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5)
절대회귀-225화(225/424)
제225회 오늘 귀한 손님이 올 거예요.
다음 날 아침, 출발 전에 극악소마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천화루는 소마님과 저만 가시죠.”
극악소마가 천화루주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기에, 지켜줘야 할 비밀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러자 극악소마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다 같이 가셔서 원래 계획대로 일 진행하시죠.”
“굳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고 군사와 다른 사람들은 외부에서 협력하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같이 가자는 것에는 뜻밖의 이유가 있었다.
“천화루주에게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독왕과 서대룡, 고월과 풍천교주까지.
“천화루주는 야망이 큰 사람입니다. 한데 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많이 참고 있었죠. 이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나는 극악소마가 진심으로 천화루주를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아끼는 것 이상의 큰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공자가 믿는 사람들이잖습니까? 그러니 괜찮습니다.”
극악소마의 결정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잘 숨겨두어서 좋을 때가 있고, 세상으로 나가서 좋을 때가 있다. 이 경우는 후자일 것이다. 적어도 천화루주에게 해가 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린 마주 보며 웃는 것으로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극악소마의 거처를 나와서 마당으로 갔을 때, 마차에 짐을 실으며 고월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 고민이 많아 보였다.
“고 군사. 너무 고심하지 말고 즐겨. 군사로 살아가면서 평생 수많은 계획을 세워야 할 텐데, 나와 소마님, 독왕님이 그 계획을 수행하는 경우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야. 그러니 이 상황을 즐기라고.”
고월이 감사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풍천교주가 질투의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내가 백 마디로 따는 점수, 언제나 한마디로 따는구나.”
“고 군사를 믿으십시오. 제겐 일 점 주고 교주님께는 백 점 드릴 겁니다.”
그렇게 내 하나밖에 없는 군사와 교주의 마음까지 다독여 준 후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출발입니다!”
* * *
화려하게 꾸며진 방이었다.
특별히 제작된 침상은 열 명이 누워도 남을 크기였고, 이 큰 방을 채운 가구들은 명장들이 만든 비싸고 귀한 것들이었다. 곳곳에 장식된 도자기나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문고리 하나까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비싼 것들이었다.
이 크고 화려한 방에 십여 명의 여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속살이 보이는 얇은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나이도 제각각, 미모도 제각각이었다. 다만 그녀들의 표정은 하나였다.
절망.
세상의 모든 절망이 담긴 눈빛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좌우로 늘어서 앉은 그녀들의 중앙에 여불개가 앉아 있었다. 머리는 허옇고 주름은 쭈글쭈글했지만, 눈빛만은 젊은이 못지않게 정열을 뿜어냈다.
여불개는 전서를 읽고 있었다.
지생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애차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쭈글쭈글 주름진 손이 전서를 꽉 움켜쥐며 구겨서 여인 중 하나의 머리에 던졌다. 머리를 맞고 떨어진 전서를 여인이 주워서 등잔에다 태웠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나?”
그의 물음에 정면에 앉은 황염(黃染)이 정중히 대답했다.
“겉으로 표는 안 냈지만, 우리가 여자 장사한다고 은근히 무시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잘 죽었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이다. 황염은 여불개의 오른팔로 누구보다 주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과연 여불개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죽은 지생과 애차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 자존심만 강해서 사람 무시하기 일쑤였다. 한 번도 자신에게 먼저 인사하는 꼴을 못 봤으니까. 그러니 그들의 죽음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것이었다.
“어디 외부에서 치고 들어온 것 아니냐 이 말이야.”
“그럴 가능성은 배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조사 결과 내부 갈등으로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나왔습니다. 상부에서도 촉각을 세워서 조사했을 텐데, 그들을 속일 실력이면 우리라고 살겠습니까?”
여불개의 이마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불안하십니까?”
“다음 목표는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알지 못했다. 양옆으로 고개 숙인 여인들의 눈빛에 하나의 염원이 담겼다는 것을. 제발 다음은 그가 되기를!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고수들을 다 불러들이겠습니다.”
여불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그는 이런 농담을 했다.
지옥의 염왕도 날 받지는 않을 거다. 지옥 더러워진다고.
