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3)
절대회귀-183화(183/424)
제183회 사람 사이에 금이 가면.
다음 날, 청권들이 수련하는 장소로 갔다.
푸른 무복을 입은 그들은 백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실력 차이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아직 권마가 오지 않은 상황이라 그들과 편하게 인사를 나눴다. 당연히 그들은 내가 백권들과 수련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백권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다 배웠소? 칠팔일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대는 얼마나 걸렸소?”
“이 년 있었소. 백권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았으면 청권 수련은 쉽지 않을 거요.”
걱정해서 말해주는 듯했지만, 사실 못마땅함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우린 이 년이나 고생했는데, 너는 고작 며칠 만에 통과하다니. 이공자라는 신분 덕을 본 게 아니냐는 불만을 넌지시 드러낸 것이다. 실력 차이가 아니라 신분 차이가 아니냐는.
나는 굳이 그에게 변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슷한 불만을 가진 이들은 있을 것이고, 이 부분은 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잠시 후, 권마가 그곳에 모습을 보였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권마는 백권부터 흑권까지 무공수련을 직접 지도했다. 다른 마존들은 제자들만 지도하고, 그 아래 수하들은 제자들이 맡아서 가르치는데, 권마는 모든 수하를 직접 챙겼다.
“모든 철권을 직접 지도하시는 일은 진심으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아부 떤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심으로 한 말이다. 질문도 안 하는 분위기인데, 권마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했다.
권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사납고 무뚝뚝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둘이 있을 때 백 번 하는 것보다, 한 번을 말하더라도 이렇게 모두가 있을 때 해 줘야지.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아부신공이 아니다. 그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마존이 저 아래 수하까지 챙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권마의 눈빛은 이렇게 말했다.
―개수작은 안 통해.
내 눈빛은 이렇게 받았다.
―그럼 통하겠네요, 개수작 아니니까.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자 청권들이 모두 상의를 벗었다.
청권부터는 웃통을 벗고 수련했다. 근육의 움직임 하나까지 살피려는 것이다.
모두 웃통을 벗었고,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허여멀건한 우리 이공자님 몸 좀 봅시다, 하는 눈빛들.
나도 천천히 옷을 벗었다. 내 몸을 보자 모두 깜짝 놀랐다.
수련으로 다져진 실전 근육에, 수많은 상처. 그 하나하나 누구에게 얻은 것인지 알게 된다면 권마조차도 경악할 상처들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안 맞고 다니려고 여기 온 겁니다.”
권마의 입가를 스치는 것은 명백한 조소였다. 여전히 그에겐 내가 언제까지 버틸지 두고 보자는 불신이 있었다.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었다.
이번 무공수련 역시 권마는 단 한 동작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들이 펼치는 모습을 지켜본 후, 따라 펼쳤다. 이들이 배우는 초식부터는 호흡법도 중요했는데, 나는 그 호흡법도 따라 익혔다. 신안술로 그들의 코와 목, 배, 입을 자세히 살펴서 호흡법도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 권마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이 호흡법이 맞는지 봐주십시오.”
“호흡법은 누구에게 배웠나?”
“지금 무공 펼치는 것을 보고 배운 겁니다.”
청권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권마만큼은 믿을 것이다. 그는 분명 내 기도를 읽고 있을 테니까. 그는 내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권마와 무공으로 엮이면 반드시 붙게 될 거란 말씀이.
그를 보며 내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또 질문 있습니다!”
* * *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나는 열심히 수련했다.
나에 대한 다소 삐딱한 청권들의 시선은 어느새 사라졌다. 난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잘했고, 무엇보다 권마의 새로운 면모를 끌어냈다.
“실전에서는 이 초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엄밀히 따지면 청권들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권마를 위한 질문이었다.
분명 권마는 수하들에게 초식의 실전 활용성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기에. 나라면 말해주고 싶었을 거다. 권마라고 안 그럴까?
