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12)
절대회귀-212화(212/424)
제212회 어느 주머니에 든 독이.
독왕이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아닙니까?”
당연히 그렇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아버지가 생각하는 독왕은 어떤 사람일까?
한데 아버지는 독왕이 어떤 사람인지, 독왕의 세상이 어떤지를 말해주기 위해서 그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네 세상은 얼마나 열려 있어서?”
아버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말없이 거처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가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한 말에 담긴 뜻을.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새로운 마도를 외치는 네 모습이나 독왕이나 뭐가 다르냐? 다른 사람이 보면 너 또한 너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 아니더냐?
물론, 내가 사람과 만나기 싫어하고 혼자 있길 좋아하는 독왕과 똑같다는 말이 아니다.
독왕에 대한 접근방식이 틀렸다는 의미였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절대 독왕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거라는 말씀.
독왕은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를 보며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고 있다는 것을. 지금껏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그러했을 테니까.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거다. 천독림 밖으로 나오라는 각서부터가 실수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역시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시고 도량이 넓으시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안에서 불이 꺼졌다.
“…… 냉정하시고요.”
나는 아버지의 거처에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거처로 돌아섰다.
내게 실마리를 주면 아버지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깨우쳐 주었다. 내기를 떠나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었다.
* * *
다음 날, 천독림에 갔을 때 독왕은 거처에 없었다.
그를 찾아 주위 숲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찾다 숲 깊은 곳에서 독왕을 찾았다.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뱀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독왕은 대화를 나눌 때는 잘 나누다가 한 번 뭔가에 몰입하면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내가 근처에 온 줄도 모르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이런 모습에서 나는 그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괴짜라고 여겼고 나도 모르게 내가 그보다 우위에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아버지가 깨우쳐 주신 것이 이것이다. 그러지 말라고. 그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보통 뱀이 아니었다.
독 중에서도 극독을 지닌 화왕칠보사(花王七步蛇)로 영물에 속하는 뱀이었다. 꽃을 좋아해서 화왕이었고, 물리면 내공이 심후한 무인조차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죽는다고 칠보사였다.
그때 독왕이 뱀에게 말했다.
“야, 요즘 너 컸다고 건방져졌어. 언제부터 내게 그렇게 대가리를 빳빳하게 들고 대들었지?”
그러자 혀를 날름거리던 화왕칠보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너 그리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귀화초 열매는 함부로 먹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 화주(火酒)에 담겨봐야 정신 차릴래?”
화왕칠보사가 똬리를 틀며 그 속에 대가리를 넣었다. 정말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우연이겠지?
평생 온갖 것들을 다 본 나이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때, 또 다른 뱀이 그 옆을 지나갔다. 이번 뱀은 화왕칠보사 못지않게 강력한 독을 지닌 음양혈독사(陰陽血毒蛇)였다. 이 역시 쉽게 보기 힘든 뱀이었다.
“월아!”
그러자 음양혈독사가 멈춰서 독왕을 쳐다보았다. 혀를 날름거리는 녀석을 보며 독왕이 말했다.
“왕이 이놈 바람둥이인 거 알지?”
음양혈독사가 화왕칠보사를 보며 쉬쉬 혀를 날름거렸다.
“왕이가 괴롭히면 와서 말해. 알았지?”
정말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 끝나자 음양혈독사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너도 이만 가봐!”
그러자 화왕칠보사가 숲으로 사라졌다.
정말이지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독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다 날 보며 깜짝 놀랐다.
“어이쿠! 깜짝이야!”
“제가 더 놀랐습니다. 세상에 무슨 독왕이 만날 옆에 누가 있다고 이렇게 놀랍니까?”
물론, 누군가 살기나 악의를 가지고 접근했다면 독왕은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마존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결코 무공으로 무시해선 안 된다. 마존은 어디까지나 마존이다. 그들이 미쳐 날뛰면 누가 누굴 어떻게 이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들은 본신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살수들 보고 팔마존들 중 누구 죽일래 하면 전부 독왕님 팻말 뒤에 전부 줄 설 겁니다! 첫 살행 나온 살수도 성공하고 갈 겁니다.”
