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13)
절대회귀-213화(213/424)
제213회 우리가 마인이기에.
“정말 급한 일이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황급히 독왕에게 말했다.
독왕 역시 내 수하가 찾아온 경우는 처음이기에 상선에게 어서 서대룡을 데려오라고 했다.
잠시 후, 상선이 서대룡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각주님, 급히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가? 서 조사관.”
“마가촌에서 큰 사고가 터졌습니다. 멀쩡히 술을 마시던 무인이 갑자기 검을 휘둘러 수십여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쳐 물었다.
“어디서?”
“양화루입니다.”
양화루는 마가촌에 있는 여러 기루 중 하나였다.
“술 먹고 싸운 거냐?”
“아닙니다. 살육을 벌인 자의 눈과 코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내리더니 갑자기 미쳐 날뛰었다고 합니다. 이자 무공 실력이 뛰어나서 피해가 더 컸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회귀 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나는 곧장 독왕에게 작별을 고했다.
“독왕님, 오늘은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서대룡과 함께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서대룡과 함께 마가촌의 양화루에 도착했을 때, 집행무인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들어가기도 전에 피 냄새가 후끈 났다.
주위에 서 있던 구경꾼 중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집행무인들에게 소리쳤다
“우리 엄마와 동생이 있어요! 제발 가서 봐주세요. 주방에서 일하고 계세요! 엄마! 수야!”
나는 아이를 뒤로하고 서대룡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피바다였다. 곳곳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고, 집행무인들이 생존자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다들 취한 상태라서 피해가 더 컸습니다.”
죽은 사람은 무인만이 아니었다. 기녀를 비롯한 음식을 하는 숙수까지 죽었다.
주방 구석에 어린 소녀를 안은 채 함께 죽어 있는 중년 여인이 있었다. 아이는 밖에서 소리치던 소년과 똑 닮아 있었다.
나는 말없이 모녀의 시신을 내려다보다 탄식을 내뱉었다. 주방에서 엄마를 도와 뛰어다녔을 아이였다.
옆에 있던 서대룡은 차마 계속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았다.
“놈은 어디에 있나?”
“삼 층에 있습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까지 가는 내내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놈은 삼 층 복도 끝 벽에 기댄 채 죽어 있었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눈과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까지 내려와 말라붙어 있었다. 눈을 까뒤집고 죽어 있었는데 흰 눈자위 부분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뒤따라온 서대룡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은 처음 봅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광폭(狂暴)!’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내공을 늘려주는 내공증폭제가 바로 광폭이었다.
내공증폭제는 복용하는 양에 따라 일다경에서부터 반 시진 정도까지 일시적으로 내공을 늘릴 수 있다. 늘어나는 내공 양은 보통 일 할에서 이 할 정도. 물론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광폭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건 늘려주는 내공의 양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광폭은 삼 할에서 많게는 오 할까지 늘려줬다.
하지만 좋은 효과만큼 부작용도 치명적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결과가 그 부작용이었다.
이 광폭을 판매하는 자들이 바로 사도맹이었다. 내가 회귀하고 비무대회에서 당했던 산공독 흑비 역시 그들이 판매하는 것이다. 광폭과 흑비, 사도맹이 주력으로 판매하는 두 가지였다.
“이자의 신원은?”
“북천검가 소속의 마검 중 한 명입니다. 평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던 자라고 합니다. 작년에 진급까지 했고요.”
그게 문제였을 것이다. 그 진급을 위해 몰래 광폭을 복용했을 터.
“이자 시체는 지금 당장 마의께 보내고. 여기 뒷수습 부탁한다.”
“각주님.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몰라도, 꼭 밝혀내고 싶습니다.”
지금 나를 바라보는 서대룡의 눈빛은 처음 황천각 조사관으로 만났을 때의 그 눈빛이었다. 선배의 죽음을 반드시 밝혀내고 싶어 하던 그 서대룡의 눈빛.
나는 서대룡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까 밖에 있던 그 아이는 자네가 잘 챙기게.”
서대룡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는 마의가 검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체를 이리저리 살피며 마의가 사인을 예측했다.
“단전이 크게 부풀어서 상한 것으로 봐서, 강력한 내공증폭제가 사용된 것 같네. 이지를 상실해서 칼부림을 일으킨 것은 그 부작용 때문인 것 같고.”
마의는 정확하게 시체의 상태를 밝혀냈다.
“사실 이런 시체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 지난해 말에 이런 상태로 들어온 시체가 있었지. 그때는 혼자 날뛰다가 죽었는데. 이번에는 참사를 저질렀군.”
