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0)
절대회귀-220화(220/424)
제220회 너는 너처럼 해야지.
바닥에서 올라온 것은 단상이었다.
그 위에 녹색 천이 깔린 납작한 상자가 있었다.
상자에 놓인 눈부신 그것에 나와 서대룡이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야명주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챙긴 야명주와 달랐다. 최상급 야명주보다 더 컸고, 더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극품야명주(極品夜明珠)다!”
야명주의 왕이라 불리는 최고의 야명주가 바로 이것이었다.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그것을 보자 서대룡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정말 이것이 존재했었군요!”
그때 바닥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생의 두 눈은 시뻘겠다. 너무나 큰 충격에 그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머지 모든 야명주를 다 합쳐도 이것 하나를 살 수 없었다. 그만큼 밝게 빛나서가 아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생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고통은 아직 모자라다. 그는 죗값을 치르는 거지만, 그에게 당한 사람들은 잘살던 인생에서 날벼락을 맞은 거였으니까. 수백, 수천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었으면 이 정도 고통은 겪어야지.
그로서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다행일 텐데, 회광반조 현상까지 찾아왔다. 그는 생의 마지막 고통을 맑은 정신으로 겪어야 했다.
난 조심스럽게 극품야명주를 손에 들었다.
“지금 각주님은 값으로 따져서 세상에서 제일 비싼 물건을 들고 계실 겁니다. 저도 한 번만 만져보게 해주세요. 아, 아닙니다. 저 떨어뜨릴지도 몰라요. 그냥 눈으로만 보겠습니다.”
바로 그때 황홀한 빛을 응시하던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꽈득.
극품야명주에 쩍 금이 갔다.
죽어가던 지생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도 남을 일이었다. 지생은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떴고 비명은 서대룡이 대신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칼에 찔려도 이런 비명은 안 질렀을 거다.
“안 만져도 돼요! 왜 이러세요!”
조금 더 힘을 주자.
꽈드드드득.
극품야명주가 내 손에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서대룡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서대룡이 이 정도니 지생은 어떻겠는가? 지생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서대룡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저자에게 고통을 주고 싶으시다지만, 극품야명주를 깨뜨리시다니요?”
서대룡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하는 표정이었다.
“어서 옷 벗어!”
“이러면 정말 미치신 것 같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서둘러 서대룡이 상의를 벗었다.
“앞에 펼쳐!”
후두두두둑.
서대룡의 옷 위로 부서진 야명주 조각이 떨어졌다.
난 조각들 사이에서 뭔가를 찾았다.
‘여기 있다!’
조각들 사이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들었다.
흑진주처럼 검고 영롱한 그것은 바로 하나의 단약이었다.
만독지극신단(萬毒至極神丹).
온갖 극독을 배합해서 만들어낸 독 중의 최고 영약이 바로 만독지극신단이었다.
“이 극품야명주는 가짜다. 이 만독지극신단을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졌지.”
회귀 전에 만독지극신단이 극품야명주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사파 무인들 사이에서 극품야명주 쟁탈전이 벌어졌다가 우연히 발견된 사실이었다.
진짜 극품야명주를 누가 가졌는지는 알고 있지만, 이 가짜 극품야명주가 지생의 손에 보관되고 있었다는 것은 나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감출 수 있지. 그 누구도 이걸 깰 수 있는 용기는 없을 테니까.”
서대룡도 지생도 크게 놀란 듯 보였다. 그들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일 것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놀란 서대룡의 물음에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어디 있더냐?”
언제나처럼 서대룡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
“다른 영약이면 너와 나눠 먹겠지만, 이건 나 말고 아무도 못 먹는 거다. 오직 만독불침만이 복용할 수 있어.”
내가 만독불침이란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서대룡이다.
“제가 복용할 수 있는 거라도 각주님이 드셔야 합니다.”
서대룡의 시선이 시체가 된 가짜 지생을 향했다.
“저자처럼 협박을 받으면 저는 당장 각주님께 달려와서 다 말씀드릴 겁니다. 저 살려달라고요. 책임지시라고요. 그때 저 살려주시려면 각주님이 강해지셔야지요.”