“그랬다간 왕이에게 물려 죽겠지.”
“설마, 뱀에게 이름도 붙여준 겁니까?”
“뱀에게 이름 붙여준 독왕 처음 보나?”
독왕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연히 처음 보지! 그를 뒤따라 붙으며 내가 말했다.
“뱀들과는 언제부터 친해지신 겁니까?”
“뱀을 잡으러 돌아다닌 게 일곱 살 때다. 왕이와 월이는 그때도 있었고.”
“어렸네요.”
“우리 때는 그 나이 때 다들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독왕의 눈빛에 애환이 담겼다. 그가 왜 이곳을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곱 살부터 이곳에 계셨다면 이곳이 독왕님의 세상이군요.”
독왕이 발걸음을 멈추고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넌 나를 이 세상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다면서?”
“아뇨. 지금은 그 말씀 드린 것, 후회하고 있습니다.”
“왜?”
“바깥세상을 구경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똑같지만, 그런 방식으로 말씀드려선 안 되었습니다. 건방지게 굴었던 것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미안할 때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다. 사과에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이유는 용서하는 사람이 용서에 붙이는 거니까.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에 붙은 독충을 쳐다보고 있었다.
독왕이 또 뭔가에 빠져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저 독충과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여긴 그의 세상이고, 여긴 열린 세상이다.
* * *
다시 며칠이 지났다.
나는 묵묵히 일에 열중했고 독왕은 여전히 자기만의 세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며칠 동안 달라진 것은 독왕의 세상을 대하는 내 마음이었다. 이제는 그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일곱 살 꼬마 아이가 독사를 잡으러 다니던 그 세상 말이다.
오늘도 독왕은 나무 상자에서 자라고 있는 독버섯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던 그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소리쳤다.
“깜짝이야!”
내가 조용히 그의 옆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던 나무상자를 함께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 놀라게 할래?”
“저 독버섯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거 저도 독인 다 된 것 아닙니까?”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독인 타령이냐?”
“저도 그냥 여기서 살까 봅니다. 이제 천독림이 제집 같습니다.”
“이렇게 친한 척한다고 뭐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 바뀌는 게 좋습니다. 지금 독왕님 모습이 딱 좋거든요.”
“뭐?”
독왕이 날 보며 소리쳤다.
“안 통해! 이깟 수작 안 통한다고!”
날 부정하는 그의 목청이 조금씩 더 커지고 있다. 그만큼 내가 더 그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는 증거였다.
* * *
항상 천독림 입구에서부터 독왕의 거처까지 상선이 나를 안내했다.
“이제 혼자 들어가도 됩니다.”
“그래도 위험한 독물이 나올 수가 있네.”
꼭 그래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여전히 여러 길로 헷갈리게 나를 안내했고,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독왕에 대한 깊은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충성하는 사람의 눈빛은 어떤 식으로든 표가 나기 마련이다.
“어르신께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말하게.”
“독왕님을 언제부터 보셨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봤지.”
“어린 시절의 그분은 어떠하셨습니까?”
상선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건 왜 물으시나?”
“궁금해서요.”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네. 총명하고 사려 깊고 쾌활하고 밝고. 수장으로서 자질도 있었지.”
나는 ‘지금하고 너무 다르잖습니까?’라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상선이 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의 독왕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라 숙부 같고, 부모 같은 면이다.
그를 보면 혈천도마가 생각난다.
* * *
독왕이 총명하고 사려 깊고 쾌활하고 밝고 수장으로서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귀여웠다. 풋풋한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이런 부분.
독왕은 허리에 열두 개의 주머니를 차고 있는데, 그 주머니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십이지신을 나타내는 열두 마리 동물인데, 어린아이들의 옷에 그려질 법한 화려하고 귀여운 화풍의 의인화된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지금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거 직접 고르신 거죠?”
“내가 그린 거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걸 다 직접 그린 것이라고?