광폭이 아직 무림에 완전히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엔 쉬쉬 넘어가던 부작용이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를 저질렀을 땐,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이 사람아, 수련해서 내공을 늘려야지 뭔 욕심을 부렸나?”
그가 질책하듯 시신에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이 광폭이 계속 퍼져나갔던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다. 애초에 복용하지 말았어야지. 책임이 일차적으로 약을 먹은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에, 사도맹은 더욱 그런 기조에 편승하며 돈을 벌어들였다.
마의가 흰 천으로 시체를 덮어준 후, 피 묻은 손을 씻었다. 죄 없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의도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마의가 내게 물었다.
“독왕과는 어떻게 되었나?”
“그날 이후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의가 깜짝 놀랐다.
“매일 만난다고? 정말인가?”
“천독림에서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역시. 자넨 다르긴 다르군. 그래, 만나보니 독왕이 어떻든가?”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 밝은 부분만큼은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는데, 자넨 벌써 알아차렸군.”
“요즘은 거의 온종일 붙어 있거든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교주와의 내기를 이기고 싶은 건가?”
나는 천 덮인 시체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제 꼭 이겨야 하는 이유가 더 늘었습니다.”
* * *
천마전에서 아버지와 총군사 사마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피의 길을 걸어가서 두 사람에게 보고했다.
“마의께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내공증폭제의 부작용으로 밝혀냈습니다.”
내 보고에 두 사람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부작용 증상과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미 알고 계셨죠?”
내 물음에 사마명이 대답했다.
“네, 중원에서 몇 차례 크고 작은 사건이 보고되었습니다.”
“사도맹 소행이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난 신마쟁투에서 제가 산공독에 당했습니다. 그때 조사해 보니 사도맹이 만든 흑비라는 산공독이었습니다. 이번 것도 그들 짓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맹에서 판매한 광폭이란 내공증폭제입니다.”
역시 사마명은 광폭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시 그에게 물었다.
“광폭을 제조하는 사도맹의 책임자가 누굽니까? 군사님께서는 알고 계시죠?”
사마명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잠시 나를 쳐다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비로소 사마명이 그가 누군지를 밝혔다.
“애차(哀侘)입니다.”
나는 애차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검은뱀이군요.”
“맞습니다.”
야율한의 네 수하 중 하나였다. 앞서 신선채를 만든 지생이 황금돼지 문신을 새겼다면 애차는 검은 뱀 문신을 새기며 충성을 맹세했다.
이건 말을 할 기회였다.
보시다시피 온갖 나쁜 짓은 야율한이 다 하고 있습니다. 놈은 절대 악입니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독왕을 설득해서 아버지 앞에 데려오는 내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검은뱀 역시 처리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 침묵으로 내 분노를 드러냈고, 침묵으로 내 의지에 힘을 더했다.
“사건과 관련해서 본각에서 상세한 보고서가 올라갈 겁니다. 다른 내용이 확인되면 보고드리겠습니다.”
피의 길을 걸어서 천마전을 나왔다.
아마 두 사람을 만나서 한 마디 너스레도 떨지 않고 돌아선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신선채라는 분노 위에 광폭이라는 분노를 조용히 쌓아 올렸다.
아버지와 사마명은 그런 나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번에 아버지가 깨우쳐 준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내 세상도 닫힌 세상이다.
그래, 인정한다. 새로운 마도를 세워서 절대악을 없애는 것은 아직은 나만의 세상 속 일이라는 것을.
* * *
그날 밤, 나는 권마의 절벽 앞에 혼자 서 있었다.
권마가 절벽을 올려다봤던 것처럼 나도 절벽을 쳐다보았다.
주먹을 움켜쥐고 내공을 주입했다.
휘우우웅!
주먹 주위에서 기류가 휘돌며 비구름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이이익!
절벽을 향해 한 방 날리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멈췄다.
아직은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절벽에 진짜 주먹을 날리는 건 내 인생에서 딱 한 번뿐일 것이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아직은 그 아기 손으로 쳐봤자 네 손만 아프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이곳으로 권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부님!”
오랜만에 그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독왕의 풋풋한 얼굴을 보다가 이 무서운 얼굴과 거대한 몸통을 보자 이곳이 마교라는 것이 실감 났다.
권마의 시선이 꽉 쥐고 있는 내 주먹을 향했다.
내 분노를 읽은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제자야.”
“네, 사부님.”
“정말 화가 났을 때는 쥐었던 주먹을 이렇게 쫙 펴라.”
권마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내 얼굴보다 큰 손바닥이었다.
“그리고!”
짝!
권마가 박수를 크게 쳤다.
“박수 한 번 치고 다시 쥐어라. 그럼 그 주먹이 더 아플 거다.”
