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7)
절대회귀-197화(197/424)
제197회 나는 천마가 될 테니.
시합 결과를 확인한 순간 흑도 수장 추가오(秋稼誤)는 곧장 수하들을 동원했다.
감시를 이중, 삼중으로 하고 있었으니 달아날 수도 없었겠지만, 자신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젊은 권마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보자마자 저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돈 많이 벌었어?”
추가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너는 곱게 죽지 못할 거다.”
그는 이번에 너무 큰 손해를 입었다. 자신의 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조직의 돈까지 끌어들였기에 자칫하다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이 새파랗게 어린 격투가는 자신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여기 격투장 장주에게도 이번 일을 말했다. 격투장 뒷배가 누군지 알지?”
추가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뒷배인 사도맹이 두려워서 정말 결정적일 때만 은밀히 승부조작을 벌였다.
지금껏 잘해 왔는데 이번에 된통 잘못 걸렸다. 이렇게 미친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질이 있는 놈인 건 알았지만, 가슴에 그 큰 상처를 남겨서 겁을 줬는데도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린놈이 목숨 귀한 줄 모르고.”
“네 목숨이나 귀하겠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권마는 결심한 것이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든, 친구나 가족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이 얼마나 좋은가? 놈의 더러운 협박에도 이렇게 자기 성질대로 해버릴 수 있으니.
물론 아쉽긴 하다.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 이 결심을 실천할 수가 없다.
추가오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새끼 내 앞에 꿇려.”
추가오는 이 망할 새끼를 곱게 죽이지 않을 작정이다.
명령을 받은 수십 명의 흑도 사내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꺼냈다. 아무리 격투장에서 연승하던 권마였지만, 내공이 없는 사람이 상대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권마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너희들 한 놈 죽일 때마다 한 사람을 구한다는 마음으로 싸울 거다.”
권마가 품에서 장갑을 꺼내 꼈다. 장갑 앞에 송곳처럼 뾰족한 것이 박혀 있었다.
“맹독이 발려져 있다. 스치기만 해도 평생 누워서 죽만 먹고 살아야 할 거야.”
거짓말이었다. 이러면 아무래도 놈들의 행동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여 있던 흑도 사내들 중 앞서 권마와 싸워본 이들이 흠칫 놀랐다. 지난번에 싸웠을 때도 자신들은 다치고 기절하고 난리였었는데, 이제 주먹에 독까지 발려 있다고?
“비겁한 새끼!”
추가오의 말에 권마가 소리쳤다.
“왜? 너희들은 검까지 들고 설치면서, 나는 이런 것 끼면 안 돼? 이 쓰레기 같은 흑도 새끼들아! 다 덤벼!”
추가오가 소리쳤다.
“죽여! 먼저 죽인 놈에게 삼백 냥 준다!”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걸리자 흑도 사내들이 우르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권마가 뒤쪽 마당 쪽으로 달아났다. 신나서 뒤쫓던 선두의 흑도 사내들이 갑자기 아래로 푹 빠졌다.
“으아아악!”
마당에 함정을 파두고 바닥에 창날을 박아 두었던 것이다.
권마는 오늘 제대로 싸우려고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주먹으로만 싸우겠다고 생각지 않았다. 권마의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었고, 만약 죽는다면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갈 작정이다.
몇 사람이 함정에 빠져 죽었지만, 흑도 사내들 역시 싸움에는 이골이 나 있는 이들이었다. 상대가 무인이라면 모를까, 내공이 없는 새파란 청년이었다.
그들은 악착같이 달라붙으며 검을 휘둘러댔다. 몸에 검을 박아넣기만 하면 삼백 냥이란 거금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돈에 환장한 놈들이 미친놈처럼 달려들었다.
권마의 움직임은 정말 빨랐다. 날아드는 검을 피하며 주먹을 날렸다.
송곳 주먹에 찔린 놈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사방에서 욕설이 난무했고 흑도 사내들은 흥분해서 날뛰었다. 그들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권마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피해 바닥을 굴렀다.
벌떡 일어나서 벽으로 달려가던 권마가 돌아서며 비수를 던졌다. 뒤따르던 남자의 몸에 비수가 박혔다. 바닥의 돌도 던졌고, 놈들 검을 주워들어 휘두르기도 했다.
추가오가 소리쳤다.
“격투가의 명예를 저버린 놈이구나!”
일부러 다른 무기를 못 쓰게끔 하려고 자극한 것이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너 때문에 버렸다. 그러니 네 수하는 네가 죽이는 거다!”
