압해서 뇌옥에 가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대 무인 여섯이 다쳤지만, 죽은 자는 없습니다.”
“잘했다.”
일이 다 끝났음에도 서대룡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정말 마군주를 죽이셨군요.”
“살려두면 여러 사람이 살인멸구 될 테니까. 투서를 보낸 장호도 결국은 죽게 될 거고. 그를 지키려던 삼대 무인들도 여럿 희생되겠지. 자네도 예외는 아니고.”
“아, 거기까지 생각하셨군요.”
서대룡은 치밀어 오르는 격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자님은 정말 정의로우신 분입니다.”
“정의는 무슨! 난 내가 물려받을 것에 분탕질 치는 것이 화가 났을 뿐이야. 난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러니 오해는 마.”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서대룡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네도 고생했다.”
돌아서 나가던 서대룡이 불쑥 말했다.
“그래도 저는…… 이공자께서 후계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저 말은 서대룡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서대룡은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를 따라나서려던 나는 뭔가가 눈에 띄어 잠시 침상에 걸터앉았다. 까마귀시체가 놓여 있던 침상의 이불은 깨끗한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서대룡이 갈아둔 모양이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건물을 나선 서대룡이 연무장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아까 그런 말은 내 눈 보고 제대로 해주면 안 되나?”
입구를 향한 걸음이 더 빨라지는 서대룡이었다.
그의 뒷모습 너머로, 내가 가야 할 곳이 보였다. 이번 일로 몇 걸음 정도는 가까워진 것 같아서였을까? 평소보다 천마전은 더 웅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