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03)
절대회귀-203화(203/424)
제203회 대체 누굴 건든 거냐!
권마를 보는 순간 일선은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위기본능이 달아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권마의 기도는 싸울 의지도, 달아날 의지도 함께 얼어붙게 했다.
그때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여덟 명의 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권마를 포위하며 둘러싸는 모습을 보자 얼어붙었던 일선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귀검팔수(鬼劍八手).
여덟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그들은 한때 무림에서 큰 악명을 떨쳤던 이들이었다. 무림에서의 싸움이란 한 명이 두 명 된다고 두 배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백 명이 덤빈다고 백 배 강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들 귀검팔수는 여덟 배 강해졌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그들은 완벽한 합격술을 구사했다.
그것이 눈앞의 근육질 남자가 내뿜는 이 무시무시한 기도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이유였다.
엄밀히 따지면 귀검팔수는 자신의 수하가 아니다. 맡은 일을 잘해 내라고 전주가 보내준 해결사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호위이자 어떤 명령도 수행하는 수족이면서 동시에 감시자였다.
“죽여!”
일선의 명령이 떨어지자 귀검팔수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권마의 요혈 여덟 군데를 동시에 찔러 갔다.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권마도 정면 쪽 귀검팔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쾅! 퍼어어억!
천둥소리와 함께 살과 뼈가 박살 나는 격타음이 터져 나왔고 귀검팔수 중 하나가 날아가 나무를 박살 내며 쓰러졌다. 벽력수라권 제일권 흑운수라였다.
한 명이 희생되었지만, 나머지 일곱 개의 검이 권마의 몸에 적중했다.
카아아앙!
검이 사람 몸에 적중했는데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제오권 금강수라가 발동하면서 일시적으로 온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진 것이다.
귀검팔수들이 경악하던 그 순간.
퍼퍼퍼퍼퍼퍽!
권마의 주먹에서 제이권 벽력수라가 발출되었다. 벽력수라는 어찌나 빠른지 마치 팔이 여러 개인 아수라가 동시에 주먹을 내뻗는 것처럼 보였다.
이 한 수에 여섯 명의 귀검팔수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적중당하는 순간 즉사한 그들은 나무와 바위에 처박혔고, 바닥을 뒹굴었다.
마지막 남은 귀검팔수가 권마의 눈을 노리고 달려들려던 그 순간!
권마의 그 큰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제대로 무게가 실린 권마의 한 방.
콰앙!
적중당한 자의 살과 뼈가 회오리치듯 뒤틀렸다.
제삼권 천뢰수라에 적중당한 마지막 귀검팔수는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날아가 버렸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선들의 눈에는 천둥소리가 들렸고, 뭔가가 번쩍했고 귀검팔수가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마치 하늘에서 천벌이 내리는 그런 모습처럼 느껴졌다.
무겁게 내리는 침묵.
너무나 비현실적이기에 일선을 비롯한 네 사람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일선은 지난 몇 년간 귀검팔수의 실력을 여러 번 확인했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면 그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이름난 고수도 완벽한 합격술로 죽였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일선이 정한 원칙이 있었다.
만약, 이들 중 네 명이 쓰러지면 그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다.
이들의 완벽한 합격술이 깨어진다면, 그건 달아나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순식간에 다 죽어 버리면?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권마는 자신이 보라고 제일권부터 골고루 다 보여줬음을.
자신의 권법과는 확실히 달랐다. 패도적이면서도 더욱 힘이 있었다. 내공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먹에 담기는 기도가 더 활기차고 강력했다.
“아! 정말 멋지십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이렇게 한 번 보는 것이 더 나은 법이다.
검무극의 감탄에 일선은 저 정권문의 젊은 놈이 거짓말을 내뱉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먹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뭐가 멋지단 말인가? 대체 누구기에 이런 신위를…… 헉!
‘권마구나! 이런 멍청이! 그걸 이제 알아?’
저 큰 주먹, 지옥문을 직접 열고 나왔을 것 같은 것은 저 두꺼운 팔뚝. 저 사람이 권마가 아니면 대체 누가 권마란 말인가? 권마가 아니라면 누가 귀검팔수를 그렇게 간단히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단 말인가?
“살려주십시오! 권마님!”
일선이 넙죽 엎드렸다. 권마란 말에 남은 세 사람도 기겁하며 엎드렸다. 상대가 마교의 마존임을 알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바닥에 엎드린 채 일선이 삼선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정권문 후계자 놈이 권마를 죽이려 한 것 아니냐?
