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4)
절대회귀-224화(224/424)
제224회 이번에는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극악소마는 지붕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하얀 벽만 쳐다보고 있던 그가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말했다.
“하늘을 봐도 하얀 구름만 골라 보시죠?”
반가운 목소리에 가면 속 극악소마의 눈이 환하게 웃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검무극이었다.
극악소마가 몸을 일으켰다. 뒤이어 마당으로 독왕이 들어섰다. 독왕의 외모는 언제나 맑고 푸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검무극은 이번에 확실히 경험했다. 저 해맑은 풋풋한 외모와는 달리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그의 하독은 예술이었고,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그는 사파제일 독공고수의 독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 시선을 느낀 독왕이 촤아악 부채를 펼친 후 살랑살랑 흔들면서 들어왔다.
극악소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계획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계획이 훌륭했습니다.”
그러자 검무극이 말했다.
“독왕님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번 일을 못 해냈을 겁니다.”
아버지가 왜 독왕을 중시하는지, 왜 무림이 독왕을 두려워하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독왕이 검무극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말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할 거냐?”
검무극은 그가 무슨 의도로 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말이 듣고 싶은 것이리라.
“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때까지요.”
듣고 싶은 말을 들은 만족감이 독왕의 눈가에 스쳤다.
촤르륵. 부채를 소리 내서 접은 후, 독왕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 뇌옥에 있다가 하늘 보니까 너무 좋습니다.”
검무극은 앉아서 극악소마는 그 자리에서 선 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그렇게 있는데 대문으로 누군가 들어오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서대룡이 저자에서 요리를 사서 돌아온 것이다. 그의 양손과 품에는 요리를 만들 식자재들이 가득 안겨 있었다.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땅을 보고 이야기하는 서대룡.
기다란 파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래서 이쪽을 못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극악소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신선한 재료가 많더라고요. 지금까지 안 해드렸던 요리를 하나 객잔 숙수에게 배워왔습니다. 제가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시선도 못 마주치며 저렇게 주절주절하는 서대룡을 검무극은 웃으며 쳐다보았다. 그는 검무극이 함께 있는 것도 몰랐다.
“매번 고맙네.”
극악소마의 말에 서대룡의 시선이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갔다.
“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요. 아, 그리고 어제 꿈에 각주님이 돌아오시는 꿈을 꿨습니다. 우리 각주님, 은근히 보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셔서.”
검무극이 그에게 말했다.
“격렬하게 보고 싶을 때까지 오지 말 걸 그랬다.”
서대룡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각주님!”
눈이 휘둥그레진 서대룡의 품에서 식재료들이 떨어졌다.
휘이익.
떨어지던 재료들이 검무극의 허공섭물로 허공에 떴다. 뇌옥에서는 열쇠가 떴고, 이제는 파와 채소와 고기가 떴다.
서대룡이 서둘러 그것들을 수습했다.
음식 재료를 가득 든 서대룡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정말 옆에 극악소마가 아니었다면 그는 당장 지붕으로 날아올라서 자신을 와락 껴안았을 것이다. 파 속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 소년에게 가서 전해라. 복수는 우리가 했으니, 네 삶을 살아가라고.”
말을 하는 순간 서대룡이 울컥했다. 이번 여정 내내 서대룡은 그 소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네, 이것이 차기 천마님의 마도라고 꼭 전하겠습니다.”
검무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형 귀에 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그러자 서대룡이 재빨리 다시 말했다.
“이것이 이공자님의 마도라고 꼭 전하겠습니다.”
검무극이 훌쩍 뛰어내렸다.
“밥 먹자, 배고프다. 근데, 우냐?”
“울긴요. 양파가 너무 매워서죠.”
까지도 않은 양파와 함께 서대룡이 안으로 들어갔다.
검무극은 따라 들어가기 전에 지붕에 서 있는 극악소마를 올려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서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극악소마와는 항상 따로 밥을 먹었지만, 검무극은 항상 식사 전에 이렇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러면 그와 함께 밥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 * *
저녁에 고월과 풍천교주가 합류했다.
“공자님!”
“이공자!”
언제나 변함없는 두 사람이다.
“이제 추잡스럽고 위험한 약이 돌아다니지는 않겠군.”
풍천교주는 나와 독왕의 노고를 치하했다.
“독왕께서도 고생하셨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재미있었겠구려.”
