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05)
절대회귀-205화(205/424)
제205회 허락해 주십시오.
고월은 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신선채와 관련해서 얻은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예산을 꾸리고 있었다. 계산하고,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그때 매번 반복되는 이 힘듦을 덜 힘들게 해주는 사람이 다급히 들어왔다.
“이공자와 권마, 교로 돌아간단다.”
풍천교주의 말에 고월의 손에 들린 붓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
“지금 당장 가려는 것 같던데.”
여전히 일만 하는 고월을 보며 풍천교주가 물었다.
“이공자 간다는데 안 섭섭해?”
“섭섭하긴. 바쁘신 분인데 갈 때 되면 가야지.”
“나도 같이 갈 거야.”
고월은 여전히 일에 열중했다.
“정말 간다니까! 농담 아니야!”
“교주 가면 나도 같이 돌아갈 거다.”
일만 하기에 괜스레 심술부린 거였는데, 고월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정말 함께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래. 교주 가면 나도 간다. 혼자서는 안 해.”
풍천교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네. 됐다, 가긴 어딜 가? 일 마무리해야지.”
“가자니까.”
“괜찮아. 난 이미 갔다 왔다.”
고월의 말 한마디에 천마신교까지 날아갔다 온 풍천교주였다.
“그리고 지금 돌아가면 정신없을 거야.”
“왜?”
“이공자가 사도맹 이인자를 죽이겠단다.”
고월이 흠칫 놀랐다. 풍천교주가 방에 들어와서 전한 소식 중에 제일 놀라운 소식이었다.
“야율한?”
“그래, 그놈!”
풍천교주는 야율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과거에 만나본 적도 있었고.
“아무리 이공자라도 그놈은 쉽지 않을 텐데.”
고월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다만 소문만으로도 만만찮은 상대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교주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풍천교주는 앞서 검무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의 마도에 대해. 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
“이공자가 천마가 되면…… 정말 많이 바뀔 거다.”
고월이 잠시 붓질을 멈추고 말했다.
“이미 많이 변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자신들이 서 있었다.
그때 검무극이 들어왔다.
“이미 우리 교주님이 떠난다는 소식은 다 전한 것 같고. 이 길로 떠나야 할 것 같네.”
“조심히 가십시오.”
“또 고생하는 자넬 남겨두고 돌아가는군.”
“이제 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잘 마무리 짓고 돌아가겠습니다.”
“자금은?”
“신선채로부터 거둬들인 돈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됐군. 전서로 계속 연락하자고.”
“네. 부디 보중하십시오, 공자님. 아, 그리고 완성된 지역의 정보망은 언제든 사용하시면 됩니다.”
검무극은 말만 들어도 든든했다. 통천각과 고월의 정보망이 합쳐지면, 무림에서 제일 빠르고 많은 정보를 얻는 사람은 검무극 자신이 될 것이다.
“이 정보조직 이름은 생각해둔 것이 있나?”
“공자께서 정해주십시오.”
“자네 이름을 따서 은월(隱月)로 짓고 싶은데, 어떤가?”
고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굳이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만들어주는 검무극의 배려가 고마웠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시작부터 이렇게 힘든 일을 맡겨서 미안하네.”
“시작부터 중책을 맡겨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검무극과 고월이 작별하는 사이 풍천교주와 권마도 짧은 작별을 나눴다.
풍천교주가 먼저 권마에게 인사했다.
“이번에 뵙게 돼서 좋았소.”
“교주께서 내 제자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고 계신 줄은 몰랐소. 감사드리오.”
사실 풍천교주는 마존들 중에 친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마불이 친했었는데, 이미 틀어져 버렸고.
이번에 권마와 친해질 기회가 있긴 했지만, 괜히 내외한다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될 때 한잔합시다.”
풍천교주의 진심이었다.
“이봐, 이공자. 꼭 허락받아 내게.”
이 또한 진심이었다.
* * *
권마와 함께 경공으로 달렸다.
올 때는 천천히 즐기면서 농땡이를 쳤지만, 돌아갈 때는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우린 어두워질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올 때는 며칠 걸렸던 거리를 한나절 만에 왔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고 가시죠.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나는 능숙한 솜씨로 주변을 정리했다. 우선 권마가 편히 쉴 수 있게 나뭇잎을 깔아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가 고마웠다. 그가 이번 일을 허락해 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가 가장 반대할 마존이었는데, 그는 나와의 관계를 더 우선해준 것이다.
권마가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그 앞에 모닥불을 피웠다.