권마는 정말 잘 싸웠다. 치고, 박고, 바닥을 구르고, 뛰어올라 차고. 그야말로 상처 입은 맹수처럼 날뛰었다.
하지만 흑도 놈들은 너무 많았다. 아무리 권마의 움직임이 타고났다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권마의 팔과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을 피하며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바로 그때 날아든 발길질에 권마가 붕 날아가서 마당에 쌓아둔 짐을 부수고 쓰러졌다.
기회를 노리던 추가오의 일격이었다.
“저놈 장갑부터 벗겨!”
사방에서 달려들어 권마의 장갑을 벗겨냈다. 그 과정에서 권마는 한 놈의 목을 물어뜯었다. 놈이 뿜어낸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퍽! 퍽! 퍽!
날아든 주먹에 권마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추가오가 권마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독종은 처음이다.”
추가오가 수하들을 보며 혀를 차던 그때였다.
권마가 그에게 병에 든 뭔가를 확 뿌렸다.
추가오가 손을 휘저어 그것을 막았다.
치이이이익.
날아든 액체가 그의 소맷자락을 태웠다. 그에게 날아든 것은 화골산(化骨酸)이었다.
퍽! 퍽! 퍽!
추가오가 눈이 뒤집혀 권마를 짓밟기 시작했다. 까닥했으면 얼굴에 화골산을 뒤집어쓸 뻔한 것이다.
몸을 웅크리며 급소를 피하려 노력했지만 권마는 여기까지임을 예감했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구나.’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또 저런 놈에게 죽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다.
잠시 매질이 멈췄을 때, 권마가 눈을 떴다.
추가오가 비수를 꺼내고 있었다.
“널 곱게 죽이지 않을 거다.”
권마는 멍한 눈을 들어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나 달이라도 보고 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어?’
추가오의 어깨 너머 저 뒤쪽 나뭇가지에 한 남자가 앉아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헛것인가 싶어서 권마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하지만 환한 보름달을 등지고 앉은 남자는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보다 몇 살쯤 많아 보였다.
권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한 번도 사람을 보고 두렵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이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보는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날 데려갈 사신인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사신은 아니었다. 흑도 놈들 중 누군가가 그를 발견한 것이다.
“어? 저기 사람이 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남자는 훌쩍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다.
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 대단한 신법에 흑도들도, 권마도 모두 깜짝 놀랐다.
남자는 천천히 걸어와서 권마를 쳐다보았다. 그는 흑도 사내들에게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권마에게 물었다.
“싸울 수 있겠나?”
권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이를 악물었다.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추가오를 쳐다보았다.
“격투가를 상대로 비겁하게 이러면 쓰나?”
격투가임을 아는 것으로 볼 때, 그냥 지나가던 이가 아니었다. 이미 남자는 지금 상황이 왜 펼쳐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어디서 오신 분이십니까?”
추가오는 내심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나 이번 조작으로 사도맹의 고수가 등장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자 젊은 남자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도록.”
휘이이익.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날아든 남자의 지풍이 추가오의 내공을 제압했다. 손가락질 한 번으로 상대의 내공을 제압하는 수법은 그야말로 술자리에서나 듣던 경지였다.
놀란 추가오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죽여! 이놈도 죽여!”
하지만 감히 남자에게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보여준 실력이 아니더라도 이 남자에게는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떤 위엄이 있었다.
남자가 흑도 놈들을 쳐다보며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서라고 손짓했다. 흑도 사내들이 귀신에 홀린 듯 원을 그리고 섰다. 그렇게 작은 격투장이 만들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마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을 도와준 남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 기회를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뿐이었다.
추가오 역시 살아남으려면 권마를 죽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내공은 제압당했지만 비수나 검을 빼앗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승산이 있어!’
승산은 없었다. 추가오는 비수를 휘두르다 놓치고 검까지 뽑아서 휘둘렀지만 결국 검까지 빼앗겼다.
결국 주먹 대 주먹의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검을 들고도 못 이긴 상대를 맨주먹으로 감당할 수는 없었다.
퍽! 퍼억! 빠아악! 빡!
권마의 분노한 주먹이 그의 온몸에 박혔다.
“왜! 왜 가만히 잘 사는 사람을 괴롭혀! 왜!”
추가오의 턱뼈와 늑골이 부러졌다.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추가오는 쓰러진 채 숨만 헐떡였다. 권마가 자신의 상의를 풀어 헤치며 상처를 보여주었다.
“한 번씩 멍청한 생각이 나면 이 상처를 보라고 했지? 너나 실컷 보고 뒈져라.”
꽝! 꽝! 꽝! 꽝!