아마 일반 영약이라 해도 이런 말로 내게 양보했을 서대룡이었다. 내가 한 개를 주면 열 개를 되돌려주는 사람이라고? 그러는 너는?
“이 영약은 네가 아니었으면 얻지 못했을 거다. 고맙다, 서 조사관.”
지생이 아쉬운 눈빛으로 벽을 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영원히 이곳 지하에 묻혀 있었으리라.
“그 영약 이름을 오른팔의 눈썰미라고 이름 붙이시죠.”
“너를 소개하는 말에 ‘눈썰미까지 좋은’이란 말은 붙여주마.”
“제 소개가 너무 길어서 이제 외우지도 못하겠습니다.”
서대룡이 기분 좋게 웃었다. 누군가 자신이란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붙여주는 일이 어찌 싫겠는가? 단 하나의 의미를 얻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우리 인생인데.
“제가 호법을 서 드릴 테니 어서 복용하십시오, 각주님.”
나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 지생은 다시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달궈진 쇠로 살을 지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하늘은 그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만독지극신단을 꿀꺽 삼켰다.
만독불침이 되고, 이곳에서 이 영험한 독단을 얻은 것은 운명이라 여겼다.
지금까지 복용했던 그 어떤 영약보다 화끈하고 강렬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약의 기운이 어찌나 독한지 오장육부가 다 타버릴 것 같았다.
나는 운기조식으로 몸을 다스리며 만독지극신단의 기운을 녹이기 시작했다. 기운이 혈맥을 내달리며 온몸 구석구석의 작은 혈맥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단계를 이뤄낸 천맥강화술과 만독불침지체가 아니었다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그렇게 만독지극신단의 기운을 모두 녹이고 진기를 일주천하자 더없이 웅혼하고 정순한 내공이 단전에 더해졌다.
기존에 영약을 복용했을 때와는 단전에서 느껴지는 충만감이 달랐다. 단순히 ‘아, 내가 내공이 많구나’가 아니라 한 계단 위로 올라서면서 다음 단계의 내공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내공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가 됐다고.
“감축드립니다, 각주님.”
“다시 말하지만 네 덕분이다. 고맙다, 오른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더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모두를 지킬 수 있다.
나는 더욱 맑고 깊어진 눈빛을 갈무리하며 극품야명주를 싸고 있던 상자 속의 녹색 천을 곱게 접어서 품에 간직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역시 매우 중요한 기물이었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지생이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끈질기게 살아 있었고 애타는 눈빛으로 애원했다.
한 번만 아혈을 풀어달라고.
너무 궁금한 것도 많고, 너무 하고 싶은 말도 많은 그였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애원하는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준 적 있느냐?”
아쉬움과 원망이 극에 달하더니 이내 지생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다 내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욕심의 덧없음을 깨닫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할 법도 했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죽으면서까지 야명주를 모두 짊어지고, 만독지극신단을 씹어 삼키며 저승으로 가는 나룻배에 올라탄 것이다.
이래서다. 정파는 결코 이 지독한 열망과 그 속에 담긴 악의를 감당할 수 없다. 누군가는 저 애절한 눈빛에 속아, 또 기회를 주고 말 테니까. 저렇게까지 애원하는데,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까, 그래도 인간이니까.
악은 그냥 자라지 않는다. 상대의 선의를 잡아먹으면서 자란다. 죽어가면서도 선의를 베푼 자의 마음에 악의의 씨를 뿌리고 죽으려는 것이 절대악인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신선채와 관련된 모든 악인이 죽음을 맞이했다.
“저는 각주님처럼 못할 것 같습니다. 악인들을 이렇게 단호히 응징할 수 있을지.”
“나처럼 하면 안 되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너는 너처럼 해야지.”
서대룡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네, 저는 저처럼 하겠습니다.”
서대룡이 야명주가 든 자루를 챙겼고 나는 가짜 지생의 시체를 옆구리에 꼈다.