과연 권마는 안 물어봤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청권들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권마가 이렇게 잘 설명해 줄지는 몰랐을 테니까.
“검을 무서워하지 않는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습니까?”
난 이런 심리적인 부분에 관한 질문이나.
“왜 권법입니까?”
아예 근원적인 질문도 했다.
사실 백권부터 흑권까지, 그리고 권마조차도 계속 물어야 할 질문일 것이다.
그 질문과 동시에 나는 자연스럽게 내게도 물었다.
‘왜 검인가?’
이 질문의 답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청권 수련을 시작한 지 닷새 후.
청권 무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권마가 내게 말했다.
“내일부터 적권 수련에 나오게.”
“네.”
이 결정에 불만을 가지는 청권은 없었다. 며칠 사이, 나는 그들이 익힌 초식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오죽하면 첫날 말을 걸었던 남자가 와서 사과도 했다.
“첫날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마 적권에서도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 사람도 며칠 후면 저처럼 사과하러 올 겁니다. 어리석고 부족한 저희 눈을 개안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청권 무인들 모두 내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권마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해준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 * *
“무극이가 권마 밑에서 수련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검무양은 동생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불과 십여 일 만에 청권수련까지 돌파하고 이삼일 전부터는 적권들과 수련을 시작했다더군요.”
마주 앉아 있던 마불이 대답했다.
“이공자 무공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마불은 대공자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이공자가 권마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겠지.
“권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공자가 그를 끌어들이려 했다간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겁니다.”
그러자 검무양은 지난 일을 떠올렸다.
“혹시 예전에 제게 해줬던 말씀 기억나십니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렸었죠?”
“취마는 종잡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가 휘젓기 시작하면 이공자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이공자가 정성껏 모아온 마존들을 잃게 될 겁니다.”
예전에 취마에게 깨진 술병을 받았을 때, 마불이 검무양에게 했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결국 들려온 소식은 검무극이 취마와 술 마시고 노는 소식이었다.
“기분 나쁘게 듣진 마십시오. 취마 때의 일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고 했지만, 마불은 기분이 좋지 못했다. 굳이 자신이 했던 말을 저렇게 정확하게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 일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정말 사람 사이에 한 번 금이 가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일까?
처음엔 애써 그 금을 외면했고, 더 깨지지 않게 조심했고, 결국 깨지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로 여겼다.
하지만 마불은 느낀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 금이 깨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금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만약 상대가 검무양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검무양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으니까. 자신의 인생을 그에게 걸었으니까.
검무양이 마불에게 말했다.
“권마를 만나 어떤 생각인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네, 제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마불은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마불이 검무양을 돌아보았다.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초조하면 초조하다고 표를 내도 된다고. 자기에게 다 말해도 된다고. 동생 놈이 너무 강해서 감당하기 힘들다고. 그렇게 다 말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할 거라고.
하지만 그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하실 말씀이라도?”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집무실을 나서며 마불은 자책했다.
대공자가 못 하면 자신이라도 허심탄회하게 대하면 되는데…… 검무양을 탓할 일이 아니다.
* * *
다음 날, 동권문을 들어가던 마불의 발걸음이 멈췄다.
검무극이 적권의 무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다리 더 벌리고. 팔은 내리고.”
검무극이 그들의 동작을 봐주고 있었다.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닌 줄은 알지만, 며칠이나 됐다고 적권의 무인들과 저렇게 친한 척하고 있단 말인가?
그때 마불은 보았다. 검무극의 눈빛과 표정을. 그는 정말 권법에 푹 빠진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적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저래서다. 저기에 다 빠져드는 거다. 까닥했으면 자기도 빠질 뻔한 저 이상한 열기에 속는 거다.
그때 검무극이 마불을 보고 그에게로 달려와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검무극은 밝게 웃었다. 검무양이 저렇게 밝게 웃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괜한 생각 말자. 적이기 때문에 저렇게 웃는 거다.’