내심 부러워하는 풍천교주였다. 날 위해 그렇게 헌신해준 그인데, 언제 그와도 따로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우린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우리가 애차와 진독거사를 해치우는 사이, 고월은 다음 목표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다음 목표는 여불개(呂不改)입니다.”
그의 설명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을 물었다.
“두 사람이나 연이어 죽었으니, 야율한이 의심하지 않겠나?”
“당연히 의심이 들겠죠. 한데 어쩌겠습니까? 둘이서 칼부림하며 싸운 것을 목격한 수하들이 가득한데요. 게다가 한 사람은 광폭에 중독되어 있고요. 결국 불운이 겹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남은 두 사람을 불러들일 일은 없다?”
“네. 게다가 야율한의 성격은 외부의 압력에 꺾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입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새로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을 물색하겠지요. 그는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야 많겠지. 사도맹 이인자와 손을 잡기 위해 사파 고수들이 줄을 서 있을 테니까.”
그때 풍천교주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여불개까지 죽으면 그땐 생각이 달라질 거네. 우연이 세 번이나 겹친다고 믿지는 않을 테니까.”
그 말에 고월이 이후 작전 계획을 내놓았다.
“그래서 여불개의 죽음이 야율한에게 알려지기 전에, 야율한을 처치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울까 합니다.”
“사인방 중 남은 하나는?”
“그는 항상 야율한 옆에 붙어 있습니다. 어차피 같이 처리해야 할 자입니다.”
여불개를 죽이고, 그의 죽음이 알려지기 전에, 야율한과 마지막 수족을 해치운다. 다시 말해서 거의 동시에 셋을 다 처리하자는 말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나는 고민하지 않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곧 세부 계획 올리겠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독왕이 불쑥 물었다.
“야율한까지 죽이고 나면, 사도맹에서는 우리 소행으로 의심할 텐데?”
그 점은 고월 대신 내가 답했다.
“그 문제는 제게 한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독왕이 정말 거기까지 해낼 수 있는 거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그건 나도 모른다.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나도 알 수 없었으니까.
“우선은 여불개에 대해 말해보게.”
고월이 여불개에 대해 설명했다.
“여불개는 가슴에 쥐 문신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중원에 수백 개의 기루를 관리하는 그야말로 밤의 제왕으로 불리는 자입니다. 쥐 문신을 한 이유도 잠을 자지 않고 밤에 돈을 벌겠다는 의지를 보인 겁니다.”
“성격은 어떠한가?”
“이자 역시 악랄하기 그지없는 인물입니다. 여인들을 납치하고, 염왕채에 내몰린 집안의 딸을 빼앗고, 온갖 추악한 수단을 다 부려서 지금의 불야성(不夜城)을 이뤄냈습니다. 게다가 색욕도 엄청 강해서 수많은 여인이 놈에게 당했습니다. 나이 든 기녀는 괴이한 사공을 익히는 자들에게 육체를 팔아넘긴다는 소문까지 있습니다.”
지생이 신선채로 인해 죽어야 했고, 애차와 진독거사가 광폭으로 죽어야 했다면, 이자 역시 죽어 마땅한 자였다.
아버지에게 야율한과 사인방을 모두 처리하고 오겠다고 허락을 받은 이상, 한 놈도 빼지 않고 다 처리할 작정이다. 나와 마존들이 아니라면, 밤의 제왕의 자리에 오른 자를 누가 없앨 수 있겠는가? 그것도 사도맹 이인자의 비호를 받는 자를 말이다.
“중원 전역으로 기루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데, 최근 귀주로 새롭게 영역을 확장하려는 중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극악소마가 입을 열었다.
“귀주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극악소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귀주에 천화루가 있었다. 극악소마를 좋아하는 여인 천화루주 여정도 그곳에 있었고.
극악소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소마님을 보필하겠습니다.”
극악소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모두 무슨 일인가 나를 쳐다봤지만, 내가 말할 사안은 아니었다.
“내일 일찍 귀주로 출발할 겁니다. 다들 준비하십시오.”
* * *
회합을 마친 후 고월과 따로 차를 한잔했다.
“이번 일은 더욱 신경을 써야 하네.”
나는 고월에게 천화루와 천화루주 여정, 그리고 극악소마와의 관계까지 모두 말해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군사만큼은 알고 있어야 했으니까.