진짜 지생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죽음은 시작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악인들의 목숨, 탐욕, 그들의 얕은 믿음, 배신, 미련, 평생 모은 재산, 그리고 서대룡과 나까지. 얽히고설켰던 그 모두가 사라졌다.
* * *
“워낙 이공자가 뛰어나니 우리가 필요 없겠소.”
독왕의 말에 극악소마가 힐끗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한마디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두 사람인데, 한번 말문이 트이자 이제 곧잘 대화를 나눴다.
“그렇지 않소?”
검무극이 마무리는 자신이 하겠다며 서대룡만 데리고 간 것이다.
“따라가고 싶었소?”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사실 독왕은 따라가고 싶었다. 가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나 구경하고 싶었는데, 둘만 가니 괜히 섭섭했다.
“앞으로 우리가 나서줘야 할 일들이 많을 거요. 특히 야율한은 이공자 혼자서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자니까.”
극악소마의 눈빛에 걱정이 스쳤다. 독왕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바깥출입을 하지 않더라도 마존으로서 보고 듣는 것들이 있다.
“야율한은 맹독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극독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극악소마의 걱정은 야율한에 그치지 않았다.
“사인방과 별개로 야율한을 지키는 절대고수들이 따로 있다고 들었소. 야율한도 강하지만, 그 고수들도 무시 못 할 자들일 거요. 그때는 우리도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소.”
상대는 사도맹의 이인자였다. 숨겨둔 칼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또 몇 자루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독왕이 극악소마에게 물었다.
“정말 이공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소?”
극악소마는 잠시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나는 이공자와 함께 싸우는 것이 즐겁소.”
독왕은 저 말이 이공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고 들렸다.
독왕은 부러웠다. 자신은 없다. 목숨을 걸어줄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줄 사람도.
그래서 괜히 이런 말이 나왔다.
“나야 교주 명령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나와서…….”
극악소마는 말없이 독왕을 응시했다. 눈빛이 물었다. 정말 그런 거냐고.
독왕은 정말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이공자의 애도에, 이공자의 노력에, 이공자와의 만남이 즐거웠기에.
어쩌면 다른 이유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날이 덥소.”
독왕이 괜히 애꿎은 부채를 펼쳐서 살랑살랑 부치기 시작했다.
* * *
검무극과 서대룡이 거처로 돌아왔다.
“일은 잘 마무리했습니다.”
검무극이 그곳에서 있었던 일과 얻은 것들을 마존들에게 그대로 알려주었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내용이었지만, 하나도 빼놓지 않고 솔직히 다 말해주었다.
딱 한 가지, 극품야명주와 만독지극신단에 관한 것은 제외했다. 극품야명주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문제지만, 만독불침을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겁니다.”
내 말에 독왕이 물었다.
“다음 목표는 누군가?”
“검은뱀 문신을 한 애차입니다. 독왕님께서 꼭 보고 싶어 하는 진독거사의 수장이기도 하죠.”
“그 삼류 독쟁이 놈을 드디어 만나겠군.”
독왕이니까 할 수 있는 폄하였다. 진독거사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다. 그는 사파를 대표하는 독공고수였으니까.
애차는 그 진독거사와 손을 잡고 광폭과 흑비 등의 약을 팔고 있었다.
“독왕께서는 진독거사를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없다.”
내 물음에 독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행이군요. 얼굴을 알면 은밀히 접근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이번에는 독왕님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 일만큼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물을 제조해서 시중에 파는 진독거사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것을 떠나 이건 독인의 자존심 문제였다.
“고 군사의 정보에 따르면 애차의 처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진독거사가 광폭과 흑비를 생산해 내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곳에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철통같은 경계가 펼쳐져 있고요.”
그때 서대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광폭도 광폭이지만 애차를 없애도 됩니까? 지생이 죽었는데, 연이어 애차가 죽으면 야율한이 의심할 텐데요.”
“의심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해야지. 우연이 겹쳤다고 여기게끔.”
“어떻게요?”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통할지 안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광폭으로 시작된 일이니, 광폭으로 끝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