생판 모르는 남에겐 활짝 웃으며 대하다가 정작 자기 사람에게는 힘들다고 인상 쓰는 것이 인간들 아니겠나? 저 웃음에 속으면 안 된다. 대공자는 우리 편이니까 짜증 내는 거고, 이공자는 적이니까 웃는 거다.
“자네가 요즘 권법에 심취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
“황천각주를 하다 보니 주먹으로 두들겨 패주고 싶은 놈들이 너무 많아서요.”
“이보게, 우리끼리는 그런 위선 떨지 마세. 권마를 자네 편으로 만들려고 오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란 말씀, 참 듣기 좋습니다.”
뻔히 듣기 좋으라고 하는 저 세 치 혀에 자꾸 귀가 녹는다.
“가식 그만 떨고, 가서 그 솜 주먹이나 휘두르게.”
애써 차갑게 대한 후, 마불은 권마의 집무실로 향했다. 뒤에서 검무극의 외침이 들려왔다.
“권마님은 아기손이라고 했는데, 마불님은 솜 주먹인 겁니까?”
* * *
“바쁘신 분이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소. 오늘 내가 찾아온 것은 이공자 때문이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권마는 말없이 마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권마와 보통 사람보다도 훨씬 작은 마불이 함께 있으니 두 사람은 정말 대비되었다.
“이공자가 권법을 배우겠다는 것은 그대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수작이오.”
사실 마불은 이전까지 권마와 깊은 친분은 없었지만,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은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작은 키와 저 무섭게 생긴 얼굴을 동급으로 여겼다. 사람들이 보면 인상을 찌푸린다는 점에서 같은 신체적 약점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혼자만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공자에게 넘어갈까 봐 이렇게 오신 거요?”
“맞소. 그게 걱정됐소. 혈천도마도 넘어갔고, 일화검존도 넘어갔소. 극악소마와 취마까지도.”
마불은 솔직히 말했다. 괜히 돌려 말하다가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그에게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이공자는 여우요. 꼬리가 백 개는 달린 여우요. 그 세 치 혀는 간신의 혀보다 더 달콤하오. 방심하다간 어느새 이공자를 제자로 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요.”
권마가 마불을 빤히 쳐다보며 불쑥 물었다.
“혹시 당신도 넘어갈 뻔했소?”
순간 마불은 내심 움찔했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대공자 편이오.”
“이공자가 그럽디다. 대공자를 지켜주라고.”
마불은 흠칫 놀랐다. 그런 식의 말은 자신에게도 한 적이 있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후계 싸움을 마무리하겠다더군요.”
“그 말을 믿으시오?”
“당신은 믿소?”
마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믿지 않는다고 해야 할 순간이었는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권마에게 확신을 주러 왔는데, 자신이 검무극에게 흔들렸다는 것만 확인하고 있다.
“가서 대공자에게 전하시오. 대공자를 지지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권마의 진심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마불은 이렇게 경각심을 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대공자가 크게 기뻐할 것이오.”
그렇게 마불은 집무실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검무극을 또 보았다. 저 멀리 연무장에서 그는 여전히 적권들과 권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권법에 푹 빠져서 수련하고 있다는 것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젊은 시절 자신이 무공에 빠졌던 그때처럼.
지금까지 검무극이 대단하다고 여긴 적은 여러 번이었지만, 오늘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함께 수련하고 있는 적권들 때문데 더 그랬을 거다. 벌써 너희도 믿어버린 거냐?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뭐가 좋아서 함께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거냐?
마불은 문득 검무극이 두려워졌다.
심마처럼 밀려드는 의구심.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저 계략이 진심이면 어쩌나? 알고 보면 내가 멍청이고 내가 계략이나 부리는 자였으면 어쩌나? 줄을 잘못 선 거면 어쩌나?
하지만 이내 마불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럴수록 더 힘을 내야지.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며 그가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밀리고, 금까지 갔지만.
대공자, 우리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