―맞습니다.
―이 멍청한 새끼야! 네 눈에는 저 둘이 원수처럼 보이냐?
―어떻게 된 일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병신 같은 놈!
정말 마음 같아선 벌떡 일어나서 삼선부터 반쯤 죽도록 패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평생을 성질대로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한 번도 분노를 참은 적이 없었다. 길에서 째려봤다고 쫓아가서 눈알을 파버리기도 했다. 자기 성질을 건드린 자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 분노가 지금은 잘 조절되고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네 사람이 살려달라고 빌었다.
권마가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이놈들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믿었다는 거지?”
권마의 뒤끝에 검무극이 웃었다.
“네, 자기들이 그런 인생을 사니, 남들도 그렇게 사나보다 하는 자들이죠.”
내가 권마에 관한 오해를 풀어주었다.
“다 고개 들어. 허리 펴고.”
그러자 놈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었다.
“이놈들아! 권마님이 본교에 속한 문파 후계자의 약혼녀를 건들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겠느냐? 너희를 끌어들이려고 내가 지어낸 말이다. 알겠느냐?”
“네! 네.”
신선들이 무조건 알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검무극이 권마에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좀 후련하십니까?”
권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후련할 리가 없지.
검무극은 권마가 다른 이유였다면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누굴 죽였다더라, 무시했다더라. 이런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을 거다.
다만 권마는 여자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다. 그는 절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사람이고,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여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권마다.
“농땡이 치러 나왔다가 색마까지 되어 주시고. 감사합니다.”
검무극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사부님 성격상 이번 일 진짜 싫었다는 것 압니다.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로 고마움을 표했다. 권마와의 사이쯤 되면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않느냐고? 아니! 이렇게 꼭 말로 해야 안다. 말 안 하는데 어찌 알겠나?
권마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이것이었다. 그 싫음을 감춰서 마음에 쌓지 않고 싫다고 다 표현해줘서, 그래서 이렇게 그의 마음을 풀어줄 기회를 줘서.
“지난 며칠 사이에 이 무림에 아무도 모르게 등장했다 사라진 색마가 무림 역사상 싸움을 제일 잘하는 색마였을 겁니다.”
검무극의 농담에 드디어 권마가 웃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달빛을 사이에 두고 얽혔다. 그의 얼굴이 편해졌음을 느낀다. 권마의 울화는 저놈들에게 사실을 밝힐 때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아줘서 고맙다고, 미안했다는 말을 들을 때 비로소 풀어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권마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일로 젊은 애들 수백, 수천 명 구한다면서? 그럼 한 번쯤 의선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괜한 말을 했다는 듯 권마가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커다란 등이 이전의 등보다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일선은 사선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권마가 우릴 살려둘 리 없다. 기회를 봐서 저 젊은 놈을 인질로 잡아! 우리가 살길은 그것뿐이다.
분위기로 봐서 분명 두 사람은 친한 사이였다. 인질로 삼기만 하면, 적어도 살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검무극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가 사선을 지나쳐 일선에게로 왔을 때, 사선이 벼락처럼 일어나며 검무극의 목에 검을 겨누는 데 성공했다.
“움직이면 이놈 죽는다!”
일선이 소리쳤다.
“됐다!”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본 후 권마가 다시 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차라리 날 인질로 잡았어야지.”
이해할 수 없는 권마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 검무극은 사선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언제 돌아섰지?’
검을 겨누고 있던 사선이 가져서는 안 될 의문이었다.
검무극의 주먹이 가볍게 툭. 하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퍼억!
사선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목이 저렇게 꺾여도 괜찮나? 안 괜찮았다.
사선이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목이 부러진 채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검무극이 남은 셋을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난 너희가 신선이란 이름을 붙인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그 모습에 일선은 깨달았다.
‘아! 이자는 정권문의 후계자가 아니구나!’
정권문의 젊은 후계자가 목에 검을 겨눈 사선을 저렇게 손쉽게 제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젠장! 망할!’
일선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평소에 정말 조심하던 그였다. 이번에도 그냥 마인과 충돌했다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을 거다. 한데 권마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에 어쩔 수가 없었다. 까닥 잘못하다간 애써 만든 협계 체계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이미 호랑이에게 물려왔다. 다행히 먹잇감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나 되었으니까. 하나 정도는 살려줄 수도 있다.