“정말 하늘이 펼친 그물은 빠뜨리는 것이 없군요.”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극악소마가 천화루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자 고월은 걱정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쪽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소마님도 잘 알고 계시니까. 큰 걱정할 필요는 없네.”
“좋아하는 사람이 개입되면 생각지 못한 변수도 있는 법입니다.”
“변수는 없어. 믿어도 돼.”
내 확신에 고월은 미소를 지었다.
“왜 웃나?”
“공자님께서 이렇게 믿으시는 분이 계셨나 해서요.”
“자네 있잖아? 서 조사관도 있고. 이안도 있고. 장 군주도 있고. 다 똑같이 믿는다.”
그럼에도 극악소마를 생각하는 다른 특별함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방금 말씀하신 사람들이 배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워낙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나가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작정한 배신은 흔하지 않잖아? 누군가에 회유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배신감을 느끼는 정도 아니겠나?”
고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했다.
“배신감도 각자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상대에게 실망감을 느껴서 떠나는 건데, 떠난다는 이유만으로 배신자로 몰릴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떠나보내는 사람이 배신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사람과의 이별에 관한 내 신념을 고월에게 밝혔다.
“누군가가 나를 떠나고 싶어 한다면 난 만날 때보다 더 예의를 갖춰 보내줄 거야. 떠나는 사람을 배신자로 만들지는 않을 거다.”
고월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럴 때 보면 저보다도 형님 같으십니다.”
“애늙은이라서 그래.”
고월하고는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면 알수록, 그는 더 훌륭한 군사가 될 테니까. 이런 노력이 없이 좋은 군사가 되기만을 바란다면, 배신자는 그때 만들어지는 걸 테니까.
그때 그곳으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끼어도 되나?”
그는 바로 풍천교주였다.
“물론입니다.”
그가 함께 자리했다.
“그러고 보니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는 듯, 풍천교주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누가 어찌나 잔소리하는지. 어쩔 수 없이 빼고 있네. 자고로 남자란 듬직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내 앞에서 진지하던 고월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교주는 뚱뚱했다고.”
“안다고. 그래서 열심히 수련 중이잖아!”
풍천교주의 무공 특성상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더 살이 많이 붙기도 했다.
“더 빼야 해. 아직 멀었어.”
“잔소리는! 술이랑 고기 가져와! 오늘 다 먹어 치울 거다!”
이 대화만 듣는다면 세상에 누가 이 남자를 풍천교주라 생각하겠는가? 누가 이 남자를 그때 묶여 있던 족쇄 사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곳에 서대룡도 합류했다.
“어땠나? 소마님과는?”
“무서웠죠.”
“무섭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던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자에서 음식 사서 들어올 때, 말 많이 하던데?”
“무서우면 말 많아지는 것 모르십니까?”
하지만 무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아쉽기도 합니다. 소마님에게 밥을 가져다줄 때마다 심장이 쿵쿵 귓가에 들릴 정도로 뛰었거든요. 그때의 묘한 긴장감, 그거 중독성 있습니다.”
그때 뒤에서 또 누가 말했다.
“중독은 내 전문인데?”
돌아보니 독왕이었다.
“남자들이 넷이나 모여 무슨 차를 마시고 있나?”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 괜히 한마디 하면서 앉았다.
“우리 서 조사관이 소마님에게 중독되는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이었습니다.”
“소마 그 사람 비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러자 서대룡이 기회다 싶어 우리에게 일러바쳤다.
“이런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소마님이 또 보기보다 입이 짧으시더라고요. 같은 음식은 연속해서는 잘 안 드시고. 그래서 제가 매번 저잣거리를 비 맞은 늑대처럼 쓸쓸하게 헤매면서 오늘은 무슨 반찬을 사나, 또 내일은 무슨 요리를 해드리나…….”
그때 서대룡은 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의 뒤쪽을 향하고 있음을.
서대룡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죠?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극악소마가 서대룡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귀하게 자라서 입이 좀 짧네.”
서대룡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저는 입이 싸고요. 죽여주십시오.”
“내 입이 짧아진 만큼 자네 명줄도 짧아졌으니, 괜찮네.”
극악소마의 농담에 서대룡이 머리를 감싸 쥐었고 모두 그를 보며 웃었다.
극악소마는 전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조금 더 유쾌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여불개야, 너 큰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