사냥감을 잡아서 요리했다. 출발하기 전에 객잔에 들러 몇 가지 요리에 필요한 양념을 사 왔기에 제법 맛있는 요리를 대접할 수 있었다.
“양념도 챙겨온 거냐?”
“그럼요. 먼 길을 갈 때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맛이 어떻습니까?”
“맛있군.”
“이 양념 비법, 누구 방식인지 아십니까?”
“교주가 해주던 맛이군.”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요리 드셔보셨습니까?”
“예전에 두어 번 먹어본 적이 있다. 교주와 한창 많이 돌아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정말 많이 싸우고 다녔지.”
나는 잠시 아버지와 권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두 남자, 천마와 권마.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옆에 젊은 권마의 모습도 보인다. 격투장에서 싸우고 있던 소년은 권마가 되었고, 그 소년을 뽑았던 청년은 천마가 되었다.
무뚝뚝하고 남자다운, 그리고 무림에서 가장 호전적인 두 남자가 강호를 종횡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누구도 겁내지 않았을 거고,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았을 거다.
내가 극악소마와 등을 맞대고 적과 싸웠듯, 두 사람도 서로를 의지한 채 싸웠겠지.
그리고 밤에는 이렇게 모닥불을 피우고 술과 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권마는 지금 나와의 야영에서 지난날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술도 있습니다.”
챙겨온 술을 꺼내 따라주었다.
권마와 함께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시는 한 잔의 술은 흥취가 있었다.
“여행은 돌아갈 때가 더 중요한 법이죠.”
“그건 왜 그러냐?”
“여행의 마지막 완성이 언제 되는지 아십니까? 내 방을 열고 들어가면서 ‘아! 드디어 돌아왔다!’ 하면서 침상에 몸을 던질 때입니다. 그러니 우린 지금 그 마지막을 위해 달려가는 중이죠. 오히려 출발할 때의 설렘보다 더 중요한 때입니다.”
권마가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넌 어찌 그리 잘 아느냐?”
지난 내 삶은 기나긴 여행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돌아올 내 방이 없었다.
당시의 내 방은 귀령자의 집 마당이었다. 대법 재료를 가져와서 놀란 얼굴의 그를 보면서, 아! 해냈구나! 아주 짧은 안도를 했었으니까.
“사부님과의 이번 여행, 너무 좋았습니다.”
나는 이 우직하고 조용한 사람과 잘 맞다. 지금은 말 많고, 까불고, 웃고, 떠들지만. 원래 나란 사람은 저 권마와 많이 닮아 있었으니까.
“참, 돌아가시면 철권들 수련에 참가하시는 시간부터 줄이시죠.”
권마도 그러려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내게 물었다.
“매일 하나씩만 참가할까? 오늘은 백권, 내일은 청권. 이렇게.”
“아뇨. 그럼 사부님은 매일 그들을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평소처럼 하루에 네 곳을 다 봐주시되, 오 일에 한 번씩만 참가하십시오.”
“오 일?”
“나머지 사 일은 사부님이 하고 싶으신 것 하십시오. 온전히 사부님 시간으로요.”
“심야수련모임은?”
“그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오시고 싶으면 오시고, 쉬고 싶으시면 쉬시고.”
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농땡이 여행이 권마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그 변화의 결과가 기대된다.
날이 밝자 우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가 내공이 떨어지면 함께 앉아서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회복했다.
그렇게 우린 거침없이 달려서 교로 돌아왔다.
* * *
내가 천마신교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철방에 계셨다.
본교의 철방은 무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거대한 철방 내부에는 웃통을 벗은 수백 명의 사내가 쇳물을 녹이고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후끈한 열기와 땀 냄새, 그리고 쇠 냄새.
카앙! 깡! 까앙!
난 예전부터 이 쇠 두드리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그 위험천만한 치열함이, 저 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저 소리는 언제나 뜨겁게 들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내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며 그곳을 걸어갔다.
저 멀리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곳에서도 아버지의 존재감은 확연하다. 모두가 흑백처럼 보이는 그림 속에서 오직 혼자만 붉은 점처럼 뚜렷한 아버지.
아버지는 이곳 철방 책임자이자 신수라 불리는 곽 방주와 함께 서 있었다. 곽 방주는 이번에 새롭게 만든 검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병장기를 만들면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에 반드시 아버지에게 의견을 구했다.
두 사람이 워낙 진지하게 검을 살피며 말씀을 나누고 있었기에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시 기다렸다.
