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
절대회귀-2화(2/424)
제2회 당신이 나 떠밀었소?
무정한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여전히 세상은 화무기의 것이었다. 소문으로 듣기에 화무기는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그는 끝없는 수련으로 무학의 극의(極意)를 향해 걸어갔다.
천하맹을 다스리는 것은 그의 추종자 중 열두 명의 절대고수였다. 세상은 그들을 십이지왕(十二支王)이라 불렀다.
절대자가 무림을 통일했지만, 세상살이는 좋아지지 않았다. 십이지왕과 관련해서 온갖 불의가 판을 쳤다. 그들에게 잘 보이면 명성을 얻었고, 거역하면 목숨을 잃었다. 오히려 정사마로 갈라졌던 시절보다 삶은 더 팍팍해졌다.
한편 무림맹과 사도맹, 마교는 여전히 봉문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화무기가 죽지 않는 한, 결코 봉문을 풀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죽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남자는 다시 돌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 남자는 한창 젊었었는데, 지금은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이 되어 있었다. 남자는 그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숙한 기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달라져 있었다. 온 세상을 다 돌았다는 듯 얼굴과 몸은 검게 탔고, 못 보던 흉터도 여러 군데 생겨 있었다. 그는 무섭게 변해 있었지만, 차가우면서도 맑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눈빛만은 처음 자신을 찾아왔던 그때와 똑같았다.
“자, 여기 만년화리의 내단이오.”
그가 내민 상자 속에 정말 만년화리의 내단이 들어 있었다.
“정말 있었구나!”
귀령자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대체 어떻게 구한 것인가?”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졌소. 자부하건대 산타기, 수영, 잠수, 야영은 내가 절대 고수요. 눈 감고도 중원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을 거요.”
“정말 대단하구먼.”
“구한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안 미친 것이 대단한 거겠지.”
귀령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만년화리의 내단이 아니라 이 사내의 의지일지도 모른다는. 뭉클뭉클 남자의 몸에서 하늘색 푸른 의지가 흘러나와 내단이 만들어지는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남자가 다시 재촉했다.
“자, 다음 재료는?”
“자넨 자랑하고 싶지 않나?”
앞서 구한 재료들을 구하는데 얼마나 대단한 모험담이 있었겠는가? 자신이라면 이 성공담을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어서 참지 못했을 것이다.
“자랑은 나중에 놈을 죽이고 그 시체에다 실컷 할 거요.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목내이(木乃伊 : 미라)로 만들어두고 평생 할 거요. 네가 널 죽이기 위해서 말이야…….”
“자네가 그런 농담을 하니 이상하구먼.”
귀령자는 이 남자와 웃고 떠들면서 무림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언제나처럼 바빴다.
“자, 네 번째 재료가 뭐요?”
“돈이네.”
뜻밖의 대답에 남자가 물었다.
“얼마나 필요하오?”
“오백만 냥.”
상상을 초월하는 큰돈이었지만 남자는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다녀오겠소.”
일억 냥이라고 해도, 십억 냥이라고 해도 저 남자는 다녀오겠다며 벌떡 일어설 사람임을 귀령자는 안다.
한 마디쯤 자신을 보며 농담처럼 덧붙이겠지. 콱 죽여버리고 다 때려치울까?
하지만 그는 묵묵히 목적을 향해 나아갈 사람이다. 귀령자는 사람이 제대로 빡치면 얼마나 무서운 의지를 발휘하는지, 그 극한의 예를 보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왜 그러시오?”
“돈은 내가 대겠네. 이 대법을 위해 우리 가문은 누대에 걸쳐 돈을 모아왔었네. 그 돈을 쓰겠네.”
“이유는?”
“대법을 성공시키는 일은 나와 우리 가문의 숙원이기도 하니까.”
“좋소. 고맙군, 정말 고맙소.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겠군.”
남자는 정말 기뻐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나와 한잔하겠나?”
“한 잔만 마시고 떠나겠소.”
“야속한 친구로군.”
술을 가져와서 마당의 바위에 나란히 앉아 큰 잔에 부어 마셨다. 두 사람은 천천히 술을 음미하며 마셨다.
“처음 봤을 때, 자네나 나나 팔팔했었는데.”
“내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그대로요. 젊게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소.”
“왜 그런 노력을 하나?”
“나는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오. 오십에 돌아가든, 육십에 돌아가든, 백 살에 돌아가든 나는 당신을 찾아왔던 그때 그 사람이오. 나의 시간은 그날 멈췄소.”
처음 만났을 때 이 말을 들었다면 역시 ‘노력은 가상하다만, 그게 가당키나 하겠냐?’란 생각을 했겠지만, 이젠 남자의 의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말 대법이 성공해서, 그래서 자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말씀하시오.”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를 꼭 찾아와주게.”
“가서는?”