쏟아진 주먹에 추가오의 숨이 끊어졌다.
권마가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때 남자 앞으로 검이 떠올랐다.
촤르르르르르르륵.
젊은 남자 앞에 검이 분열하며 검 모양의 검기가 생겨나더니 그것들이 일제히 하늘로 올라갔다. 흑도인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그것을 올려다보던 바로 그때.
쉭쉭쉭쉭쉭쉭쉭쉭쉭!
허공에 떠 있던 검기가 흑도인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기에 머리와 얼굴, 가슴을 꿰뚫리며 흑도인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남자는 단 한 명의 흑도인도 살려두지 않았다.
권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검무극이 소리쳤다.
“비천검법 유천식! 아버지셨군요!”
“맞아. 교주였네.”
검무극은 깜짝 놀랐다. 권마를 발굴한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사실은 그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네 나이 때의 교주였지. 아직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전의 교주였지.”
아버지가 권마를 구했다는 사실에 검무극은 왠지 모르게 감격했다.
“시체가 널린 그곳에 서서 교주가 내게 이러더군. 그 아기 주먹, 진짜 남자 주먹으로 만들어 보지 않겠나?”
“아!”
검무극은 권마가 자신에게 말하던 아기 손이 어디에서 유래된 말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뭐라 하셨습니까?”
“싫다고 했네. 그가 누군지 알고 따라가겠나? 살수면? 희대의 악인이면? 날 살려주신 것은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싫습니다라고 했지.”
그 상황에서 싫다고 한 권마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권마는 펄떡펄떡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펄떡거림이 이 사람 마음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매일 말없이 수하들의 수련을 내려다보고 있는, 답답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권마에게 이런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까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러든지, 하는 눈빛으로 말없이 돌아서더군. 교주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이건 아니구나 싶었네. 안 따라가면 나는 평생 이 격투장을 벗어날 수 없겠구나. 이번에는 운 좋게 살았지만 언젠가 또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하면서 죽겠구나.”
권마는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의 운명은 그 짧은 순간의 결정으로 바뀌었다.
“아마 교주가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면 끝까지 안 가겠다고 버텼을지도 모르지. 그땐 치기와 고집이 멋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멀어져가는 교주의 등을 보고 있으니 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네. 교주를 따라 뛰어갔지. 미안하다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그때 교주가 날 보고 웃었네. 자네도 알지? 교주 특유의 그…….”
“사람 깔보는 것 같은 그 비웃음 말이죠?”
“맞아, 그 웃음.”
“우리 아버지야말로 세상에서 그 웃음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겁니다.”
“솔직히 그날의 교주는 멋있었어. 자네와는 다른 멋이 있었지.”
“저도 멋있습니까?”
권마는 내 말은 못 들은 척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교주는 나를 본교로 데려와 이런저런 한마디 말도 없이 동권문에 넣었네. 그리고 그 뒤로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았네.”
“아버지답네요.”
“나는 혼자서 백권부터 흑권까지 올라갔네. 그땐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지.”
타고난 권법에 대한 감각과 재능, 거기에 노력까지. 아마 당시의 권마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흑권이 되던 날, 교주가 나를 찾아왔네. 마치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듯, 딱 그날에 맞춰서 찾아왔지. 그리곤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나?”
“뭐라고 했습니까?”
그날을 떠올리자 권마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나는 천마가 될 테니, 넌 내 권마가 돼라.”
두 사람 사이가 각별한 것은 단지 무공에 미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었다. 이런 숨겨진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무극이 아버지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저도 천마가 될 테니…….”
“늦었어. 난 이미 권마라네.”
“아! 맞습니다. 이건 천소희에게나 해야 할 말이겠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에게 어울리는 말을 찾아보겠습니다.”
권마는 검무극을 응시했다.
검무극의 모습 위로 젊은 시절의 천마 검우진의 모습이 겹쳐졌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 검무극이 빛이라면, 검우진은 어둠이다. 한 사람이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면, 다른 한 사람은 무거워서 영원히 가라앉을 것 같다.
하지만 권마는 또 느낀다. 이 빛과 어둠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어두우면서도 밝고, 밝으면서도 어둡다는 것을.
“교주는 이곳에서 나를 데려갔는데, 자네는 나를 이곳에 데려왔네.”
권마는 핏줄로 이어진 두 젊은 교주 후보와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그는 이것이 어떤 큰 운명이라 느꼈다.
그때 검무극이 차분하게 권마를 쳐다보더니 담담히 말했다.
“전 제자가 될 테니, 제 사부가 되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