“세상에 누구도 모를 겁니다. 이렇게 귀여운 주머니에 독왕의 극독이 들어있을 줄은.”
무릇 독왕의 독주머니라 하면 악귀들이 그려져 있거나, 글귀가 새겨져 있어도 마(魔), 살(殺), 악(惡), 사(死) 따위의 무서운 글자들이 있어야 어울리지 않겠나? 저 주머니가 모두 열리면 지옥이 펼쳐질 텐데. 사실 그래서 더 기이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어느 주머니에 든 독이 제일 무서운 독입니까? 설마 저 귀여운 토끼 주머니 속은 아니겠지요?”
“한 번 확인해 볼까?”
그가 토끼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다.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독왕이 웃음을 짓다가 이내 정색했다. 나를 보고 처음으로 활짝 웃은 것이다. 웃어 놓고 자신도 놀란 모양이다. 나는 그 모든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해주었다.
* * *
다음날, 중요한 독의 배합이 있었다.
독왕은 평소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의 독 제조를 설명했다.
“여기 이 천심독(天心毒)이 내가 사용하는 극독 중 하나인 암혼절독(暗魂絶毒)의 재료가 되는 독이다. 이 천심독 한 방울로 능히 수십 명을 죽일 수 있지. 자, 넌 저기 멀리…… 이미 물러서 있군.”
나는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 문 옆에 서 있었다.
독왕이 책상에서 뭔가를 찾았다.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뭘 찾으십니까?”
“내 장갑.”
독을 다룰 때 쓰는 녹피장갑을 찾는 것이다.
“혹시 이것 말씀이십니까?”
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들어 보였다.
“그걸 왜 네가 끼고 있나?”
“하도 위험한 독이라고 하셔서요.”
“그럼 나는?”
“독왕이 장갑이 왜 필요하십니까?”
“당장 안 가져와?”
나는 얼른 벗어서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입에는 뭐야?”
나는 양 볼에 물고 있던 피독주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피독주를 두 개나 물고 있는 모습에 독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정도면 나도 못 죽이겠는걸?”
물론, 그의 농담이었다. 독왕이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피독주를 백 개를 물고 있어도 그의 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에게 하는 장난이었다. 그와 친해지기 위한 내 노력이기도 했다. 정말 당신이 어려서 밝고 쾌활했던 사람이라면, 그 마음속 어딘가에 그것들이 잠들어 있을 테니까.
독왕이 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독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양이 틀리면, 푸른 연기가 올라올 거야. 그럼 실패지. 정말 조심해서 집중해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제조법이다.”
독왕은 천심독을 배합해서 암흔절독을 만드는 법을 내게 보여주었다. 어차피 다른 배합물이 뭔지 알 수 없었으니, 암흔절독을 만드는 법을 보여준다기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셈이었다.
나를 내보내고 혼자 해도 되는데, 내게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봤느냐?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히 다뤄야 하는지.”
“네.”
그때 뒤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왕님!”
“넌 어서 나가!”
나는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독왕이 품에서 해약을 마신 후 연기가 나는 곳에 옆에 놓여 있던 액체를 부었다.
치이이이익!
연기는 더욱 피어올랐다.
“독왕님! 독왕님!”
빨리 안 나와서 내가 뛰어 들어가서 구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때 독왕이 독연을 휘휘 저으며 그가 밖으로 나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그럼.”
입에서 나온 한 줌의 독연을 그가 손부채로 흩어버렸다.
“독공의 길이란 정말 쉽지 않은 길이네요.”
“일부러 실패했다. 네게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해 주려고.”
“…….”
“…….”
“당연히 일부러 실패하셨겠죠. 설마 무림에서 독을 가장 잘 다루시는 독왕께서 매번 쓰시는 독 제조에 실패하셨을…….”
“그만.”
“네.”
나는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독왕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독왕아, 아직은 모른다. 누가 연무장에 서게 될지는.
바로 그때였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상선이 달려와서 재빨리 보고했다.
“황천각의 서대룡이라는 조사관이 긴급한 일이라고 이공자를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