한데 그건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을 때나 하던 농담이었다. 막상 위험을 느끼니 누구보다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혹시 모르니…… 음양귀(陰陽鬼)들에게도 연락하고.”
음양귀란 말에 황염이 흠칫했지만 이내 순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예전이라면 몇 마디 오갔을 사안이다. 그자들을 움직이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괜히 무림에 풀었다가 사고를 칠 수도 있다. 그럼 상부에서도 좋아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과정은 생략할 수 있어서 좋다.
이제 황염은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몸이 하나 더 있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단적으로 그는 자신의 눈빛만 봐도 수십 명의 여자 중에서 자신이 고른 여자를 딱 골라낸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아직 꿈을 다 못 이뤘다.”
여불개는 전 중원에 빠짐없이 자신의 기루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까지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해서 중원에 기루를 확장해 왔다. 직접 세우기도 했고 남의 기루를 빼앗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진상을 보내 난장을 부리는 방법부터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음식에 약을 타서 손님들을 탈 나게 하거나, 심지어는 기루에 불까지 질렀다.
이런 무식한 방법이 통할까 싶겠지만, 의외로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평판을 떨어뜨려서 경쟁 기루를 없애거나, 그곳을 헐값에 사들였다. 그 과정에서 자결하는 기루 주인을 볼 때면 여불개는 쾌감을 느꼈다.
“악착같이 살아서 꿈을 이루셔야죠. 자, 여기 루주님이 꾸실 새로운 꿈입니다.”
황염이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는 천화루에 관한 자료였다. 자신들이 진출하려는 귀주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가 천화루였기에 그곳부터 차지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내용을 살피던 여불개가 탐욕 가득한 눈빛을 발했다.
“추정되는 수익이 어마어마하군.”
“우리가 가진 중원의 어느 곳보다 돈을 많이 버는 곳입니다.”
“기녀들이 미녀들인가?”
“그렇기도 하고, 천화루주의 수완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화루주가 여인이랬지?”
“맞습니다. 기녀들도 잘 다루고, 손님들도 잘 다루고. 수하로 부리는 무인들도 그녀를 존경하고 있답니다.”
“그래봤자 하찮은 계집년이지.”
여인을 무시하는 것은 그의 타고난 본성이었다. 어찌나 멸시하고 싫어하는지 황염은 여불개가 어려서 모친이나 혹은 다른 어떤 여인에게 모진 학대를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분명 그의 병적인 색욕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모는?”
“상당히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여불개가 눈을 나른하게 뜨며 색심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이 여인들을 향했다. 이 여인들이 모두 한때 기루의 루주들이었다. 세상에는 실종되거나 죽은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여불개에게 기루를 넘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여인들. 가족들과 친구들이 아무리 찾았어도 결국 찾지 못한 여인들.
여불개는 자신이 뺏은 기루의 루주들 중 미모가 뛰어난 여인을 납치해서 수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짓이었지만 이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설령 누군가 알았다 하더라도 감히 여불개를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제야 균형이 맞겠군.”
여인은 모두 아홉 명이었는데 천화루주가 오면 열 명이 될 거란 의미였다.
황염이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끝났을 때, 천화루주를 여불개의 침소에 들여주겠다는 신호였다.
“이미 흑백쌍도(黑白雙刀)가 갔습니다.”
흑백쌍도는 여불개의 수족으로 무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무공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려서부터 철저히 명령만을 수행하는 비정한 칼잡이로 키웠기에, 사람의 감정을 지니지 않은 자들이었다.
이번 천화루 같은 경우는 어설픈 수작이 통하지 않을 곳이었기에 곧장 흑백쌍도를 투입했다.
직접 루주를 납치해서 강제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방법을 쓰려는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아홉 명의 여인들도 그렇게 당한 여인들이었다.
“손끝 하나 건들지 말고 잘 데려오라고 해!”
언제나 변함없는 색골 늙은이의 걱정이었다.
* * *
“오늘 귀한 손님이 올 거예요.”
천화루주 여정은 아침부터 자신의 거처와 내원을 청소하게 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었다.