세상에 가장 검을 잘 다루는 사람과 세상에서 가장 검을 잘 만드는 사람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철방에서 이보다 더 감격스런 장면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검이 통과되면 대량생산을 해서 본교 무인들의 검을 교체하는 것이다. 보통 오 년에 한 번 정도, 길면 십 년에 한 번씩 철방에서는 검을 개량한다.
이렇게 개량된 검은 본교의 모든 무인에게 지급된다. 각자 재량으로 다른 검을 사용해도 되지만 대부분의 본교 무인들은 본교 철방이 만들어낸 검을 사용한다. 그만큼 품질이 좋은 것이다.
그때 아버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왔느냐? 네, 다녀왔습니다. 짧고 간단하지만, 너무나 반가운 눈인사.
나는 쩌렁쩌렁 큰 소리로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소자, 중원에서의 중임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중임? 권마와 농땡이를 치러 갔다던데?”
“그런 불미스러운 소문은 대체 누가 퍼뜨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다. 중원을 나가면 주기적으로 통천각을 통해 내 소식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협조를 잘해둬야,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곽 방주가 조금 놀랍다는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아버지와 내가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의외였을 것이다.
“이리 와서 새 검을 보거라.”
나는 아버지가 건넨 검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검을 살핀 후 느낀 바를 말했다.
“기존의 검보다 약간 가벼워졌네요. 길이는 아주 조금 길어졌고요.”
내가 대번에 알아차리자 곽의 눈가에 감탄의 기색이 스쳤다.
“미세한 차이인데, 알아보시는군요.”
“그럼요, 어르신 검으로 얼마나 수련을 많이 했었는데요.”
“어떤 것 같습니까?”
“요즘 제가 검술보다는 주먹질만 하고 다녀서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넘겼다. 굳이 말하자면 건의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계신 데 그럴 필요 있겠는가?
아버지가 곽 방주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아주 조금만 더 가볍게 하면 좋을 것 같네. 길이는 지금이 딱 좋고.”
“알겠습니다, 교주님.”
아버지는 내 생각과 같았다. 거기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짚어주었다.
“검 손잡이의 결을 조금만 좁혀주게. 이전보다 미끄러운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교주님.”
“고생하셨네.”
“완성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철방을 나왔고, 나도 곽 방주에게 인사한 후 아버지를 따라 나왔다. 아버지가 지나가는 길에 서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허리를 굽혔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은 그들이 다루는 저 뜨거운 불과 같았다.
“언제 왔더냐?”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권마는?”
“반 각쯤 후에 도착할 겁니다.”
“같이 오지 않았더냐?”
“막판에 경공 내기를 하자고 하셔서요.”
잠시 사이를 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 권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예전에 미리 아버지에게는 말씀을 드렸고, 허락까지 받은 일이었지만 왠지 긴장되었다.
과연 아버지는 어떤 기분일까?
불쾌하실까? 아니면 덤덤하실까? 아니면 잘됐다고 생각하실까?
아무리 아버지를 똑똑히 보려고 노력해도, 아버지 마음을 알기는 참 어렵다. 이번 일도 분명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일절 그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권법은?”
“벽력수라권을 육권까지 다 전수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아직 너의 잔망스러움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마지막 두 권은 하는 걸 봐가면서 전수해줬어야 했는데.”
“아버지. 사부들이 그런 괜한 심술을 부리다가 무공들이 실전되는 겁니다.”
우린 대연무장을 가로질러 천마전을 향해 걸었다. 지나가던 마인들이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버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대연무장 한가운데서 우린 발걸음을 멈췄다. 천마전이 아니라 뻥 뚫린 이곳에서 말씀드리고 싶어서였다. 이건 중원의 일이고, 본교 바깥의 일이었으니까.
“사도맹의 야율한을 죽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호통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호통 대신 아버지의 입가에 그 특유의 비웃음이 지어졌다.
“절대 불가!”
불가 앞에 절대까지 붙었다. 그 단호한 거절과 함께 아버지가 돌아서서 걸어가셨다.
“허락을 받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할 겁니다. 그 말씀 드리려고 한 겁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냥 걸어가셨다. 뒷모습이 말씀하고 계셨다. 네가 어떤 노력을 해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아버지에게 선전포고는 했다. 지금부터 어떻게든 아버지를 설득해 내야 한다. 어쩌면 야율한을 죽이는 것보다 허락을 받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천마전을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다시 교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역시 집이 좋구나!”
거대한 악귀상들이 사방에서 검과 도를 휘두르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