귀령자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혼인을 말려주게.”
생각지도 못한 부탁에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만난 이래 처음으로 남자가 웃었다.
“농담 아니네. 부디 꼭 말려주게.”
“그게 오백만 냥보다 더 중요한 일이오?”
“내겐 더 중요하네. 그냥 평생 혼자 살라고. 꼭 그렇게 해주게.”
“알겠소.”
귀령자는 자신이 어느 해 혼인하는지 알려주고는 다시 당부했다.
“약속하게. 꼭 말려주겠다고.”
“약속하겠소.”
두 사람이 남은 술을 다 비웠다.
“마지막 재료는 무엇이오?”
“자네도 아는 것이네.”
“무엇이오?”
“비마혼(秘魔魂).”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남자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돌아가신 자네 부친의 신물이네.”
“알고 있소. 아버지는 한순간도 그걸 몸에서 놓지 않으셨소.”
“자네가 가지고 있나?”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디 있는지 아나?”
“모르오.”
“만에 하나라도 그것을 화무기가 가지고 있다면?”
“그럼 지난 세월 헛고생만 한 셈이 되겠지. 다행히 그것이 본교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구하기가 쉽진 않을 거요.”
현재 마교는 봉문된 채로 새로운 교주가 이끌고 있었다.
비록 화무기의 기세에 봉문을 풀지 못하고 있지만, 마교는 지난 세월 힘을 기르며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전대 교주의 아들인 자신이 돌아간다고 환영해줄 리 없었다. 오히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등장에 새 교주는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본교에 있기를 바랍시다.”
“너무 오래 걸리지는 말게. 나도 이제 늙었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죽지 마시오. 술, 고마웠소.”
마지막 술을 털어 넣고 그렇게 남자는 떠났다.
귀령자는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남자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떠난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교에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항상 귀를 기울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귀령자도 나이를 먹어서 얼굴에는 저승꽃이 활짝 피었다.
오늘도 멍하게 마루에 앉아서 항상 남자가 서 있던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귀령자가 헛것을 본 양 눈을 비볐다.
누군가 이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 남자였다.
마지막 재료를 구하러 떠난 남자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딴 사람처럼 보였고, 오른쪽 눈과 왼쪽 팔을 잃은 상태였다. 옷을 벗겨보면 온통 상처가 가득할 것만 같은 몸은 피에 젖어 있었다.
그 모습에 귀령자는 할 말을 잃었다.
비마혼을 건넨 후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네…… 대체 어떻게 비마혼을 구해온 것인가?”
“…… 대법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갑시다.”
대답할 기력조차 없는 그였다.
귀령자는 그를 부축하고서 대법을 펼칠 공간으로 갔다.
그곳에 모든 준비가 마쳐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마지막 재료.
귀령자는 비마혼을 가져가서 가운데에 놓았다. 그러자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된 비마혼이 밝게 빛나며 주위에 온갖 괴이한 그림과 문자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귀령자가 그 앞에 서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푸르고 붉은빛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음뢰종이 울렸고 신오향로에서 향이 피어올랐다.
귀령자의 주문이 극에 달하는 순간, 주요 재료들이 합쳐지며 하나가 되더니 그곳에 일렁이는 빛무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마치 어딘가로 통하는 입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냈다!”
귀령자의 얼굴에 감격이 넘쳐흘렀다. 수백 년을 걸쳐 내려온 가문의 숙원을 이뤄내는 순간이었다.
귀령자가 기둥에 기대 앉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피를 많이 흘려서였을까?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를 깨워서 부축하는 대신, 귀령자가 나직이 말했다.
“…… 미안하네.”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정말 미안하네.”
이 남자가 얼마나 힘들게 재료를 구해왔는지 잘 알았기에 더욱 미안했다. 하지만 이 재료는 두 번 다시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 반드시 자네를 찾아가서 앞으로 닥칠 화근을 알려주겠네. 약속하네.”
귀령자가 일어나서 빛무리 쪽으로 돌아섰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가문의 평생의 숙원이었네. 내 숙원이기도 했고.”
그가 빛무리를 향해 걸어가려던 그때.
“윽.”
귀령자가 흠칫하더니 제자리에 멈췄다.
어느새 마혈(魔穴)이 제압당한 상태였다. 대체 언제 제압당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나른한 목소리.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보게.”
귀령자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남자가 귀령자 앞에 멈춰 섰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남자가 귀령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늙고 노쇠한 귀령자의 목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보네. 어흐흐흑,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귀령자는 남자가 자신을 죽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그랬으면 안 됐다. 남자가 얼마나 힘들게 이 대법 재료를 준비했는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남자가 귀령자의 목을 움켜쥔 손을 풀었다.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야.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 재료를 다 모을 수 있었겠지. 그러니 괜찮아. 딴 놈이었다면 일장에 쳐 죽였겠지만, 당신만은 이해해.”