시비들과 시종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들은 천화루주가 귀한 손님이 온다면 그날 반드시 손님이 온다는 것을 매번 경험했다. 처음에는 온다고 기별을 받아서 알겠거니 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모두 천화루주가 특별한 사람임을 알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도 틀린 것 같았다.
내원으로 들어선 사람은 귀한 손님이 아니라 불청객들이었다.
백색과 흑색의 장삼을 입은 흑백쌍도가 들이닥친 것이다.
천화루주는 시종과 시비들을 안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와 동시에 그녀를 지키는 내원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 숫자가 많았지만, 흑백쌍도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둘의 기세가 전체를 압도했기에 천화루 무인들의 표정에 긴장이 감돌았다.
천화루주가 침착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가요?”
그러자 흑백쌍도 중 흑의를 입은 흑도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주인이 그대를 보고 싶어 한다. 가자.”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갑고 무뚝뚝한 어조였다. 어떻게 보면 아이 같기도 했고, 목석이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대들의 주인이 누구신데요?”
“가보면 안다.”
“죄송하지만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시는 날이라서,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네요.”
물론 흑백쌍도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우리 주인보다 더 귀한 분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 앞을 막아선 천화루의 여덟 무인 중 네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나머지 넷은 천화루주를 감쌌다.
검과 도가 빠르게 부딪쳤다.
지금껏 천화루를 지켜온 고수들이었지만, 흑백쌍도의 실력은 그들보다 위였다.
채 십여 수도 버티지 못하고 달려 나간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팔과 허리를 길게 베이면서 쓰러졌다.
흑백쌍도가 그들의 목숨을 끊으려고 도를 치켜들던 바로 그 순간, 천화루주가 몸을 날려 그들 앞을 막았다.
“이 사람들을 죽이려면 나도 죽여야 할 거예요.”
그녀를 데려가는 것이 임무였기에 흑백쌍도는 도를 거두었다.
그녀가 다친 사람들의 혈도를 눌러 지혈했다.
“치료하고 기다리세요, 다녀오겠어요.”
“안 됩니다, 루주님!”
다른 무인들이 나서서 막아서려고 했지만 천화루주는 단호히 그들을 제지했다.
“모두 멈추세요!”
그녀의 명령에 무인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이대로 싸웠다간 모두 개죽음당할 것을 모두가 알았다. 천화루가 생긴 이래, 이런 고수가 침입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대들이 여기서 헛되이 목숨을 잃는다면 나는 평생 한이 되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물러나서 본루를 지키세요.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실 테니 그분에게 이 일을 전하시면 됩니다.”
무인들을 강제로 물리고 그녀가 흑백쌍도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흑백쌍도는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껏 여러 여인을 납치해 갔지만, 한 번도 이런 침착한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천화루주가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가 사람의 앞날을 잘 봅니다. 한데 두 분의 앞날은 칠흑처럼 캄캄해서 잘 보이지가 않네요.”
흑백쌍도가 차갑게 웃더니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갔다.
흑도가 그녀의 마혈을 제압하려고 손을 뻗던 바로 그때였다.
한 줄기 지풍이 빛처럼 빠르게 날아들었다.
피이잉! 퍼억!
날아든 공격에 흑도의 손등이 뚫리며 그의 손에 구멍이 났다.
짤막한 비명과 함께 흑도가 부상을 지혈하려던 그 순간.
피이잉! 퍼억!
이번에는 지혈하려던 다른 쪽 팔의 팔꿈치가 꿰뚫렸다.
“으윽!”
흑도가 본능적으로 몸을 수그리던 순간.
피잉! 퍽!
이번에는 어깨가 뚫렸다. 너무 빠르게 날아들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지풍이 날아든 곳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연속해서 지풍이 날아들었다.
배와 허리와 무릎이 연이어 꿰뚫렸다. 비처럼 쏟아진 지풍은 그의 몸을 완전히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악!”
흑도는 평생 참았던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피이잉! 퍼억!
마지막으로 그의 이마가 꿰뚫리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지풍이 워낙 빠르게 연속으로 날아들었기에 모두 그가 죽는 모습만 보았다. 심지어 백도조차 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흑도의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제야 모두의 시선이 지풍이 날아든 곳을 향했다. 천화루주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얀 가면을 쓴 극악소마가 그들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