‘살아남는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지금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앞으로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아갈 텐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이 중에서 누가 제일 나쁜 놈이지?”
검무극의 물음에 세 사람은 흠칫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 너희도 사람들 골랐잖아? 누굴 협박하면 좋을까? 누굴 등쳐먹을까? 너희도 고르는데 나는 왜 못 골라?”
마치 저지른 죗값을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듯 세 사람을 압박했다.
“안 고르면 셋 다 죽인다!”
그러자 일선과 이선이 약속이나 한 듯 삼선을 쳐다보았다. 평소에 네가 제일 나쁜놈이란 농담을 자주 했기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삼선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닙니다, 제가 제일 좋은 일을 했습니다. 전 청년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줬습니다.”
“그게 아니란 것은 내가 잘 알지. 아까 그랬잖아? 내 젊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네 젊음을 위해서였다면서?”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청년들이 이렇게 애원할 때, 단 한 번이라도 살려준 적 있어?”
“…….”
“그럴 줄 알았어.”
퍼어억!
검무극의 주먹에 삼선의 얼굴이 함몰되며 절명했다.
털썩.
아까 그에게 오늘부로 싹 잊는다고 말한 것처럼, 검무극은 그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렸다. 딱 이 정도 대접이 그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해 살려준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살려줄 생각이 없다.
일선은 마지막 선택을 하려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릴 것이다. 등에 암기를 맞아 죽더라도, 도망가다 죽을 것이다.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경공이라면 자신 있었으니까.
그가 돌아서려던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감싸며 나란히 섰다.
“못 달아난다. 농담이 아니라 네가 한 시진을 먼저 뛰어도 따라 잡힐 거다. 저 사람 제일 잘하는 게 뜀박질이거든.”
옆에 와서 친한 척하는 중년인은 바로 풍천교주였다.
일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자는 또 누구지?’
기척 없이 접근한 것도 그렇고, 자신이 달아나려 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결국 일선은 참지 못하고 이선에게 버럭 소리쳤다.
“이 병신같은 놈아! 대체 누굴 건든 거냐!”
대상을 고르는 것이 이선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풍천교주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한때 나도 나 자신에게 그 말 많이 했다.”
곧이어 고월도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이 있던 안가를 뒤져서 장부를 찾아냈습니다.”
두툼한 장부에는 수백 명의 이름과 그들이 돈을 빌린 액수가 적혀 있었다.
“이 장부는 제가 잘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고월이라면 현명하게 잘 판단해서 처리할 것이기에 검무극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또 자신의 안가는 어떻게 알아낸 걸까?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그는 현기증이 났다. 이건 천재지변이었다.
검무극이 일선과 이선의 아혈과 마혈을 제압했다.
“둘 중 한 명만 산다. 내게 더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살겠지? 할 말 있으면 눈을 깜박이도록.”
그러자 일선이 망설이지 않고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검무극이 그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남은 자금 팔십만 냥이 중원전장에 있습니다. 도장은 내 품에 있고 돈을 찾는데 필요한 암어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선이 고월에게 암어를 알려주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선은 당황했다. 일선이 이렇게 쉽게 돈을 내놓는다? 아니, 이해는 간다. 상대가 권마인데 뭘 어떻게 개길 것인가?
이선이 충격받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자신을 보며 미안한 표정 한 번 안 짓고 이렇게 곧바로 말해버린다고? 고민하는 척도 안 하고 이렇게 죽음의 선고를 내린다고?
검무극이 이선에게 말했다.
“네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첫째 신선께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할 것 같은데?”
그러자 이선이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검무극이 일선의 아혈을 제압한 후, 이선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일선이 저렇게 매정하게 저만 살겠다고 한 이상, 이선 역시 망설일 것은 없었다.
“장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일선이 두 눈을 부릅떴지만 아혈과 마혈이 제압당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검무극이 예상했다는 듯 이선에게 말했다.
“전주장부군.”
자금을 대준 자에게 다시 매달 얼마의 돈을 상납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얼마인지를 적어둔 장부.
“장부는 일선의 허리띠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고월이 일선의 허리띠를 풀어 조사하자 그 안에서 돌돌 말린 종이가 나왔다. 거기에는 상납 내역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만약 배후를 공식적으로 족쳐야 한다면 그때 꼭 필요한 증거였다.
검무극이 일선을 보며 말했다.
“등선은 우리 둘째 신선분께 양보해야겠는데?”
그러자 일선이 빛보다 빠르게 눈을 깜박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