남자는 귀령자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심 어린 눈빛으로 따스하게 말해주었다.
“한평생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웠소.”
남자의 진심 어린 말에 귀령자는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함과 아쉬움이 뒤섞였다. 더 멋진 이별을 할 수 있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귀령자의 눈물이 뚝 떨어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세상이 멈추었다.
“어?”
남자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날아가던 나비는 허공에 그림처럼 떠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던 풀잎도 몸을 누인 채 일어나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귀령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흘린 눈물 역시 허공에 떠 있었다.
남자는 혹시 자신이 피를 많이 흘러서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남자를 제외하고 시간이 멈춰버린 그곳에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넨 모든 시험을 통과했네.”
노인의 말에 남자가 놀라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자네를 과거로 보내줄 수 있는 사람.”
“!”
“어찌 인간의 힘으로 천리(天理)를 거스를 수 있을까? 한낱 영물과 기보 따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했나?”
노인이 손을 들자 그의 주위로 남자가 평생 모았던 다섯 가지 기물들이 다시 생겨나며 떠올랐다. 앞서 대법과 함께 사라졌던 재료들이었다.
그 순간 남자는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인간을 넘어선 존재라는 것을.
“이 대법의 진짜 재료는 이 기물들이 아니라 이것을 모으기 위해 자네가 바쳤던 노력이라네.”
노인이 손을 휘젓자 기물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자넨 시험을 통과했네.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살았지. 그리고 저 귀령자를 용서하는 일이 마지막 시험이었다네. 사실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자넨 가장 쉽게 통과했지.”
남자는 온몸이 떨렸다. 평생 하늘이 무심하다고 여겼는데, 그래서 하늘 따위는 없다고 여겼는데. 하늘이라 여겨지는 존재가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내 놀람은 분노로 이어졌다.
“당신은 이렇게까지 노력해야만 응답하는 존재였소? 그렇게 잘난 존재요?”
“너무 노여워 말게. 사람들은 자네보단 쉽게 날 볼 수 있다네. 매일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하나 자네의 염원만큼은 쉽게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그 말만큼은 남자도 수긍했다. 부자가 되는 일도 아니고, 미녀와 혼인하는 일도 아니다. 자신의 염원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다.
“나를 돌아가게 해주시오.”
“가서는?”
“죽여야 할 놈을 죽이고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살릴 거요.”
화무기를 죽이고 모두를 살리는 일이 첫 번째.
그리고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소. 어쩌면 이렇게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이유에는 화무기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내 삶이 후회스럽기 때문일 거요.”
“뭐가 그리 후회스럽나?”
“전부 다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삶은 내가 주도한 삶이 아니라 뭔가에 떠밀렸던 삶이었소.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고 그렇게 밀려다니다 끝나버렸지…… 당신이오? 나 떠민 사람이?”
노인이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복수를 마친 후에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나?”
“나도 모르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천마가 될지, 조용히 세상을 등지고 살지, 세상의 미녀들을 다 차지하는 호색한이 될지, 교를 떠나 쓰레기 같은 놈들을 두들겨 패는 삶을 살지, 아니면 내가 쓰레기가 될지…… 나는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소.”
“자네가 어떤 인생을 살지 나도 궁금하군. 그 새로운 삶을 기대하네.”
“고맙소.”
“다음에 만났을 때는 술 한잔하세.”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이 사라졌다.
‘다음에?’
언젠가 노인이 다시 한번 자신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멈췄던 나비가 날갯짓하며 하늘을 날았고, 바람에 풀이 흔들렸으며 허공에 멈춰 있던 귀령자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미안하네. 정말.”
남자는 사죄의 눈물을 흘리는 귀령자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의 대법이 하늘의 뜻과 닿아 있는 위대한 대법이란 것을. 마지막 결정은 하늘이 하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귀령자의 대법은 그 하늘과 이어주는 매개체임은 틀림없었다.
귀령자가 애타는 얼굴로 부탁했다.
“아!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나와 한 약속은 잊지 말게! 내 혼인 막아줘야 해!”
남자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늙어서 죽음을 앞둔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는 같은 부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지옥이오?”
“더 뜨거운 지옥이라네. 면목 없지만, 그래도 부탁하네. 끝까지 말 안 들으면 내 하물을 뜯어버리게.”
“그 정도요?”
“그 이상이네.”
“잘됐소. 그렇다면 날 배신하려 했던 벌로 충분할 테니 다시 한번 그 지옥 겪으시오.”
“아아! 이보게! 제발!”
남자는 울부짖는 귀령자를 뒤로한 채 빛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를 품고 찬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하는 빛무리를 보며 귀령자는 격정에 휩싸였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나도 가고 싶어! 으아아아아아아! 내가 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