“다시 쥘 필요 없을 겁니다. 그 손뼉 사이에 적이 있으면 주먹으로 맞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권마가 나에게 주먹을 펴라고 한다. 이 깊고도 큰 가르침을 나는 가슴속에 새겼다.
그리고 아버지와 사마명 앞에서 떨지 못했던 너스레는 권마에게 대신했다.
“사부님이 여기 서 계실 때, 오직 절벽을 무너뜨리겠다는 일념으로 서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화가 날 때마다 서 계셨던 것 아닙니까? 맞죠?”
부정하지 못하고 권마가 웃었다.
그에게 인사하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꽉 쥐었던 두 주먹은 활짝 펴고 걸었다.
* * *
다음 날에도 변함없이 천독림으로 갔다.
독왕은 채집통을 들고 집 근처 숲을 거닐고 있었다.
“어제 벌어진 사건을 말씀드리자면…….”
그때 독왕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광폭이지?”
독왕도 어제 부작용만 듣고 그것이 광폭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히 알지. 너도 알다시피 독아들이 전 중원을 돌며 독초와 독물을 구하러 다닌다. 사도맹 놈들도 약을 만들기 위한 약초를 구하러 다니고. 그래서 놈들의 동태는 우리가 제일 잘 알지.”
독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심지어 경고도 했다. 그딴 약 만들지 말라고.”
“누가 만드는지 아십니까?”
“알지. 진독거사(眞毒居士)라는 머저리 같은 놈 하나 있다.”
진독거사. 그는 사파에서 독으로 유명한 독공고수였다. 독왕은 그를 떠올리는 것도 싫은지 갖은 인상을 다 썼다.
“독을 쓰는 사람들이라도 금하는 게 있는데, 이 자식은 너무 삼류로 놀고 있어.”
“그 삼류 놀음에 무고한 이가 많이 죽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죽은 여인도 있었죠. 본교 보고서에는 그런 사실은 올라가지도 않을 겁니다. 전체 사망자 몇 명! 이 한 줄의 보고에 모녀의 죽음이 묻히겠죠. 모녀가 원혼이 돼서 이 세상을 지켜보면 아이는 엄마에게 묻겠죠. 왜 아무도 우리 죽음을 신경 쓰지 않아요?”
독왕은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나무에 붙은 독충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젠 화내지 않았다. 내가 내 세상을 살아가듯 그도 그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저 독충 이름은 뭡니까?”
나는 그의 세상을 물었고, 그는 나의 세상으로 답했다.
“그들의 복수를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청살독에 들어가는 재료로 기억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
“위선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서 얻는 자기만족이지.”
우린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각자의 말만 했다.
“아, 뭐였더라? 이름이 생각날 듯 말 듯 한데.”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그걸로 끝이지.”
독왕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도 그를 보았다. 우린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를 만난 이후, 독왕이 가장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린 다시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수입니다. 오늘 엄마 품에서 죽은 여자애 이름이.”
“저 독충 이름은 백점충(白點蟲)이다. 청살독 재료가 아니라 오독향(五毒香)에 들어가는 재료고.”
독왕은 나를 만난 이래 가장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말해봐라. 네가 이러는 진짜 이유를.”
“제가 말하면 다들 그럽니다. 네가 정파냐고. 네가 정의의 협객이냐고. 그럴 때면 원혼이 된 아이처럼 저도 질문을 하게 됩니다. 힘없는 여자가 죽고, 아이가 죽고,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는데. 우린 마교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요? 그게 정파 놈들 생각이면 그럼 대체 우린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합니까?”
독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는 그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난 박수를 한 번 치면서 힘차게 말했다.
“가시죠. 오늘 잡아야 하는 독충이 많잖습니까?”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할 수 없이 나도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독왕은 발아래 지나가는 독개미들을 쳐다보았고, 나는 기왕 앉은 것 그가 듣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을 마저 했다.
“죽은 아이에게 오라버니가 있습니다. 피바다가 된 기루 밖에서 엄마와 동생이 무사한지 소리치고 있었죠.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 가족을 죽인 자들을 싹 다 죽이고 돌아왔다고. 원래는 아무도 못 죽이는 자들인데, 우리가 마인이기에 죽일 수 있었다고.”
여전히 시선을 개미들에게 둔 채 독왕이 말했다.
“넌 참 이해할 수 없다.”
“절대 저를 지지하지 마십시오. 까닥하다간 이런 사람이 차기 천마입니다.”
“죽어도 지지 안 한다.”
하지만 정작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독왕이었다. 그가 이렇게 덧붙였으니까.
“꼭 다섯 번 짖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